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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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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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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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3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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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7화

DUMMY





신선혜에게 아까 전 보았던 두 번째 프롬프터 내용에 대해 읊어주기 시작했다.

제인이 같은 그룹 멤버인 오로라에게 이런 저런 폭력적 학대를 가하는 장면 묘사.

내가 생각해도 마치 옆에서 직접 목격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을 만치, 지극히 생생한 묘사였다.


‘‘오, 오빠.’’

‘‘응? 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잠자코 내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신선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그러니까 이 이야기들, 아까 차 안에서 제인한테 직접 들은 이야기라는 거예요?’’

‘‘그렇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내가 속속들이 잘 알겠어?’’

‘‘그럼, 대체 ......’’

‘‘응? 뭐가?’’


신선혜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 ....... 대체 이걸 그 사람이 오빠한테 왜 다 털어놓은 거예요?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잖아요.’’

‘‘하하하, 하하하. 고맙군, 좋은 질문 해 줘서 아주 고맙군. 하하하, 하하하.’’


나는 잠시 웃어댔다.

그녀 질문에 대한 대답을 꾸며낼 시간이 필요해서는 아니었다.

거꾸로였다.

이미 이 질문이 나올 줄 알고 만반의 준비를 다 해 놓은 상태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격세지감이다.

나 원래 순간순간 애드립으로만 먹고 살던 놈이었는데.

어떤 방송에도 자료 준비 같은 거 절대 안 해 가는 놈으로 유명했는데.

이제는 예상 질문 뽑아놓고 그에 대한 답변까지 준비하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왜냐하면, 제인이 내게 정치 컨설팅을 부탁해 왔거든.’’

‘‘예? 정치 컨설팅이요?’’

‘‘응. 그러니까 아까 방송 할 때 제인이 유달리 나한테 살갑게 했던 거, 그게 다 숨은 목적이 있었던 거지. 물론 뭐 뭇 여성들이 다 그러하듯, 나한테 남자로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낀 측면도 있었겠지만, 그 못지않게 정치 컨설트로서 나의 능력을 신뢰해 자기 문제를 의뢰하고 싶었던 거지.’’

‘‘어머나! 그럼, 제인이 정계 진출 같은 걸 꿈꾸고 있다는 말?’’

‘‘그렇지. 바로 그거였어. 제인이 가수협회장 직을 맡으면서 정치에 대한 꿈까지 키우게 된 거지. 아까 방송 중에 지 입으로 그랬잖아. 가수협회장 선거도 정치요, 당선된 후에 일도 정치라고. 요즘 정치가 일상화 되었다고.’’

‘‘아! 맞아요! 그랬었죠.’’

‘‘여기까지 대충 이해가 가?’’


나는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물어봤지만, 그녀는 조바심을 냈다.


‘‘계속 이야기해주세요. 얼른 계속이요.’’

‘‘그러지. 그래서 차 안에서 그녀와 잠깐 정치 컨설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 으레 차 안에 남녀가 타면 이런 저런 내밀한 일이 벌어지잖아. 우리도 그랬었지.’’

‘‘예에?’’

‘‘정치 입문 계획에 관한 대화만큼 내밀한 일은 없는 법이니까 말이야, 신변! 내밀한이라고 하니까 무슨 딴 생각, 혹시 야한 생각 같은 걸 했나, 하하하.’’

‘’아이, 자꾸 농담하지 말고요. 얼른 이야기 해 줘요.’’

‘‘알았어, 알았다구. 그렇게 그녀가 내게 정치 컨설팅에 관한 의뢰를 해 와서 내가 그랬지. 정치 컨설팅이란 변호사 일이랑 거의 엇비슷한 거라고.’’

‘‘예에? 그건 또 무슨 뜻?’’

‘‘무슨 뜻이긴. 신변! 신변이 의뢰인 만나면 무슨 말을 제일 먼저 해? 나를 믿고 사실 그대로만 말해 달라. 보통 그런 말부터 하지 않나.’’

‘‘뭐, 보통 변호사들이 그렇죠.’’

‘‘그렇지? 그래서 나도 제인한테 그런 의미로 말 한 거지. 정치컨설팅이 변호사랑 하는 일이 비슷하다고. 그러니 있는 사실 그대로 이야기해 준다는 약속부터 해 달라고.’’

‘‘듣고 보니 그럴 듯하네요.’’


듣고 보니 그럴 듯한 정도가 아니라 내가 생각해도 너무 논리정연하다.

일찍이 내가 이런 논리정연함을 갖춘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요?’’

‘‘그래서 그녀가 알았다고, 숨김없이 다 이야기하겠노라고. 그래서 내가 곧바로 그녀에게 무슨 질문을 했는지 알아?’’

‘‘무슨 질문이요?’’

‘‘아까 방송 중에 신변이 했던 그 질문. 군기반장에 관한 질문. 물론 내가 그 질문을 다시 한 이유는 오로지 신변에 대한 복수심의 발로에서 였지.’’

‘‘어머머머머!’’


결국 신선혜는 내게 감동 짓는 표정을 보이고 말았다.


‘‘처음에는 아까 방송 중에 했던 말을 반복하더라고. 다 루머이고 오히려 후배들의 수호천사 역할을 했었다느니 어쩌느니. 그래서 내가 윽박지르듯 말했지. 천하의 핑크걸스 리더 제인한테 말이야. 만약 내게 거짓말을 하다가 혹시나 후배들 얼차례 주거나 왕따 시켰다거나 하는 그런 사실이 훗날 폭로되고 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내 정치 컨설팅은 모두 공염불이 되어버리고 만다고. 요즘 학폭 문제가 제일 큰 사회 문제 아니냐고. 정치인들도 자유롭지 못한 시대라고. 그러니까 결국 손을 들 수밖에, 하하하.’’

‘‘아하!’’

‘‘그런데 여기서 끝냈으면 내가 걍됐구지, 강대구, 아니 깡다구겠어? 깡다구 있게 다음 질문을 또 던졌지.’’

‘‘어떤 질문이요?’’


내가 어깨를 한 번 멋들어지게 으쓱해 보인 후 말을 이어갔다.


‘‘아까 다큐에서 각 멤버들 루머를 해명했다는데, 당신 군기반장 루머 건 말고 다른 거, 오로라 왕따설에 대해 당신은 정말 책임 없느냐고.’’

‘‘그랬더니 뭐래요?’’


신선혜가 눈을 한층 더 반짝거리며 물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그런 거 없다고 우기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당신이 연예계 군기반장이었다고 하고, 오로라가 왕따를 당했다고 하면 당연히 당신이 가장 강력한 용의자 아니겠냐고. 그래도 계속 자기가 아니라고 한 동안 버티더라고. 그래서 결국 내가 비장의 무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지.’’

‘‘오빠의 비장의 무기가 뭔데요?’’

‘‘나의 비장의 무기 ...... 뭐긴 뭐겠어, 카리스마지.’’

‘‘예?’’


자세를 조금 고쳐 앉으며 말을 이어갔다.


‘‘더 이상은 거짓말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단호한 표정과 위압적인 목소리, 그리고 빈틈없는 논리로 무장해서 계속 다그쳤지, 하하하.’’

‘‘어머머머! 그랬더니요?’’

‘‘으잉?’’


이 지점은 그냥 빵 터지게 하려고 한 지점인데.

그런데 신선혜는 내 위트 친 부분에서마저 리얼리티를 느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결과를 궁금해 하고 있다.

그로부터 오히려 순간 당황한 건 나였지만,

눈치 못 채게 재빨리 표정을 숨기며


‘‘어떻게 되기는. 결국 내 카리스마에 굴복해 백기를 들며 이실직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게지. 하하하.’’

‘‘어머머머! 진짜 짱이다.’’


급기야 신선혜가 나를 향해 양 손으로 엄지 척을 해보였다.

아! 정말 이 치명적인 백치미란.


‘‘자! 이제 내가 어떻게 해서 이 모든 정보를 취합하게 되었는지 전부 이해가 가지?’’

‘‘예. 근데 오빠 .....’’

‘‘응. 또 뭐?’’


신선혜를 향해 일부러 얼굴을 신경질적으로 찌푸려 보았다.

천하의 제인을 카리스마로 굴복시킨 나인데 너쯤이야 가볍게, 뭐 이런 걸 보여주려는 심산이었다.

순간, 신선혜도 일순 움찔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 예. 다 아, 알겠는데요. 굳이 오빠는 저보고 이걸 왜 인터넷에 올리라고 하시는 거죠? 그냥 이건 컨설트와 고객 사이 이야기인데, 이렇게 내밀한 이야기를 다 공개해 버리면 ...... 제가 빠져나갈 구멍 있게 글 올리는 건 일도 아니지만, 괜히 오빠가 후에 의심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드리는 말씀 ......’’


마침 잘 됐다!

내 카리스마의 화룡점정, 종지부, 마침표를 찍을 기회가 도래했다.

나는 한껏 얼굴을 구기며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이봐! 신변! 너는 변호사라는 애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고객과의 내밀한 이야기? 지금 그게 중요해? 아무리 고객과의 내밀한 이야기라도 그게 우리 사회를 한층 진일보하게 할 수 있는 거라면 당연히 폭로해야지. 케이팝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런 적폐는 하루바삐 청산되어야 하지 않을까? 설령 엄청난 거대 권력이 내 심장에 총을 겨눈다 해도 나는 우리 사회에 밀알 같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전부 다 내부 고발할 자신이 있는 사람이야. 뭐가 그렇게 두렵니?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건 무사 안일함과 비겁함에 빠져버리는 내 자신일 뿐이라고!’’



+++



내 카리스마 넘치는 지시를 받들어 그날 저녁 곧바로 신선혜는 온라인에 관련 글을 올렸다.

글을 보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다.

어떻게 이렇게 교묘하게 글을 올릴 수 있는지.


전부 이니셜로 썼지만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 나오는 A와 B가 핑크걸스의 제인과 오로라일 가능성이 제일 유력하다고 추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간 중간에는 또 다른 애들일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어쨌든 과거 레전드급 아이돌 그룹 내에서 벌어진 폭력과 왕따에 관한 폭로 글은 즉각 반향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갈수록 어린 나이에 아이돌들이 데뷔하는 추세다 보니 학폭 문제만큼 어린 연예인들 사이 폭력 왕따 문제도 신경 써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람된 주말을 보내고 난 일요일 밤.

시사팩폭쇼 막내 작가한테 다음 주 일정표를 받아 든 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또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하여 곧바로 최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최웅 선생님 되십니까?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으며 정의로운 폭로와 내부고발 등을 감행하는 깡다구 넘치는 시사평론가 저 강대구 올시다.’’

‘‘또 술 쳐 먹고 전화 하냐?’’

‘‘술은요 무슨. 일요일 밤은 새로 시작하는 한 주를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스케줄을 짜면서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러는데, 조금 전에 막내작가한테 다음 주 귀사 일정표 받았거든요.’’

‘‘그래서?’’

‘‘저 내일 바로 출격합니다.’’

‘‘내일? 예정에도 없이 갑자기?’’

‘‘내일 특별 게스트로 프로파일러 한 분 나오신다면서요.’’

‘‘그렇대냐?’’

‘‘아이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이 인간, 무슨 지 프로 다음 날 초대 손님도 모르고 있어? 이 따위로 성의 없게 하려면 때려 쳐 인간아!’’

‘‘야, 인마. 그만큼 순발력에 자신 있으니까 그러는 거지.’’

‘‘아무튼 나 내일 당신 프로 뜰 테니까 받을 준비 하라고.’’

‘‘아니, 그러니까 왜?’’

‘‘왜기는. 아까 내 자기 소개 못 들었어?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몸이라고 했잖아.’’

‘’근데?’’

‘‘근데는 무슨 근데야. 내일 프로파일러 데리고 특히나 데이트 폭력 사건에 대해 다룬다면서?’’

‘‘아하! 그렇대?’’

‘‘아이 진짜. 당신 정말 이 따위로 불성실한 인생 계속 살 거야?’’

‘‘아니, 월요일부터 뭘 어둡게 그런 걸 다룬다냐. 한 주의 시작은 좀 밝고 희망찬 걸 다루지.’’

‘‘야! 요즘 하루가 멀다하게 벌어지는 사건이니까 그렇지. 그제인가 군인 놈 하나가 휴가 나와 여친이랑 여친 엄마까지 살해하고 지금 잠적했잖아.’’

‘‘아! 맞아. 지금 그것 때문에 난리 났다고 하는 것 같긴 하더만.’’

‘‘아무튼 내일 갈 테니까 손님 받을 준비나 하슈.’’

‘‘어서 오세요. 한 분이세요? 출연료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최웅과의 전화통화를 마치자마자 곧장 잠자리에 들어갔다.

뭔가 내일 엄청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기대감을 한껏 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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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3화 24.06.19 228 4 12쪽
43 42화 24.06.18 238 6 13쪽
42 41화 +2 24.06.17 234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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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8화 +1 24.06.14 253 5 13쪽
» 37화 +1 24.06.13 24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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