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디버프로 고생 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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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즉
작품등록일 :
2024.05.08 22:07
최근연재일 :
2024.05.30 22:1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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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수 :
148,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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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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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5)

DUMMY

오버플레이어 연맹이란 강적이 모습을 드러낸 후. 제크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떠오른 걸 곧장 실행했다.


우선 첫째. 연맹의 영역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들을 탈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둘째. 그룹원들을 3~5인 1조로 배치하여 최대한 많은 사이드 거점을 탈환하도록 했다. 그는 뭉쳤을 때 최대 시너지가 나는 그룹원들을 같은 조에 배치하며, 일당백까진 아니어도 일당오(五)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따라서 모두가 그의 완벽한 일처리에 감탄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대체 왜죠?"


불쾌함을 숨기지 않은 어조로 정한이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제크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말했잖습니까. 저희 그룹에서 당신은 유일한 F급 플레이어입니다. 사실 저희는 그 유일이 없어도 됩니다."


저런 매몰찬 얘기를 잘도 웃으면서 한다. 그 모습에 정한의 얼굴이 한층 더 구겨졌다.


"저는 최형원, 김하랑과 꽤 많은 훈련을 했습니다. 그들의 팀에 넣어 주신다면 적어도 1인분은······."

"거점 하나를 소수의 인원으로 탈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E급 플레이어조차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고요. 저는 진정한 씨를 보호하고자 하는 겁니다. 형원 씨와 하랑 씨는 당신 없이도 잘 하실 겁니다."


말을 자른 것도 모자라서, 제크는 계속 직설적으로 말하기를 이어갔다. 정한의 인상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보호는 개뿔. 등급만 낮을 뿐이지 싸움 실력은 내가 최형원이나 김하랑보다 낫다고! 디버프만 없다면 말이지.'


보면 볼수록 제크는 짜증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떡하랴. 그는 이미 대다수의 그룹원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


"그럼 저는 그동안 뭘 합니까?"


마침내 반쯤 체념한 정한이 구시렁거리며 물었다. 이번에도 제크는 딱 잘라 대답했다.


"베이스 거점에 계시면서 위급 상황에만 저나 다른 간부 분들께 알려주시면 됩니다."

"그게 끝······?"

"네."


정말 인간미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영혼까지 계산적인 남자였다.


'형원이는 그냥 장난 수준이었구나. 저 자식은 진짜 로봇이야.'


정한은 속으로 혀를 차며 돌아섰다. 더 이야기를 나눠 봐야 시간낭비고 감정만 상할 듯했다. 결국 잔혹하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F급 플레이어인 그는 이 엘리트 그룹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정한은 그날 저녁을 거른 채 생각에 잠겼다. 온갖 고민과 그에 대한 대답이 그의 머릿속을 수놓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마침내 그는 결론을 내렸다. 어둠이 깊이 내려앉은 어느 늦은 시각. 정한은 하급 129동의 로비로 내려갔다. 그곳엔 익숙한 얼굴이 정문 쪽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최형원."


정한이 낮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형원도 정한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뭐야. 이 시간에 무슨 일인데? 아까 식당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생각할 게 좀 있었어."

"생각? 왜? 또 디버프야?"

"그게 아니라······."


정한은 잠시 머뭇거리며 뜸을 들였다. 하지만 보초인 형원을 지나기 위해선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심호흡을 한 그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나 떠나려고."


고작 다섯 음절의 한 문장. 그러나 그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꽤 컸다.


"떠난다고?"


갑작스러운 그의 선언에 눈이 동그래진 형원이 되물었다. 진심이냐는 뜻이었다.


"그래. 이 거점을 떠나려고."

"야, 왜 그래. 설마 아까 제크 그 놈이 띠껍게 말한 거 때문에 그래? 뭐 그런 걸로 기분이 상하고 그러냐."

"사실 그런 것도 있긴 해."


아까 제크와 나눈 대화가 결정타이긴 했다. 여기 있어봤자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것. 그것은 정한에게 큰 좌절감을 안겼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게 해 주기도 했다.


"오히려 잘됐어. 열흘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나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홀로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


정한은 확고한 눈빛으로 가만히 형원을 응시했다. 물론 형원은 아직까지 그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 했다.


"이 밤에 떠나서 어디로 가려고? 물론 소속만 있으면 어디 멀리 가더라도 패널티는 없겠지만, 목적지는 정하고 가는 거야?"

"글쎄."


순간 형원의 뇌리에 불길한 촉이 스쳤다. 그는 다급하게 정한의 손목을 잡았다.


"너 설마 형구네 팀을 구하러 가는 거야? 그 오버플레이어가 있는 곳으로?"

"아냐 인마. 내가 미쳤다고 단신으로 거길 가게?"

"그러면?"

"물론 동생의 안전도 걱정되긴 하지만, 무능한 나는 더 걱정되서 말이야."


그제서야 형원은 아아, 하며 비로소 정한의 말뜻을 알아챘다. 무릇 주인공이라면 성장과 각성을 위해 고독한 시간을 겪기도 하는 법이라는 것을.


"제크한텐 네가 잘 말해 줘. 뭐 감이 좋은 D급 플레이어니까 벌써 알아차렸으려나?"

"너······."

"김하랑이랑 같이 기다리고 있어. 금방 돌아올 거야. 그리고 그 녀석에겐 디버프에 대한 사실을 말해줘도 괜찮을 것 같아."

"······."

"잘 있어라."


정한은 형원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친 후 그대로 걸어가 정문을 열어젖혔다. 형원은 멀어져 가는 그를 잡을 수 없었다. 몇 시간 동안 도대체 무슨 고뇌를 겪은 건지 사람이 부쩍 변했다.


'비장해졌어.'


강함이라는 문제에 대해 한층 더 성숙한 입장을 가지게 된 듯했다. 형원은 도시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정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내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모든 디버프의 해답은 어쩌면 정신력에 있을지도 모른다'라······."


마지막 순간에 정한이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물론 그의 착각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간에.


"뭐 행운을 빈다."


그는 이 일이 친구에게 기회가 되기를 바랬다.




* * *




"뭐해? 정신 똑바로 차려."


하랑의 목소리에 형원은 잠시 빠졌던 딴생각에서 벗어났다. 하랑이 한숨을 내쉬며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또 진정한 때문에 그래? 그렇게 걱정되면 말리지 그랬어. 위험하다고 말이야."


이미 하랑도 형원에게 대강의 상황은 전해들은 상태. 그녀 역시 당황스럽긴 했지만, 일단 눈앞의 일부터 해치우자는 주의였다.


"이 전투가 끝나고 나면 한 번 연락해 보자고."

"그게······."

"응?"

"연락이 안 돼."


벌써 형원은 정한과의 연락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게 실패뿐이자 그의 마음은 더 초조해졌다. 대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 건지, 팀의 브레인인 자신과는 상의도 않은 채 훌쩍 떠나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냥 붙잡을 걸 그랬나. 지금 이 근방은 너무 위험한데······.'


형원의 머릿속에서 계속 같은 생각이 맴돌았다. 그 흐리멍텅한 얼굴을 지켜보던 하랑이 혀를 끌끌 찼다.


"야."

"어. 어?"

"나도 도와 줄 테니까 일단 지금 네 역할에 집중해. 서포터가 잡념에 빠져 있으면 되겠어?"


그 말에 형원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선두인 박온의 소리 없는 발걸음은 어느새 건물의 앞까지 도달했다.


"시작한다."

"응."


박온과는 안전상의 거리를 조금 유지하며 형원과 하랑은 각자 전투 자세를 취했다. 이윽고 정문에서 보초를 서던 이가 박온을 발견했다.


"헉, 적이다!"


겁 많아 보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박온은 경계를 풀지 않은 채 그저 기다렸다. 적들이 알아서 이곳에 집결해 주기를. 그리고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저 자식들 뭐야? 어디 거점 소속이냐!"

"고작 세 명이서? 정신 나간 놈들이군."


이윽고 정문을 통해 수십 명의 그룹원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박온의 탁월한 기감으로 보건대 열 명 정도의 E급 플레이어와 서른 명 정도의 F급 플레이어로 구성된 듯했다.


쾅!


정문을 박차고 나오는 적들을 보며, 하랑과 형원의 머릿속엔 동시에 같은 생각이 스쳤다.


'이길 수 있을까?'


아무리 E, F급 플레이어들만 있다고 해도 엄연히 하나의 그룹이다. 그것에 맞선다는 건 기본으로 수십 명의 인원들과 대적한다는 뜻. 누구라도 쉽게 볼 일은 아니었다.


"소속을 밝히지 않겠다면 밝히게 해 주지! 두들겨 패 줘라!"


무리의 선두에 선 플레이어가 외치자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그리고 이내 진격이 시작되었다.


우우우웅!


박온은 말없이 등 뒤에서 소용돌이의 개수와 크기를 점차 늘려갔다. 이미 그녀는 형원과 하랑의 기억 속 모습보다 한층 더 성장한 상태였다.


"악감정은 없지만 이 거점은 우리가 가져야가야겠어. 피차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있을 테니까."


이내 그녀의 똑 부러지는 눈빛이 번뜩 빛났다. 동시에 자줏빛 소용돌이가 깔끔한 궤적을 그리며 여기저기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콰콰콰!


보라색 공이 한 곳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플레이어들이 신음을 내뱉으며 픽픽 쓰러졌다. F급은 물론이고 웬만한 E급 플레이어도 한 방을 견디지 못 했다.


푸슉!


도망가려는 적에게 마취용 석궁을 쏴 잠재운 후, 하랑이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우리가 할 일은 없겠는데?"


그녀는 아까까지 걱정을 했다는 게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건 형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새삼 박온의 본 실력을 두 눈에 똑똑히 새길 수 있었다.


콰콰과과!


자줏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마력의 소용돌이. 이 기술은 흔히 '마력구'라 불린다. 이름처럼 구체를 통해 마력의 힘을 가감 없이 쏟아내는 기술이다.


'대단하군.'


형원은 속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콰직! 콰지직!


마력구가 적진의 플레이어들을 사정없이 가격했다. 그 사이에 기술이 발전했는지, 이젠 한 번 사용한 마력구도 쉽게 소멸되지 않았다.


"사······살려 주세요!"

"걱정 마. 기절만 시킬 거니까."


박온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력구를 다루는 그 손짓엔 선의도 악의도 없었다. 그저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콰직!


마침 후미에 있던 그룹장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마력구가 꽂힌 옆구리에 피가 남과 동시에 이상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룹장인 남자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마력 그 자체다!'


자신의 마력과 상대의 마력이 충돌하며, 패배한 자신의 마력이 스러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힘의 정수'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곧이어 그마저 힘을 잃고 쓰러지자, 이제 남은 건 오합지졸들 뿐이었다.


"핫!"

"어딜!"


간간히 이어지는 하랑과 형원의 지원에 힘입어,


"이게 마지막이야."


콰직!


박온 일행은 사이드 거점을 어렵지 않게 탈환했다. 한편 모니터를 통해 그 과정을 지켜보며 제크는 입가의 미소를 통해 흡족함을 드러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박온. 역시 그녀가 내게 온 건 행운이야."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착착 이루어지고 있었다. 제크는 슬슬 그룹대항전의 결말이 기대되었다.


"오버플레이어 연맹이든 뭐든 간에, 마지막에 무너뜨려 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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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홍룡굴 부수기 (5) 24.05.30 7 0 14쪽
25 홍룡굴 부수기 (4) 24.05.29 10 0 13쪽
24 홍룡굴 부수기 (3) 24.05.28 13 0 12쪽
23 홍룡굴 부수기 (2) 24.05.27 11 0 14쪽
22 홍룡굴 부수기 (1) 24.05.26 15 0 15쪽
21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12) 24.05.25 14 0 15쪽
20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11) 24.05.24 16 0 14쪽
19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10) 24.05.23 18 0 15쪽
18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9) 24.05.22 16 0 14쪽
17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8) 24.05.21 20 0 14쪽
16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7) 24.05.20 20 0 13쪽
15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6) 24.05.19 21 0 14쪽
»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5) 24.05.18 23 0 12쪽
13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4) 24.05.17 26 0 14쪽
12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3) 24.05.16 27 0 11쪽
11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2) 24.05.15 28 1 14쪽
10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1) 24.05.14 27 0 12쪽
9 주인공 디버프 (5) 24.05.13 33 0 13쪽
8 주인공 디버프 (4) 24.05.12 38 1 12쪽
7 주인공 디버프 (3) 24.05.11 37 0 14쪽
6 주인공 디버프 (2) 24.05.10 38 0 12쪽
5 주인공 디버프 (1) 24.05.09 42 0 12쪽
4 튜토리얼 (3) 24.05.08 42 1 12쪽
3 튜토리얼 (2) 24.05.08 42 1 12쪽
2 튜토리얼 (1) 24.05.08 48 2 12쪽
1 주인공 같은 거 하지 말 걸 24.05.08 63 2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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