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디버프로 고생 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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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즉
작품등록일 :
2024.05.08 22:07
최근연재일 :
2024.05.3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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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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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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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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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주인공 디버프 (5)

DUMMY

"너 뭔가 있지?"


어찌 보면 간단하면서도 동시에 모호한 질문. 여기엔 형원이 정한에게 묻고 싶은 모든 게 담겨 있었다.


정한은 한동은 입을 떼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주인공과 관련된 자신의 비밀을, 오늘 처음 만난 형원에게 공개해도 되는지.


'분명 이게 형식상 비밀이긴 한데, 어차피 카메라에 몇 번 잡히면 금방 들통나지 않을까?'


사실 주인공 디버프를 끝까지 숨길 자신은 없었다. 앞으로 1년간 R.F.D를 진행하면서 무수히 많은 디버프와 마주할 텐데, 그때마다 둘러댈 수 있을까? 만약 오늘보다 더 강한 디버프가 닥친다면? 그때도 혼자 힘으로 버틸 수 있을까?


물론 디버프는 정한의 치명적인 약점이기에, 상식적으론 비밀로 남겨 두는 게 맞다. 어디까지나 상황이 보통일 경우에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건 생명과 관련된 문제다.'


디버프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서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저지르기라도 한다면?


'이번엔 박온이란 여자가 도와줘서 살았지만, 다음에도 그러리란 법은 없지.'


팀에 폐를 끼치는 건 물론이고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고민을 나누고 정보를 수집할 조력자가 절실했다.


최형원이 훌륭한 조력자일진 두고 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의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명석한 두뇌에 예리한 상황 판단력, 거기에 무력은 약하므로 그 자체가 정한에게 위협이 될 가능성은 낮다.


"너가 어디까지 꿰뚫어 보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어느 정돈 맞아."


결국 정한은 이 깐깐한 대학원생을 믿어 보기로 결정했다.


"난 주인공이야."

"역시 그렇군."

"그리고 디버프를 받지."


아무래도 오늘 밤 일찍 자기는 물 건너간 것 같다. 이야기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이미 자정을 넘어 새벽이 되었지만 둘은 아직 잘 생각이 없었다.


"아까 말했듯 디버프가 중요한 순간에 찾아온다는 건 아직 심증이야. 마력 팔찌 속 홀로그램 서버도 대충 뒤져 봤지만······."

"나오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건가?"

"그래."


드디어 길고 길었던 대화가 끝났다. 정한은 숨이 차는지, 혹 후련한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형원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정한은 문득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지적인 눈매와 깔끔하게 정돈한 머리, 거기에 항상 무언가를 고심하는 듯한 표정까지. 결코 순한 이미지는 아니지만 왠지 믿음이 가는 인상이다.


"좋아. 대충 정리됐어."


마침내 생각이 끝난 형원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선 전혀 뜻밖의 말이 나왔다.


"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

"뭐?"


갑자기 이건 또 뭔 소리인지. 정한은 순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팀이 될 사람들이 누구일지 정말 궁금했어. 왜냐하면 내 연구도 그 사람들에 의해 좌우될 수 있으니까."


형원은 정한을 한번 슥 보더니 가벼운 눈웃음을 지었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벌써 반쯤 성공한 것 같네. 너랑 같은 팀이 된 건 정말 행운이야."


그건 진심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내 동료가 된 게 행운이라고?"

"그래. 네 말을 정리해 보자. 넌 주인공 디버프란 패널티를 불규칙적으로 받고 있고, 또 앞으로도 받게 될 거라는 거잖아."

"응 맞아."


정한이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형원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도 바라는 바야."

"뭐?"

"내가 도와 줄게. 너가 디버프를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도록 말이야. 이건 내 연구를 최고의 성과로 이끌어 줄 거야."


형원이 힘찬 미소를 지으며 정한을 또렷이 응시했다. 정한은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으나 이것 하나는 확신했다.


'그래도 뭐. 반응이 긍정적이어서 다행이군.'


일단 아군이 한 명 생긴 것 같다. 그것도 생각보다 든든한.


"디버프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면 보다 공략에 유리하겠지. 어쩌면 너의 디버프 수트에서 마력의 통제와 발산에 대한 원리를 알 수 있을지도 몰라."


형원은 계속 말을 이었다. 어쩌면 연구에 미친 괴짜 과학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정한에겐 이 모습이 어쩐지 든든했다.


"아무튼 나한테 말해줘서 고마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그리고 형원은 정한이 보내준 신뢰를 갚기로 했다. 곧이어 그의 눈이 반짝였다.


"일단 오늘은 자자. 체력 회복도 중요하니까. 그리고 내일부터······."

"내일부터?"

"한번 바쁘게 움직여 보자고. 디버프의 근원에 대한 실마리를 알아채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가 필요할 듯하니."


형원의 똘망똘망한 눈빛엔 무언가를 향한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걸 본 정한은 한편으로 불안했다. 설마 잘못 걸린 건 아니겠지?




* * *




다음 날. 어느덧 R.F.D 둘째 날이 밝았다. 화창한 햇살과 함께하는 하루의 시작은 좋았다. 601호의 여섯 팀원은 사이좋게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형구가 준비한 아침 식사의 맛은 꽤 훌륭했다.


"고등학교 때 자취하면서 취미로 요리를 배웠거든요."


또다른 자취인 정한은 그 모습을 보며 맨날 배달 음식만 시켜먹는 스스로를 반성했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 시간이 지나고 팀원들은 한동안 휴식을 취했다. 오늘은 다행히 퀘스트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쉬는 게 탐탁치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최형원. 그는 손뼉을 치며 우렁차게 외쳤다.


"자자! 축 늘어져 있지 말고 일어납시다. 저랑 같이 갈 데가 있어요."


정한을 포함한 나머지 다섯 명은 저게 뭔 소리지 싶었다. 그러나 형원의 결심은 확고했다. 퀘스트가 없으면 만들면 되잖아?


그는 숙소 건물 근처의 어느 한 공터로 팀원들을 이끌었다. 그곳까지 이동하면서 정한은 잠시 형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말이랑 이거랑 관련이 있는 거야?"

"당연하지. 우선 이걸 봐."


형원은 자신의 마력 팔찌를 두드리더니 이내 한 홀로그램을 정한에게만 은밀히 보여 주었다. 정한이 본 것은 마력 팔찌 속의 홀로그램 서버. 공성그룹 측에서 R.F.D 참가 플레이어들을 위해 마련한, 일종의 포털 같은 거대한 정보 창고였다. 그 방대한 양의 정보 속에 묻혀 있을 실마리가 바로 형원이 노리는 지점이었다.


"디버프 수트를 공성그룹이 만들었다면, 어딘가에 작은 정보를 흘렸겠지.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도 말이야."

"하지만 내가 찾을 땐 아무것도 안 나왔는데?"

"평범한 문서엔 당연히 쉽게 안 드러나지. 하지만 서버의 심해엔 디버프에 관한 기밀 정보가 있을 가능성이 높거든. 해킹같은 거창한 기술은 아니지만 적어도 최대한 요령껏 검색해 보겠다는 거지."


뭔 말인지 몰라도 형원은 뭔갈 꽤나 열심히 하고 있는 듯했다. 당장 홀로그램 화면만 봐도 디버프에 관한 키워드를 조사한 흔적으로 빽빽했다. 정한은 컴퓨터 전문가가 아니므로 정말 이걸 통해 유의미한 정보가 걸릴진 몰랐다. 하지만 일단 형원에게 맡기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그리고 형원에겐 디버프의 실마리를 찾을 또 하나의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의 이동과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거야?"


정한이 그에게 물었다. 형원은 대답 대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한데 이걸 꼭 해야겠어?"


그 옆에서 말을 꺼낸 이는 아직 정한의 사연을 모르는 강현이었다.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말투였다.


"굳이 안 해도 되는 퀘스트를 받는다니, 이것도 수련의 일부인가?"


이번엔 하랑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녀는 생각보다 불만이 없는 듯했다.


"뭐, 제 몸은 지켜야 하니까 이런 수련도 나름······."

"팀 단합력을 길러야 나중에 있을 협동 퀘스트에 유리할 겁니다."


이한과 형구도 다행히 이 상황을 나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 사이 어느덧 목적지인 공터에 도착했고, 정한 일행은 그곳에서 '훈련용 퀘스트'를 맞이했다.


[훈련용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훈련용 퀘스트란 성공이나 실패가 R.F.D 진행에 영향을 주지 않는, 말 그대로 플레이어들의 훈련을 위한 퀘스트이다.


퀘스트의 개시를 알리는 메시지가 도착하자마자 공터는 일순간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이윽고 공터의 뒤편 숲에서 나뭇잎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바스락-


일행은 전원 마른침을 삼켰다.


"모두 준비해야 할 것 같아."


하랑이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그녀는 이미 저번에 받은 중급 공방 아이템을 장착한 상태였다.


스윽-


나머지 다섯도 주섬주섬 뭔가를 챙겨들었다. 그리고 숲 속에 있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 건 다음 순간이었다.


"크르르."

"크아아!"


이번 상대는 로봇 괴물이 아닌, 바로 살아 있는 생명체인 거대한 짐승들이었다. 그것도 일반 짐승이 아닌, 저마다 마력으로 강화된 돌연변이 괴수였다. 물론 그 중에선 약한 편에 속해 보이긴 하나 하급 플레이어인 이들에게 위협이 되긴 충분했다.


"이런 놈들이랑 싸우려고 일부러 시간을 쓰다니."


새로운 무기인 너클을 손가락에 끼우며 강현은 형원에게 은근 핀잔을 주었다.


"뭐 시간만 들인 건 아니고······."

"엥? 그럼 또 뭔데? 설마 돈?"

"걱정 마세요. 앞으로 벌 돈에 비하면 이런 퀘스트 신청 비용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는 태연했다. 이건 일종의 투자였다. 앞으로 R.F.D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자. 그리고 주인공 디버프를 연구하기 위한 투자.


하지만 정한과 형원을 제외한 팀원들은 아직 이런 내막을 알 리가 없었다. 그저 지금 상황을 훈련으로 받아들인 채 최선을 다해 임할 뿐이었다. 이내 저마다 각양각색의 포악한 모습을 한 괴수들이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모두 전투 준비해!"


모두가 각자의 무기를 꺼내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정한 외 4명은 치열한 전투를 이어 갔고, 형원만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애초부터 끼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5인용 퀘스트를 신청했다. 그는 온전히 관전에만 집중하며 정한이 미리 약속한 신호를 보내길 기다렸다. 곧이어 한창 싸우던 정한이 마침내 형원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1인칭 홀로그램]

[4번째 주인공 디버프를 시작합니다.]

[반경 20미터 내의 적들이 모두 플레이어를 공격합니다.]

['마력의 도발'로 인해 괴수들은 흥분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형원은 1인칭 홀로그램을 볼 수 없었지만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진 파악했다. 그럼 이제 필요한 건 관찰이었다. 보다 많은 데이터 수집을 위해 정한의 주인공 디버프를 직접 보고 분석할 차례였다.


"크아아앙!"


물론 그 대가로 정한은 괴수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되었지만 말이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형원은 계속해서 훈련용 퀘스트를 구매하고 팀원들과 함께 나눴다. 간간히 작은 정식 퀘스트가 발생했지만 대부분 형구와 강현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암묵적으로 팀의 브레인이 된 형원은, 정한과 더불어 하랑과 이한에게 맞춤 훈련을 제공했다.


"각자에게 맞는 무기가 있는 법이야."

"그렇다고 갑자기 이런 걸 쓰라고?"


하랑은 새로 받은 무기인 석궁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단검 두 자루를 받은 이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그러는 동안, 정한은 계속해서 디버프를 컨트롤하기 위해 애썼다. 사실 컨트롤보단 그냥 익숙해지는 작업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시간이 약이라고, 그는 묵묵히 디버프에 적응해 갔다.


[5번째 주인공 디버프를 시작합니다.]

.

.

.

[10번째 주인공 디버프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느덧 경험한 디버프가 두 자릿수에 다다랐을 때. 마침 그 수고를 시험해 볼 만한 실전 상황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어느날 갑자기 601호 팀원 전체, 정확히 말하면 하급 리그 내의 모든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발송된 메시지. 그 내용은 이러했다.


[그룹대항전을 시작합니다.]


바야흐로 첫 대형 퀘스트의 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다음 회차부턴 초반부의 핵심이 되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에피소드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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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홍룡굴 부수기 (3) 24.05.28 13 0 12쪽
23 홍룡굴 부수기 (2) 24.05.27 11 0 14쪽
22 홍룡굴 부수기 (1) 24.05.26 15 0 15쪽
21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12) 24.05.25 14 0 15쪽
20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11) 24.05.24 16 0 14쪽
19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10) 24.05.23 18 0 15쪽
18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9) 24.05.22 16 0 14쪽
17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8) 24.05.21 20 0 14쪽
16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7) 24.05.20 20 0 13쪽
15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6) 24.05.19 21 0 14쪽
14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5) 24.05.18 22 0 12쪽
13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4) 24.05.17 26 0 14쪽
12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3) 24.05.16 27 0 11쪽
11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2) 24.05.15 28 1 14쪽
10 하급 리그_그룹대항전 (1) 24.05.14 27 0 12쪽
» 주인공 디버프 (5) 24.05.13 33 0 13쪽
8 주인공 디버프 (4) 24.05.12 38 1 12쪽
7 주인공 디버프 (3) 24.05.11 37 0 14쪽
6 주인공 디버프 (2) 24.05.10 38 0 12쪽
5 주인공 디버프 (1) 24.05.09 42 0 12쪽
4 튜토리얼 (3) 24.05.08 42 1 12쪽
3 튜토리얼 (2) 24.05.08 42 1 12쪽
2 튜토리얼 (1) 24.05.08 48 2 12쪽
1 주인공 같은 거 하지 말 걸 24.05.08 63 2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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