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개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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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과랑
작품등록일 :
2024.05.0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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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0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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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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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태어났으면 끝까지 살아야지

DUMMY

#1. 세상 태어났으면 끝까지 살아야지


아직 사람들이 깊이 잠든 이른 새벽의 물류 센터는 헬창들 가득한 체육관 마냥 짠 내 나는 열기로 가득했다. 극도의 편안함은 극도의 불편함으로 생산되는 것처럼 새벽 배송을 위해 인간들이 기계처럼 쥐어 짜내어지고 있었다.


“어우 내 허리.”


지은우가 돌처럼 뻣뻣해진 허리를 펴며 굳은 근육을 이완시키기 무섭게 관리자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지은우씨, 더 빨리 움직여 주세요. 지금 지은우씨 때문에 다른 사람들 기다리잖아요.”


은우의 직무는 워터였다. 포장에 필요한 재료들, 드라이아이스나 얼음팩을 곳곳에 배달해 주는 역할이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주문에 네 시간째 쉼 없이 움직여도 잠시의 틈도 생기지 않았다. 명백히 직원이 부족하다는 신호였으나 이 빌어먹을 놈의 회사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사람을 더 쥐어짜는 쪽을 선택했다.


‘X 같네 씨발, 사람을 더 뽑아야지. 지랄한다고 되냐?’


그는 짜증이 치솟았지만, 어차피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기에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일에 열중했다. 그래도 끝은 다가왔다. 절대 흐를 것 같지 않을 것처럼 길고 긴 물류센터의 시간에도 분명 끝은 있었다. 업무 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어쨌거나 오늘 하루도 10만 원을 벌었다는 안도 섞인 신음이었다.


“아이고 수고하셨습니다.”

“은우 씨도 수고했어.”

“아저씨도 고생하셨어요.”


물류 센터의 전우들은 서로의 고생을 위로했다. 작업장을 퇴실하며 반납했던 핸드폰을 돌려받았다. 핸드폰의 전원이 켜짐과 동시에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어떡해? 얘 자살했나 봐.”


누군가의 자살 기사가 속보로 뜬 모양이었다. 아마도 연예인일 듯. 사람들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급히 기사를 검색했다.


[인기 걸그룹 멤버, 채지나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


자살이라는 문구는 없었지만, 정황상 누구나 자살을 예상할 수 있었다. 최전성기는 지났다고 해도 여전히 젊은 여자 아이돌 스타가 죽을 이유는 전혀 없었으니까.


“염병 잘 난 것들이 자살은”


물류 센터에서 오래 일하신 김영숙 씨가 그녀의 죽음을 어이없어했다. 올해 60대인 그녀는 남편과 슬하의 자녀를 먼저 떠나보냈다. 그런 그녀에게 누구보다 잘 나가는 아이돌 스타의 자살은 그저 철없어 보일 뿐이었다.


“아줌마는 불쌍하지도 않아요? 어쨌거나 죽었다잖아요.”


20대로 보이는 한 젊은 여자가 영숙 씨의 말에 따지듯이 대꾸하자 영숙 씨가 큰 소리로 맞받아쳤다.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이 나이에 죽지도 못하고 남편도 자식도 없이 손가락 퉁퉁 부어 가며 밤새 짐 나르는 내가 더 불쌍하지. 일 마치고 가면 손목이랑 손가락이 아파서 잠도 제대로 못 자. 여기 안 그런 사람 있어?”


다들 딱히 말은 안 하지만 동감하는 분위기였다. 물류 센터 일이란 사실상 몸을 갈아가며 돈을 버는 일이었으니까.


“비싼 외제 차에 수십억짜리 집에 살면서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어린 나이에 취직도 못 하고 이런 데서 일하는 네가 더 불쌍하다 이년아.”


딱히 젊은 여자도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하여간 요즘 것들은 자살이 무슨 유행이야. 세상 태어났으면 끝까지 살아야지.”


은우는 영숙 아주머니가 왜 그렇게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돌 스타의 죽음에 발끈하는지 알 것 같았다. 실상 누구보다 죽고 싶은 것은 그녀였으리라. 남편과 자식이 죽었을 때 얼마나 따라 죽고 싶었을까? 유명인의 자살 기사가 뜨면 그녀 자신도 따라 죽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릴 것이다.


‘세상 태어났으면 끝까지 살아야지’라는 말은 흔들릴 때마다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맞아요! 아줌마. 세상 태어났으면 끝까지 살아야죠.”


은우는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듯, 그녀의 말을 옹호했다.


“그렇지. 역시 우리 은우는 요즘 젊은것들이랑 다르다니까.”


사실 연예인의 자살 기사에 가장 크게 가슴을 쓸어내린 것은 은우였다.


‘왜 자살은 하고 지랄이야? 죽고 싶으면 은퇴하고 조용히 그냥 사라지면 될 것 아냐.’


그가 연예인 자살 기사에 극도로 예민한 건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자살 위험군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건 기사로 안 내면 안 되나?’


베르테르 효과. 유명인 또는 평소 선망하거나 존경하던 인물이 자살할 경우, 유명인과 자신을 동일시해 유사한 방식으로 잇따라 자살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한국에서 베르테르 효과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그의 동생에게는.


‘은성이가 안 봤으면 좋겠는데’


은우는 은성의 핸드폰을 하루만이라도 숨겨 놓을까 했지만, 셔틀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은성과 은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성이 휠체어를 타고 나와 그를 맞이했다.


“형, 고생했어!”


앞치마를 맨 여동생도 쪼르르 달려 나왔다.


“오빠~ 고생했어!”

“야, 너희 벌써 일어났어? 오늘 토요일인데 더 자지.”

“형, 일곱 시면 우리도 일어나야지.”

“오빠 밥 차려놨어. 밥 먹어.”

“에이, 내가 차려 먹으면 된다니까.”

“잔소리 말고 어서 먹기나 해.”


올해 서른 살인 은우에게는 두 명의 동생이 있었다. 남동생인 지은성과 여동생인 지은지. 은성은 올해로 22살이었고 은지는 고3이었다. 부모님은 두 분이 모두 은성이 신경성 희귀병으로 하반신 마비가 판정을 받자 도망쳐 버렸다. 장남인 은우가 제대한 직후였다. 홀로 가장이 되어 버린 은우는 이후 동생들을 책임지고 있었다.


“오빠, 오빠 그거 봤어?”

“뭐?”

“채지나 자살했데. 사람들 아침부터 난리야 지금”

“자살은 맞아?”

“응, 그런 가봐.”

“걔는 뭐가 부족해서 자살했냐?”


듣고 있던 은성도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아니 걔가 자살하면 나 같은 건 어떻게 살라고. 자산이 이 백억이 넘는 다 던데.”


생각 이상의 자산에 은우가 놀라 은성에게 되물었다.


“걔가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어?”

“핑크러쉬가 한창때 일본에서 돈 쓸어 담았잖아. 이 백억 더 될 수도 있을걸.”

“근데 왜 자살한 거래?”


은지가 대답했다.


“커뮤니티에 도는 소문으로는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그렇다던데.”

“남자친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재벌 3세였다던데 모르지 뭐. 하여튼 대단한 사람이긴 했나 봐.”

“지랄도 가지가지네. 연애 실패했다고 자살하고.”

“그러니까. 채지나 정도면 남자 배우를 만나도 되고. 널린 게 남잔데 말이야.”


은우는 더는 연예인 자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야 괜찮아졌다지만, 처음 은성이 갑자기 하반신 마비가 왔을 때의 절망 어린 모습이 그에게는 공포로 남아 있었다.


병이 생기기 전 은성의 꿈은 프로축구선수였고 실제 학교 축구부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희귀병으로 하반신 마비가 오며 모든 꿈이 산산이 부서졌다. 은성이 겨우 16살 때였다.


거기에 자기 때문에 부모님까지 자식들을 버리고 떠나 버리자 그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시의 은성은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살아있는 시체에 불과했다. 어두운 심연이 그를 사로잡았으나 은성은 사는 것을 선택했다.


“너 팔 근육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천만다행으로 3년 전부터 약이 보험 적용을 받게 되어, 은성의 병이 더는 악화하지 않고 멈춰 있었다. 물론 보험 적용을 받아도 여전히 재정적 부담이 컸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은성이 회복의 희망을 되찾았다는 것이었다. 그 희망은 나날이 두꺼워져 가는 그의 이두와 삼두에서 한껏 드러났다.


“하체가 안 되면 상체라도 키워야지. 내가 극한의 상체충이 뭔지 보여주겠어.”


은성이 팔을 어깨까지 걷고 어지간한 보디빌더 못지않은 우람한 근육을 과시했다. 모든 운동을 상체로 해서인지 팔인지 다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우람한 희망에 은우는 조금이나마 안도감이 들었다.


“은성 오빠, 몸 더 키워서 운동 유튜버 할 거래.”

“나쁘지 않네. 그 정도면 당장 시작해도 되겠는데.”

“형, 이게 또 몸만 좋다고 되는 아니더라고. 컨텐츠도 잘 만들어야 하고, 영상 편집 기술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은성 오빠 요즘 편집 프로그램 배우잖아.”

“오~”

“쉬워 보였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

“열심히 해봐. 필요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이야기하고. 형이 도와줄 테니까.”


은성이 하고 싶은 게 생겼다. 그 소식만으로도 은우는 콧잔등이 시큰해지려는 것을 동생들 앞이라 겨우 참았다.


“은지 너는? 필요한 거 없어?”

“나? 나는 뭐 딱히?”

“너 학원 안 다녀도 돼? 킬러 문항 같은 거 풀려면 일타 강사 수업 들어야 한다던데.”

“풉, 오빠 나 지은지야. 기러기토마토스위스별똥별지은지라고 내가. 그런 건 재능 없는 애들이나 듣는 거야. 공부도 재능이야. 나는 재능충이라고. 은성 오빠는 노력충이고.”

“재수 없어!”


오빠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귀여운 허세였다.


“너 재능충인 거 아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금이라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꼭 들어.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알았어.”

“약속해.”

“약속!”

“손가락!”

“에이 무슨 손가락까지.”

“손가락!!”

“그럼 나도 하나 약속받을래.”

“뭐?”

“오빠 오디션 보라고.”

“야! 나 이제 서른이야. 뭔 오디션을 봐?”

“왜? 오빠 연영과잖아. 군대 가기 전에 독립 영화도 했었고. 조연이지만 드라마도 했었고 얼굴도 아직 괜찮아~. 누가 오빠를 서른으로 보겠어? 내 친구 중에 오빠 소개해 달라던 애도 있었어.”

“네가 아주 나를 나락으로 보내려고 하는구나?”

“아니 진짜 오빠 배우 해봐. 오디션이라도 한 번 보는 게 뭐 어때서 그래?”

“아이 됐어. 무슨 배우야 배우는.”

“그럼 나도 약속 안 해.”

“야! 너 이러기야.”

“오빠 한 번만 딱 한 번만 응? 사랑하는 동생 소원이라는 데 한 번 들어주면 안 돼.”

“그래, 형. 은지 소원 한 번 들어 주는 셈 치고 오디션 한 번만 봐. 누가 알아 형이 진짜 탑배우가 될지.”

“맞아. 진짜 오빠가 한류스타 지은우처럼 될지도 모르잖아.”

“야! 그건 아니지. 이 미친년이 뭐라는 거야.”

“왜에? 아! 맞다. 걔 자살했지. 미안 내가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한류스타 지은우. 3년 전 갑자기 자살한 비운의 스타. 루머로는 마약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사유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초특급 한류 스타의 죽음치고는 너무 조용히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가 죽은 것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냥 갑자기 은퇴해서 조용히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 덕분에 연예계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이 여러 음모론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다.


“하여튼! 오빠가 오디션 본다고 약속하면 나도 약속할게.”

“그래, 알았다. 알았어.”

“자아~ 어서 손가락!”


귀여운 동생의 배려 가득한 고집에 은우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새끼손가락을 그녀에게 내주었다.


“됐냐?”

“응, 됐어. 오빠 진짜 약속한 거다.”

“그래, 알았어.”

“오빠 오디션 공고는 내가 알아볼 테니까 딱 준비해둬.”

“그럼 연기 영상은 내가 준비해 줄게.”

“아주 그냥 든든하네. 든든해.”

“그럼 나 학교 가야겠다.”


은지는 학교로, 은성은 다시 컴퓨터 앞에서 씨름했다. 그리고 은우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다시 늦은 밤에 나가 일하려면 얼른 자야 했지만, 이상하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괜히 오디션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설레어 버린 탓이다.


“오디션은 무슨. 뭔 배우냐 내가. 빨리 잠이나 자자.”


은우는 번뇌를 잊어버리려는 듯, 폭풍우가 몰아치는 ASMR을 틀었다.


쏴아아아, 쿠르르르쿵


거센 빗소리와 천둥소리가 기분 좋은 화이트노이즈를 만들어 주며 잠시 번뇌를 잊게 했다. 은우는 스르르 잠에 빠졌다.


“야! 지은우, 일어나!”

‘으응?’


은우를 깨우는 여자의 목소리에 그는 잠에서 서서히 깨어났다.


“야! 지은우, 어서 일어나. 연습 시간 늦겠어.”

‘은지 이게 오빠한테 반말을!’


은우는 돌발적으로 이불을 앞으로 펼치며 여자를 덮쳐 침대에 눕혔다.


“꺄악”

“내가 오늘 삼강오륜을 바로 세우겠다.”


그러고는 베개로 여자를 마구 후려쳤다.


“꺅, 꺅”

“하하하!”

“야! 이 미친놈아 뭐 하는 거야?”

‘뭐 미친놈?’


은우도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은지가 은성에게는 막말을 마구 해도 자신에게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목소리도 은지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은우의 방이 아니었다. 방의 모습도, 침대도, 이불도, 들고 있던 베개도 모두 낯선 것이었다.


방에 걸린 거울에 비친 얼굴을 확인한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앳된 얼굴의 지은우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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