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범이 매점에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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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한톳찜
그림/삽화
옹골찬멸치국밥
작품등록일 :
2024.07.08 18:56
최근연재일 :
2024.09.1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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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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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귀신불감증

DUMMY

일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본인의 매점에 놀러를 왔다가 산사태에 휩쓸려 버린 그 아이의 이름이 말이다.


“그래, 7년 전, 산사태로 희생당한 사람이 정일태 군이었지 아마.”


“그 녀석은...”“자네의 절친한 학우였을 테지.”


“익명으로 알려졌을 사건을 왜 알고 계신 겁니까.”


“뻔하지 뭐.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산에 틀어박힌 젊은이가 있다는 소문이 쫙 퍼졌으니, 난 그걸 대충 조합해 보았을 뿐이네. 어떤가. 호랑이에게 복수를 하는 것만이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해 줄 것이야.”


“하겠습니다. 소문만 내지 말아주세요. 매출이 반토막이 났는데, 있는 매출까지 반토막 낼 수는 없습니다.”


“좋아. 나무 안을 보라고.”


“안이요?”


“나무 구멍 안에 궤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노인의 말대로 나무 속을 들여다보니,

진짜로 낡은 은색 궤짝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은 여태까지 저 나무 안에 있던 궤짝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궤짝을 꺼내주오.”

휘성은 노인의 말대로 궤짝을 꺼내놓았다.

궤짝을 열어보니 흰색 모래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이건 뼛가루네요.”


얼마 전, 부모님을 여읜 휘성은 그것이 곱게 갈린 뼛가루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불에 그을린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유골함에 담겨있는 사람도 화장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 사람은 분명 제물이랬다.

그렇다면 산 채로 불탔다는 소리 아닌가.

약간은 꺼림직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내가 적당한 나무를 찾을 동안, 자네가 3일 동안만 그 상자를 맡아주게. 이 산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전부 짊어지고 가리다.”


노인은 측은한 표정으로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런 노인이 괜스레 걱정되는 휘성이었다.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이 산에는 비밀이 어지간히도 많구나.

우리 부모님은 이 산에서 어떤 사건들을 겪어 온 것인가.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어 궤짝을 등에 걸쳤다.

.

.

.

#잠시 후.


“그래서. 이 흉측한 걸 그대로 들고 왔다고?”


“뭐 어떡해. 마지막 부탁 이시라잖냐.”


“아니, 휘성아. 이런 거 들이면 손님 뚝 끊긴다고.”


“이미 뚝 끊겼다.”


“크흠. 그건 그렇고. 저게 괴물의 뼈라는 거야?”


“아니. 제물로 바친 사람 뼈래.”


“으으으···. 역시 아닌 것 같에.”


“무섭냐?”


“야! 안 무서운 게 이상한 거지. 니가 그냥 존나 이상한 거야. 별종 새끼야.”


“그럴지도···.”


휘성은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 태흥과 함께 마주 보고 앉았다.

손님이 뚝 끊겨 팔지도 못한 채 남아있던 삶은 달걀과 사이다를 맛나게 먹은 뒤,

장산범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다.

산 중턱에 위치한 오두막집에서 신빙성 있는 괴담에 대해 떠드는 것만큼 즐거운 것도 없었다.


“그건 그렇고. 본론으로 넘어가자. 클럽 갈래?”


“갑자기?”


“네가 있어야 우리 테이블 물이 맑아져. 알지?”


“혼자 가. 난 울타리 보수해야 해.”


“또 그 얘기. 이제 편하게 살자. 엉? 일태에 이어 부모님 돌아가시고 여동생도 떠나가고 니 혼자다 혼자. 산 바로 아래는 전부 삐까뻔쩍한 신도시들인데, 너 혼자만 다 쓰러져 가는 매점에서 [나는 자연인이다] 찍고 있잖아, 지금.”


“나라도 해야지.”


“아! 알겠어! 내가 비용까지 대드린다고. 한 번만 가보자~. 너 이 새끼야! 집도 있고! 가게도 있고! 얼굴까지! 지금 너무 완벽해. 심지어 차도 있잖아.”


“평소에 기름 줄줄 새는 시골 똥차라고 그렇게 놀려댔으면서.”


“미안! 사과할게! 한 번만 같이 가줘! 너 없으면 분위기 씹창이야.”


“난 등산 좋아하고 삶은 달걀과 사이다 좋아하는 건강한 여자 만날 거야. 알지? 요새 자만추가 유행인 거.”


“야, 니가 지금 하는 짓거리가 왜 ‘자연스러운 만남’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건 그냥 ‘자연에서 만남’이잖아.”


“그거나 그거나. 난 자만추야.”


“아! 표정이 진심이라서 더 짜증 나네.”


“애초에 난 못 가. 유골함이 있잖아.”


“그게 뭔 상관이야?”


“할아버지가 되도록 나가지 말고 3일간만 맡아달래. 자기가 언제 올지 모른다고. 호랑이가 나타나면 곤란하니까 문단속 잘하라고 했어.”


“휴···. 그래. 아무리 못 미더운 미신이라도 밑져야 본전이지. 너한테는 이 매점이 유일한 생계 수단이니까.”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태흥은 산 중턱에 위치한 매점까지 찾아와 이야기를 들어주는 의리 있는 사람이었다.

멍청하고 조심성 없는 게 탈이지만 말이다.

(조금 전에 유골함을 소금 통으로 착각하고 계란을 찍으려 한 전적이 있는 놈이다)

내가 말리지 않았다면, 이름 모를 산 제물 씨와 내 친구가 본의 아니게 융합하는 대참사가 일어났을 거다.


“나 간다. 밤길에 괴물 조심하고.”

태흥이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겁을 준다.


“잘 가라. 밤길에 자동차 조심하고.”

휘성은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며 태흥을 배웅했다.


“아. 참고로 컵라면 하나 까 잡쉈다. 감수해라.”


“아. 참고로 밤길에, 뒤에서 포터 한 대가 박으면 나다. 감수해라.”


“기름 줄줄 새는 니 포터보다 내 뜀박질이 더 빠를 듯.”


“빨랑 꺼져.”


그날 밤이었다.

나는 늘 그렇듯,

매점의 재고를 정리하고,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인 울타리 보수를 하고,

2층에 있는 내 방에서 잠을 청했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냐.”

아무리 나라지만, 이런 거에는 너무 면역이 강했다.

면역이 강한 것도 아니지. 그냥 영적인 것에 안전불감증인 거다.

단언컨대, 이 세상에 귀신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짓거리를 하는 이유도 그냥 심심풀이 혹은 지푸라기 잡게 불과한 것이라.


쏴아아-

가을 밤하늘의 차가운 공기가 유리창을 경계로 하여 히터 바람과 맞부딪쳤다.


틱. 틱. 틱.-

주변이 고요해지자,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우우- 우우-

이따금씩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 퍼지는 밤이었다.


천천히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본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눈꺼풀은 무거워진다.

바위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꿈속으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

.

.


"여긴···. 어디지?"


꿈속인 듯 꿈속 아닌 주변 풍경.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 초가지붕이 가득이다.

흰옷을 입은 무리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검은 제복의 사내들이 보였다.


퍽!- 퍼억!-

“예끼 이놈들아! 우리 무람이를 당장 돌려내지 못해!”

“백호 장군님이 네 녀석을 용서할 듯싶으냐!”

다 해진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검은 제복을 입은 사내들에게 저항하며 소리친다.

조선, 고려, 삼국 시대, 어느 시대인지 가늠할 수 없는 그들의 모습.


탕!-

"끄헉! 끄읍···. 커헉!"


검은 사내가 총을 발포하자,

격렬하게 저항하던 중년 아저씨가 앞으로 고꾸라진다.

총. 총이다. 적어도 조선 시대.

아니, 조선 시대가 맞는 것 같았다.


“꺄아악! 무람 아버지! 무람 아버지 우얍니까! 아이고!”

흰색 군중들 사이에 끼어있던 아주머니가 뛰쳐나왔고,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중년 아저씨를 부둥켜안고 울부짖는다.

흔들어도 보고, 어루만져도 봤지만, 그의 입가에선 붉은 침묵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탕!-

두 번째로 발포한 총탄이 아주머니의 가슴을 관통한다.

아주머니의 심장은 뜨거운 피를 왈칵 쏟아내며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꿋꿋이 버티며 검은 사내들을 바라보던 아주머니.

이내 기력을 다하여 남자의 위에 엎어지고 말았다.


총알이 무참하게 사람을 꿰뚫자,

현실을 인지한 나머지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검은 옷의 남자 중 한 명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희들이 모시는 백호 장군이라는 놈은 천박하고 잔인한 장산범이요. 나라를 어지럽히는 재앙에 불과하다! 잘 보시게들! 저 범법자의 자식, 김무람이가 스스로의 영혼으로 괴물을 묶어버릴 것이니!”


얼굴이 학살의 흔적으로 범벅이 된 검은 사내는 나무에 꽁꽁 묶여있는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는 이미 허벅다리에 총을 맞아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헐떡이고 있었다.

휘성은 무언가에 홀린 듯 여자에게 다가간다.

왜인지 모르게 분노가 치밀었다.


“장산범. 장산범. 그놈의 장산범.”

작게 중얼거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재물인 양 묶여있던 여자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때, 여자가 입을 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살려주세요···.”


“어?”

분명 나를 보고 하는 소리였다.

꿈속이었지만 너무나 선명한 목소리였기에 알 수 있었다.

“나를···. 부른 거야···?”


그때였다.


크르릉-

“장산을 어지럽히는 악인들이여.”

“내 사람을 괴롭힌 대가를 치르리라···.”


갑작스럽게 나타난 털북숭이 괴물.

은빛이 감도는 흰털이 산속 햇살에 반사되어 밝게 빛난다.


두 눈을 부릅뜬 산짐승이 산 이곳저곳을 밟고 뛰어올라, 검은 옷의 무리를 소탕해 나가기 시작한다.


휭!


후웅!


털썩!


검은 옷을 입고 있던 사내들의 모가지가 하나, 둘,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고,

이제 남은 것은 검은 사내들의 우두머리뿐이었다.


상황으로 봐선, 누가 봐도 산짐승이 승기를 잡은 듯했으나···.

“걸려들었구나.”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검은 사내들의 우두머리.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람이라는 여자가 매달려 있는 나무가 백호 장군이라는 자의 사지를 옭아매더니 천천히 끌어당기기 시작한다.


꺄아아아악!-

무람의 거친 비명이 울려 퍼지자,

제압당한 흰옷 무리의 절규 소리가 산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나무가 눈이 멀 정도로 밝게 빛나며 주변이 온통 새하얗게 번져간다.


“아이고 무람아···. 우리 무람아···. 우리 아가···. 어서 일어나, 평소처럼 활기차게 일어나주오. 무희가 있지 않느냐. 무희가 울부짖고 있지 않느냐···. 아이고 무람아···.”

.

.

.

“장군님. 저희 무람네 가족을 구원하여 주소서···.”

무람의 어머니는 끝끝내 눈을 감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의 피가 번져나간다.


손가락 끝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뚝-


뚝-


똑-


똑-


똑딱-


똑딱-


데에엥! 데에엥! 데에엥!-


“아!”

두 눈이 번쩍 뜨인 휘성.

깊은 산의 새벽녘이 휘성의 얼굴을 밝혔다.


오두막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괘종시계가 큰 소리를 내며 종을 울린다.


그는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며 심호흡했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식은땀이 줄줄 새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사극 영화를 너무 많이 봤네. 나도 참.”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향한다.


“아.”

그러다 문뜩, 꿈속 내용이 생각났다.

여자가 묶여있던 나무···.

자세히 생각해 보니 매일 아침 인사를 올리던 신수와 매우 닮아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황급히 달려가 유골함을 확인해 본다.


“김무람···.”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오한.

그 유골함에는 놀랍게도 김무람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수가. 어제는 분명 읽을 수 없이 흐릿하던 것이 이제는 보인다.


휘성은 하마터면 깜짝 놀라 유골함을 집어던질 뻔했다.

잘못해서 깨지면 저주라도 받을까 쉽사리 던지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이 김무람이라는 여성에게서 측은한 마음이 느껴졌기에 집어던질 수 없었다.


“장산범이···. 악귀···? 진짜···?”

휘성은 혼란스러워졌다. 그때 분명 무람을 구하기 위해 등장한 것은 백호 장군이라 불리우는 장산범이었다. 뭔가 이야기의 맥락이 전혀 맞지 않았다.


“휴. 잠시 매점 운영을 중단해야겠어.”

휘성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동생, 유성에게 전화를 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자취를 시작한 여동생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가끔씩 놀러 와라.’ 였었나···.


휘성 : [여보세요? 유성이니? 나 며칠간 밑으로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겨서 전화했어. 혹시 원룸에 남는 방이 있을까?]


유성 : [남는 방이라···. 원룸이 왜 원룸인지는 알고 물어보는 거지? 일단 올 거면 거실에서 자세요. 주전부리 몇 개 챙겨 오고. 아. 매점에 생리대 팔았었냐?]


휘성 : [뽕을 뽑아라 그냥.]


띠릭-

전화가 끊기고, 휘성은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한다.

가방에 생필품들을 넣어 졸라매고

유골함은 할아버지가 언제든지 챙기실 수 있도록 매장 뒤편 창고에 쟁여둔 뒤, 정문 쪽에 쪽지를 남겼다.


드르륵-

이내 매점을 나서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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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새침데기 김무람 24.07.17 50 0 12쪽
6 6화. 시간은 너무 흘렀고 24.07.16 51 0 13쪽
5 5화. 부활 24.07.16 54 0 12쪽
4 4화. 그녀의 이빨 자국 24.07.12 54 0 13쪽
3 3화. 광기의 밤 24.07.10 58 0 12쪽
» 2화. 귀신불감증 24.07.09 61 0 13쪽
1 1화. 장사 말아 먹은 매점 청년 24.07.09 10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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