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들은 나가 있어
거사를 끝낸 페인의 모습은 흉악했다.
병사들의 피를 뒤집어쓴 그의 모습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형! 첫째형!”
“형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그런 페인을 반겨준 것은 동생들이었다.
페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연쇄살인범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동생들의 눈에는 걱정만이 가득했다.
평상시 페인이 보인 신뢰가 여기서 빛을 발한 것이다.
그는 언제나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왔다.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었다.
그렇기에 두려움보다는 걱정이 더 컸다.
사람을 죽여 피에 절었어도 페인은 존경스러운 가장이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동생들은 그가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봤다.
주변을 빙빙 돌면서 자신의 몸을 살펴보는 동생들의 모습에 페인은 피식 웃었다.
“이놈들이 호들갑은.”
그런 동생들의 모습에 살기로 가득 찼던 페인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그가 작정하고 싸우는 이유가 바로 이 가족이었다.
그 혼자만 가족을 위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도 그를 위하였기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야······.’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어머니를 떠올리자 이내 걱정이 된다.
“너희 중에 다친 사람은 없고?”
재차 가족들이 무사한지 확인해본다.
자신은 무사하지만 가족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
“어! 난 괜찮아!”
“리암은 그렇고, 아일라는?”
“나두, 큰오빠!”
“저도 괜찮습니다, 형님.”
셋째 리암, 넷째 아일라를 확인하고 둘째인 페일까지 확인한다.
다들 무사한 가운데 오직 한 사람.
어머니는 멀쩡하지 않았다.
“형, 엄마가 움직이지 않아······.”
리암이 울상을 짓는다.
아일라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어머니의 상태가 안 좋았다.
페인은 좀 더 자세히 보려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가까이서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창백했다.
“어머니.”
손가락이 떨린다.
죽은 것은 아닌지 급히 군대에서 배웠던 기억을 되새겼다.
먼저 어머니의 가슴에 한쪽 귀를 기울인다.
심장이 뛰는지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콩닥. 콩닥.
다행히 심장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뛰었다.
어머니의 심장소리에 페인의 불안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콧가로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심장이 뛰어도 숨이 멈춘 경우가 있었다.
페인은 전문가가 아니지만 기본적인 응급처치는 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가 보기에 어머니는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살아있어. 심장도 뛰고, 호흡도 멀쩡해.”
“휴우우! 다행이다아······.”
“이 씨, 이게 다 나쁜 아저씨들 때문이야!”
“큰오빠가 혼내줬으니까 이제 괜찮아!”
동생들이 소란을 부린다.
누가 페인의 혈육 아니랄까봐 이런 상황에서도 활기찼다.
“형님.”
“말해, 페일.”
페인의 이름이 ‘고통’이듯, 둘째인 페일은 이름 뜻이 ‘고통’이다.
자식 이름을 참 별꼴로 지었다고 생각하면서 페인은 올해로 14살인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병사를 죽였으니 다른 병사들이 몰려올 겁니다. 우리에겐 병사들을 상대할 힘이 없어요.”
페일은 가족 중에서 가장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다.
그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것도 대단한 거다.
대다수의 농노들은 뒷일 같은 건 생각할 엄두도 못 내니까.
“확실히, 그 말대로야.”
상황은 페일의 말대로였다.
병사 하나하나는 보잘 것 없다.
근본이 농노나 하층민인 징집병들이 뭐가 대단하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주민들은 병사들을 두려워했다.
이유는 하나, 그것은 뒷배의 유무다.
병사들은 영주라는 거대한 권력자를 가졌다.
병사 하나가 다치면 그 일과 관련된 자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엮여서 나온다.
만약 병사가 죽기라도 하면?
마을사람 여러 명 목이 매달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간혹 본보기를 보인다면서 마을을 통째로 없애기도 했다.
‘여기가 무슨 북한이냐?’
페인은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영주가 왜 그 지랄을 떠는지는 알고 있다.
영민들을 납득시키고 이권으로 묶어둘 수 없다면 힘으로 찍어 눌러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은 권력에서 나오는 법이기에 체면을 세우려는 것이다.
페일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저번에 농노 일가 하나가 야반도주를 했다가 붙잡혀서 돌아온 일이 있었다.
보통은 세금을 더 매기거나 힘든 노역을 시키고는 한다.
그러나 그 일가는 이번에 목이 매달렸다.
전쟁 중에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본보기 삼아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저 도망친 걸로 그런 벌을 받았다.
병사를 죽인 페인들은 그보다 더 심한 벌을 받지 덜하지는 않을 거다.
상황이 그러니 페일의 걱정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페인의 다부진 표정은 변할 줄을 몰랐다.
“싹 다 죽이면 되지 뭘 걱정해?”
“혀, 형님?”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이쪽에서 먼저 죽여버리면 그만이야. 이 새끼들, 지들은 칼 휘둘러도 안 죽을 줄 아나보지?”
이런 개 같은 세상.
가라앉았던 페인의 분노가 다시금 타오른다.
그는 평생을 농노로 살아야 한다니 너무 끔찍했다.
차라리 이렇게 된 거 싹 다 죽이고 튀어버리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증거가 없는데 뭔 수로 잡아?’
어차피 얼굴이야 팔려도 모른다.
그림이라고 해봤자 증언을 듣고 그리는 몽타주 수준이고, 이름을 바꿔버리면 그마저도 모르니까.
설령 얼굴을 안다 한들 페인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영지전 하나 못 끝내서 몇 년째 질질 끄는 영주에게 그런 여력은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페인은 도망 대신 싸움을 택했다.
신분이 증명되지 않으면 어차피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삶을 살게 될 터.
더 이상 도망가지 않는다.
페인은 맹세를 되새기면서 동생들에게 말했다.
“너흰 어머니 모시고 피해있어라.”
그러면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마을을 돌아본다.
그곳에는 그가 죽여야 할 병사들이 남아 있었다.
- 작가의말
월요일~토요일 오후 6시에 연재!
가시기 전에 좋아요 한 번만 부탁드려요!
오늘도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