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리 봉인술
동료의 갑옷을 뒤집어쓴 놈이 다가온다!
그러한 사실에 칼슨은 뒤로 주춤 물러섰다.
하나 상대는 계속 다가왔다.
조금씩, 조금씩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새 거리가 더 좁혀졌다.
칼슨의 좋지 않은 시력에도 상대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머리카락색이 금색이라고?”
이곳에 온 병사들 중 금색머리칼은 없다.
가장 밝은 머리카락인 니콜라이의 머리색이 옅은 갈색이다.
이내 수상한 금색머리칼이 달려오기 시작한다.
“뭔!”
***
“흐읍!!”
금발의 사내가 이를 악문다.
이내 그의 손에서 쏘아진 창이 칼슨을 향해서 날아갔다.
페인은 병사가 소리를 지르려는 것을 발견했다.
입을 벌린 것을 보면 바로 다음 동작에서 소리가 터져 나올 것이다.
‘입을 막아야 한다!’
병사 셋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버거운 일이다.
그러니 뭉치기 전에 조져야 한다.
근데 그 방법이 문제다.
옷도 갈아입었는데 뭔가를 눈치 챈 모양이다.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는 꼴이 싸울 의지가 없어 보였다.
여기서 더 가까워지면 아예 몸을 돌려서 달아날지도 모른다.
페인은 저 병사를 죽이고자 마음먹은 상태다.
일이 벌어진 이상 제대로 해야 했다.
꽈악.
손에 쥔 창대에 힘을 준다.
그는 이것을 던지고자 했다.
투창.
창을 던지는 행위를 의미하는 용어다.
페인은 창을 던지는 것이 처음이다.
하지만 왠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읍!”
팔에 힘을 주고 상체를 뒤로 굽힌다.
그리고 앞으로 달려가면서 반동을 이용해 던지자 손에서 소리가 났다.
파-앙!
피에 젖은 창이 허공을 날아간다.
난생 처음 던지는 투창임에도 굉장히 익숙했다.
지구였으면 투창 선수로 이름을 날렸을 법한 아름다운 자세!
그것을 본 칼슨의 입이 벌어졌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날아오는 것임에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피해야······!’
그러나 투창이 날아오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칼슨은 몸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그때는 늦은 뒤였다.
콰드득!
페인이 던진 창은 그의 이빨을 부수고 틀어박힌다.
목구멍을 관통한 창날은 뒷목을 뚫고 튀어나왔다.
대롱대롱-
핏물이 튀면서 칼슨의 움직임이 멈춘다.
목이 관통당한 그는 바보처럼 위아래로 팔을 허우적거렸다.
하나 점점 팔에서 힘이 빠진다.
팔의 상하운동이 점차 느려지더니, 몇 초 지나지 않아 옆으로 자빠졌다.
털푸덕-
누가 봐도 명백한 죽음이었다.
투창으로 적이 죽었음을 확인한 페인은 그제야 흐르는 땀을 닦았다.
“후우, 아가리 봉인 성공.”
투창으로 입을 뚫어서 죽였다.
그 엄청난 광경에 페인은 뿌듯함을 느꼈다.
***
투창은 성공했다.
적의 출현을 알리려던 칼슨이라는 병사를 단숨에 죽였다.
대가라고 해야 할지 페인의 팔근육이 떨렸다.
‘근육경련인가.’
안 쓰는 근육을 사용해서 팔이 놀랐다.
팔만이 아니라 몸의 다른 근육도 곳곳이 삐걱거렸다.
하나 그 정도는 적을 죽인 것에 비하면 값싼 대가다.
평범한 사람은 수십 보는커녕 코앞에서도 창을 던져서 뭔가를 맞추기 어려워한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재능 말고도 전생의 기억 덕분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군대.
거기서 사격훈련을 받았던 것이 조금 도움이 되었다.
둘이 연관이 전혀 없는 거 같기는 하다만.
뭘 맞추려고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아니, 개 열 받네. 그거 말고는 뭐 도움 되는 게 없어?’
사회로 나오니 별 쓸모가 없던 군대에서의 경험들.
그중 하나를 이제야 써먹었다는 사실에 페인은 어이가 없었다.
문득 자신이 한 일들을 떠올린다.
푹 찔러서 사람의 배를 쑤셨고, 휙 날려서 사람의 아가리를 꿰뚫었다.
페인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상한 일이다.
살인을 했음에도 이렇게나 침착할 수 있다니!
생각해보니 기이한 일이지 않은가.
그럼 결론은 내리기 편했다.
알고 보니 자신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손에 쥔 무기를 다루는 재능!
‘무기를 다루는 재능이라······.’
창을 쥐는 순간 그것으로 뭘 할 수 있는지 떠올랐다.
해본 적도 없는 동작이 쉽게 되는 것을 보고 단순히 균형 감각이나 체력이 좋다는 수준이 아님을 눈치 챘다.
그에게는 뭔가가 있다.
전생을 자각하고 그토록 갈구하던 재능을 발견한 것이다.
‘이걸 왜 이제야 찾았는지 원.’
뒤늦게 발견한 재능에 한숨을 내쉰다.
이걸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아버지인 햅슨이 죽는 걸 막았을 수도 있었다.
“다 지나간 일이야.”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후회할 이유가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병사들을 죽이는 거지 잡생각이 아니다.
“칼슨! 칼슨! 씨발, 너 뭐야!”
“거 더럽게 빨리 오는구만.”
다섯 명의 병사 중 세 명을 죽인 시점.
특별히 소란스러웠던 것도 아닌데 적군의 증원이 나타났다.
***
남은 병사들이 일을 알고 찾아왔다.
하나씩 잡는 건 여기까지다.
적이 나타난 순간 페인은 그것을 눈치 챘다.
사실 들키지 않고 셋이나 죽인 게 기적이었다.
암만 조심한다고 한들 기본적으로 그가 사는 마을은 작으니까.
싸우는 도중에 들킬 수도 있다 여겼는데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적어도 싸운 뒤에 나타나서 뒤통수 때릴 일은 줄어들었다.
스릉.
페인은 허리춤에서 숏소드를 뽑았다.
뽑는 순간 아까 창을 던졌을 때처럼 숏소드의 사용법과 뭐가 제일 효과적일지 바로 떠올랐다.
‘방패가 있으면 밸런스가 더 좋았겠군.’
숏소드와 같은 짧은 검은 하나만 쓰는 게 아니다.
방패와 같이 사용해야 제대로 써먹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싸워야 하는 법.
페인은 불평과 불만 대신 손잡이를 다잡았다.
세 명도 죽였는데 둘이라고 못 죽일 이유가 없었다.
“너냐! 네가 칼슨을 죽였냐?!”
“그렇다면?”
“개새끼가, 넌 곱게 죽을 생각 버려라.”
“젠장, 아주 지랄을 해놨군.”
덤덤한 페인의 대꾸에 부하 병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둘의 대화를 듣던 선임병사 니콜라이는 혀를 찼다.
경험 많은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보통 놈이 아니다.’
니콜라이의 시선이 시체로 향한다.
한쪽에 널브러져 있는 칼슨의 시신이 눈에 띄었다.
니콜라이는 부하들에게 감당 못할 것 같으면 소리치라고 말했다.
근데 목소리를 듣지도 못한 걸 보면 소리치기도 전에 살해됐다고 추측할 수 있다.
반대로 페인 또한 주변을 살펴봤다.
‘존나 튼튼해 보인.’
니콜라이는 기본 갑옷 위에 철판을 둘렀다.
면적이 넓지는 않아도 가슴팍을 가리기엔 충분했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부하는 그런 거 없이 기본무장이었다.
이로 인해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니콜라이가 병사들의 대장이라는 것.
그리고 이런 일을 많이 했는지 능숙해 보인다는 거다.
니콜라이는 그런 페인을 향해서 소리쳤다.
페인의 실력이 심상찮아 보인다.
정면으로 붙으면 불구가 되거나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때에는 자신의 뒷배가 누구인지 밝혀 굴복시키고는 했다.
비교적 평화로우며 꽤 잘 먹히는 방법이기에 니콜라이도 자주 써먹었다.
“나는 하렌 영주님의 가신인 니콜라이다! 네놈은 어디의 누구기에 감히 하렌 영주님의 병사를 상하게 만들었느냐!”
“지들이 먼저 시작해놓고 뭔 개소리야?”
“니콜라이 님! 저놈이 영주님을 모독했습니다!”
“뭐라! 그냥 넘어가선 안 되겠구나”
‘뭐래 등신들이.’
페인은 그런 병사들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잘못은 자기가 저질러놓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
딱 그가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페인은 니콜라이의 말에 순순히 대답하지 않았다.
먼저 선빵을 갈겨놓고 피해자인 척하는 게 꼴같잖았다.
그러자 부하 병사가 불같이 화를 냈다.
니콜라이도 단단히 열이 받았는지 뿌드득 어금니를 물었다.
“절대 살려둬선 안 될 놈이로군.”
상황으로 보건대 소식이 없는 병사들은 이미 당했다.
당장 저기 입에 창을 꽂고 누워 있는 칼슨이 그 증거다.
나머지 두 놈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지만 똑같을 것이다.
감히 전쟁 중에 영주의 병사를 죽이다니 이는 중죄였다.
***
하렌 영주는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살려두지 않는다.
그것은 적이 아닌 부하들에게도 적용되었다.
니콜라이는 영주가 맡긴 병사를 셋이나 잃었다.
가신 중에서도 가장 아래인 니콜라이를 용서해주겠는가?
설령 용서를 받더라도 어중간한 공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한 가지 살아날 방법이 있다.’
니콜라이의 시선이 페인에게로 향한다.
유일하게 그가 살아날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범인을 찾아서 데려가는 것뿐.
그리고 눈앞에는 병사 살해의 범인이 있다.
페인의 목을 베서 가져가면 증인도 여럿 있으니 자신의 말을 믿어줄 것이다.
어쩌면 강력한 적을 해치웠다고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계산을 끝마친 니콜라이가 페인을 향해서 외쳤다.
“영주님 앞에서 네놈의 죄를 고하겠다! 네놈의 가족들을 모조리 목이 매달릴 것이다!”
“······그래, 내 가족을 건드리겠다 이 말이지.”
니콜라이는 페인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기를 바라고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페인을 자극하는 꼴이 되었다.
가족이란 말 만큼은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후우우.
페인의 입에서 숨결이 토해진다.
긴장으로 수축되었던 근육이 부드럽게 풀린다.
‘오늘은 처음인 일들이 많네.’
페인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창을 잡은 것도 처음, 칼을 잡은 것도 처음이다.
사람을 죽인 것도 처음이다.
혼자서 2:1로 싸우는 것도 처음이다.
십수 년을 농노로 순종하면서 살아왔다.
근데 갑자기 사람을 죽이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생각해보면 내가 환생 같은 걸 할 줄은 몰랐지. 모르는 게 인생이고.’
이런 페인의 복잡한 심경을 니콜라이는 모른다.
한낱 농노가 생각이나 한다는 걸 가늠도 못하겠지.
단지 본능적으로 느낄 뿐이다.
위기감을.
위기감을 느낀 그는 부하를 향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뭘 멍하니 구경하고 자빠졌어! 무기 들어 이 자식아!”
“예! 넌 오늘 뒤졌다 이 농노새끼야!”
적들의 도발에 페인은 굳이 대답해주지 않았다.
자신이 농노인 것은 사실이다.
이제 와서 화를 내기에는 분노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참지 않는다.’
농노로서 참는 것은 오늘로써 끝이다.
그는 자신을 죽이고자 달려드는 병사들을 향해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됐다.
페인과 두 명의 병사, 1:2 싸움이었다.
누가 봐도 페인이 불리했다.
하지만 페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적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갔다.
“저 새끼 죽여!”
“흐아아아아!”
병사들의 대장인 니콜라이가 외친다.
그의 지시에 부하인 빌은 손에 창을 쥐고 앞으로 전진했다.
스슷, 스스슷-
빌의 움직임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언제든 몸을 뒤로 내뺄 수 있게 잔뜩 긴장했다.
페인은 그런 빌을 향해 숏소드를 내밀었다.
숏소드의 칼날은 약 60cm정도다.
길쭉한 창과 비교하면 길이가 2배 이상 차이 났다.
지극히 불리한 싸움이다.
생각이 있는 자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야 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슴속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페인은 자신을 향해 찔러오는 창날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숏소드를 휘둘러 그것을 쳐냈다.
- 작가의말
내일도 오후 6시 연재!
가시기 전에 추천, 선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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