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승리
페인의 숏소드가 휘둘러진다.
숏소드의 짧은 칼날은 길쭉한 창대를 하늘로 쳐냈다.
까앙!
“뭐야!”
깜짝 놀란 빌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
상대가 든 것은 단병기인 숏소드다.
보통 장병기와 단병기가 부딪치면 짧은 쪽이 손해를 본다.
손에서 무기를 놓치거나 무기가 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페인은 그것을 기술로 극복해서 외려 창대를 위로 올려버렸다.
이에 빌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분명 전력을 다해서 찌른 건데 막힌 것도 모자라서 창대가 위로 들려버리다니!
‘무슨 힘이! 이게 가능한 일인가?’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니콜라이도 놀란 얼굴이다.
그는 롱소드를 사용하는 이답게 페인이 한 짓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았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빌은 만세를 외치듯 두 팔이 위로 올라갔다.
빌의 중간이 훤히 드러났다.
페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퍼억!
“케흑!”
어깨로 빌의 품을 파고든다.
가슴을 들이받힌 빌은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끄으으······!”
빌은 어떻게든 창을 휘두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둘 사이가 너무 가까운 탓에 제대로 위력이 나오질 않았다.
신체와 신체가 맞닿는 초근접전.
이런 상황에서는 숏소드와 같은 단병기가 창보다 우위에 놓인다.
푹푹푹.
페인은 손에 쥔 숏소드를 마구 찔렀다.
손잡이까지 합쳐도 채 100cm가 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 좋았다.
“죽어어어!”
분노를 담아 빌의 가슴과 뱃속을 쑤신다.
빌은 속수무책으로 칼날을 받아냈다.
한 번 공격을 허용한 시점에서 그는 이미 패배한 것이다.
“크어어어······.”
선홍색의 핏물이 빌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빌은 자신의 장비와 실력을 너무 과신했다.
갬비슨과 가죽 갑옷을 입었지만 그것은 금속이 아니다.
베기와 충격에는 강하지만 찌르는 공격에는 취약했다.
페인은 그 뚫리는 정도를 절묘하게 조절하여 칼날을 쑤시고 뺐다.
딱 방어구를 뚫고 장기를 헤집을 수준.
덕분에 빌의 몸통은 순식간에 걸레짝으로 변하였다.
빌이 쓰러지기 전, 페인은 마무리 공격을 가했다.
사악-!
숏소드의 칼날이 가죽 갑옷의 연결부위를 끊는다.
투둑, 옆구리가 훤히 드러나자 그곳을 또 한 번 베었다.
스걱!
주르륵.
“주, 죽, 같이 죽······.”
빌은 최후의 순간에도 손에서 창을 놓지 않았다.
그것은 병사로서 제대로 배웠다는 증거다.
또한 몸에 각인된 잘못된 습관이기도 했다.
페인은 멈추지 않고 빌의 몸을 난자했다.
무기를 다루는 재능을 타고났으나 싸움 경험은 몇 번 되지 않는다.
분노와 긴장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 채 마구 공격했다.
털푸덕.
결국 빌은 바닥에 쓰러졌다.
페인의 손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후우, 후욱. 개자식이.”
퍽!
시체가 된 빌을 발로 찬다.
합공을 가하려고 준비하던 니콜라이는 그 살벌한 광경에 발걸음을 멈췄다.
***
니콜라이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실시간으로 해체되고 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게 현실인지 믿기지 않았다.
선임 병사가 될 때까지도 이러한 광경은 보지도 못했다!
‘방금 내가 뭘 본 거지?’
그는 방금 숏소드 검술의 정석을 보았다.
숏소드라는 무기를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가?
페인은 그것을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찌르고, 베고, 자르고, 때리고, 회수하는 모든 과정!
눈으로 보고도 어떻게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만큼 페인의 숏소드 다루는 솜씨는 고수의 영역이었다.
하나 그런 감성도 잠시였다.
털푸덕.
고깃덩이가 된 부하가 바닥에 엎어졌다.
현실로 돌아온 니콜라이는 그것을 보고 버럭 소리쳤다.
“이노오옴!!!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겉으로는 화를 내고 있지만 실은 두려웠다.
부하들을 몰살시킨 페인이 두려웠고, 그보다 영주가 내릴 벌이 더 두려웠다.
‘좆됐다.’
그는 병사들을 데리고 온 사람이 누군지 떠올렸다.
바로 자신이다.
누가 병사들을 따로 흩어놨는가?
바로 자신이다.
농노를 상대로 넷이나 되는 병사를 잃었다는 것은 무능함의 증거다.
이 소식을 영주가 접하게 되면 분명 크게 분노하리라.
-실망이군.
니콜라이는 환청을 들었다.
영주가 실망했다고 말하는 소리를 말이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
이 이상 놈이 날뛰는 것을 용납해선 안 된다.
영주는 절대 자비로운 성격이 아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쪼아대며 압박하던 자가 하렌 영주다.
그러니 어떤 변명을 해도 통하지 않을 거다.
말하는 순간 가신목록에서 이름이 지워질 건데 그런 미래가 너무도 두려웠다.
비록 말이 가신이고, 최하위에 속해있다만.
그 목록에 이름을 올라가 있다는 거 만으로 그에게는 최고의 자리였다.
니콜라이는 그것을 빼앗길까봐 너무도 두려웠다.
그런 짓을 저지른 주제에 상대는 겁 하나 먹지 않고 있었다.
“무슨 짓을 저지르긴. 잘한 짓이지.”
페인은 그런 니콜라이에게 비웃음을 흘렸다.
그가 보기에 저놈들도 씹새끼다.
영주의 명령이면 뭐 다 옳은 일인가?
이쪽 사정은 신경도 쓰지 않고 식량에 옷, 천, 모든 걸 빼앗았다.
심지어 땔감도 강탈했다.
싹 다 가져가버리면 겨울에는 얼어 뒤지라는 말인가?
1할만 가져가는 게 아니다.
1할도 안 남기고 가져가는 거다.
페인은 저놈들이 왜 이리도 악독하게 구는지 고민해봤다.
그리고 이유를 찾았다.
그건 바로 자기가 당한다는 생각이 없어서였다.
‘이게 다 처맞질 않아서 그래.’
농노로 태어나서 줄곧 뜯기고 당하기만 했다.
‘개 같은 세상.’
페인은 자신을 농노로 만든 영주와 세상이 증오스러웠다.
그리고 그 증오스러운 놈이 아버지도 죽이더니 이제는 어머니까지 때려잡았다.
이건 화를 내는 게 정답이다.
참으면 병신이고 걍 나가 뒤져야 한다.
그러니 쉽게 내뱉을 수 있었다.
“영주 씹새끼.”
영주에 대한 욕지거리를!
아버지를 끌고 가 뒤지게 만들어놓고는 아무 보상도 없다.
그래놓고 이제는 어머니와 자신들까지 죽이려고 든다.
병사의 선택이니 영주의 잘못이 아니라고?
누가 병사를 보냈나.
영주다!
영주의 책임이다.
고로 영주에게 속한 부하들도 살려둘 이유가 없다.
페인은 손가락을 까딱여 니콜라이를 조롱했다.
“닥치고 오기나 해.”
“으으으!”
“안 오면, 이쪽에서 가지.”
그는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아니면 까짓거 뒤지면 그만이니까.
페인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다.
그에 맞춰 니콜라이는 주춤 뒤로 물러났다.
***
다가오는 페인을 보면서 니콜라이가 정신을 차렸다.
자신을 죽이고자 다가오는 페인을 보고 열이 머리끝까지 올랐다.
“내가 누군 줄 알고!”
니콜라이는 비싼 돈을 주고 마련한 자신의 검을 들었다.
그것은 롱소드계열의 검이었다.
페인의 숏소드와는 다르게 검신이 무려 100cm를 넘는다.
그는 이걸 제대로 써먹으려고 롱소드 검술을 배웠다.
기사에게 사정사정해서 배웠지만 그 자부심은 남달랐다.
자신과 페인의 차이는 거인과 어린애급이다.
징집병 따위에게 이겼다고 가신병사인 자신에게도 이길 거라는 것은 크나큰 오산이다.
게다가 니콜라이는 방어구도 우수했다.
질긴 가죽 갑옷에 철판을 둘로 보강했다.
방어구의 차이, 무기의 차이, 그리고 경험의 차이.
니콜라이는 승리를 자신했다.
애초에 숙련된 병사인 그를 농노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수치였다.
“뒤져!”
페인은 그딴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있는 개놈자식에게 칼을 휘두르는 데에 집중했다.
이에 맞서는 니콜라이는 자세를 잡았다.
그것은 롱소드 검술이었다.
황소의 뿔처럼 검을 위로 잡는 자세.
즉 롱소드의 기본 자세인 옥스(Ochs)였다.
숙련되기만 하면 어떤 자세로든 연계가 가능해진다.
니콜라이는 뜸을 들였다.
페인에게는 어디를 공격할지 모르게 만든다.
슬금슬금 발가락으로 접근하면서 움직임을 애매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매가 사냥감을 낚아채는 것처럼 벼락같이 검을 내려쳤다.
쐐애액!
롱소드가 날카로운 바람소리를 흘린다.
몸 어느 한 곳을 날려버릴 정도로 강맹한 공격이다.
하나 페인의 눈은 정확히 롱소드로 향했다.
그는 몸을 피하는 대신 숏소드의 검면을 세웠다.
그리곤 검면을 방패처럼 삼아 공격을 받아냈다.
카가각!
롱소드가 숏소드의 검면을 긁었다.
페인은 양손으로 받친 검면을 이용해 칼날을 밀어냈다.
서걱-
스치는 칼날에 손바닥이 베였다.
쩍하고 살이 갈라졌지만 페인은 이를 무시했다.
이쪽 세상에선 이게 보통이다.
생채기 좀 났다고 호들갑을 떨기엔 삶이 너무 팍팍하다.
별것도 아닌 걸로 사람이 픽픽 죽어나가니 목숨값이 매우 쌌다.
‘거지같은 세상.’
앞으로도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가뜩이나 기분이 별론데 웬 미개인이 창칼로 위협하니 빡이 돌았다.
페인은 과감히 니콜라이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 분노를 저놈에게 풀지 않고서는 배기질 못하겠다.
“!?”
그런 페인의 저돌적인 돌격에 니콜라이는 깜짝 놀랐다.
설마 시골촌락의 농노가 이런 결단을 보여주리라 예상도 못했다.
“뒤져!”
페인이 숏소드의 손잡이를 내려친다.
둥그스름한 폼멜이 니콜라이의 뾰족한 콧대를 가격했다.
뻐억!
“케흑!”
안면을 가격당한 니콜라이의 안면이 피로 물든다.
코뼈가 부러지고 앞니가 후두둑 떨어졌다.
하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가뜩이나 숨 쉬기 힘든데 페인은 계속해서 폼멜로 찍었다.
퍽, 퍽, 퍽.
얼굴의 형태가 무너진다.
간신히 롱소드를 놓지는 않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제 마무리를 할 시간이다.
페인은 숏소드를 거꾸로 쥐었다.
전생에서 보던 만화들에서는 주로 암살자가 이런 식으로 자세를 잡았다.
그 자세에서 니콜라이의 가슴팍으로 칼날을 찍었다.
푹!
“꺼억!”
숏소드의 칼날이 목뼈를 비집는다.
고통을 견디지 못한 니콜라이가 헛숨을 내뱉었다.
그런 와중에도 살려달라고 몸부림을 친다.
팔과 손을 들어 허우적거리는 니콜라이에게 페인은 칼날을 꽂았다.
푹, 푹, 푹!
목과 가슴, 복부.
치명적인 세 곳에 연달아서 숏소드의 칼날이 꽂았다.
피가 퐁퐁 샘솟는다.
흘린 피의 양만큼 니콜라이의 움직임도 느려졌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은 질기다고, 니콜라이는 죽지 않았다.
“그르륵······.”
“좀 죽어라.”
페인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몸에 구멍이 이렇게 났는데도 버티는 니콜라이가 징하였다.
다시 검손잡이를 똑바로 잡는다.
이번에는 니콜라이가 검을 쥔 겨드랑이를 슥하고 베었다.
촤악!
툭.
겨드랑이 근육이 잘리면서 오른팔이 병신이 됐다.
힘이 풀리자 롱소드를 쥔 손도 자연스럽게 아래로 떨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니콜라이는 구멍 난 목을 붙잡았다.
왼손으로 간신히 구멍을 압박하는 그를 페인이 노려본다.
니콜라이는 살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페인의 귀에는 피가래 끓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가르륵.”
“지옥에나 떨어져라.”
그렇게 니콜라이는 죽었다.
자신이 그토록 자랑하던 롱소드 검술을 채 보여주지도 못한 채.
추하게 발버둥치다 과다출혈로 숨이 끊어졌다.
“허억, 헉. 헉······.”
적이 죽자 페인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역시 연속해서 2명을 상대하는 것은 힘들었다.
피로 범벅이 된 손으로 땀을 훔친다.
흥분이 가시자 알싸한 고통이 베인 손바닥에서 느껴졌다.
“씨발, 이겼다.”
- 작가의말
내일도 오후 6시에 연재!
추천, 선작 한 번씩만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