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마검
와아아아아아!
일단의 병사들이 마을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의 모습은 통일되지 못해서 제각각이었다.
칼이며 방패, 창과 갈퀴를 들었다.
누구는 무기가 부족했는지 조잡한 목봉을 들었다.
하지만 조잡하다곤 해도 무기는 무기다.
제대로 맞으면 뇌진탕에 걸리거나 내출혈이 생길 정도로 위력적이다.
이런 무장한 병력이 우르르 나타났다.
뒤를 쫓아오던 토벌대의 대열도 덩달아 흐트러졌다.
“어, 어어어, 뭐, 뭐야 이건!”
“매, 매복이다! 적의 매복이다!!”
“사람 살-크아아악!”
갑작스런 습격에 비명이 터져 나온다.
작전이 성공했음을 확인한 페인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만큼 2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압박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대충 계산해도 2배가 넘는 적군이 죽자고 달려드는데 멀쩡하긴 어려웠다.
페인은 그런 병사들을 향해서 소리쳤다.
“전부 다 죽여라!”
당황한 토벌대가 주춤거리는 사이.
반란군 병사들이 토벌대 병사들을 덮쳤다.
이내 주변은 피로 물들었다.
***
매튜는 승리를 자신했었다.
그렇기에 화살세례에 이은 매복공격은 치명적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눈으로 보아도 믿기지가 않았다.
정예라 자부하던 병사들이 낫과 갈퀴 따위를 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반격을 가하려고 하면 창과 검을 든 놈들이 나타나 멱을 따버린다.
이를 실력과 우수한 장비로 만회해보려 하지만 병사 하나에 두세 놈이 덤비면 당할 재간이 없었다.
“크학!”
“끼야아악!!!”
“어머니······!”
“이런 빌어먹을.”
비명을 지르는 아군의 모습에 매튜가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매튜는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저런 더러운 흙탕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지만 상황이 여의찮았다.
그런 매튜의 앞을 누군가 막아섰다.
“······네놈은 누구냐.”
“느그 아버지시다.”
빠직!
매튜의 이마에 핏줄이 곤두선다.
이런 발칙한 도발은 생을 통틀어서 처음 들었다.
그런 매튜에게 길막 중인 페인은 재차 도발을 걸었다.
“설마 겁쟁이처럼 도망갈 생각은 아니겠지?”
매튜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저놈이 아까 그 화살을 날려대던 자임을 눈치 챘다.
건방진 짓을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감히 기사를 모욕하다니.
이걸 그냥 넘어갔다가는 남들이 그의 명예를 비웃을 것이다.
“놈! 그 주둥이를 찢어발겨주마!”
“할 수 있으면 해봐.”
그 말에 인내심이 사라진 매튜는 말고삐를 당기면서 앞으로 질주했다.
능숙한 그 승마솜씨에 매튜를 태운 말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두두두두!
페인은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말발굽에 짓밟힐 위기상황에서 검 한 자루를 쥐고 폭주해오는 기사를 맞이하였다.
***
페인은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했다.
성난 기세로 달려드는 말 탄 기사는 흡사 소형차와 다르지 않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중형차를 능가했다.
차는 그래도 부딪치면 튕겨나는 걸로 끝나지만 말은 아니다.
먼 옛날, 전생에서 우연찮게 본 사고영상에서는 말발굽에 차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줬다.
뼈가 조각조각 박살나고 턱과 눈 같은 부위가 날아가버린다.
심지어 말 위에 탄 놈은 칼과 도끼로 몸을 토막 내버리니 페인의 입장에서는 이쪽이 더 끔찍했다.
‘하지만 피하면 안 된다.’
그가 피하면 저 기사는 아군을 유린할 것이다.
고작해야 농노와 평민으로 구성된 저들은 그 한 번의 휘저음으로 끝장날 거다.
고작 그걸 보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적어도 영주 대가리 따는 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지 않겠는가?
해서 페인은 땅바닥에 발이 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철그럭-
그저 검을 쥐고 버틴다.
땅의 울림과 몸을 아리는 살기를 견뎌냈다.
온다. 그들이 온다!
말과 한 몸이 된 기사가 저 기다란 검으로 페인을 반으로 쪼개기 위해서 달려온다.
몇 초 지나지 않아서 페인은 그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노옴! 절대 용서치 않겠다!”
기사의 말이었다.
매튜는 별 시답잖은 놈이 망신을 줬다는 생각에 눈이 멀었다.
투구의 사이로 핏발이 선 눈동자를 보인 매튜는 전력을 다해서 검을 휘둘렀다.
‘다시는 참지 않아.’
그것을 보면서 페인도 검을 휘둘렀다.
누가 보아도 압도적으로 불리한 쪽은 페인이다.
맞서지 않고 도망치는 게 현명하지만 그는 현명하지 못했다.
현대에서도 그랬다.
현명하지 못했기에 이용만 당하다가 그저 그런 일을 하고, 개죽음을 당했다.
이번 생에서도 무려 17년이라는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
더 이상은 참아선 안 된다.
페인은 그 감정을 롱소드에 담았다.
그러자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팔이 길어진 듯한 기분.
검을 잡은 게 아니라, 검이 팔의 연장선이 된 것처럼 길어진 느낌이었다.
“!!!”
페인의 입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이 나왔다.
이를 너무 꽉 깨물어 짓눌린 잇몸으로부터 피가 나왔다.
그리고 공격을 위해 진각을 밟는다.
다리에서 짜릿한 고통이 올라왔다.
우드득.
이건 부러진 거다.
뼈가 어긋나서 신경을 자극하는 오싹한 고통이 등을 타고 뇌리까지 닿았다.
그럼에도 페인은 멈추지 않았다.
검을 휘두른다.
뒤늦게 깨달은 재능을 가지고 목숨을 걸고서 매튜를 공격했다.
“이것이 나 매튜의 검이다!”
매튜도 자신의 마상검술에 한 방을 걸었다.
말을 탄 이가 낼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
기다란 기마용의 장검에 가득 담겼으며 둘은 그렇게 하나로 얽혔다.
***
말을 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병사는 기사를 이길 수 없다.
보병기사는 기마기사를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매튜의 기다란 검이 페인을 찢어발기기 위해 휘둘러졌다.
페인도 물러서지 않았다.
외려 롱소드를 휘둘러서는 무언가를 쪼갰다.
파각.
무언가 쪼개졌다.
혹시 페인의 대가리일까?
아니다.
쪼개진 것은 검이었다.
페인은 매튜의 검을 쪼갰다.
휘거나 날이 나간 것도 아니고 검이 부서지다니!
“?!”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매튜의 얼굴에 당혹감이 올라온다.
기마용의 검은 굉장히 튼튼하게 만들어진다.
평범한 장검을 만드는 것보다 배 이상의 품과 재료가 요구된다.
그런 매튜의 검을 페인은 어찌 부러뜨린 것일까.
눈동자에는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이 새겨졌다.
하나 그 감정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페인의 검은 상대의 무기를 부수고도 속도가 줄지 않았다.
마치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궤적을 그리며 움직이던 롱소드는 어깨에서부터 바닥까지 전면을 베었다.
여기에 매튜가 타고 온 말의 에너지가 더해졌다.
이건 설명을 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다.
재능, 그저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매튜는 공포를 느꼈다.
쫘아아악-
무언가 갈라진다.
이것을 두 번 느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리라.
유감스럽게도 매튜는 사람이었다.
그는 생애 유일하게 느끼게 될 감각 속에서 간신히 입술을 더듬였다.
“이, 시, 바아아······.”
그것이 그의 유언이었다.
매튜를 태운 말은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제 주인과 함께 반으로 쪼개졌다.
쩌어억!
철퍽, 철퍼덕!
말과 사람이 통째로 쪼개진다.
맨몸이거나 허술한 천옷을 입은 것도 아닌 철로 만든 갑옷을 입었다.
그런 기사가 두 쪽으로 갈라져서 죽었다.
주변에서 이를 훔쳐보던 모든 이들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
반으로 갈라진 인마(人馬)가 뒤쪽으로 길게 혈흔을 만든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엎어진 사체들은 뭐라 말하기 어려운 끔찍함을 자아냈다.
매튜가 죽었음에도 페인은 여전히 칼을 뻗은 자세를 유지했다.
오른발과 상반신을 뻗은 채로 동상처럼 말이다.
그것이 바로 고수의 자세였다.
단칼에 인간병기를 베어버리는 믿기지 않는 실력!
병사들은 적아의 구분 없이 경외와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페인을 쳐다봤다.
반면 페인은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쿨럭.”
주르륵.
입가에서 핏물이 흘러내린다.
힘을 전혀 아끼지 않은 무식한 행동에 대한 대가였다.
주먹을 전력으로 휘두르면 단단한 나무도 부술 수가 있다.
하지만 뼈라 부러지거나 살이 짓무르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력으로 공격한 반작용으로 몸이 삐걱거리는 것이다.
핏물을 뱉고서야 페인은 비로소 몸이 움직임을 느꼈다.
‘뒤지는 줄 알았네.’
간신히 근육경련 상태에서 벗어났다.
젖 먹던 힘까지 사용해서 뻗은, 일종의 발검(拔劍)에 가까운 기술이엇다.
발검은 실전에서 써먹을 만한 기술이 아니다.
다음 동작을 이어가기 위한, 그냥 칼 잘 뽑는 기술이다.
그런 걸로 사람과 말을 통째로 벴으니 정신 나간 장면이다.
“끄으응, 더럽게 아프네.”
절로 신음이 터진다.
실제로 펼쳐버리니 몸이 멀쩡할 리가 없다.
오른쪽 다리는 부러졌다.
다행히 어긋나진 않았고, 그냥 쩔뚝이 상태다.
손바닥이 쓰라리다.
걸레짝이 됐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았다.
페인은 힘겹게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자신이 죽인 기사의 사체가 뒹굴었다.
뜨끈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말의 내장에서 뜨거운 김이 공기를 달구자 훅하고 혈향이 맡아진다.
문득 소란이 잦아들었음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훑어본다.
그곳에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존재를 보는 듯한 눈빛이 페인에게로 향한다.
페인도 그것을 느꼈다.
그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눈치 챘다.
“전원 무기를 버려라.”
나지막한 탁한 음성이 새어나온다.
페인의 상태는 엉망이다.
토벌대 병사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철그렁, 철그렁.
그러나 그들은 싸움보다 항복을 택했다.
도저히 페인을 상대로 이긴다는 생각이 떠오르질 않아서다.
몇 명이 무기를 버리자 나머지도 연이어서 무기를 버렸다.
날붙이와 나무가 뒤엉켜 텅텅거리는 소리를 낸다.
두 배는 많은 적을 상대로도 용감히 싸우던 병사들이다.
그런 토벌대 병사들이 페인의 싸움을 보고 기세가 꺾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무릎을 꿇었다.
털썩.
무릎 꿇은 자는 생김새가 다른 이들보다 좋았다.
얼굴의 살이 보기 좋게 올랐다.
몸에 걸친 철의 숫자도 상당했다.
겉모습에서 보여주듯, 실제로 그자의 신분은 높았다.
“하, 항복! 항복입니다! 부디 살려만 주시기를!”
페인에게 죽은 기사 매튜의 종자.
로도스는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면서 목숨을 구걸하였다.
***
이겼다.
페인은 승리했음을 느꼈다.
그것은 기사의 종자가 항복을 외침으로써 증명되었다.
“진짜 항복하는 거냐?”
“네, 네, 맞습니다! 항복입니다!”
항복을 외치는 종자의 모습은 상당히 추했다.
적과 아군 모두 그것을 보았다.
기사의 부하들은 그것이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이미 항복한 것을 무를 수는 없는 법이다.
항복을 외치지 않아도 누가 이겼는지는 명백했다.
다들 제 목숨 아까운 것은 알았기에 슬며시 무기를 내렸다.
“우리가 이겼다!”
“그럼 이제 다 끝난 건가?”
병사들이 속닥이건 말건 페인은 걸었다.
터벅터벅.
페인이 종자에게 다가간다.
그의 발걸음에는 힘이 담겨 있었다.
종자는 그런 페인이 두려웠다.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올려다보며 자비를 구하였다.
“항복을 받아주겠다.”
“그, 그러면 이제······.”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페인의 눈초리는 싸늘했다.
종자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눈치 채고 입을 닫았다.
“하지만 일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져야지.”
페인의 말에 종자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전생에서도 그런 모습을 질리게 봤다.
여기서도 그 지랄을 보고 참지 않을 것이다.
“자, 잠시만!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
“어, 나도 가슴이 시키는 것뿐이야.”
그리고 검이 휘둘러진다.
종자는 자신을 향해 내려쳐지는 두툼한 칼날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촤악!
- 작가의말
내일도 오후 6시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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