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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꾸
작품등록일 :
2024.07.13 10:08
최근연재일 :
2024.09.20 08:22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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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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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수레바퀴 5

DUMMY

운명의 수레바퀴 5





여자의 경차가 국도를 달려간다. 쥐색 SUV도 조금 떨어져서 그녀를 뒤쫓았다.


차에 타면서부터 태원은 말이 없어졌고 옥희 씨는 불안한 표정으로 경차와 동생을 번갈아 살폈다.


국도를 달리는 경차의 속도는 평균속도보다 현저히 낮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차량의 뒤에 다른 차량들이 밀리면서 인해 긴 꼬리가 생겼다.


뒤에서 경적소리가 울렸지만 경차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않았다.


급기야 뒤에 늘어서 있던 차들 중 몇 대가 그들을 추월하며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댔다. 그러다 마주 오는 차와 부딪칠 뻔하기도 했다.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옥희 씨는 놀라서 몸을 움츠릴 지경인데 태원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그렇게 30 여분을 달려가던 경차는 국도변에 비슷한 모양으로 자리 잡은 몇 개의 마을을 지나 어느 마을로 들어갔다.


경차는 쥐색 SUV가 자신을 따라오는 걸 전혀 모르는지 마을로 들어가 공터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주택가로 걸어갔다.


태원과 옥희 씨도 주차를 하고 그녀가 들어가는 집을 확인했다.


평범해 보이는 기와집이었다. 지붕이나 담도 깨끗했고 집 주변도 단정했다. 담 안에는 나무가 한그루 서 있는데 진녹색의 큰 감나무였다.


두 사람은 천천히 그 집을 향해 걸어갔다. 가는 동안 논과 밭에서 일하는 노인 몇 명이 낯선 두 사람을 의심스런 눈으로 쳐다보았다.


대문이 열려 있어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마당의 빨랫줄에 옷가지가 걸려 있는데, 똑같은 옷들이 두 개씩에다 모두 아이 옷이었다. 양말도 같은 디자인에 같은 색이었다.


옥희 씨는 태원에게 눈짓을 하고 살며시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물 좀 얻을 수 있을까요, 라는 핑계를 댈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금방 들어간 걸 봤는데도 여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옥희 씨는 다시 사람을 부르는 척하며 집안을 살펴보았다.


방문이 닫혀 있어 안을 볼 수는 없었지만 집은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누군가 쓸고 닦은 흔적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없다. 여자가 분명히 이 집으로 들어가는 걸 본 그녀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옥희 씨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동생에게 말했다.


“아무도 없구나. 분명히 봤는데.”


태원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렇게 닮은 사람을 지금껏 본 적이 없어요. 아내의 젊었을 적 얼굴과 너무나 닮았어.”


“그렇게까지? 나는 잘 모르겠더구나. 아무튼 그만 가자. 사람이 없어. 아무리 봐도.”


옥희 씨가 그렇게 말했지만 태원은 좀처럼 발을 떼지 않았다.


“그만 가자. 그렇게 신경이 쓰이면 다음에 다시 오던지. 사람이 없는데 뭘 어쩌겠니.”


그러자 태원은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골목을 내려가 논과 밭 사이를 걸어갔다.


그때 멀리서 한 노부인이 치맛자락을 툭툭 털며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태원이 냉큼 그녀에게로 달려가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저기 기와집에 사는 사람을 만나러 왔는데요.”


“잉? 무슨 집?”


“저기요.”


그러면서 태원은 조금 전에 갔던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누구 집을 말하는지 모르겠네.”


노인의 말에 옥희 씨가 나섰다.


“큰 감나무가 있는 파란 지붕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자 노인이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이 두 사람을 아래위로 훑었다.


“빈 집에 누가 있다고. 그 집은 오래전에 비었어.”


“비었다뇨?”


태원이 놀라서 물었다.


“말 그대로 빈 집이야. 여기저기 돈 빌리더니 밤중에 도망쳤지.”


“아니, 조금 전에!”


태원이 소리 치려고하자 옥희 씨가 얼른 동생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앞에 나서서 질문을 했다.


“언제부터 비어 있었나요?”


“도망간 후로도 몇 사람이 살았는데 마가 끼었는지 죄다 일이 꼬여서 가버렸어. 그때부터 빈 집이니까 몇 년 실히 되었지.”


“그럼 혹시 이 동네에 이춘식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나요?”


“춘식이라···그런 이름은 이 마을에 없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쌩하니 가던 길로 갔다.


태원은 멍한 표정으로 옥희 씨를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같은 표정이었다.


“이상하구나. 정말 이상해.”


두 사람은 여자가 들어갔던 집으로 다시 올라갔다.


헌데, 기와집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해갔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조금 전만 해도 멀쩡했던 집이 흉가처럼 변해 있는 것이다! 도무지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대문은 떨어졌고 지붕은 칠은 벗겨졌으며 마당에는 잡초가 한가득이었다. 빨랫줄에는 바람에 날아온 검은색 비닐이 덕지덕지 걸려있고 시퍼렇게 서있던 감나무는 시커멓고 앙상하게 죽어있었다.


말 그대로 폐가였다.


두 사람은 혼이 빠진 표정으로 기와집을 쳐다보았다.


“누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세상에, 이런 일이······.”


한참을 바라보던 옥희 씨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태원도 뒤를 따랐다.


잡초투성이 마당을 지나 툇마루에 올라서서 부서진 방문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안은 망가진 가구와 잡다한 물건들과 쓰레기로 난장판이었다.


누런 벽에는 액자가 삐뚤하게 걸려 있었다. 똑같은 키에 똑같은 옷을 입은 쌍둥이 사진이었다. 서 있는 키로 짐작하건데 초등학교 저학년 같았으나 사진이 너무 낡아 얼굴은 알아보기 어려웠다.


옥희 씨는 등을 훑어 내리는 서늘함에 치를 떨며 다른 곳을 살펴보았다.


부엌도 마찬가지였다. 온전한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똑같은 플라스틱 밥그릇 2개와 컵 2개가 부뚜막에 나뒹굴고 있었다.


게다가 그곳에도 분홍색 킥보드가 있었다.


“이젠 소름이 돋는구나. 저 킥보드는 대체 무슨 의미일까?”


“누님이랑 다니면서 이렇게 비현실적인 경우는 처음입니다. 우진의 조부모를 찾으러 갔을 때보다 더 복잡한 심정이네요.”


“나도 마찬가지구나.”


폐가가 된 집을 둘러본 뒤 감나무 아래에 선 옥희 씨는 이유모를 불안감에 인상을 찡그렸다. 손가락 끝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검게 변한 감나무를 쳐다보다가 문득 나무 끝에 걸려 있는 검정 비닐봉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저승사자의 옷자락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마을마다 이런 집이 하나씩 존재한다는 게 넌 믿어지니? 거기다 킥보드까지.”


옥희 씨가 동생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태원은 화가 난 사람처럼 몸을 휙 돌려 집을 나가버렸다.


옥희 씨는 폐허가 된 집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대문을 나섰다.


쥐색 SUV의 조수석에 올라앉아 옆을 보니 태원이 핸들을 꽉 잡고서 굳은 표정으로 기와집을 응시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듯한 동생의 표정에 옥희 씨는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늘 같은 꿈을 꿔요.”


한참 후 태원이 입을 열었다.


“마치 거대한 고치 같아요. 뭔지 알겠어요? 집사람과 세희가 새카만 고치 속에 들어가 있단 말입니다.”


옥희 씨는 벌써 20년도 더 넘은 얘기를 동생이 꺼내고 있다는 걸 깨닫고 조용히 눈가를 닦았다.


“검은 고치 속에서 한 발도 나오지 못했어요. 20년 동안.”




태원의 아내와 4살 난 딸은 그가 경찰일 때 잡아들인 범죄자의 희생양이 되었다. 지명수배가 내려진 범인을 잡아 교도소에 가둔 공으로 특진을 한 태원의 앞날은 누가 봐도 탄탄대로였다.


그러나 출소한 범죄자가 태원의 주택에 방화를 했고 아내와 딸은 연기 속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범인은 잡혔지만 태원의 악몽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는 매일 비슷한 꿈에 시달렸다. 아내와 딸이 여전히 연기 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꿈이었다. 경찰을 그만두고 여행을 다니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매일 술을 마시고 절망에 빠져 지내던 그를 가족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동생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아내와 닮은 사람을 보고나자 그의 이성이 또 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태원은 핸들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삼켰다.


옥희 씨는 동생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러면서 폐가가 된 집을 쳐다보았는데, 놀랍게도 기와집 지붕에 여자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런! 세상에나!’


옥희 씨는 그 광경을 동생이 볼까봐 속으로 탄식을 했다.


여자는 슬픈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색 치마와 길고 긴 검은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 모습은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옥희 씨는 자신의 저주받은 재능을 원망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사무실 앞에서 내린 옥희 씨는 동생의 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동생이 우는 모습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 기어이 보고 말았다.


사무실로 들어가려던 옥희 씨는 마음을 돌려 도로를 건넜다. 그녀는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과 치즈를 샀다.


‘오늘 같은 날엔 맨 정신으로 잘 수 없어.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그녀는 곧장 2층으로 올라가 냉장고를 뒤졌다.


야채칸에서 깻잎과 레몬을 꺼낸 옥희 씨는 유리잔에 얼음을 넣고 소주를 따른 뒤 얇게 썬 레몬 조각과 깻잎을 뜯어 넣고 그것을 창문 아래 탁자에 놓았다.


옷을 갈아입고 대충 씻고서 창가로 되돌아와 얼음이 녹아 약해진 술을 마시며 그녀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쌍둥이도 징조일까?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은 어떤 의미일까? 어째서 빚을 지고 도망간 집마다 우환이 끊이지 않았을까? 그 여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우리 앞에 나타났을까? 어째서 하필이면 올케의 얼굴로? 불교상회 주인에겐 그 여자가 보이지 않았던 걸까?’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헤집을 때마다 그녀는 술을 한 모금씩 마셨다.


‘모든 의문점을 다 풀려면 한 병으로는 어림도 없겠구나.’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옥희 씨를 내려주고 집으로 가던 태원은 집 근처 호숫가로 차를 돌렸다. 그는 노을이 지는 호숫가 벤치에 앉아 오랫동안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았다.


꿈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내의 얼굴을 오늘 믿기지 않는 우연으로 보게 된 것이 그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어째서 그 여자는 아내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것일까. 우리를 그 집으로 끌고 간 이유가 뭘까? 누님은 그 징조를 알아차렸을까?’


태원 역시 수많은 질문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제는 무덤덤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처였어.’


그는 지난 20년 보다 지금이 더 마음 아팠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니 미진이었다.


“미진 씨. 접니다.”


-태원 오빠. 언니가 너무 보고 싶어요. 너무너무 그리워요.


“미진 씨.”


-언니는 왜 그렇게 일찍 가버렸을까요. 나만 남겨두고.


핸드폰 너머로 미진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 미진 씨에게는.”


-미안해요. 하지만 전화할 곳도 없어요. 언니가 내 최고의 친구였는데······.


“식사는 좀 했어요?”


-하은이는 안 보고 싶은데 보미는 너무 보고 싶어요. 보미랑 언니가 너무나 그리워요.


미진의 말에 태원은, 나도 같은 심정입니다 하고 말할 뻔했다. 그는 얼른 정신을 가다듬었다.


“미진 씨.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요?”


-······그럼 술친구 해주실래요?


“좋아요. 어딨어요? 지금 갈게요.”


태원은 전화를 끊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구나. 지난 20년 보다 더 이상한 날이야.’



-다음에 계속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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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패러독스 3 24.09.12 14 1 13쪽
52 패러독스 2 24.09.10 13 1 12쪽
51 패러독스 1 24.09.09 15 1 12쪽
50 돌탑 3 +2 24.09.08 25 1 8쪽
49 돌탑 2 24.09.07 21 1 11쪽
48 돌탑 1 24.09.06 25 1 12쪽
47 운명의 수레바퀴 18 24.09.05 23 1 12쪽
46 운명의 수레바퀴 17 24.09.04 20 1 11쪽
45 운명의 수레바퀴 16 24.09.03 21 1 12쪽
44 운명의 수레바퀴 15 24.09.01 23 1 13쪽
43 운명의 수레바퀴 14 24.08.31 23 1 12쪽
42 운명의 수레바퀴 13 24.08.30 26 1 13쪽
41 운명의 수레바퀴 12 24.08.29 27 1 12쪽
40 운명의 수레바퀴 11 24.08.28 26 1 11쪽
39 운명의 수레바퀴 10 24.08.27 25 2 12쪽
38 운명의 수레바퀴 9 24.08.25 28 2 12쪽
37 운명의 수레바퀴 8 24.08.24 31 2 12쪽
36 운명의 수레바퀴 7 24.08.23 29 3 13쪽
35 운명의 수레바퀴 6 24.08.22 30 3 13쪽
» 운명의 수레바퀴 5 24.08.21 33 3 12쪽
33 운명의 수레바퀴 4 24.08.20 28 3 12쪽
32 운명의 수레바퀴 3 24.08.18 34 3 13쪽
31 운명의 수레바퀴 2 24.08.17 34 2 12쪽
30 운명의 수레바퀴 1 24.08.16 39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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