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드라마

새글

OXY
작품등록일 :
2024.07.14 09:54
최근연재일 :
2024.09.20 14:15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15,267
추천수 :
190
글자수 :
331,590

작성
24.07.14 22:15
조회
1,175
추천
10
글자
6쪽

프롤로그

DUMMY

조심스럽던 상대의 걸음걸이가 별안간 빨라진다.


“안단테(Andante, 조금 느리게)로 잘 가고 있었잖아. 이렇게 갑자기 비바체(Vivace, 빠르고 경쾌하게)로 뛰어 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이러면 리듬이 이어지질 않아.”


내겐 상당히 기분 좋은 상태가 꽤 오래 유지되고 있었다. 상대는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은가 보다. 지금까지 나름대로의 규칙이 자리 잡은 이 공간에 굳이 필요 없는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려 하고 있다. 이 질서를 깨고 싶은 것 같다. 대개의 급격한 변화는 반발을 부른다.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보지 않겠다. 이건가? 이대로는 안 된다?’


상대의 변화에 맞춰 나 역시 괜히 혼잣말을 중얼거리게 된다. 전조(轉調)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급작스럽다. 그동안 의도를 감추고 자리를 지키던 돌들이 이제는 진면목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 사이 참느라 힘들었겠네.’


상대에게는 뒤가 없다. 한순간 일제히 깃발을 반대로 들고 일어섰다. 기세만은 풍림화산(風林火山)이다.


군사를 움직일 때는 질풍처럼 날쌔게 하고, 나아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있고, 적을 치고 빼앗을 때는 불이 번지듯이 맹렬하게 하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킬 때는 산처럼 묵직하게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일본 전국시대 누구의 말로 각색되어 주로 유통되었지만 이건 원래 손자의 군쟁(軍爭)편에 나오는 아주 오래된 개념이다. 이 고색의 보드게임과 비교될 만큼 오래 묵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요체가 위정자들의 필수교양인 것처럼 학습되어졌으리라. 하지만 모를 일이다. 아직도 그 핵심은 면사로 얼굴을 가린 미녀처럼 아주 가끔 그 모습을 지나가듯 보여줄 뿐 정확한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준 적이 없다.


이 게임의 전략과 전술은 상대로 하여금 끊임없이 판단을 이어가게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 속에 갖은 의지를 숨긴다. 진실과 허(虛)를 구별해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게끔 만든다. 고수의 기술이란 진실 속에 허를 심는데 있다.


이제 상대는 자신의 깊고 멀리 본 수읽기를 자랑하듯 일시에 얼굴을 보였다. 그러나 원래 거짓이 많은 이 게임에서 노골적이라는 것은 대개 모략일 가능성이 크다. 마냥 눈에 보이는 대로 믿을 순 업다. 난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뭐지? 그냥 단순한 변덕? 찔러보기?’


소설에도 기승전결은 필요하고 삶에도 단계가 필요한 법이다. 그 축소판이라 불리는 이 게임에서도 그 룰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렇다고 하더군. 책에서··· 인생은 안단테(Andante, 느리게 걷는 정도의 빠르기)로 뚜벅뚜벅 가야한다고 하던데···’


상대의 움직임이 격해졌다고 같이 격하게 움직이면 불협화음만 만들어진다. 강에는 유로 대응한다.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이란 말이 왜 생겼겠는가! 과거 우리의 이 세계에서는 조화가 첫 번째 덕목이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현대바둑의 성향은 뒤로 갈수록 더 격렬해졌다.


이 보드게임의 역사를 돌아보면 어떤 이는 그 화(和)로서 한 시절을 풍미했고 그 안온함을 거부하는 것에서 자신의 기풍을 단련했던 풍운아도 있었다. 즉 고수에는 정해진 유형이 없다, 어떤 방식으로 고수가 될 것이냐는 모두에게 다 다른 문제다.


나의 길은 가랑비처럼 이다. 상대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데미지를 누적시킨다. 화(和)도 아니고 역(逆)도 아니다. 이 전략은 상대의 속도에 굳이 맟출 필요가 없다. 앙상블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소리를 위해 아다지오(Adagio, 느리고 침착하게)로 속도를 늦췄다,


‘이제 좀 들을만해졌네.’


내게는 누구나에게나 보이는 단순한 2차원의 바둑판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아니 들려온다. 난 한판의 게임에서 플레이어임과 동시에 반주자이고 연주자이다.


내게는 각각 울림이 다른 검고 휜 돌멩이 수백 개가 있다. 비슷한 모양새이지만 언제나 같은 듯 다른 소리가 반상에 어우러진다. 떼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여유롭게··· 장단을 맞춰가며 이어가는 연주가 흥겹다. 내가 유일하게 멀티태스킹을 하는 순간이다.


‘안단테, 아다지오··· 이제 조금 흐름을 바꿔서 안단티노(Andantino, 조금 느리게).’


그러나 안단테 보단 빨라야 한다. 곧 변화를 일으키던 상대의 걸음걸이가 어지러워졌다. 비보(Vivo, 힘차고 빠르게)를 거쳐 마무리는 그라베(Grave, 느리고 장엄하게)로 상대의 결단을 강요했다. 상대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달리기가 걸음으로··· 이제 그 걸음조차 멈춰졌다.


딴따라라 따라라라~


『백 대국자 소리바람님(9단)이 흑 대국자 커피밀크(9단(님께 175수 불계승 하셨습니다.』


고막을 흔들어버리는 조악한 승리의 빵빠레와 함께 간단한 메시지가 대국의 끝을 알렸다. 이겼다. 모든 것은 예정되어 있었다. 문제는 지금이 인터넷 바둑의 초창기여서 지원 프로그램의 인터페이스가 너무 구리다는 정도.


독주로 시작되었다. 중간에 어설픈 합주일망정 내용물이 풍성해지려 하다가 다시 독주로 돌아가 끝나버렸다. 상대의 리듬감은 형편없었다. 이런 상대에게는 흥이 좀 덜 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의 달콤함이란 중독적이다.


‘인사는 해야지.’


또박또박 타이핑을 해 나갔다.


『잘 두었습니다. 다음엔 두 점으로 해요.』


『이런 $$$XXX』


내가 무엇이라고 더 말하기도 전에 상대에게서 격렬한 반응이 왔다. 벼락같이 혼자 열을 내다 휙 나가 버렸다. 몹시 매너가 나쁜 사람이다.


‘세상엔 별별 사람이 다 있는 건데··· 내가 이해해야지.’


그래도 욕먹고 나니까 기분이 별로다. 로그 아웃을 하려는데 내 프로필이 얼핏 스쳐지나 갔다.


뉴스톤 전적 『소리바람(9단) 58승 0패』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 이런 곳은 처음이라 +2 24.07.14 826 5 12쪽
2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24.07.14 957 6 12쪽
» 프롤로그 24.07.14 1,176 10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