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찢는 북부인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새글

덧붙임
작품등록일 :
2024.07.14 13:28
최근연재일 :
2024.09.18 20:05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806,057
추천수 :
30,205
글자수 :
322,010
유료 전환 : 6시간 남음

작성
24.07.24 12:35
조회
28,458
추천
795
글자
12쪽

3

DUMMY

“그럼··· 의뢰는 받아들이는 걸로 알아도 되겠나?”


시장이 조심스럽게 묻자 샬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믿으라고. 그래서 뭘 어떻게 해주길 원하나? 정말로 경고만 하고 오길 바라는 건 아닐 텐데.”


남의 도시에서 같잖은 수작을 부린 영주에게 점잖은 경고만 하고 끝낼 생각이었다면 비싼 돈 주고 샬릭을 고용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시장이 원하는 건 말로만 하는 경고 따위가 아닐 것이다. 실제적인 위협으로 다시는 이 땅을 탐내지 못하도록 강렬한 두려움을 뼛속까지 새겨주길 원하리라.


그리고 그건 샬릭이 자신 있는 일이었다.


“알아서 잘하리라 믿겠네. 전문가잖나?”


시장에겐 보이지 않았을 테지만 샬릭은 투구 아래에서 웃고 있었다. 전문가라니, 재밌는 소리를 하는군.


“죽이진 말고?”


“내가 이 땅의 영주였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저쪽 도시의 영주를 죽여버린 뒤에 혼란에 빠진 도시를 날름 삼켜버리면 될 테니까. 하지만 나는 이 도시의 영주가 아니라 시장일세. 군대를 일으키려면 의회의 동의가 필요해. 그리고 의회 놈들은 시장이 전쟁에 미쳐 시민들을 사지로 내몬다고 비난할걸.”


선출직 영주라는 것도 이름만 거창하지, 실권은 별 대단치도 않군. 샬릭이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말했다.


“알겠다. 그럼 적당히 경고만 하고 돌아오도록 하지.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그걸로 대화가 끝났다는 듯 샬릭이 몸을 돌렸다. 당장이라도 이웃 도시의 영주에게 가려는 듯한 모습에 시장이 머뭇거리다 물었다.


“일 시킨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우습긴 한데, 무섭진 않나?”


떠나려던 샬릭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가 투구 아래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게 대체 뭔 어처구니없는 질문이냐?


“아니, 그러니까······ 어쨌건 영주를 상대하는 일 아닌가? 상대는 귀족이야. 만약 일이 잘못돼서 그가 자네에게 복수하려 들면? 아무리 강하더라도 개인이 집단을 이길 수는 없을 텐데, 그게 두렵진 않나? 매정한 말이지만 내가 자네의 신변을 책임져줄 수는 없네. 영주가 이번 일로 자네를 벌하려 들 수도 있어.”


정말로 자기가 일 시킨 주제에 할 말은 아니군. 샬릭은 이 남자가 왜 그냥 영주가 아니라 선출직 영주인지 대충 알 것만 같았다. 마음이 이리 약해서야.


샬릭이 말했다.


“걱정해주는 거야 고마운 일이지만 그럴 필요 없어. 왜인 줄 아나?”


“어째서지?”


“날 혼낼 수 있는 건 내 부모뿐인데, 그분들은 나 어릴 적에 벌써 돌아가셨거든. 그러니 이 땅의 누구도 날 벌할 수 없다.”


시장은 저 자신감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정신 나간 북부인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인가, 아니면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일까?


사실 어느 쪽도 아닐지도 모른다. 용 사냥꾼이라면 정말 그럴 만한 힘을 가졌을지도······.


“더 할 말 없으면 이만 가도 되나?”


샬릭의 목소리에 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자신감이 넘치는 듯하니 조심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네. 일 끝난 뒤에 보자고.”


“그럽시다. 그럼 난 일이 바빠서 이만.”


샬릭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줄곧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메이어스 경이 재빨리 물었다.


“안에서 뭔가 하진 않았겠지?”


“댁네 주인에게 손을 댔는지 묻는 건가? 북부의 전사는 남자 중의 남자고, 오직 진짜 남자만이 진정한 사랑을 안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도 눈이 있어.”


메이어스 경은 지금 이게 뭔 미친 소리인가 가만히 생각하다가 벌컥 화를 냈다.


“이런 미친놈. 내가 그딴 걸 물은 게 아니잖나? 난 네놈이 주인님에게 뭔가 불손하게 굴거나 해를 끼치진 않았냐고 묻는 거다!”


“아, 그런 거였나?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의심된다면 선출직 영주 양반한테 물어보라고.”


선출직 영주라니? 설마 시장을 그리 부르는 건가? 메이어스 경은 이 정신 나간 북부인과 대화하다간 자기가 먼저 쓰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용무는 다 마쳤나? 이제 이 도시를 떠나나? 제발 그래 줬으면 고맙겠군.”


“도시를 떠나는 건 맞는데, 영영 떠나는 건 아니야. 곧 돌아올 거거든.”


“어째서?”


“네 주인이 새로운 의뢰를 했으니까. 그 양반이 왜 로만을 죽였는지는 알고 있겠지?”


물론 알고 있다. 메이어스 경은 시장의 심복 중의 심복이니까. 그가 심각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설마 주인님께선······.”


“그래, 그 건방진 영주 놈에게 경고하길 원하더군. 정중한 경고 말고 아주 무례한 경고.”


그런 일이라면 북부인의 전문이다. 그들은 아주 무례하기 짝이 없으니까. 메이어스 경이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위험한 일을 맡았군. 조심하게.”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뭘. 그보다 내가 가야 할 곳에 대한 정보를 좀 얻을 수 있나? 내가 북부 출신이다 보니 이 근방의 지리는 좀 어두워서.”


“그러지. 자네가 가야 할 곳은 트리온이라는 곳일세. 여기서 말을 타고 이틀쯤 가면 되는데······.”


메이어스 경이 트리온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그곳의 위치가 어디인지, 영주의 이름이 무엇인지, 조심해야 할 게 뭐가 있는지 등등.


샬릭은 설명을 제대로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 고맙군. 그럼 난 바빠서 이만.”


메이어스 경은 바람처럼 사라지는 샬릭을 보고서 한숨을 내뱉었다. 저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까? 괜히 이 도시에 나쁜 영향만 미치는 게 아닐지······.


걱정스럽지만 주인이 결정한 일에 입을 댈 수는 없었다. 메이어스 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창문 너머를 쳐다봤다.


어느새 저택을 빠져나온 샬릭이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저놈은 말도 없이 그냥 걸어가나? 그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보고 있으니 그 속도가 놀랄 정도로 빨랐다.


분명 갑옷을 입은 채로 걷고 있는데 그게 맨몸으로 뛰는 것보다 더 빨랐다. 그냥 걷기만 해도 저 속도인데 만약 뛰면 얼마나 빠르다는 건가?


아무리 북부인이 날 때부터 전사라고 해도 저럴 수가 있나? 샬릭 외에도 북부인을 몇 번 만나본 적 있지만 말보다 빨리 달리는 놈은 본 적이 없는데.


“대체 저게 뭔······.”


메이어스 경이 당황한 얼굴로 눈을 몇 번 깜빡였을 때, 샬릭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건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 * *




샬릭은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달이 구름에 가린 데다 별까지 없어 빛이라고는 단 한 줌도 없었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기엔 별로지만 나쁜 일을 하기엔 딱 적당했다. 그리고 샬릭은 나쁜 짓을 하기 위해 지금까지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곯아떨어졌군. 그럼 가볼까.”


샬릭은 트리온의 성벽 아래에 있었다. 그는 이제부터 이 성벽을 넘어 성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성문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구태여 그때까지 기다리기 싫어서 하는 짓이었다.


고개를 들어 성벽 위를 쳐다보니 보초병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샬릭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곧 성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보통 성벽을 넘는다고 하면 위쪽에 줄을 걸어 붙잡고 올라가는 식이지만 샬릭은 그냥 무식하게 맨손으로 성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갑옷을 입고서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가능했다. 왜냐하면 용 사냥꾼이니까.


“후우······.”


저 아래에서부터 위험천만한 인물이 성벽을 기어 올라오고 있건만 성벽 위의 병사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기야 성벽을 그냥 기어서 올라오는 침입자가 있으리라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샬릭은 혼자 웃더니 부지런히 성벽을 올랐다. 트리온의 성벽은 그리 크지 않아서 넘는데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바닥을 기는 것처럼 성큼성큼 성벽을 타고 올라 금세 위쪽에 도착했다.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인기척이 느껴지면 반응하는 법이다. 병사 하나가 으음 소리를 내며 눈을 뜨자 샬릭의 손날이 그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병사가 쓰러지기 전에 몸을 받아든 샬릭이 조용히 그를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는 곧장 성내를 향해 훌쩍 뛰어내렸다.


갑옷을 입었으니 분명 착지할 때 쿵 소리가 나야 하지만 어째서인지 깃털이 떨어진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당연히 누군가 성안에 침입했다는 걸 눈치챈 사람도 없었다.


샬릭은 주변을 잠깐 둘러보다가 어둠 속에 숨어 영주궁을 향해 움직였다. 성벽을 넘었을 때처럼 영주궁 안에 숨어드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영주궁 안에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잠들어 있었고 순찰 중인 병사들 몇몇만이 돌아다닐 뿐이었다.


샬릭은 그들의 시야를 피해 간단히 영주의 침실까지 잠입했다. 당연하게도 침실 입구는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 은신에 자신 있다고 해도 입구를 지키는 병사들까지 무시하고 갈 수는 없는 법이다.


가능하다며 조용히 제압해야 한다. 샬릭은 건틀릿 낀 손을 가볍게 흔들다가 어둠 속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음? 너는······.”


저들끼리 잡담 중이던 병사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샬릭을 보고서 당황했다. 갑옷을 입은 걸 보니 기사인가? 하지만 저런 기사는 본 적이 없는데······.


샬릭이 웃었다. 투구 속에서 울린 웃음에 병사들은 그제야 저 남자가 침입자라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반응이 늦은 만큼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쭉 뻗어 나온 주먹이 병사 하나의 얼굴을 짓뭉갰고 그의 몸이 쓰러지기도 전에 또 다른 병사 하나가 발차기에 당해 헉 숨을 삼켰다.


두 명이 쓰러지고 나머지 병사 둘이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으나 샬릭의 주먹이 더 빨랐다. 명치를 얻어맞은 병사는 숨이 쉬어지지 않는지 켁켁 소리를 내며 쓰러졌고 다른 병사는 창을 내지르긴 했지만 샬릭의 왼손에 붙잡혔다.


단단한 나무를 다듬어 만든 창대가 나뭇가지 부러지듯 뚝 하고 힘없이 부러졌다. 병사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렸고 그 위로 주먹이 질주했다.


순식간에 병사 넷을 쓰러트린 샬릭이 주변을 둘러봤다. 조용히 쓰러트린다고 쓰러트렸지만 소리가 새어 나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누군가 소동을 눈치채고 찾아올지도 모르는 재빨리 일을 끝내야 했다.


“문이 잠겼군?”


침실의 문고리를 잡고 돌리니 덜컥 소리만 날 뿐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문이 잠겨 있어도 열고 들어갈 방법이 있었다.


샬릭이 문고리를 잡고 힘껏 비틀자 우지끈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으음?”


아무리 잠에 취해 있어도 문고리 부서지는 소리까지 못 들었을 리는 없다.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던 영주가 졸린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누구냐···? 급한 용무가 아니라면 내일 아침에······.”


영주는 어둠 속에서 뚜벅뚜벅 다가오는 남자를 발견했다. 갑옷 입은 기사? 하지만 저 갑옷은 내 영지의 것이 아닌데······. 그럼?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머리에 확 피가 돌았다.


“누, 누구냐! 누군데 감히 내 침실에 숨어든 게야!”


샬릭이 대충 답했다.


“안심해라, 이빨 요정이다.”


영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빨 요정? 머리맡에 젖니를 놔두고 자면 그걸 가져가고 대신 선물을 놔두고 간다는 그거?”


아니, 내 나이가 몇인데 이빨 요정 타령이지? 애초에 젖니 빠질 나이가 아닌데 대체 뭔? 게다가 뭔 놈의 이빨 요정이 갑옷 입고 찾아오나?


영주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난 젖니 빠진 게 없는데?”


“보면 알아. 내가 뽑아가면 돼.”


이건 이빨 요정이 아니라 그냥 이빨 강도 아닌가? 영주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용 찢는 북부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30 +33 24.08.20 11,983 511 12쪽
29 29 +18 24.08.19 12,673 483 13쪽
28 28 +39 24.08.18 12,763 537 12쪽
27 27 +36 24.08.17 13,202 525 13쪽
26 26 +38 24.08.16 13,437 571 13쪽
25 25 +34 24.08.15 13,769 558 12쪽
24 24 +22 24.08.14 14,471 509 13쪽
23 23 +44 24.08.13 15,127 624 12쪽
22 22 +34 24.08.12 15,286 612 12쪽
21 21 +26 24.08.11 15,346 559 12쪽
20 20 +26 24.08.10 15,605 612 14쪽
19 19 +20 24.08.09 15,734 582 12쪽
18 18 +20 24.08.08 16,318 516 12쪽
17 17 +18 24.08.07 16,509 573 12쪽
16 16 +15 24.08.06 16,479 563 13쪽
15 15 +20 24.08.05 17,016 537 12쪽
14 14 +19 24.08.04 17,481 552 11쪽
13 13 +17 24.08.03 19,254 557 12쪽
12 12 +22 24.08.02 19,090 671 12쪽
11 11 +22 24.08.01 18,988 673 12쪽
10 10 +14 24.07.31 19,195 625 12쪽
9 9 +20 24.07.30 19,894 695 15쪽
8 8 +25 24.07.29 20,726 687 13쪽
7 7 +24 24.07.28 21,925 748 15쪽
6 6 +7 24.07.27 23,922 641 12쪽
5 5 +27 24.07.26 24,697 755 12쪽
4 4 +26 24.07.25 25,032 773 13쪽
» 3 +28 24.07.24 28,459 795 12쪽
2 2 +25 24.07.23 32,618 895 14쪽
1 1 +30 24.07.23 44,721 91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