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방의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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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 산삼 키우기

DUMMY

#009


1시간 만에 비료를 전부 팔아치웠다.

비료를 파는 것보다 느지막이 온 사람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게 더 고역이었다.


“이장님이 10포대나 사가셨다고?!”

“하하···, 네.”

“얼마씩 주고 사가셨어?”

“포대당 7만 원씩 주셨어요.”

“뭐?!”


지각한 사람들이 기겁하며 눈빛을 교환했다.

박창덕이 얼마에 사 갔다더라 하는 얘길 들으면 대부분 저런 반응이었다.


박창덕의 검소하다는 건 나도 처음 알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전부 내어주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100원짜리 한 장 쓰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에게 존경받는 이유가 있구나.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날 바라봤다.


“다음 비료는 언제 들어와?”

“외국에서 오는 거라 일주일은 걸릴 거예요.”

“저···, 혹시 어디서 샀는지 알려줄 수 있나? 우리 아들도 외국에서 가끔 뭘 사더라고. 그때 부탁하면 될 것 같아서.”


예상하던 질문이다.

애써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게 판매용이 아니라 친구가 직접 만드는 거라서···.”

“어쩔 수 없네.”

“그럼 다음에 들어오면 우리 거 하나씩만 빼 줘.”

“예, 그럼요!”


사람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섰다.



< 9 >



풍작(豐作).


마을회관에서 몇 년 만에 나온 단어였다.

사람들의 얼굴은 회복 물약을 먹었을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밝아졌다.


비료를 판매한 날 저녁부터 비가 쏟아졌다.

그리고 비가 쏟아진 지 5일째 되는 날, 모든 식물이 흙을 뚫고 머리를 내밀었다.


양을 조절한다고 했음에도 비정상적인 속도였다.

덕분에 사람들은 기적을 마주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에 관한 말들도 많아졌다.

하늘이 돕는다느니, 신내림을 받았다느니···.

옆 동네에서는 나를 사기꾼 취급한다던데, 거기까지는 알 바 아니었다.


“현호! 오늘도 표정이 좋네!”

“현호야, 이것 좀 먹고 가!”

“현호야, 비료는 또 언제 들어와?”


동네에서는 내 이름이 끊이질 않았다.

방구석 백수가 마을의 영웅으로 거듭난 것이다.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집안 땅을 다 말아먹고 강제 귀환 당했을 때만 해도 인생이 끝난 줄 알았는데···.


사람도, 돈도 저절로 따라온다.

사는 게 이렇게 즐거운 거였구나.


이른 새벽부터 현관을 나섰다.


“엄마! 나 먼저 간다!”

“벌써?”


엄마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방에서 나왔다.


지금 시간이 오전 6시 10분.

출근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회복 물약과 비료를 만들려면 지금 출발해도 촉박하다.


“천천히 와. 한약방 청소 좀 하고 있을게.”


현관을 나와 자전거에 올랐다.

하루를 열흘처럼 사는데도 피곤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회복 물약 덕분일까, 아니면 회복된 마음 덕분일까.

어느 쪽이든 내 삶은 변했다.

그것도 완전히.


“그럼 가볼까!”


자전거에 올라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 * *


정신없는 오전이 지나갔다.


특제 요구르트를 나눠줄 때도 손님은 많았는데, 거기에 비료까지 더해지자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손님이 밀려왔다.


짜장면에 젓가락을 꽂고 멍하니 바라봤다.

물약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젓가락 들 힘조차 없었다.


“아르바이트라도 뽑아야 하나···.”


젓가락을 들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적힌 이름은 ‘이나연’이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오늘 재판 아니었나?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조제실로 들어갔다.


“어, 나연아.”


[ 사장님! 저 무죄판결 받았어요! ]


“무죄를 받았다고? 한약방 털고 어떻게···.”


나도 모르게 뱉다가 입을 다물었다.

말 그대로 순수한 의문이었는데 이나연에게는 다르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이어지는 설명에는 꽤 지독한 사연이 담겨있었다.

우선, 이나연에게 고수익 아르바이트라고 소개해줬던 친구 역시 그놈들과 한패였다.


애초에 세상 물정 모르는 이나연을 노리고 저지른 범행이었고, 변호사가 이걸 멋지게 입증해낸 모양이었다.


“잘됐네.”


[ 감사해요. 사장님 아니었으면 저는···. ]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축축하다.

짜장면이 불지만 않으면 달래줬을 텐데.


“나연아.”


[ 네, 사장님. ]


“울 시간에 홈페이지나 만들어. 재판 끝났다고 뒤통수치면 서울로 찾으러 갈 거니까.”


[ 설마요!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계세요! ]


“그래, 끊는다. 짜장면 불어서.”


전화를 끊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나연이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이제 내 차례다.

우선 쇼핑몰에서 팔 물건은 정해져 있었다.

회복 물약이 들어간 즙 종류와 비료.

대중적인 물건은 아닐지라도, 입소문만 탄다면 매출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한약방에 들어섰다.

짜장면 앞에 앉으려다가 문득 조제실을 바라봤다.


“사무실이 하나 있긴 해야 할 텐데···.”


인터넷 업무 정도야 조제실에서도 가능했지만, 문제는 역시나 물약이었다.


고작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파는 물약도 눈치 보면서 만드는 중이다.


쇼핑몰을 오픈하면 만들어야 하는 물약이 지금보다 몇 배는 많아질 터였다.


고민하는데 한약방 문이 열렸다.

시내에 다녀온 엄마가 짜장면을 바라봤다.


“짜장면 먹고 있었어?”

“응.”

“다 불었네. 얼른 먹고 밖에 내놔.”


끄덕이며 의자에 앉았다.

팅팅 불어터진 면을 떡처럼 베어먹으며 물었다.


“엄마, 혹시 숨겨둔 건물 있어?”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래.”

“없으면 말고.”


없는 줄 알면서 그냥 물어본 거였다.

그런 게 있었다 해도 빚 갚는 데 썼겠지.

진료실로 들어가려던 엄마가 마침 생각난 듯 가방에서 까만 봉투를 꺼냈다.


“참, 이장님이 이거 주셨어.”

"뭔데?"

“확인해 봐.”


엄마의 표정이 퍽 장난스럽다.

괜스럽게 불안한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봉투 안에는 신문지로 돌돌 말린 무언가가 있었다.


“···칼?”

“칼은 무슨!”


조심스레 신문지를 깠다.

한 겹, 또 한 겹, 그 아래로 또다시 한 겹···.

10겹이 넘는 신문지를 까다가 결국 성질을 냈다.


“양파야?! 까도 까도 계속 신문지만 나와!”

“하하, 얼른 까 봐. 거의 다 깠어.”

“대체 이게 뭐길래···.”


마지막 신문지를 끝으로 등장한 건 새끼손가락만 한 어느 식물의 뿌리였다.


“이게 뭐야?”

“산삼이래. 이장님이 산에 올라갔다가 캐셨대.”


산삼이라는 말에 놀라서 뿌리를 바라봤다.

크기로 보니 몇 년 안 된 산삼인 듯했지만, 그래도 팔면 가격이 꽤 나갈 터였다.


“이걸 왜 나한테 주신대? 진수도 있는데.”

“비료 덕에 감자밭에서 감자가 흘러넘친대. 동네 어른들도 다 너한테 주라고 하셨나 봐.”

“뭘 이런걸···.”

“물로 헹궈 먹어. 짜장면에 오이 대신 올려 먹던가.”


엄마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남기고는 진료실로 휙 들어갔다.


묵묵히 산삼을 바라봤다.

확실히 작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짜장면에 산삼을 넣어 먹는 건···.


툭-


나도 모르게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머릿속으로 너무도 무언가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키워드를 넣고 검색하자 가장 위에 내가 원하는 뉴스가 떡하니 나타났다.


[ 감정가 9800만 원···, 백운산 자락서 50년산 천종산삼 발견! ]


산삼은 말 그대로 산이 키운 삼(蔘)이다.

그걸 인간이 키우면 인삼이고, 인삼을 찌고 말리길 반복하면 우리가 아는 홍삼이 된다.


내 손에 있는 건 박창덕이 산에서 직접 캔 산삼이다.

출신은 확실하고 문제는 몇 년 묵지 않았다는 건데···.


“노화의 물약을 부으면 되잖아?”


* * *


오후 8시, 한약방 마당.


능숙하게 국자를 휘저었다.

이젠 주방장들 저리 가라 할 솜씨다.

한참을 끓이니 물약이 노란빛을 띠었고 이내 호박색으로 반짝거렸다.


물약을 식힌 뒤 커다란 통에 조심조심 옮겨 담았다.

셀 수도 없이 끓여왔지만, 아직도 노화의 물약을 다룰 때는 식은땀이 흐른다.


“후우!”


물약을 모두 옮겨 담고 가방에 넣었다.

산삼의 효능을 끌어내려면 흙도 중요할 터였다.

백두산까지는 아니겠지만 동네 뒷산도 영험하기로는 명성이 자자한 곳이었다.


가방을 메고 곧장 한약방을 떠났다.

늦은 시간이지만 혹시라도 사람을 마주칠까 일부러 험한 길만 골라서 올랐다.


“허억···, 허억!”


가쁜 숨이 목젖을 쳤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없었다.

50년 묵은 산삼의 감정가가 9800만 원이라고 했다.

물론 산삼마다 다르겠지만 비슷하게만 받아도 작업실 정도는 구할 수 있을 터였다.


야밤의 등산이 이어졌다.

힘들 때마다 물 대신 회복 물약을 마시면서 오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으아! 죽겠다!”


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흙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밤하늘을 바라봤다.

쿵쾅대는 심장 소리가 선선한 바람에 얹혔다.


어른들은 도대체 산을 왜 타는 걸까.

나이 먹으면 이해할 줄 알았는데 서른이 넘은 지금도 산 타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도 정상은 찍어서 다행이네.”


한라산의 백록담(白鹿潭).

백두산의 천지(天地).

설악산의 대청봉(大靑峰).


영험한 기운이 넘친다는 곳은 모두 정상에 있다.

그저 미신일 뿐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마음이 편하지.


누워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가방에 들어있는 산삼과 노화의 물약을 꺼내니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1억짜리 작업실이 될 것인가, 한 입 거리 영양식으로 남을 것인가···.


부드러운 흙에 산삼을 묻은 후 통을 기울였다.


쪼르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노란색 물약이 땅을 적셨다.


“어?!”


실처럼 얇던 산삼 줄기가 조금씩 두꺼워지는가 싶더니 녹색 이파리가 천천히 넓어졌다.


산삼은 잎이 아니라 뿌리다.

풀 쪽에는 워낙 젬병이라 잎만 보고는 뿌리가 얼마나 자랐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촤악-!


남은 물약을 전부 산삼 위에 쏟았다.

줄기와 이파리가 좀 더 커졌지만, 뿌리의 크기를 확인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더 부을 물약도 없다.


급히 비닐장갑과 목장갑을 겹쳐 꼈다.

잎을 건드리자 묻어있던 물약이 후두둑 떨어졌다.


조심스럽게 흙을 파낸 뒤 산삼을 뽑았다.


“···응?”


크기가 좀 이상한데.


뽑아 올린 산삼을 천천히 살폈다.

새끼손가락만 하던 산삼 뿌리에는 수백 개의 잔뿌리가 자라 있었으며, 크기도 얼굴만 하게 변해있었다.


변화가 너무 크니 외려 의심이 밀려왔다.


“···도라지 아니야?”


고민하다가 산삼을 가방에 넣었다.

어차피 아침 버스로 서울에 올라가 감정을 받아볼 생각이었다.


* * *


새벽 버스로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엄마한테는 장례식이 있다고 둘러대는 바람에 팔자에도 없는 정장을 입어야 했다.


오전 9시, 서울 서초구.


내가 찾아온 곳은 ‘산삼감정협회’였다.

이런 일에 협회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협회에는 나처럼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몇 명 있었고 대부분 등산복 차림이었다.


양복을 입고 앉아있으려니 괜히 민망한 기분이다.

멍하니 앉아 천장을 바라봤다.


“서울을 다시 오네···.”


두 번 다시 서울에는 발붙이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고작 1년 만에, 그것도 산삼 뿌리를 들고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무료한 시간이 길어졌다.

입이 찢어질 듯 하품하는데 직원이 걸어왔다.


“저···, 백현호 님?”


드디어 끝났나 싶어서 일어나니 직원이 난감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협회장님이 직접 뵙고 싶다고 하시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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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10 - 천만 원짜리 물약? +12 24.07.23 10,503 24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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