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 잡초 뽑기
#059
테이블에 셋이 나란히 둘러앉았다.
평소라면 인내심 있게 기다렸을 강하윤이 먼저 물었다.
“오늘 일은 왜 그런 거예요?”
“상인회는 잡초 같은 거예요. 하나씩 있을 때는 그냥 뽑아버리면 되는데···, 한 번 뿌리가 엉키기 시작하면 곡괭이를 가져와도 뽑기가 힘들죠.”
강하윤이 이해하지 못하고 최기현을 바라봤다.
물론 최기현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꺼번에 걷어내는 게 아니면 소용없다는 뜻이에요. 뿌리가 엉킨 잡초처럼 서로서로 잡아줄 테니까.”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노린 건 알겠어요.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것도 눈으로 봤고. 근데 겨우 저걸로 물러날까요? 매일 3천 병씩 나가는 출혈도 무시 못 하잖아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내일부터는 3천 병씩 나가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내가 그리는 그림이 고작 술집 사장 몇 명이 치고받는, 그런 것도 아니고요.”
“그럼요?”
“다수와 소수를 바꾸고 파벌을 만들 거예요.”
모호한 단어 선택에 강하윤이 의아한 표정을 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오늘 보면서 확신했어요. 어떤 인간은 혼자서 10짝을 넘게 챙기고, 또 어떤 인간은 1짝도 겨우 건졌죠. 아마 사람들도 알았을 거예요. 출발점이 공평하지 않다는 걸.”
강하윤을 보고 가볍게 미소 지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 59 >
박 씨가 쓰라린 입가를 어루만졌다.
오전에 호수공원에서 3H를 갖겠다고 싸우다 옆집 오 씨에게 귀싸대기를 맞은 참이었다.
“오인택 그 개새끼···.”
“형님이 먼저 주먹 내질렀잖아요.”
“뭐 임마?!”
옆에서 술을 따라주던 민 씨가 흠칫 눈을 피했다.
“그래서 오늘 몇 병이나 챙겼어요?”
“챙기긴 씨팔! 파리 날리는 거 보면 몰라?”
“왜 나한테 성질이래···.”
“너는 얼마나 챙겼어?”
“챙겼으면 형님이랑 이러고 있을까. 30분 늦게 갔다가 겨우 한 짝 건지나 했는데 그것도 난리 통에 깨졌어요.”
민 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술집의 양극화는 생각보다 훨씬 심했다.
3H를 들여온 술집들이 스케치북이며 커튼이며 동원해 현수막을 걸어 붙인 것이다.
박 씨가 흘끗 창밖을 바라봤다.
【 3H 소주 단독 입고! 안주 10% 세일! 】
현수막이 걸려 있는 술집은 오전에 한바탕 주먹다짐을 했던 오 씨의 가게였다.
한 병도 못 챙긴 건 저쪽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오 씨는 원가의 10배나 주고 옆 가게에서 3H를 사 온 참이었다.
10배나 주고 사 온 것도 기가 막힌데, 이젠 20배를 주고 사려해도 파는 사람이 없었다.
“저 씨팔새끼···.”
“진정해요, 형님. 내일 생각해야죠.”
“내일?”
“현호가 우리 마음 풀릴 때까지 온다고 했잖아요. 설마 하루하고 땡 치겠어요?”
“너 집에 남는 봉고 있지 않아?”
“있죠.”
“만수한테 그거 끌고 오라고 해. 나도 아들놈한테 트럭 끌고 오라고 할 테니까.”
“사람 써도 되나···.”
“안 되면 뭐 계속 손 빨 거야?!”
민 씨가 복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불과 보름 전만 해도 상황이 달랐다.
모두가 3H를 팔았을 때는 낙수효과로 입에 풀칠이라도 했는데, 이젠 상황이 바뀌어 물방울조차 떨어지지 않았다.
이대로면 술집 문 닫는 건 확정이다.
덮어놓고 몇 개월 진득하게 기다릴 만큼 소시민들의 삶은 윤택하지 않았으니까.
민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내일은 한몫 단단히 챙겨요!”
* * *
다음 날, 오전 10시.
호수공원에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다들 100m 달리기 선수처럼 비장하게 서서 내가 마이크를 쥐길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는 봉고차를, 누구는 트럭을, 또 누구는 수레를 끌고 왔으며, 어떤 인간은 용역을 데려오기도 했다.
“흠흠.”
마이크에 대고 가볍게 목소리를 냈다.
사람들의 몸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움찔 떨렸다.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어제와 같이 10시 정각부터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현호야!”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외곽 쪽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공 씨였고, 그는 오늘 트럭을 끌고 온 참이었다.
“사람 써도 되는 거야?!”
“뭐여, 씨팔! 나보고 얘기하는겨?”
박 씨가 흥분하며 팔을 걷어붙였다.
“하나 있는 아들 새끼 방구석에서 쌀 축내는 게 아까워서 데리고 왔다! 왜! 정 그러면 너도 딸내미 데리고 오던가!”
“저 개새끼가 말을 해도···!”
“아아, 진정하세요!”
놀란 척 마이크로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폭력은 확실한 분열의 증거이긴 했지만, 경찰이 들락날락하면 그것도 곤란했다.
무엇보다 폭력은 물량을 조절하는 데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좋은 마음으로 준비한 행사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한다면 안 되겠죠? 하여 어제처럼 폭력 사태가 있을 시에는 곧장 행사를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마이크를 내리고 흘끗 시계를 바라봤다.
“10시네요. 시작하겠···.”
“비켜!”
“길 막지 말라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그 이후부터는 어제와 같은 장면의 연속이었다.
강하윤은 적자를 걱정했지만, 당연히 100짝 전부를 내어 줄 생각 따윈 없다.
내가 미쳤다고 저런 놈들에게?
눈앞의 저 인간들 성격이 얼마나 더럽던가.
온갖 악의가 소용돌이치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폭력을 참을 위인들이 아니기도 했고, 혹시나 참는다 해도 몰아가면 그만이었다.
“씨발! 비키라고 했지!”
물론, 몰아갈 필요도 없어 보였지만.
시작 30분도 안 돼서 터미널 술집 오 씨가 참지 못하고 박 씨의 어깨를 밀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는 균형을 잡기 어렵다.
박 씨가 휘청거리더니 뒤로 우당탕 넘어졌다.
“그만!”
마이크게 대고 언성을 높였다.
움직이던 사람들이 일제히 멈추며 날 바라봤다.
일부러 넘어진 박 씨를 바라보면 사람들의 시선을 옮겼다.
“분위기가 너무 과열됐네요. 안전을 위해 행사는 여기서 종료하겠습니다.”
“아, 안 돼!”
“아직 3짝 밖에 못 챙겼다고!”
“현호야! 10분만 더하자, 응?”
“안 됩니다.”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대기하고 있던 양조장 직원들이 남은 술을 트럭에 다시 실었다.
사람들의 분노가 터질 듯이 한 곳을 향했다.
당연히 사람을 밀친 오 씨가 있는 곳이었다.
“그새를 못 참고 주먹질이야?!”
“오병탁 저 개새끼! 여기 너만 성깔 있어?!”
“그, 그게 아니라···.”
“너 때문에 하루 장사 공쳤잖아! 어쩔 거야?!”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오 씨도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분노 앞에서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패닉이 온 낯짝을 보고 있자니 통쾌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단상에 서서 사람들을 쭉 둘러봤다.
오늘로 확실해진 한 가지.
사람들끼리 동맹이 생겼다.
서너 명씩 짝지어 징검다리처럼 옮겨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룹을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치 양을 챙겼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개인으로 뛴 사람들이 한 짝도 못 건진 것에 비하면 대단한 성과였다.
“자 그럼···.”
흘끗 트럭을 바라봤다.
100짝의 술 중 30짝이 도로 트럭에 실렸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행사가 이어졌다.
이건 저들과 나 사이의 게임과도 같았다.
저들이 내게 이기는 방법은 ‘모두가 합동해서 술을 챙기고 공평하게 나누는 것’ 뿐이었지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간들이었으면 역겨운 짓을 하지도 않았겠지.
호수공원에 모인 사람들의 생각은 똑같았다.
‘확실한 편을 만들어서 내 몫만 챙긴다.’
덕분에 양상도 늘 비슷했다.
다들 무거운 술 짝을 옮기느라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고, 덕분에 호수공원에는 하루가 멀다고 고성이 이어졌다.
나 역시 적당한 시점에 행사를 끝내면 그만이었다.
적당한 시점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꼽자면 몇몇이 10짝 이상의 3H를 챙기는 시점이었다.
하루하루 장사 잘 되는 술집이 바뀌었다.
술집 사장들뿐 아니라 손님들끼리도 정보를 나눠 3H가 있는 가게로만 몰렸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어떤 꼴이 되었는가?
어제 하루만 2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던 김 씨는 오늘 2만 원도 팔지 못했다.
일주일 내내 파리만 날리던 최 씨는 운 좋게 3H를 가져오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재료들을 모두 털어버렸다.
당연히 이 과정조차도 내 개입이 있었다.
H 대학교 동아리에 ‘술값은 내가 낼 테니 지정해준 술집에서 마셔라’ 하고 주문한 것이다.
항상 지갑이 고달픈 대학생들이다.
공짜 술을 마다할 이유가 뭐겠는가?
덕분에 수많은 대학생이 3H를 들여온 술집에 모였고, 아마 사람들 눈에 비치는 양극화는 실제보다 훨씬 심했다.
3H를 들여놓았을 때의 성취감과 돈맛.
3H를 가져오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과 무력함
3H를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불안감.
3H를 가져오기 위한 동맹과 적대, 그리고 싸움.
이 모든 상황을 예상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얼추 예상한 결과인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3H를 나눠준 지 일주일 째.
공원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 설렘이 가득했다.
오늘은 무려 200짝이나 되는 양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한껏 기쁜 표정으로 허리를 숙였다.
“우선 이 자리를 빌려 사장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달 드립니다. 무료 나눔 행사는 오늘로 마무리될 예정이며, 내일부터는 3H와 함께하시기로 한 50개의 업체에만 납품될 예정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됐다.
50개의 업체가 함께 한다는 말은 당연히 거짓말이었지만, 저들이 알 리는 없다.
확실한 파트너가 아니면 정보 공유는 고사하고 인사조차 하지 않는 사이가 됐으니까.
시계를 흘끗 봤다.
“그럼 마지막 날 행사 시작하겠습니다.”
* * *
새벽 3시, 사거리 포차.
“마 사장, 우리도 그냥 술 받자. 본사에서 이미 허락도 했다면서 왜 고집이야?”
“고집은 지랄! 상인회장으로서 이기적인 새끼들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려고···.”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수십 개의 눈동자가 내게 꽂혔다.
매주 화요일 새벽에 모여서 작당 모의를 하고 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들.”
빙긋 웃자 사람들이 당황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마학수가 시뻘게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 멋대로 들어와?! 당장 꺼져!”
무시하며 마학수 쪽으로 걸어갔다.
모여있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길을 텄다.
툭-
테이블 위로 서류 봉투를 던졌다.
마학수의 험상궂은 눈이 나를 향했다.
“이게 뭔데?”
“함께 하기로 한 술집들 명단입니다. 마 사장님 덕분에 벌써 70곳이 넘었네요.”
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커졌다.
서산 시내에서 70곳의 술집이 3H를 납품받기로 했다면, 자신들이 설 자리는 없어지리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흘끗 사람들을 바라봤다.
“아직도 여기 계시는 분들은···, 영원히 3H와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해도 되겠죠?”
“아, 아니야!”
“지금 가려고 했어!”
사람들이 헐레벌떡 일어나 술집을 나갔다.
마학수가 놀라서 그들을 잡았지만, 이미 한쪽으로 흐르른 물결을 바꿀 수는 없었다.
넓은 술집이 금세 텅 비었다.
침묵하던 마학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았어! 나도 얌전히 계약서 쓸 테니까···.”
“제가 사장님이랑 계약서를 왜 써요?”
"···뭐라고?"
당황한 마학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일부터 여기 사거리 포차는···."
가볍게 가게를 둘러봤다.
“서산에서 유일하게 3H를 안 파는 곳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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