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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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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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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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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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에드와 엘레나가 바덴베르크주 미어덴에 도착한 것은 에르케가 사망한 지 석 달이 지났을 때였다.




말을 구입한 덕분에 시간을 줄일 수 있었지만 아기 때문에 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노르트하임에서 수차례 검문을 받았지만 에르케가 건네준 위조카르타 덕분에 모두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바덴부르크로 들어서자 이제 검문조차 없었다.




비록 도망자 신세였지만 둘은 동고동락을 하는 사이 사랑이 더욱 깊어졌다. 노르트하임주 경계를 넘으며 어느 정도 추격권에서 벗어났다는 판단이 들자 둘은 마치 여행하듯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 달 전 에드는 엘레나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했고, 둘은 부부가 됐다. 본처에게 두들겨 맞으며 쫓겨나는 바람에 이름조차 짓지 못했던 아기에게는 페터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에드는 페터를 자신의 친자식처럼 키울 것이라고 엘레나에게 굳게 약속했다. 에드와 엘레나는 서로 사랑을 점점 더 키워가며 미어덴에 도착했다.




에드는 마을 중심부에 있는 객잔에 여장을 풀었다. 에르케의 딸 안젤라가 맡겨진 수도원은 이곳에서 8킬로미터가량 떨어진 호케라는 곳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일단 객잔에서 하루를 묵은 뒤 다음날 찾아가기로 했다.




에드는 다음날 일찍 길을 나섰다. 페터가 아침부터 열이 나는 바람에 엘레나는 숙소에서 페터를 돌봐야 했다.




에드는 호케 마을까지는 어렵지 않게 왔으나 여기서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숲길이라 자칫 잘못하다가는 길을 잃을 수 있었다.




객잔 주인으로부터 수도원을 찾아가는 길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실제 찾아나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에드는 객잔 주인이 가르쳐 준 길을 떠올리며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그런데 에드가 걷던 산길은 얼마 지나자 않아 사라져버렸다. 길을 잘못 든 게 틀림없었다. 에드는 다시 길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쉽지 않았다.




얼마나 헤매고 다녔을까. 주변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산골짜기라 훨씬 빠르게 해가 지고 있어 서둘러 길을 찾지 않는다면 산속에 고립될 처지에 놓였다.




에드는 길잡이라도 한 명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이제 해는 거의 서산으로 기울어 어스름이 더욱 짙어졌다.




그때 에드는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을 발견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것처럼 기뻤다. 에드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불빛 쪽으로 향했다.




불빛이 비친 곳은 허름한 통나무집이었다. 주변은 이제 땅거미가 짙어져 주위 분간마저 쉽지 않았다.




에드는 조심스럽게 문 앞으로 다가가 노크했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끼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누구요?"




백발이 성성한 노파가 문을 열고 나왔다.




"죄송하지만 제가 길을 잃어 그런데 오늘 하루 여기서 묵을 수 있을까요?"




노파는 에드의 행색을 이리저리 살핀 후 문 옆으로 비켜서며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에드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허름한 외관과 달리 집 안은 식탁과 침대 등 몇 가지 가재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침실 쪽 벽에는 8각형의 도형이 그려진 문양이 있는 걸로 봐서 노파는 점성술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수도원을 찾으러 가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머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추하지만 하룻밤 자는데는 크게 불편하지 않을걸세."




'꼬로록.' 아침에 출발해 육포로 간단히 식사를 한 것 이외에는 저녁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한 탓에 배에서는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여기 남은 빵이 조금 있는데 이거라도 들게."




에드는 워낙 배가 고팠던 탓에 염치 불구하고 빵을 받아 들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수도원을 찾아가고 있었던 겐가? 자넨 수도사로 보이지 않는데."


에드는 수도원을 찾아가게 된 이유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에드바르트 키실링입니다."




"에드바르트?"




"그냥 에드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에드는 식사를 하며 노파와 엘레나와 만남 등 그동안 있었던 일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파는 에드의 예상대로 점성술사였다.




노파의 이름은 추르파였다. 몇년 전부터 바덴부르크 교구에서 점성술이나 흑마술을 일삼는 이단자들에 대한 색출을 강화한 이후 이곳에 터를 잡았다.




"어젯밤 꿈이 심상치 않더니 자네가 우리집에 찾아올 것이라는 걸 알려준 것이었군."




"네? 꿈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어젯밤 꿈 속에서 북쪽에서 날아 온 새 한 마리가 우리집으로 들어와 돌을 두고 갔네. 빛나는 돌이었는데 주변 태양과 달을 포함한 온갖 삼라만상이 주변으로 모여들어 경배했네."




"그게 무슨 뜻일까요?"




"나도 정확하게 해석은 되지 않아. 다만 그 꿈을 꾸고 난 후 저 멀리 북쪽에서 자네가 왔으니 자네와 관련있는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네."




에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접시를 탁자 한 켠으로 치우고 물을 마셨다.




"점성술사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해석하지는 못하네. 사실 점을 친다는 것은 인과관계를 파악해 향후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게야."




"그럼, 제가 이곳으로 오게 된 것도 인과관계에 따른 건가요?"




"자네가 엘레나를 만나게 된 것. 이는 그 이전 자네가 고향 트란베스트를 떠나 북쪽 국경을 가게 됐기 때문 아닌가? 그럼 왜 고향을 떠나게 됐을까? 이런 모든 일들은 다 원인에 따라 결과가 따라온 것이지 그냥 독립적으로 일어나지 않아."




"알듯말듯한 말이군요. 인과라는 것은 결국 앞을 예측한다기 보다는 결과에 맞춰 원인을 따져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요?"




"인과란 원인과 결과이지만 그 둘을 별개가 아니네. 또한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이 서로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원인과 결과는 결정돼 있는 게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것이네. 이 세상에 우연한 것은 없어. 결과가 곧 원인이고, 원인이 곧 결과지."




"너무 어려운 말이네요. 뭐 어제 꿈이 나한테 나쁜 게 아니라는 것만은 알겠어요. 하하."




"수도원으로 가서 안젤라라는 여자 아이를 찾는다고 했지?"




"네."




"만약 만나지 않고 내일 그냥 숙소로 돌아가 엘레나와 함께 트란베스트로 떠난다면 미래가 어떻게 바뀔까? 현재는 안젤라를 만나는 게 가장 큰 변수겠지. 이런 모든 게 다 변수로 작용해서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거야. 다만 인간은 현재만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고 시간이 지난 후 과거를 조합해 현재의 결과를 해석할 수 있을 뿐이지."




"난 내일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젤라를 만날테니 제 미래는 안젤라를 만난다는 변수가 작용하는 결과를 낳게 되겠네요."




"그래. 하지만 그게 향후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는 누구도 몰라."




"그럼 안젤라를 만난다는 걸 포함해서 저의 미래를 점쳐주실 수 있나요?"




"모르겠어. 내가 꿈에서 본 것만 해석한다면 너는 분명히 중요한 어떤 사람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




추르파가 갑자기 말끝을 흐리자 에드의 궁금증은 더 커졌다. 말투로 봐서는 뭔가 알고 있지만 말하기 껄끄러운 듯 했다.




"뭔지 말씀해주세요."




"너는 데스피에르토의 전설에 대해 알고 있니?"




"데스피에르토? 처음 듣는데요?"




"데스피에르토는 '깨어난 자'라는 뜻으로 이 땅에 처음 정착했던 사람들을 말하는 거란다."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 처음 이 땅에 정착한 그들은 신들의 세계를 떠나온 인간들이었단다. 그들은 하나 같이 명석했고 그중 일부는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




에드는 추르파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추르파의 말에 따르면 현재 성모정교에서 믿고 있는 신 에쉬르도 원래 데스피에르토가 섬기던 여러 신들 중 우두머리였던 이니에르였다.




데스피에르토들은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며 번성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이들은 점점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신들과 어떤 면을 비교해도 자신들이 손색없다고 생각하며 신들을 섬기는 일을 등한시했다.




원래 신들이 살던 실리르돔을 떠날 때 조건이 있었다. 아름다운 신전을 건축해 신전 중앙에 신들의 돌(Stone of Gods)를 두고 매달 보름달이 뜨는 날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능력에 심취한 데스피에르토들은 점점 제사를 지내는 일이 드물어졌다. 버려진 신전 곳곳에 거미줄로 가득찼고 바닥에는 잡초들이 무성해졌다.




마침내 신들은 분노했다. 이니에르는 데스피에르토가 건설한 도시들을 태고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공언했다.




땅은 지진으로 갈라지고 하늘에서는 폭풍이 몰아쳤다. 테스피에르토가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문명은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데스피에르토들은 당시 모두 죽은 것인가요?"




"모두 죽지는 않았지만 신들의 분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 데스피에르토들이 다시 모여 살지 못하도록 했어. 당시 사라진 신들의 돌을 찾아야 다시 모여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 이후 살아남은 데스피에르토들은 신들의 돌을 찾기 위해 대륙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단다."




이야기를 다 듣고난 에드는 재미는 있었지만 추르파가 왜 이 이야기를 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데스피에르토들이 신들의 땅을 떠나올 때 받았던 '신들의 돌'이 단순히 전설만이 아니란 거야.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물론 데스피에르토의 후예들은 아직도 그 돌을 찾고 있다고 해."




"그럼... 혹시... 꿈속에서 봤다는 그 돌이?"




"그래, 나도 실제로 신들의 돌을 본적이 없지만 그게 신들의 돌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단다. 전설에 따르면 신들의 돌은 오색 광채가 빛나고 영험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사람이 가지게 된다면 세상을 지배하는 자가 된다고 해."




"그런 돌을 제가 가지고 왔다는 건가요? 전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데?"




"내가 예지몽을 여러번 꿨지만 이번처럼 명확한 꿈은 처음이야. 너에겐 분명 뭔가가 있는 것 같아. 그 돌을 찾는 사람이 네가 될 지 아니면 너와 관계된 사람이 될 지..."




"그런데 이런 예지몽도 인과법칙과 관련이 있나요?"




"나 같은 사람들은 인과의 과정을 약간 옅보고 결과를 추론할 수 있는 능력 정도만 있어. 어젯밤 예지몽은 너와 연관된 인과의 과정 중에서 하나의 힌트를 준 게 아닐까 생각해."




추르파의 이야기를 듣고난 후 에드는 계속 머리에 생각이 맴돌아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신들의 돌이라니 무슨 뜬금없는 소리지? 가진 것 없고 도망자 신세에 불과한 내가?'




다음날 에드는 추르파가 차려준 아침을 간단하게 먹은 후 감사 인사와 함께 수도원으로 향했다. 추르파는 떠나는 에드에게 축원을 해주며 문밖까지 배웅했다.




추르파가 알려준 길을 따라 가다 보니 10분도 채 되지 않아 산 아래 수도원 건물이 눈에 띄었다. 아무리 어두웠어도 어젯밤 수도원 건물을 못 보고 그냥 지나쳤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브리클렌의 새하얀 눈밭에서도 웬만해서는 길을 잃은 적 없었는데... 무엇에 홀렸던 것일까?'




에드는 의구심을 가득 품은 채 수도원 정문 앞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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