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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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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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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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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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지난 3년간의 이상 기온으로 흉년이 계속되면서 트란베스트의 포도 작황은 예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올해도 7월까지 폭우가 계속되더니 8월부터는 기온이 뚝 떨어지는 날이 속출하면서 포도 열매가 제대로 익지 못했다.




포도농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에드는 한숨이 나왔다. 포도 작황이 나쁜 것에 더해 올해는 특히 여섯째 아들이 태어나면서 식구가 8명으로 늘었다는 게 에드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목돈을 쥘 수 있는 비젠도르프 후작 가문의 소집령이 뜸해진 것은 치명적이었다.




전쟁터를 찾아 용병 노릇이라도 해볼까 그쪽을 기웃거려 봤지만 가족 걱정에 곧 뜻을 접었다.




어제까지 서늘하던 날씨가 오늘따라 무척 더웠다. 포도송이가 잘 여물었는지 포도밭을 둘러보던 에드는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쯤에야 농기구를 챙겨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저녁놀이 짙어질 무렵이었다.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아내 엘레나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 옆에는 동료 발빅이 만면에 미소를 띄며 서 있었다.




"에드, 오랜만일세. 드디어 후작님의 소집령이 떨어졌네."




거의 1년반만에 부대 소집령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자 에드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지를 뻔 했다. 그러다 엘레나의 심각한 얼굴을 보고서는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하지만 한껏 상기된 얼굴은 숨길 수 없었다.




"여보 너무 걱정하지마. 그동안 파울러가 태어나고도 벌이가 없어 막막했었잖아. 내 실력 알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워 돈 많이 벌어올게."




엘레나로서는 지난 1년반 동안 수입이 신통찮아 살림 꾸리기가 빠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이 돈을 벌어온다니 다행이라며 최대한 좋게 생각하려 애썼다.




그렇지만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전쟁에 또 불려간다는 것은 피할 수만 있다면 언제나 피하고 싶었다.




"제발 몸조심 하세요."




"걱정마. 내가 언제 크게 다친 적이라도 있어? 올 때 전리품 많이 챙겨 올 테니 기대나 해."




부부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발빅은 헛기침을 하며 에드를 향해 눈을 씰룩였다.




"왜? 뭐 할 말이 있나 발빅?"




"어... 사실은 이번 소집령이 지급으로 떨어져서 소집령을 듣자마자 곧바로 글라츠로 집결해야 하네."




"지금 출발하자는 말인가?"




"옷가지만 챙겨서 바로 나오게. 이곳 홀츠에서 글라츠까지는 하루종일 가야하니 에크 경 집에서 일단 모이기로 했네. 거기서 하룻밤을 지샌 뒤 내일 새벽 일찍 출발하기로 했네."




발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엘레나는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 필요한 행장을 챙기기 시작했다. 편치 않은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엘레나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에드의 마음은 더 편치 않았다. 하지만 여덟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서의 무게가 더욱 무거웠기에 엘레나의 마음을 헤아릴 겨를이 없었다.




"발빅, 호튼족이 또 국경을 넘어온 것인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호튼족이 넘어온 것은 아니야. 거기도 지금 정신이 없잖아? 언뜻 들었는데 수도 벨라시타에서 뭔가 큰 일이 벌어진 모양이야. 자세한 건 글라츠로 가보면 알게 되겠지."




트란베스트의 서쪽 국경을 자주 침범하던 호튼족은 지난해 봄 포포비체 국왕이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사망한 뒤 4명의 아들 사이에서 왕위 계승전쟁이 벌어졌다. 4개로 쪼개진 채 합종연횡을 거듭하며 치열한 내전에 돌입한 호튼족은 관심을 바깥으로 돌릴만한 여유가 없었다.




"벨라시타에서 일이 벌어졌는데 왜 우리를 소집하는 거지? 그동안 본토에 대해선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자세히는 몰라. 하지만 일단 입에 풀칠을 할 수 있게 됐으니 다행 아닌가?"


에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 아니라고 하니 목숨을 걸어야 할 일도 없을 테고 돈은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여보, 애들은 다 어디에 있어?"




에드의 말에 뒷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있던 페터가 달려왔다.




"아버지, 저는 여기 있어요. 동생들은 지금 바깥에서 노느라 아직 집에 안 들어왔어요."




"해가 서산으로 기울었는데 빨리 들어와야지."




"제가 가서 데리고 올게요."




"아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라고 하니 이번 출장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구나. 그냥 놀게 내버려 두거라."




에드는 올해 스무살이 된 큰아들 페터가 듬직했다. 집안의 대소사는 이미 페터에게 다 맡길 수 있을 정도였다.




에드는 페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페터, 아버지가 없을 때는 누가 집안의 가장이지?"




"저예요 아버지."




"그럼 가장이 해야 할 일은 뭐지?"




"어머니와 동생들을 돌보는 일이에요."




"그래 잘 알고 있구나. 아버지는 오늘 곧바로 글라츠로 떠나야 해.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없는 동안 네가 이 집안의 가장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네 아버지, 걱정마세요. 저도 이제 스무살이에요. 아버지는 스무살 때 이미 노르트하임의 전장에서 적들을 무찔렀잖아요.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제가 어머니와 동생도 돌보지 못하겠어요?"




페터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에드는 마음이 든든했다. 한창 페터에게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 등에 대해 당부하고 있을 때 엘레나가 방에서 나와 짐을 에드에게 건넸다.




"여보, 내가 당신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엘레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동안의 이별도 아쉬웠는지 엘레나의 눈은 이미 눈물로 촉촉히 젖어 있었다.




"울지마. 내가 언제 당신과의 약속을 한 번이라도 어긴 적 있어? 전쟁이 난 것도 아니라고 하니 이번 일은 금방 끝날 것 같아."




엘레나는 어젯밤 꿈자리가 사나웠다는 생각에 뭔가 찝찝했다. 꿈 속에서 에드가 불기둥 속으로 걸어갔다. 엘레나는 위험하다고 소리치며 에드를 만류했지만 에드는 싱긋 미소만 띄운 채 불기둥 속으로 사라졌다.




괜히 꿈 이야기를 했다가 일 하러 가는 사람 마음만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아 엘레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에드는 엘레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이마에 가벼운 키스를 했다.




"이번에 돈 벌어오면 우리 셋째 레이나르트를 행정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어. 항상 좋은 일만 생각하자구."




울고 있는 엘레나를 보고 있자니 에드도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보게 에드, 이러다 밤새겠네. 어서 출발하자구."




발빅의 채근에 에드는 마지못해 엘레나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문밖으로 나섰다. 엘레나는 에드가 저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망부석처럼 서서 바라보았다.




이런 엘레나와 가족을 두고 떠나는 에드의 발걸음도 무거웠다.




엘레나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던 에드는 오랜만에 에크 경의 집을 방문하게 되자 약 20년 전 처음 홀츠로 왔을 때가 떠올랐다.












에드는 20년 전 프란디아 왕국의 북쪽 국경을 지키던 국경수비대에서 근무했다. 그런 에드가 정규군의 높은 녹봉을 뿌리치고 고향 트란베스트에서 귀족 가문 가병 노릇을 하게 된 이유는 아내 엘레나 때문이었다.




에드의 본명은 알프레드 보른하이트였다. 22년 전 알프레드는 열여덟 살의 나이로 군에 입대했다.




어릴 때부터 농사를 지으며 살 생각이 없었던 알프레드는 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오게 됐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출을 감행한 알프레드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고 정규군에 지원했다.




정규군이 높은 녹봉을 받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귀족 가문의 가병처럼 평소 생업에 종사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알프레드로서는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당시는 북방 크라우족의 움직임이 심상찮을 때여서 알프레드는 입대하자마자 곧바로 노르트하임주의 국경 인근 도시 브리클렌으로 배치받았다.




2년이 지났을 무렵 알프레드는 어느덧 크고 작은 여러 전투에 참전한 베테랑 군인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운명처럼 에드 앞에 엘레나가 나타났다.




알프레드의 주 임무는 북쪽 국경 너머 크라우족의 거주지인 보로비치 지역의 마을 수색이었다.




어느 날 알프레드는 동료 막스와 함께 마을을 수색하다 마을 어귀의 수풀 속에 아기를 감싸 안은 채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수많은 전투를 치러본 알프레드에게 길가의 시체 따위는 사실 대수롭지 않았다.




알프레드는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여자 품속의 아기 울음소리리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기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렸을 때 쓰러져 있던 여자도 꿈틀거리며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막스 선배, 아기가 살아있어요."




"그래, 알프레드. 엄마도 살아 있는 것 같아."




작전 중이라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갓난아기가 눈에 밟혔다. 알프레드는 동료 막스를 설득해 여자와 아이를 주둔지 막사로 옮기자고 했다.




"이봐 알프레드, 저 여인이 불쌍하긴 하지만 우리 부대 내에 데리고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선배, 아기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일단 데리고 가서 치료라도 받게 도와줘야죠."




막스도 사람 생명을 구하자는 요구를 끝까지 거부할 만큼 냉정하지는 않았다.




막사에 도착해 피를 닦아내자 아름다운 여성의 맨 얼굴이 드러났다.




전방에 근무하면서 여자를 만날 기회가 드물었던 탓이기도 했지만 여자의 외모는 지금까지 알프레드가 봤던 여자 중 가장 아름다웠다.




'이렇게 예쁜 여자도 있구나.'




알프레드는 여자의 얼굴을 보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이성에 대한 감정에 서툰 알프레드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며칠 치료를 받자 여자는 몸을 거동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고, 여자의 이름이 엘레나라는 것과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게 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농부의 딸이었던 엘레나는 열여섯이었던 2년 전 마을 촌장 아들 이반의 후처로 팔려왔다. 어릴 때부터 엘레나를 눈독들였던 이반은 엘레나가 열여섯이 되자마자 엘레나의 부모에게 결혼을 요구했다. 부모는 이미 아내를 두고 있는 40대 남자에게 어린 딸을 보낼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자 이반은 촌장인 아버지의 힘을 동원해 엘레나의 부모를 갖은 방법을 동원해 괴롭혔다. 엘레나의 부모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엘레나는 열여섯이 되고 맞은 첫 가을에 자기보다 서른 살이나 많은 이반의 후처가 됐다.




후처의 삶은 고단했다. 처음에는 이반의 사랑을 독차지 하면서 몸이라도 편했지만 본처가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본처의 질투 때문에 온갖 힘든 일을 도맡아 한 것은 물론 때때로 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이반이 엘레나를 감싸면 감쌀수록 본처의 구박은 그 강도가 더 심해졌다.




그러던 얼마 전 엘레나가 사내아이를 출산하면서 본처의 분노가 폭발했다.




본처 소생의 아들도 있었지만 이반의 사랑이 엘레나의 아들에게 집중되자 본처는 점점 불안해졌다. 집안의 모든 재산과 권리가 엘레나의 아들에게 넘어갈 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특히 마을 촌장인 이반의 아버지마저 엘레나의 아들을 감싸고 돌자 본처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본처는 엘레나를 눈 앞에서 치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반이 물건을 사기 위해 브리클렌으로 떠나 며칠 집안을 비웠을 때를 거사일로 잡았다.




본처는 하인들을 시켜 엘레나를 죽지 않을 정도로 매질하고 갓난아기와 함께 마을 어귀 수풀에 버리라고 지시했다.




바로 그자리에서 목숨을 끊지 않은 것은 나름 변명거리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본처가 후처를 폭행하는 것은 마을 관습에 따라 얼마든지 용인됐다.




그렇지만 엄연한 남편의 재산으로 취급되는 후처를 죽인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본처는 죽을 정도로 매질을 가한 후 거리에 버려 둔다면 자연스럽게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인들의 입에서도 죽이지는 않았다는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두들겨 맞은 엘레나는 아기와 함께 마을 어귀에 버려졌고 죽음 직전에 알프레드에게 발견됐던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야윈 몸으로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엘레나의 모습을 보자 알프레드는 안쓰러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너무 측은해 자기가 꼭 보호해주고 싶다는 감정이 솟구쳐올랐다. 이때만 해도 단순한 동정심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군에 입대해 전장을 누볐던 알프레드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낯설었다.


군 선배들을 따라 주둔지 인근 마을 창녀촌에서 매춘을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대상으로 여성을 바라본 적은 아직까지는 없었다.




"엘레나, 정말 고생이 많았군요. 여기서 당분간 머물면서 몸을 추스리세요."


아직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듯 엘레나는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엘레나에 대한 이야기는 삽시간에 부대 내에 퍼졌다. 소문은 브리클렌 주둔지 책임자 일리야 폰 드라구노프 중위 귀에도 들어갔다.




국경 밖 마을과 쓸데없는 마찰을 피하고 싶었던 드라구노프는 엘레나가 몸을 추스리는 대로 보로비치로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을 들은 알프레드는 드라구노프를 직접 찾아갔다.




"중위님, 엘레나를 이대로 돌려보낸다면 이번에는 분명히 살해당합니다. 다시 한 번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보로비치 마을 사람들 일이야. 국경 바깥에서 벌어진 일이라구. 마을 촌장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가만 있지 않을 거야."




"중위님, 제가 아무리 어려운 명령이라도 언제 토를 한 번이라도 단 적 있었습니까? 저는 절대 엘레나를 보로비치로 돌려보내지 않겠습니다."




상관의 명령이라면 불길 속이라도 뛰어들 것 같았던 알프레드의 항명에 드라구노프는 흠칫 놀랐다.




드라구노프는 귀족인 자신과 신분은 달랐지만 동갑인데다 전장에서 수차례 전공을 올린 알프레드에 대해 평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겠다는 건가? 이건 군법회의 감이야!"




군법회의까지 들먹이자 알프레드도 약간 당황했다. 그렇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알프레드는 엘레나가 처한 안타까운 상황을 자세히 드라구노프에게 전했다. 앞뒤 사정을 전해 들은 드라구노프는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알프레드, 엘레나의 사정은 잘 알겠네. 그렇더라도 일단 주둔지 안에 엘레나를 더 머물게 할 수는 없어. 마을에 머물만한 곳을 찾아봐서 그쪽으로 옮기도록 해."




드라구노프의 양보에 알프레드는 감격했다.




"감사합니다, 중위님."




"그리고 한 가지 약속해야 할 게 있는데 만약 보로비치 마을에서 엘레나를 돌려달라고 한다면 두 말 없이 돌려보낼 것을 약속하게."




이 정도만 해도 드라구노프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였다.




"알겠습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중위님."




"그동안 군인으로서 모범적인 생활을 해온 자네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니 약속은 꼭 지키게."




알프레드는 드라구노프에게 거수경례를 한 뒤 밖으로 나왔다.




알프레드는 며칠이 지나 엘레나가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마을 인근 여인숙으로 거처를 옮겼다.




여인숙 주인 세레나는 10여 년 전 벌어진 국경 분쟁에서 외동아들을 잃는 상처를 가진 여인이었다. 아들이 죽을 당시 알프레드의 나이 또래였는데 세레나는 붙임성 좋은 알프레드를 아들처럼 아꼈다. 그런 알프레드가 엘레나를 부탁하자 흔쾌히 들어줬다. 여인숙 일손이 부족했던 것도 한몫했다.




알프레드 덕분에 엘레나는 불편한 몸으로 여인숙에서 빨래와 청소 등 잡일을 하며 아기를 키울 수 있었다.




이후 알프레드는 틈만 나면 여인숙을 찾았다. 엘레나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병영 내 동료들은 알프레드에게 그렇게 좋으면 데리고 살라고 놀려댔다. 알프레드는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눈만 감으면 엘레나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녀를 하루라도 보지 않는다면 견딜 수 없었다. 알프레드는 서서히 엘레나를 향한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아갔다.




알프레드는 병영 밖에 숙소를 마련해 따로 살림을 차리려 했다. 하지만 일반 병사가 가족과 함께 살 수는 없다는 규칙 때문에 크게 실망했다.




본처에게 갖은 학대를 당하며 피폐해졌던 엘레나의 얼어붙은 마음은 알프레드의 지극정성 덕분에 서서히 녹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는 언제 이반이 들이닥칠지 몰라 불안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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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태동하는 잠룡 24.08.05 2 0 10쪽
92 태동하는 잠룡 24.08.05 5 0 11쪽
91 테동하는 잠룡 24.08.05 5 0 10쪽
90 태동하는 잠룡 24.08.05 3 0 10쪽
89 태동하는 잠룡 24.08.05 3 0 10쪽
88 태동하는 잠룡 24.08.05 3 0 10쪽
87 태동하는 잠룡 24.08.05 4 0 12쪽
86 태동하는 잠룡 24.08.05 5 0 14쪽
85 태동하는 잠룡 24.08.05 4 0 12쪽
84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11쪽
83 주교살인사건 24.08.04 4 0 11쪽
82 주교살인사건 24.08.04 7 0 11쪽
81 주교살인사건 24.08.04 6 0 9쪽
80 주교살인사건 24.08.04 3 0 10쪽
79 주교살인사건 24.08.04 3 0 11쪽
78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10쪽
77 주교살인사건 24.08.04 4 0 10쪽
76 주교살인사건 24.08.04 4 0 9쪽
75 주교살인사건 24.08.04 5 0 10쪽
74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0쪽
73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3 0 11쪽
72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1쪽
71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3 0 11쪽
70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0쪽
69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5 0 10쪽
68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4 0 10쪽
67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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