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도
다음날.
아침부터 헬기로 화물선에 실려 있는 자재들을 실어 날랐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천천히 내려. 천천히. 좀 더 오른쪽으로."
헬기에 매달린 그물이 바닥에 내려진다.
그물을 풀어 헤치고 쌓여 있던 물품들을 옮겼다.
천막을 늘리고, 발전기도 추가로 설치했다.
당장은 임시 시설을 꾸미지만, 정식으로 국가 승인을 받으려면 일단 사람이 정주해서 살 수 있다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바닥을 다질 필요가 있고.
시설이 확보되면 대량으로 콘크리트를 만든 다음에 바닥에 쏟아서 기반을 만들면 될 거 같다. 그리고 그 위에 그럴 듯하게 집을 지어야지.
섬의 크기가 꽤 크니 당장은 해수를 걸러 식수를 마련해야겠지만,
빗물이나 다른 식수 시스템을 갖추면 생활하는 데 문제는 없을 거다.
어차피 물 부족 국가라는 게 전 세계에 흔하디 흔한 거니까.
그렇게 영토를 확보하고,
이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동반되야 하는데 그건 서해를 출발한 군함이 도착한다면 해결되겠지.
그러면 남은 건...
가장 기본이 되는 국민인데.
고개를 돌려 둘러봤다.
선원들이 눈에 들어온다.
음. 2중 국적으로 머릿 수만 맞춰 볼까.
그래도 정식 국민이 있어야 뭔가 명분이 살 거 같은데.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선원 한 명이 달려와 이영제를 찾았다.
"차장님! 선장님이 빨리 뵙자고 하십니다."
*****
본부로 쓰는 천막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천막 안의 분위기가 묘하게 무겁게 느껴진다.
이영제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강대식이 손짓을 했다.
“차장님 이쪽으로 잠깐 와 보시겠어요.”
“네? 아 네. 무슨 일 있나요?”
“먼저 이것부터 보고 말씀하시죠.”
강대식이 가리킨 곳.
하드 케이스 째로 된 원격 조종간과 모니터가 보인다.
모니터에는 항공 영상으로 보이는 화면이 보였다.
낮게 나는 지 영상 속에 오두막집들이 또렷하고 가깝다.
“이게 무슨.”
말을 하려는 데 눈 앞의 영상을 보곤 말문이 막혔다.
오두막집 안에서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사람들을 끌고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끌고 나온 군인들이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운데 끌려 나온 사람들의 두려움에 떨고 있다.
검은 피부 사람들, 고화질의 카메라는 겁에 질린 그들의 표정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그들 가운데로 다가온 군인이 허리에 찬 권총 주머니에서 꺼낸 권총을 들어 올리고.
그리고.
탕!
순간 이영제 차장의 몸도 같이 움찔했다.
첫 총성을 시작으로, 바닥에 주저 앉은 사람들을 향해 군인들이 총을 난사했다.
탕!탕!탕!탕!탕!
타다다다다다당~!!
끌려 나온 어민들이 바닥에 서로를 뒤엉켜 앉은 채로 피떡이 되어 쓰러졌다.
피를 흘리고 죽은 사람들.
감지 못하고 죽은 시체의 하얀 눈동자가 그대로 영상에 떠 다닌다.
“저 군인들. 도대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겁니까? 이게.”
강대식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벌써 세 곳째입니다. 동쪽, 해안가 마을을 군인들이 헤집고 있습니다.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잡아가고 처형하고 있는 중입니다.”
“도대체 왜 요?”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 때문이겠죠.”
“네? 우리가 왜?”
“화풀이를 하는 겁니다. 우리한테 당한.”
“그런 말도 안 되는.”
강대식이 분노에 찬 얼굴로 말했다.
“지금 지옥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바로 저쪽 바다 건너에요.”
이영제의 눈이 강대식과 모니터 속 영상을 번갈아 봤다.
강대식이 물었다.
“차장님 본사에서 전결권을 받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미래그룹 자산이라면 뭐든 끌어다 쓸 수 있는."
"네? 네. 뭐 비슷하긴 한데..."
"그래서 말입니다. 본사에 업무 지원 좀 넣어주십시오.”
“네? 어떤 걸 지원을...”
“평화 유지군입니다.”
"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이영제를 보며 강대식이 다시 말했다.
"지금 저 건너편에 필요한 건. 군대입니다."
*****
그 날 저녁.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소리가 사방에 울리는 가운데.
막사에선 이영제 차장과 강대식 선장, 그리고 선원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반대입니다."
이영제 차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에 강대식이 반발했다.
“그 영상을 보고도 말씀입니까?”
해안에 위치한 반군은 닥치는 대로 학살하고, 여자와 아이들을 잡아갔다.
지금은 해안에 위치한 오래된 교회 건물에 가둬 두고 있는 중이다.
학살에 이어 어떤 일이 펼쳐질 지는 안 봐도 뻔하다.
이미 군인 몇 명이 여자들과 어린 여자애들을 끌고 가는 것까지 봤다.
불 같은 성격의 강대식은 구출조를 꾸려 당장 그들을 구하러 가려고 했고, 그 앞을 이영제 차장이 막았다.
“너무 위험합니다.”
강대식 역시 모르지 않았다.
공격과 방어는 천지 차이다.
당장 제대로 된 침투 훈련을 받은 사람 역시 본인 혼자 뿐이다.
나머지는 군을 전역한 아저씨거나,
조중명처럼 군 입대 대체복무로 해운회사에 입사한 몇 명 뿐이다.
하지만 강대식은 굽힐 생각이 없었다.
“안 되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겁니다.”
“휴. 그걸 누가 모릅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단순히 선장님 개인이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아니 이번에는 이 현장의 책임자로서 제가 반대합니다. 선장님과 선원들 역시 우리 미래그룹의 직원입니다. 직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결정은 할 수 없습니다.”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입니다. 회사의 이해관계를 따져서 정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책임지겠다는 겁니다. 선장님과 선원분들은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구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일의 책임은 제가 질 테니. 이건 전결권에 기인한 결정입니다. 일단은 지원요청을 해 뒀으니 도착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보시죠.”
"지원이 도대체 언제 도착합니까? 카메룬 공항도 폐쇄됐다면서요."
이영제의 말문이 막혔다.
아프리카대륙 전역에 몰아치고 있는 쿠데타의 바람은 겨우 겨우 버티던 카메룬마저 강타했다.
그 공항이 폐쇄됐고, 카메룬에서 용병을 모아 지원부대를 보내려고 했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카메룬에 상주하는 직원들의 안전마저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
카메룬에 대기 중이던 지원팀도 짐을 싸서 이미 나이지리아로 떠날 채미를 하느라 바빴다.
강대식이 단호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믿었던 카메룬도 마비됐고, 한국은 여기서 13000킬로미터 거립니다. 무슨 마법 같은 일을 또 벌이실 지 모르겠지만, 당장 내일 아침이면 또 몇 명이 죽어나갈 지 모르는 데 기다리라뇨?"
선원들 역시 표정이 어둡다.
영상을 접한 이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죄책감이 크게 일어났다.
하지만 이영제 역시 입술을 깨물었다.
밀릴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본사에서도 영상을 확인했고, 조치를 취한다고 했으니 조금만 더..."
이영제의 부탁에도 강대식의 눈빛은 불타 올랐다.
“만약 지시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거부라뇨. 미래해운 역시 그룹 전략기획실 산하입니다. 지시 거부는 내규상 징계사유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강대식이 입고 있던 유니폼을 벗어 탁자 위에 올려 놨다.
“이제부터 선장 강대식이 아니고 인간 강대식으로 행동할 겁니다.”
“선장님. 갑자기 이러시면.”
“내가 말입니다. 나름 잘 나가는 해군 장교를 때려치우고 미래해운에 입사한 이유가 뭔지 압니까?"
"네?"
"중국이 북한을 침공했을 때, 그리고 남해에서 일본과 대치했을 때 대한민국 해군은 그저 뒤로 물러나 있기 바빴습니다. 저는 군인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상부의 지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때 미래그룹이 나타난 겁니다.”
이영제 차장 역시 과거 일을 떠올렸다.
구창식 실장이 군대를 이끌고 휴전선을 넘어서 평양을 진격한다는 전화를 했을 때 눈 앞이 깜깜했다.
그리고 남해에서 벌어진 일본과 해전이 펼쳐질 때는 군대뿐만 아니라 전략기획실 역시 병참 지원을 하느라 퇴근도 못하고 밤잠을 설쳐가며 일을 했다.
두 번의 전쟁에서 모두 미래그룹이 승리했고,
지금의 미래그룹이 완성됐다.
“전 말입니다. 나쁜 놈들을 봤을 때 참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군을 빠져 나와 미래해운에 투신한 겁니다. 이런 상황을 봤을 때 최소한 미래그룹은 제 편을 들어줄 거라고 믿어서요.”
강대식의 눈동자가 더욱 불타 올랐다.
“이번 일로 일이 꼬이고, 아니 설마하니 저 해안가에서 놈들의 총에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겠습니다.”
“휴우~.”
이영제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강대식이 마지막 말을 했다.
“헬기와 장비는 잠깐 빌리는 것.. 아니 훔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차장님한테 피해 안 가게 할 테니. 그냥 눈이나 한번 감아 주십쇼.”
그 말을 끝으로 강대식이 막사를 나갔다.
본부로 쓰는 천막 주변으로 간단하게 만든 천막들이 둘러싸듯 설치되어 있다.
그 중 하나에 짐을 푼 이영제는 밤잠을 설쳤다.
바닥이 울퉁불퉁해서라거나,
파도 소리가 밤새 울려서가 아니다.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아까 본 영상 속 장면들이 눈 앞에 계속 해서 반복됐다.
죽어가는 부모를 보고 우는 아이들.
그리고 가축처럼 끌려가는 모습들이 아른거린다.
그리고 간간이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임신한 와이프와 엄마에게 매달려 장난을 치는 개구쟁이 아들놈들.
출장 온 아빠한테 고생한다고 인사하라는 와이프의 말에 개구진 놈들이 눈을 뒤집고 혀를 내밀며 장난을 쳤다.
그 모습을 떠 올리니 잠시 동안 우울했던 감정이 잊혀졌다.
하지만 이내 아이들과 저 해안가 교회에 감금되듯 끌려간 아이들의 모습이 교차한다.
휴우~
답답함에 저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시간은 속절 없이 흘러 어느 새 동틀 시간이 됐다.
그리고 바깥에서 다시 부산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강대식과 대원들이 출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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