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의 베타 테스터가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김일1
작품등록일 :
2024.07.22 00:06
최근연재일 :
2024.08.16 22:15
연재수 :
4 회
조회수 :
36
추천수 :
0
글자수 :
30,981

작성
24.08.13 21:47
조회
6
추천
0
글자
17쪽

첫번째 세계(2)

DUMMY

내가 어릴 때는 달걀귀신 이야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밤늦게 골목을 걸어가는데 알고 보니 앞에 가던 사람이 얼굴이 없는 달걀귀신이어서 얼굴을 빼앗긴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순수했던 시절에는 그 말을 믿고 항상 집에 일찍 돌아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되도 않는 개소리 때문에 인생 절반 손해 본 느낌이네.


달걀귀신. 대충 봤을 때는 다른 사람과 비슷해 보이지만 얼굴에 이목구비가 없는 귀신. 원래는 일본에 있던 놋페라보우(野箆坊)라는 귀신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유입되면서 원래 존재하는 달걀귀신과 섞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뭐, 원조가 어디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간을 따라 하는 얼굴 없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는 딱히 일본이나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대표적으로 슬렌더맨이라는 미국의 도시 전설 속 귀신이 있다. 기괴할 정도로 긴 팔과 다리에 정장을 입은 사람이 아이들을 납치해 간다는 내용인데, 그 귀신도 얼굴이 없는 남성으로 묘사된다. 별로 중요하진 않고 그저 그만큼 얼굴 없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꽤 흔한 소재라는 것이다. 아마 당연시하던 이목구비가 없는 모습이 사람의 본능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이라서 그런 거겠지.


나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고?


내가 지금 직접 겪고 있거든.


“...”


나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다.


분명 얼마 전까지는 텅텅 비어있던 사무실 책상에는 한 사람씩 차지해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지금 눈에 보이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내 왼쪽에 앉은 남성은 얼굴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반대편에 사람도, 앞에 보이는 사람들도 얼굴이 없었다. 아마 뒤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얼굴이 없겠지.


나는 땀이 흘렀다. 얼굴이 없는 사람이랑 같은 공간에 있는 이 상황 때문에?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헌터 때 만난 괴물들만 해도 저것보다 훨씬 혐오스러운 놈들로 가득했는데 겨우 얼굴이 없다고 무서울 리가.


그것보다 무서운 것은 이 얼굴 없는 괴물들의 수와 행동 때문이었다. 너무 많다. 지금 이 사무실에만 해도 달걀귀신들이 백 명은 넘을 것 같았다. 근데 이게 끝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여긴 겨우 방 하나고 문밖으로 나가면 복도가 이어져 있으니까. 이런 사무실이 수백 개라고 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다.


‘몰살은... 힘들다.’


괴물 한 개체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을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래도 인간에 굉장히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끽해봐야 성인 남성보다 조금 강한 수준이 아닐까?


하지만 수가 이러면 힘들다. 최소한 지금 내 상태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특수한 조건이 갖춰진다면 모를까.


그리고 또 이상한 점이 있다면 이 녀석들의 행동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녀석들의 복장, 그리고 사무실이라는 장소를 고려했을 때, 나는 이 녀석들이 일꾼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녀석들은 책상에 앉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멍하니 꺼져 있는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고 있다거나 아무것도 없는 책상 위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는 게 전부다.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이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녀석들이 마치 회사원을 따라 하려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컴퓨터로 문서 작업을 하는 척, 서류를 검토하는 척, 거래처와 전화를 하는 척. 그런데 하나 같이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컴퓨터는 켜져 있지 않다거나 서류는 애초에 없다. 입이 없으니 전화하는 척을 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런 어색한 점이 도리어 기괴하게 느껴졌다.


나는 문득 시선을 돌려 시계를 봤다.



[10:42]



어느새 녀석들이 방으로 들어오고 2시간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고개를 돌리거나 약간의 움직임 정도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그 외에 행동이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자리에서 일어나도 되는지, 옆에 괴물에게 말을 걸어도 되는지. 시도조차 안 해봤지만 왠지 하면 안 될 것 같다. 녀석 중에서도 책상에 앉아만 있지 일어나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애초에 고개도 오래 돌리고 있으면 갑자기 옆에 있던 녀석도 나를 쳐다보기 시작한다.


그때, 멀리서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 타다닥, 탁탁.


무언가를 두들기는 소리를 들은 나는 그쪽을 슬쩍 쳐다봤다. 대충 보니 아까 복도 말고 다른 문에서 나온 여자 자리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나는 그녀가 뭘 하고 있는지 추측했다. 이 소리는 분명 키보드 치는 소리 같은데, 지금 컴퓨터를 쓸 수 있는 건가? 아니, 컴퓨터가 작동은 해?


궁금해진 나는 순간 컴퓨터를 켜볼까 고민했다. 컴퓨터 전원 버튼이 있는 본체는 책상 아래에 있으니 몸을 숙일 필요가 있었다.


나는 몸을 슬쩍 움직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녀석이 바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바로 다시 자세를 돌이켰다. 잠시 나를 빤히 보던 녀석은 이내 고개를 돌려 다시 본체 모니터를 빤히 바라봤다.


“...”


씨발.


나는 속으로 욕을 뱉었다. 가능하면 아예 면전에 욕을 처박고 싶은데 조심스러웠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쳐다보는 녀석이다. 소리를 내면 바로 본색을 드러낼지 모른다.


근데 저 여자는 어떻게 컴퓨터 전원을 켠 거야? 궁금했지만 지금 당장에 물어볼 수는 없겠지.


조금만 기다리자. 여기가 회사 컨셉이라면 점심시간 정도는 있겠지. 그때 가서 물어보면 된다.


— 꼬르륵


나는 순간 배에서 난 소리에 놀라서 주변을 봤다. 다행히 녀석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휴, 좆되는 줄 알았네.


빨리 시간이 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시간을 유유히 지나갔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11:52]



어느덧 12시가 거의 되기 직전이 되었다. 몇몇 회사는 이 정도에도 점심을 먹으러 가던데 녀석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음, 조금만 더 기다리지, 뭐.



[12:45]



어느덧 1시간 정도가 지났지만, 녀석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조금 늦게 시작하나 보다.



[14:13]



그리고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나는 절망했다.


씨발, 점심시간도 없냐?


이젠 배에서 꼬르륵 소리도 나지 않는다. 배고픔이 느껴지자 나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 회사가 뭘 하는지는 몰라도 웬만한 좆소기업만도 못한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이것저것 생각하다 더는 생각할 만한 거리가 없자 그냥 멍하니 앞만 쳐다봤다.


자는 건 안 된다. 이 새끼들은 엎드리려는 기색이 있으면 바로 나를 쳐다봤으니까.


그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이 계속되던 와중에 갑자기 옆에 있는 녀석이 일어났다.


— 드르륵


나는 깜짝 놀라 옆을 쳐다봤다. 다른 자리에 앉은 녀석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의자를 책상 밑에 집어넣고는 이동하기 시작했다. 모두 같은 타이밍에 같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까지 하다.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18:31]



아, 퇴근하긴 하는구나?


인제 보니 대충 알겠다. 녀석들의 출근 시간은 8시 51분. 그리고 퇴근 시간은 저녁 6시 31분인가 보다.


어느덧 녀석들이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바깥쪽 복도에서 두두두거리는 진동 소리가 들린다. 역시 바깥에도 이런 사무실이 있고, 출근 시간이 되면 그곳에 있는 책상에 저런 괴물들이 앉는 모양이다.


나는 드디어 한시름 놓았다. 아무래도 어찌어찌 무사히 넘어간 듯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더 지치는 느낌이다. 뭔가 정신적 피로감이 쌓인 것 같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서 몸이 뻐근하다. 기지개를 켜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다가온 것이 보였다.


확인해보니 아침에 보았던 그 여자였다.


“무사히 넘어간 모양이네요.”


“예, 뭐... 덕분에요.”


그녀는 그런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남은 내가 흡족한 모양이다. 딱히 뭔가 한 것은 없지만, 간혹 눈치 좆 박은 애들이 괜한 짓 하다 잘못되는 경우도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어쨌든, 아침에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통성명도 못 했네요. 제 소개를 할게요. 저는 하유나라고 해요.”


“에, 저는 이시련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자기 이름을 말하고 나도 적당히 이름을 밝혔다. 뭐, 굳이 구라칠 필요는 없겠지.


“시현이요?”


“시련. 고난과 시련할 때 그 시련 맞습니다. 아빠가 지었어요.”


“아, 네... 독특한 이름이네요.”


“자주 듣습니다.”


이런 상황은 익숙했다. 안 그래도 여자 같은 이름인데 심지어 사람들이 흔히 아는 시련이랑 뜻이 똑같으니 신기하긴 하겠지.


어릴 때는 이름 때문에 놀림 받기도 했다. 무슨 유명한 RPG 게임 보고 시련을 깨야 한다고 나한테 덤비는 머저리 같은 놈들이 한, 둘이 아니었으니. 그때마다 역으로 시련의 무서움을 가르쳐줬는데.


“아, 배고프시죠? 우선 뭐 좀 먹죠.”


“그게 좋겠네요.”


나는 하유나의 말에 바로 대답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팠던 참이었다. 이곳에 오고 10시간이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까. 심지어 지구에서도 죽기 직전에 뭘 먹지 못했으니 음식이 너무 고팠다.


하유나는 나를 데리고 아침에 나왔던 방으로 안내했다. 그 방으로 따라 들어가니 그곳에 과자나 커피 등, 먹을 것들이 보였다.


나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미친, 이게 얼마 만에 음식이냐?


하유나가 내게 말했다.


“탕비실이에요. 저희는 여기서 배고픔을 해결해요. 뭐, 기껏해야 과자나 커피 정도밖에 없어서 조금 그렇지만, 아예 아무것도 못 먹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내 입장에서는 과자도 감지덕지했다.


지구에서는 먹을 게 하도 없어서 가죽이라도 뜯어 먹어야 했다. 벌레? 그런 영양가 넘치는 음식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지나가는 바퀴벌레만 봐도 군침을 흘리게 된 것을 깨달았지만, 어떡하겠나?


나는 바로 과자 하나를 들었다. 붉은 포장지에 감싸인 정이 넘칠 것 같은 과자였다. 나는 포장지를 뜯고 바로 한입 물었다.


“씨발...”


존나 맛있다. 순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도대체 얼마만의 당분이냐.


나는 정신없이 과자를 먹었다. 순식간에 과자 봉지가 쌓였다.


“어... 많이 배고프셨군요?”


하유나가 말했지만 나는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먹을 건 일단 입에 넣고 본다. 생존의 제1 법칙이다.


과자를 도대체 얼마나 먹었을까? 먹을 게 목 끝까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을 때, 나는 정신을 차렸다. 먹는 것을 멈추고 나서야 나는 상황을 인지했다.


탕비실에 상당히 쌓여있던 과자를 모두 먹어 치웠다. 덕분에 하유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듯 보였다.


나는 그제야 하유나를 보며 사과했다.


“아, 그, 유나 씨. 죄송합니다.”


“아뇨, 뭐. 괜찮아요. 탕비실은 여기 말고도 많으니까요.”


“근데, 이러면 내일 먹을 것이...”


“아, 탕비실은 하루가 지나면 다시 채워져요. 정확히는 출근 시간이 지나고 탕비실에 아무것도 없으면 채워지는데, 어쨌든 식량 자체는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씨발, 천국이냐?


하유나의 말을 들은 나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먹을 걸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내가 시스템에 대해 오해했다. 여긴 천국이다.


나는 진심으로 여기서 탈출하지 말고 영원히 살까 고민했다. 밖에 나가는 것보다 여기서 평생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매일 9시간 정도 가만히 컴퓨터만 보면서 지내기만 하면 먹을 걸 주는데, 굳이 탈출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달걀귀신들도 얼굴이 없다 뿐이지 그 외에는 사람과 똑같았다. 의외로 나쁘지 않은 녀석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고민하는 와중에 하유나가 말을 걸어왔다.


“시련 씨, 다 먹었으면 이동하죠. 만날 사람이 있어요.”


“응? 다른 사람도 있나요?”


“물론이죠. 여기가 더럽게 넓어서 가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하는데, 시간은 충분하니까요. 아, 다른 사람 만나는 건 괜찮으시죠?”


나는 하유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나는 이곳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하유나나 다른 생존자들의 정보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혼자는 생존에 상당히 불리하다. 분업의 효율은 상당하니까. 게다가 정신적인 문제도 일어날 수 있으니 아무리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웬만하면 다른 사람과 지낼 수 있으면 같이 지내는 것이 좋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출발하려는 타이밍에 갑자기 불이 꺼졌다.


“...뭐죠?”


“아, 여기는 7시가 되면 전기가 끊겨요. 수도는 되는 것 같은데, 불도 안 켜지고 컴퓨터도 못 해요. 아, 시련 씨는 컴퓨터 되는 거 아시나요?”


“아뇨, 근데 컴퓨터가 된다고요?”


“네, 놀랍게도 서버실 같은 곳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다고 해도 구색만 맞춘 수준이라 OS 같은 건 없긴 한데, 그것도 다른 생존자들이 만들어서 컴퓨터만 켜면 이용하실 수는 있을 거예요.”


오, 지리네?


나는 상당히 놀랐다. 이러면 이곳에서 탈출하기도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 않은데?


근데 그러면 음식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냥 탈출하지 말까?


그러다 어둡던 방이 급격히 밝아졌다.


“그건...?”


“손전등이에요. 가끔 이런 물품도 발견돼요. 자, 가요. 3층에서 생존자랑 합류하고 2층 파밍까지 하려면 시간이 없어요.”


“네.”


나는 하유나를 따라서 이동했다. 복도로 나왔는데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얼굴 없는 괴물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하유나는 이동하면서 계속 무언가를 확인했다. 슬쩍 보니 종이 같은 것에 무언가 그려진 것을 보아 지도로 보인다. 지도까지 만들었다고?


하도 시스템이 한 말 때문에 살짝 걱정했었는데 지도를 만들고 돌아다니거나 하는 것을 보면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 나한테 맡긴 건가?


하유나는 가다가 간간이 멈춰서 주변을 뒤졌다. 책상 서랍이나, 캐비닛, 혹은 소화기 밑 같은 곳. 이따금 연필이나 비닐봉지 같은 것이 나오면 챙긴다. 중간에 탕비실에 들려 과자를 몇 개 챙기기도 했다.


이게 파밍인가 보다. 아마도 저 지도에 물건이 나오는 위치 같은 게 있는 거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계속 이동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길이 굉장히 복잡하다는 것이다. 구조가 상당히 기형적이다. 일반적으로 건축하게 된다면 복잡하더라도 나름의 규칙성이 있다. 복도에 문이 있고 그를 열고 들어가면 방이 나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곳은 그런 규칙성이 거의 없었다. 사무실의 형태도 다 다르고, 어떤 건 복도랑 연결되어 있는가 하면, 어떤 건 직진으로 가도 될 길을 굳이 빙글빙글 돌게 했다. 복도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복도가 나오는 등, 하여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걸어갔을까? 조용히 길만 가면서 심심했는지 하유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시련 씨는 침착하시네요.”


뜬금없이 그렇게 말을 하니 나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네? 왜요?”


“어, 그러니까, 별로 안 놀라시잖아요? 저는 여기 처음 왔을 때 엄청나게 놀랐어요. 회사에서 야근하다 깜빡 졸았는데 갑자기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일어났더니 여기에 와있었어요. 다행히 저는 다른 생존자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어떻게 지금까지 버텼는데. 지금도 어느 정도 적응은 했는데, 익숙해지지는 않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특히 노맨들은 슬쩍 보면 꺼림칙해서 소름이 돋더라고요.”


“노맨이요?”


“아, 그 얼굴 없는 사람들 있죠? 저희는 노맨이라고 불러요. 영어로 부정의 의미를 가진 no에, 사람을 뜻하는 man을 붙여서 노맨이에요. 제가 이름 지은 건 아니고 그렇게 불러서 따라 부르고는 있는데, 사람이 아닌 것 같긴 해서 제법 어울리는 말인 거 같긴 해요.”


“그러고 보니, 그 녀석들은 도대체 뭐 하는 놈들입니까? 보니까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던데.”


“그건, 아, 거의 다 왔네요. 우선 가죠. 다른 분들한테 물어보면 다 말해줄 거예요.”


하유나는 그렇게 말하며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불빛 몇 개가 보이고 있었다.


‘사람인가...’


나는 조금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 만인지.


선천적으로 내향적인 나지만 무려 2년가량 많은 사람을 상대해본 적이 없으니 조금 긴장이 되기도 했다. 막연한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기대되기도 했다.


“가요.”


“...네.”


내게 말하고 하유나는 불빛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이제 진짜 시작이다.


새로운 세계에서의 삶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삶을 받은 거니까 열심히 해보자.


나는 하유나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세계의 베타 테스터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 첫번째 세계(3) 24.08.16 5 0 18쪽
» 첫번째 세계(2) 24.08.13 7 0 17쪽
2 첫번째 세계(1) 24.08.11 11 0 15쪽
1 지구, 서비스 종료합니다 24.08.10 14 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