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아들이 인조를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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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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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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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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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 (2)

DUMMY

홍타이지의 환영, 그리고 그의 심기를 건드릴 위기를 감수하며 헌책하는 독대까지 마치고 나니 때는 벌써 해가 떨어진 지도 한참이었다.

이에 나는 이 늦은 시각에 심양관 인원을 번다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내 맞이는 내일로 미루라 명한 뒤 침소로 들었다.


“우리 원손이 이제 말을 제법 그럴듯하게 하더이다. 처음엔 아비를 애타게 찾으면서도 정작 알아보지 못하고 울음만 터뜨리더니, 떠나올 적엔 또 아비와 떨어지는 게 서러워 얼마나 울던지. 빈궁이 함께 보았다면 애간장이 다 녹아버렸을 것이오.”


그리고 이어진 건 당연하게도 나완 달리 자식 얼굴 한 번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한 빈궁에게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었다.


“또 우리 군주는 얼마나 원숙해졌던지, 2년 새 예의를 제법 익혀 대하는 것이 도리어 서운할 지경이었소. 몇 년만 더 지나면 시집을 보내야 할 정도라, 부모도 없이 경사 맞을 일이 없게 하자면 서둘러 돌아가야 할 터. 내 꼭 그리해 보리다.”


우리 장녀인 군주에게 그 몇 년 뒤에 신랑감 알아보는 일은 없다는 건 슬프게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빈궁에게 그런 소리를 할 수는 없고, 또 내가 이렇듯 돌아왔으니 사람 일은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내 직접 동궁에 들인 운영이에게 어찌 살필지도 한참 일러주었으니, 그래도 어미 얼굴 볼 때까지는 기다려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후대에 추측하기로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태생의 허약한 체질로 생긴 당뇨, 거기에 타지에서 얻은 전염병이 겹친 것이 사인으로 여겨지고 있으니까.


물론 내 사인을 두고 인조의 독살 같은 것을 의심하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굳이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생명이 위독할 지경에 이르긴 하였다.


그러니 당장 내가 노력할 일은 식습관과 생활방식을 잘 관리하는 것.

그리해서 꼭···.


“저하.”


내가 보고 느낀 것 가운데 하나라도 빠뜨리는 것이 없도록 쉴 새 없이 떠들고, 또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는 와중이었다.

빈궁은 날 나직이 부르며 조심스럽게 한 손을 들어 내 뺨을 어루만졌다.


“저하께서 조선 사람들에게, 또 부왕께 겪으신 바는 없습니까?”


나? 나야 뭐···.


“말씀하시어요. 심양관 모두가 일이 쉽지 않으리라 여기며 저하께서 조선에서 겪으실 일과 복귀하신 후의 고초를 근심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어이 일을 이루셨으니, 결코 사람들이 쉬이 생각하는 정도의 말이나 오갔을 리가 없나이다.”


아, 사람이 너무 총명해도 문제인가.

빈궁의 말은, 그리고 그 눈빛은 내가 어떤 고통 속에 있었을지 이미 훤히 보고 있는 듯하였다.


“그러니 아이들 이야기는 그쯤으로 족하옵니다. 이 어미 없이도 무탈하게 지내고 있음을 알았고, 또 후에 못다 한 모정을 다할 길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사오니. 저하께서 그리해 주겠다 하시지 않았나이까?”


“그렇소.”


“하여 지금 신첩에게 중한 것은 오직 저하께서 감당하셨을 말들과 시선들뿐이옵니다. 그로 인한 생채기는 아랫사람 그 누구에게도 차마 드러내실 수 없을 것인데, 신첩이 아니면 또 누가 감당하겠나이까?”


생채기라.

내게 그런 게 생겼던가?


설사 그렇다고 해도 내가 어찌 자식 그리는 마음 삼키고 있었을 빈궁에게 약한 소리, 또는 푸념 따위나 주워섬기랴.

이는 내 생각에 너무 지나친 처사였다.


하지만 빈궁의 뜻이 너무나도 확고하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한양에서 있었던 대강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군사를 내어주면 내 장차 반드시 죽겠다 하였소. 부왕께서 명과 교통하실 길을 은밀히 열어드리고, 내어주신 군사는 장차 청이 휘청일 적에 청주의 심장을 꿰뚫는 일에 쓰겠다 하였지.”


“하온데 전하께서는···.”


“의심하더이다. 죽으려 하지 않을까 봐. 혹, 살아 돌아올까 봐.”


내 친부의 인성은 그리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미 각오하였고, 또 그렇기에 그를 겁박하고 속이는 일이 오히려 개운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슬며시 피어오르는 이 감정은 또 무엇인가?

빈궁의 말에 천천히 털어놓자니, 내 속에 깨진 그릇 파편이라도 굴러다니는 듯하였다.


“그래서 말씀드렸소. 부왕의 손에는 우리 원손이 있음을. 내 자식이 거기 있으니, 그 아이를 지키고 그 지위 보존케 하기 위해서라도 죽을 것이라고. 그러니 부왕이··· 기뻐하더이다.”


설마, 그 인조를 상대로, 나도 모르게 내심 서운했던 건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간이라 참 다행이라고,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도.


“미안하오. 내 뜻을 위하여 우리 아이들을 우리와 같은 처지, 볼모로 만들었소.”


하지만 동시에 그런 아비에게 내 자식들의 활용 방법을 일러주고 왔다는 것이 또 빈궁에게 미안하여, 나는 곧장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그런 말씀은 마시어요. 이는 저하께서 미안해하실 일이 아니라 손주를 그렇게도 여길 수 있는 부왕의 문제이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답한 빈궁은 내 얼굴에 닿은 손을 천천히 움직여 쓰다듬어주었다.

그에 따라 그 보드라운 감각이 세세히 볼에 전해졌다.


“그리고 혹여라도 부왕께 올린 말을 지킬 생각은 마시어요. 설사 우리 원손과 군주가, 우릴, 원망할 상황이 된다 하여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 희생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말라.

그 말을 하는 빈궁의 목소리는 새삼 비장하였고, 또 드문드문 끊어지며 차마 감추지 못한 속내를 드러냈다.


“신첩은 다 괜찮습니다. 저하만 온전하시고, 또 뜻을 이루실 수 있다면.”


“빈궁···.”


“그러니 이루신 바를 오직 뜻한 방향으로만 쏟으시옵소서. 신첩은 진정으로 다 괜찮으니. 참으로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저하.”


나는 빈궁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꼭 끌어안았다.

그러자 빈궁은 가만히 내 등을 쓸어주었고, 그제야 나는 문득 숨이 쉬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 괜찮다. 고생하였다.


그 애정 가득한 몇 마디가 진정으로 날 위로하고 칭찬해주는 듯하였다.

어떻게 조선 조정을 설득하였는지 찬탄하고, 또 이를 한껏 추켜세우며 위신 세워주는 것보다도 말이다.


“고맙소.”


그 먼 길을 떠나 고국에 또 고향에 다녀왔건만.

나는 이제야 돌아올 곳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하여 나는 짧은 진심을 전하며, 오래도록 그 온기를 누렸다.


***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나에 대한 환영에 나서지 못했던 봉림과 심양관 신료들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찾아왔다.

그리고 빈궁이 내게 물었던 것과 똑같은 걸 묻고는.


“저하!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절대! 불가하옵니다!”


강효원이 내가 보았던 그 어떤 모습보다 결연한 투로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고, 이내 한마음으로 몸을 숙이며 삼사 간원들이 간쟁할 적 못지않은 태도를 보였다.


“허허, 왜들 이러는가? 내 처음 정명수를 도모하고 황제 앞에 나서던 때 이미 논한 바가 아닌가? 처음 듣는 것처럼 구니 당혹스럽기 그지없네.”


다들 왜 이러는지 원.


“나는 오히려 우리가 청에서 활동의 폭을 늘리는 데 기여한 바를, 더불어 이미 그대들이 각오한 고초가 없도록 한 바를 앞다투어 칭찬이라도 해줄 줄 알았건만. 이쯤 되니 내 마음이 퍽 서운하려 하네.”


“오명을 감수하기로 한 것은 오직 의지를 논한 것이지 섶을 지고 불로 들고자 함이 아니었나이다. 그런데 저하께서 겉으로는 청주를 따르는 듯 굴고 은밀히 명과 함께 도모할 바를 찾으시다니요? 대명의리는 오직 한양 조정의 일이었나이다!”


“예, 저하. 신들이 저하와 함께 위난을 감당하기로 한 것은 장차 명이 부흥하고 청이 쇠락할 적에 쏟아질 시석을 감당키로 한 것이지, 이만한 부담이 저하께 향하게 하고자 함이 아니었사옵니다! 저하께서 한양 조정을 위해 이런 위험까지 지셔야 한다면, 신들은 차라리 그 고초가 기껍다 여길 것이옵니다!”


내가 적당히 농담조로 받아넘기려 하자, 강효원은 물론이고 정뇌경까지 나서며 강경하게 맞섰다.


“저하께서는 신들이 귀국을 마다하고 남으며 상언한 바를 벌써 잊으셨나이까?”


저들이 상언한 바는 내가 성군이 될 거라는 말.

즉, 이들에게 군주는 이미 나라는 뜻이었다.


“세상에 어떤 신하도 주인에게 이러한 바를 권하고, 또 찬탄하지 않나이다!”


“물론이옵니다. 비단 신하뿐이겠나이까? 어찌 아비가···!”


“그만하게. 아직은 부왕께서 조선의 왕이시니.”


나는 이들의 입에서 나온 비난이 인조를 향하기 시작한 순간 말을 제지했다.

아무리 우리가 어떤 길이든 함께하기로 한 사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위험한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 편이 좋으니까.


“‘아직은’이라고 하셨나이까?”


그런데 강효원 등은 내가 이들을 보호하려는 뜻보다 내 말에 은연중에 담긴 단어 하나에 더 주목하는 듯했다.


“뭐, 그렇지 않은가?”


“그리 말씀하시자면 장차 그 말이 그른 소리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안위를 도모하셔야지요. 어찌···!”


“허허, 수군을 끌어와 명과 교류할 길을 내가 직접 여는 것이 그리 우려스러운가?”


“이를 말씀이시옵니까?”


“걱정하지 말게. 황제는 이를 이유로 날 해치지 않을 것이니.”


“···예?”


“아니, 오히려 권하는 바일세. 내 이미 상주하였느니.”


“사, 상주라니···.”


강효원 등은 내가 처음 명과의 교류를 주창했을 때 홍타이지가 보인 반응, 아니, 그 이상으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기야 홍타이지가 허락하는 대명의리라니, 현대로 치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느낌이긴 하지.

이걸 바로 알아듣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앞으로 그대들이 해야 할 바가 한둘이 아닐세. 먼저 강 서리는 이번 원정에 함께할 채비를 하게. 나와 북경으로 갈 일이 있을 것이니.”


“북경···.”


“그리고 정 필선은 내가 한양에서 들여온 조선 물화들을 잘 분류하여 정돈해주어야겠네. 곧 무령군왕 등이 심양관을 찾아 그들이 청탁한 바를 얻어갈 것이니. 물론 그와 함께 내 따로 도모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니, 상품과 하품을 나누는 일에 실수가 있어선 안 될 것이네.”


“예··· 아, 예, 저하.”


아직 해괴하기만 한 내 말을 다 헤아리지도 못했는데 구체적인 명령까지 하달되니, 한양에서는 나름 젊은 준재들로 여겨지며 시강원까지 든 자들이 세상 어수룩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절로 웃음이 난 나는 굳이 이를 숨기지 않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허허, 뭘 그리 다들 말을 더듬거리기만 하는가? 이만하였으면 이제 내가 듣고자 하는 말을 좀 해야 할 것 아닌가? 금상을 힐난하고, 또 세자가 아비를 두고 아직은 군왕인 자라 일컫는 걸 기뻐하는 난신적자들이 아부에 이리 서툴러서야.”


“허허···.”


내 말에 힘없는 웃음을 터뜨린 이들은 서로 은근히 눈빛을 주고받더니 결국 고개를 한껏 숙였다.


“적국에 붙잡힌 자국 백성을 지킬 방도는 하나도 내지 못하던 조국이 공력을 들여 백성 구할 방도를 돌아보게 하시고, 또 청 황제가 대명의리를 보존케 하시었으니, 실로 역이기(酈食其)가 다시 살아온다 하여도 저하의 언변에 미치지 못할 것이옵니다.”


“하필 역이기를 논하는가? 그대들은 내가 청 황제의 솥에 삶아지길 바라기라도 하는가?”


“난신적자의 아부에 어찌 아름다운 말만이 담기겠나이까?”


“하하, 이런.”


자신들의 불충을 놀리는 주인에게 교언으로 농담하는 신하들이라니.

자못 불경하기 짝이 없었으나, 이런 그들이 내 뜻을 받드는 광경에 실로 속이 편안해지는 웃음이 샘솟았다.


빈궁의 곁이 내가 머무를 집이라면, 이들이 날 모시는 심양관은 내 조정이리라.

나는 내가 돌아와야 할 곳에 돌아왔음을 더욱 분명히 느낄 뿐이었다.


***


그리고 한양.


도성 사족들이 모여 사는 거리, 그 속에서도 명문의 위세를 자랑하는 듯 돋보이는 규모를 자랑하는 대저택의 문이 열렸다.

보통 객을 맞이한다 하면 행랑 지키는 종복이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고 안에 알리는 법이건만, 문이 열리며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저택의 주인이었다.


“어서 오시게.”


“혹, 내 너무 늦은 건 아닌가 모르겠네.”


“공무 번다하신 좌상 대감께 그런 것을 탓할 자가 있겠는가?”


“작금의 도성에서는 길가에 아이 하나만 넘어져도 이 최명길의 탓이라 할 것이네.”


조선의 파병 결정, 이는 이종 부자의 대화 이후로도 상당히 골치 아픈 과정을 겪어야 했다.

사절로서 온 세자야 부왕의 마음을 흔드는 것으로 족했겠지만, 이를 굳히고 온 사대부의 미움을 받으며 실무를 마치는 건 모두 최명길의 몫이었다.


“허허, 새삼 그런 걸 따지는가?”


“나도 늙나 보이.”


“이런, 그러면 안 되지. 자네는 절대 그러면 안 돼.”


“사람이 어찌 안 늙는단 말인가?”


“자네는 최명길이 아닌가? 도성 그 누구도 자넬 사람 취급하지 않는 것으로 아네만?”


“허허, 이 사람 이거.”


“절대 늙지 말게. 무너지지도 말고. 만약 그런다면, 내가 어떤 결단을 할지 모르니.”


최명길을 상대로 농담 따먹기나 하는 듯했던 저택의 주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서늘한 목소리를 냈다.


“자, 그럼 어서 들지. 객이 기다린 지 한참일세.”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유쾌한 목소리로 돌아가 최명길을 안으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대감, 문후 여쭙습니다.”


저택 주인이 말했던 객, 무장답게 건실한 체격을 가진 사내는 최명길이 마당으로 들기가 무섭게 머무르던 방에서 나와 고개를 숙였다.


“나야 언제나 그렇듯 무탈하네. 오히려 자네를 볼 낯이 없어 민망할 따름이지.”


“소장의 일은 죄라 하면 죄가 될만하였습니다. 대감께서 민망하실 것이 무어 있겠습니까?”


“허허, 이 사람 보게? 뻣뻣하게 살다 자리에서 한 번 물러나고 보니 아부도 할 줄 알게 된 건가?”


“다 청원군(靑原君) 대감께 배운 것이지요.”


“어허. 이 사람 좀 보게? 누가 들으면 나 심기원(沈器遠)이 천하의 간신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저택의 주인,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청원군이란 군호를 받은 공신 심기원은 사내의 말에 농담조로 호들갑을 떨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 유배지에 있는 동안 그 잠깐 사이 사람이 상한 듯하니, 다른 이를 물색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허허, 작금에 평안병사 유림(柳琳)을 제하면 고송(孤松) 외에 누가 북방의 일을 알고 행할 수 있단 말인가? 쓸데없는 농은 그쯤 해두게.”


심기원의 말을 적당히 정리한 최명길은 이내 진지한 표정이 되어 사내의 앞으로 다가갔다.


“고송, 이미 대강의 사세는 들어 알고 있으리라 여기네. 그러한가?”


“물론입니다. 대감. 나라의 원을 갚고 저하를 보위하는 일이니, 소장은 죽음마저도 각오할 것입니다.”


“명예롭게 죽는 것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네. 여차하면 나라를 등지고 타방에 임해 국난을 자초했다는 소리마저 들을지도 모를 일. 자네는 물론이고 집안의 안위 역시 장담할 수 없네.”


“장사가 한번 떠나감에 어찌 돌아오길 기대하겠습니까? 소장은 이미 말씀을 들은 뒤로 삶을 바라는 뜻을 접었습니다.”


“···면목이 없군.”


“이는 소장이 드릴 말씀입니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저하께서 끌려가시는 것을 끝내 지켜만 보아야 했던 졸장이 죽을 자리를 찾는 일이니, 대감께서는 기쁘게 보내주십시오.”


착잡한 표정을 짓는 최명길에게 덤덤하게 답한 사내는 이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입을 열었다.


“소장 임경업(林慶業), 대감의 말씀을 무엇이든 따를 것이니, 기꺼이 명해주십시오.”


비장한 각오와 함께, 전 의주부윤 임경업이 심양의 세자가 고대하는 파병군의 주장을 맡을 유림의 휘하 조방장(助防將) 자리를 자청하였다.


누군가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또 누군가는 제자리를 떠나기 마련이라.

한 사내가 자신의 둥지로 돌아와 자신이 지킬 것을 헤아리던 그때, 또 다른 사내는 대의를 위해 기꺼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작가의말

근래 연구는 사학계보다는 국문학계에서 주로 연구되고 있긴 하지만, 최근 연구 동향에서는 소위 대명충신이라는 이미지를 위주로 한 조선후기의 다양한 문학에서의 임경업에 대한 표현과 실제 사서에 남은 임경업의 행적을 대비하는 경향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연구들에서 실제 행적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의문은 청과도 잘 지냈던, 국내 여론을 의식하여 파병군 지휘 자체를 마다하던 다른 장수들과는 달리 해당 군무를 맡은 임경업이 왜 망명하였을까 하는 부분으로, 망명 자체의 우발성 여부, 계획적이라면 그 배후와 구체적인 외교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실제 이유에 대해서는 과거 연구까지 살펴볼 경우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최근 동향에서 어느 정도 통일되는 부분은 명, 청 양쪽 모두와 우호적으로 지내던, 장수보다는 외교관으로서의 면모가 강한 임경업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고, 더불어 대명의리에 대한 강조는 철저히 조선 후기에 이뤄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조선보다 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존에 자주 다뤄졌던 모화주의자 임경업으로 그리는 것은 새롭지도, 적절하지도 않다고 판단하였고, 소설에서는 망명 이유에 대한 다양한 설 가운데 하나를 채용하고자 합니다.


당연하게도 제가 고른 일설이 역사적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고, 복합적으로 파악되는 임경업의 행적에서 소설적으로 활용할만한 한 부분에 주목한 것임을 독자님들께서 헤아려주시길 바랍니다.(_ _)


***


부산김아재 님, 거듭 후원해주시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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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꼿꼿한 사대부의 쓸모 +14 24.09.01 2,221 130 16쪽
42 김상헌(金尙憲) +14 24.08.31 2,352 119 14쪽
41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길 +13 24.08.30 2,439 132 15쪽
40 심기원의 난 +23 24.08.29 2,601 150 15쪽
39 천명이 무너졌다 (4) +17 24.08.28 2,644 130 14쪽
38 천명이 무너졌다 (3) +12 24.08.27 2,556 127 13쪽
37 천명이 무너졌다 (2) +22 24.08.26 2,647 141 17쪽
36 천명이 무너졌다 (1) +14 24.08.25 2,781 140 17쪽
35 신사년의 밀담 (2) +11 24.08.24 2,656 118 13쪽
34 신사년의 밀담 (1) +15 24.08.23 2,756 141 17쪽
33 세자의 사람들 (2) +9 24.08.22 2,879 125 13쪽
32 세자의 사람들 (1) +15 24.08.21 2,942 129 13쪽
31 명-청 책봉 경쟁 (2) +19 24.08.20 3,013 132 16쪽
30 명-청 책봉 경쟁 (1) +13 24.08.19 3,043 136 16쪽
29 무인사변(戊寅事變) (5) +15 24.08.18 3,134 14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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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 (1) +11 24.07.26 5,324 211 13쪽
4 연회 +8 24.07.25 5,273 219 14쪽
3 굴마훈 +10 24.07.24 5,584 231 13쪽
2 누굴 잠 못 들게 할 것인가 +8 24.07.24 6,165 228 12쪽
1 회귀 +25 24.07.24 7,069 25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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