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 궤적을 손으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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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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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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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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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을 높이는 방법

DUMMY

박민영 에이전트가 유능한 사람이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다.

애초에 아빠랑 에이전시를 알아봤을 때 국내에서 1, 2위를 다투는 곳이라고 했거든.

내 입장에서는 연봉 8,000을 만들어 준 사람이기에 신뢰도가 급상승했었다.

나한테 구체적인 전문 지식이 어디 있겠냐고. 그냥, 연봉을 높게 잡아줬으니 거기에 감탄했을 뿐이지.

괜히 비싼 에이전트가 아니구나, 하면서.

그런데-.


“벌써요? 이제 고작 한 경기 했는데요?”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봤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선수님 실력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가치를 더 높이려고 하는 겁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보통 능력자가 아닌 것 같았다.

며칠 전, 강원과 치렀던 경기 하나만 보고 이만한 분석을 해내다니.


“우선 이것부터 보시죠. 경기 데이터 분석 자료입니다. 다른 지표는 보실 필요 없고요. 여기, ‘결정적 찬스 메이킹’이랑 ‘긴 패스 성공률’, 그리고 ‘유효슛 대비 득점률’만 보시면 됩니다.”

“죄송해요. 제가 이런 그래프를 잘 못 봐서요.”

“긴 설명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그냥, K리그 전체에서 압도적인 수준이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모든 선수랑 비교해도요? 유명한 스타 플레이어들도 있잖아요.”

“물론입니다. 해당 지표에 한해서는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예요.”

“그렇군요. 하지만 다른 지표는 많이 떨어지는 거 아닌가요?”

“지금 다른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짚어드린 지표가, 승부를 결정짓는데 가장 핵심적인 능력이거든요.”

“아하.”

“괜히 다른 구단에서 연락이 오는 게 아닙니다. 단 한 경기 만으로도 선수님의 강점이 드러나기에는 충분했어요. 수많은 약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강점이라서 그렇습니다. 다른 부분은 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이 자료를 의도적으로 공개해서 제 가치를 높인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정확합니다.”


분석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저, ‘진짜 목적’을 위한 재료였을 뿐.


“자료를 흘리고 관심을 그러모은 다음에 구단끼리 경쟁을 붙이는 겁니다. 정작 자세한 계약 조건은 밝히지 않을 생각이고요. 물론 인천도 경쟁에서 제외되지 않을 겁니다. 어쩔 수 없이 상향된 계약 조건을 제시할 수밖에 없겠죠. 뺏기고 싶지 않을 테니까.”

“우와.”


왠지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숫자와 전략이 오고 가는 또 하나의 전쟁터.

그렇게 생각하니까 축구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괜히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구나.


“저야 뭐,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겠죠. 하지만.”


끄덕─


날카로운 눈매를 자랑하던 박민영 에이전트가 부드럽게 웃었다.

나한테 누나가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물론 선수님의 의견이 가장 중요합니다. 의견을 듣기 위해 미팅을 잡았던 거니까요. 제가 나름 이것저것 준비하긴 했지만, 선수님이 싫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겁니다. 전부 다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거죠.”


몇 번 안 만났는데도 내 사람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도 박민영 에이전트의 능력 중 하나겠지.

담당 선수에게 호감을 사야 에이전트로서 잘될 수 있는 거니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믿음직스럽다면 당분간은 맡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돈을 많이 받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직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왜냐면 인천에서 이제 막 적응하기 시작했고, 인천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들거든요.”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경쟁을 붙이긴 하되, 인천에게 우선권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네. 너무 밀어붙이지는 않는 선에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


박민영 에이전트가 테이블 위로 두 손을 모았다.

눈매를 다시 날카롭게 유지한 채로.

말을 한번, 두번 곱씹으며.


“사실 저는, 선수님이 해외 리그로 이적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약한 관심을 보인 곳이 있거든요.”

“헉, 정말요?”

“문제는, K리그와 비슷한 수준의 리그라는 겁니다. 주전 경쟁은 인천보다 더 힘들 거고요. 언어 문제도 있을 겁니다. 환경 차이는 당연히 감수해야 하고요.”

“그렇죠. 저는 영어도 제대로 못하니까요.”

“그런데도 무조건 해외를 고집하시는 분이 계세요. 그쪽이 유럽으로 통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시는 거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요즘은 K리그도 수준이 올라가서,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면 곧바로 유럽으로 이적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거든요.”

“듣자마자 생각나는 선수가 몇 명 있긴 해요.”

“만약 그분들이 K리그가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이나 호주에서 뛰었다고 했을 때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뛰면서 차근히 준비했기에 더 잘된 부분도 있는 거거든요.”

“네, 동의합니다.”

“제 생각에는 K리그에서 한 시즌이나 두 시즌 정도 뛰다가, 최대한 좋은 곳으로 건너뛰는 것이 어떨까 하는데요. 이 부분에 있어서 선수님 의견이 궁금했습니다.”

“와, 잠시만요. 생각지도 못했던 거라서요.”

“네,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유럽이라니!

솔직히 너무 멀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같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인 것 같기도 해서.

핑거풋볼로 비유한다면, 스테이지를 한번에 건너뛰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대답이 바로 나왔다.


“저는 K리그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말 만약에 유럽으로 가게 되더라도, 좀 더 준비해서 가고 싶어서요.”


끄덕─


“선수님이랑 뜻이 맞아서 다행이네요. 계약 건은 제가 잘 정리해서 알려드릴게요. 선수님은 경기와 훈련으로 바쁘실 테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회사 건물을 나오면서 대화를 다시 점검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맞아.’



············.












박민영의 물밑 작업은 착실히 진행되었다.

그동안에 인천은 3경기를 더 치렀는데.

3경기 전부 교체로 출전한 진우는 공격 스탯을 추가로 쌓아나갔다.


1골 2도움.

2골 0도움.

2골 1도움.


후반 교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숫자였다.

이길 경기에서는 압도적인 승리를 선물했고.

비길 경기에서는 아슬아슬한 승리를 만들었으며.

누가 봐도 지는 경기에서는 지지 않도록 판도를 바꿔버렸다.

‘경쟁 붙이기’ 작전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밖에.

인천의 윤정수 감독이 초조해져서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탁!


“이런 얘기는 없었잖습니까! 저희한테 장기계약 우선권을 주시는 거 아니었나요?”


박민영 에이전트의 눈매에 날이 섰다.


“우선권이라면 지금 드리고 있습니다만?”

“하아.”


윤정수는 목이 빨개질 정도로 화가 났다.

복잡한 걸 싫어하는 윤정수의 성격 상, 박민영은 상성이 좋지 않은 상대였다.

특히, 본인의 사람을 교묘하게 뺏어가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자비가 없는 편.

그럼에도 윤정수는 심호흡으로 분노를 덜어냈다.


“후우.”


박민영을 적으로 돌렸다가는 이진우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절레절레─


‘애초에 내가 지고 들어가는 판이었어.’


윤정수는 차라리 이진우를 떠올리기로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굴러들어 와서 인천을 가슴 뛰게 만든 복덩이 신인.

원터치 전술의 완성도를 극한까지 높여 줄 수 있는, 세기의 재능.

앞에 앉은 여자가, 그 이진우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니까 비로소 열기가 식었다.

그래, 이것까지 이진우인 것이다. 괜히 ‘대리인’이라고 불리겠는가.


‘진우 그 녀석, 보면 볼수록 보통 놈이 아니네. 자기 가치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용할 줄 알아.’


마치 진우의 플레이 스타일 같았다.

겉보기에는 축구를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반인이었지만-.

공만 잡으면 대단한 충격을 선사하며 업계를 뒤집고 있지 않은가.

성격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윤정수 이상의 야망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지.


‘나였어도 그만한 재능을 가졌다면···.’


윤정수는 하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카로운 재능을 품으려면 출혈을 감수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구단주를 만나고, 운영진을 만나고─.

요직의 인물들을 설득하고 나서야 새로운 계약서를 내밀 수 있었다.

진우가 입을 틀어막을 정도의 계약서를.


“사, 사억이요?!”

“그래.”


연봉 4억 2천.

계약 기간 3년 반.

부가적인 보너스까지 합한다면 상황에 따라 5억까지도 향상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계약서를 꼼꼼히 확인한 박민영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섣불리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이 계약서에 얼마나 큰 무리가 따랐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감독이랑 선수의 소통이 중요해. 내가 끼어들어서 좋을 게 없다.’


아니나 다를까.

윤정수 감독이 진우의 손을 꽉 붙잡았다.


“이게 내 진심이다. 나랑 같이-. 아니, ‘우리’랑 같이 하자, 진우야.”


진우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연봉이 오를 거라는 얘기는 들었어도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윤정수 감독의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4억이라고? 구단에 돈이 별로 없다 하지 않았나?’


진우의 동공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윤정수 감독의 안광은 한결같았다.

진우를 잡아먹을 것 같으면서도, 간절히 원하는 것 같기도 한─.

더불어서 손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난로에 버금갈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진우의 몸에도 열기가 돌기 시작했다.


“예, 감독님.”


박민영이 보기에 그것은.

일종의 ‘성인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윤정수 감독이 괜히 매달리는 게 아니야. 이 선수는 앞으로도 지켜보는 재미가 있겠어.’



············.












계약을 한번 더 맺으면서 마음가짐이 굳건해졌다.

기존의 각오에 더해, ‘인천’을 위해 뛰어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진 느낌?

그래서 그런가, 만나는 사람마다 내 인상이 달라졌다고 그러더라.

특히 아빠가 제일 많이 그러셨지.


“눈빛이 달라졌는데? 집이랑 차 생기니까 기분이 좀 달라?”

“뭔가, 약간 책임감이 생기는 거 같아요. 아빠랑 엄마도 그렇고, 주변에서 잘 챙겨 주니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하하하하!”


아빠는 호탕하게 웃더니 내 등을 두드려 주셨다.


“많이 성숙해졌어. 아주 장해.”

“감사해요. 차 잘 타고 다닐게요.”

“미안하다, 이 정도밖에 못해줘서.”

“아니에요. 제 나이에 차가 있는 게 어디예요.”

“돈 많이 벌어서 새로 사게 되더라도, 이 차는 그냥 편하게 타고 다녔으면 좋겠어.”

“알겠어요.”


집과 차가 생긴 것도 물론 기뻤다.

갑작스레 행복이 쏟아지는 기분!

무엇보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빠 엄마한테 참치를 사드릴 때였다.

참치가 맛있다고 하기 보다는-.

내가 부모님에게 맛있는 걸 사줄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이 실감돼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과 자신감이 심장을 찢고 나올 것 같았다.


쿵쿵쿵쿵쿵───


그때 제대로 확신했다.

아, 이게 성공의 맛이구나.

게임 캐릭터 따위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진짜 성공’.


“뱃살 진짜 맛있다, 진우야.”

“많이 드세요. 무한 리필이에요.”

“응? 여기 리필집 아니던데?”

“제가 무한으로 주문하면 리필집 되는 거죠.”

“어머나? 얘가 왜 이래?”

“장난이에요.”


하하하!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실제로 성장했을 때에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아니─.

더 정확히는, 세상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내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내 안에서 불꽃이 튀기기 시작했다.


‘끝까지 가보고 싶어졌어. 나도 감독님처럼.’


때마침 다음 훈련에 감독님이랑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내일은, 선수단에서 제일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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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그 선수'의 부모님이 하시는 호프집 +8 24.08.27 5,917 132 14쪽
24 페널티킥을 찰 때 바람이 불면 +5 24.08.26 5,953 139 14쪽
23 정말로 식사가 목적이었을 줄은 +10 24.08.24 6,079 135 14쪽
22 패널티 박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11 24.08.23 6,225 136 14쪽
21 프리킥은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7 24.08.21 6,366 132 12쪽
20 내 인기가 이 정도였다고? +7 24.08.20 6,423 134 14쪽
19 귀가 잘 들린다고 말할 수밖에 +4 24.08.19 6,432 146 13쪽
18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해봤자 +7 24.08.17 6,572 143 13쪽
17 별 거 아닌데 다들 고장나네? +6 24.08.16 6,647 140 14쪽
16 페인팅 모션을 하나만 익혀도 +9 24.08.14 6,719 140 12쪽
» 몸값을 높이는 방법 +7 24.08.13 6,846 135 13쪽
14 무자비한 중거리 폭격 +7 24.08.12 6,860 147 13쪽
13 사실상 술래잡기 +6 24.08.10 6,776 14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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