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줍는 천재 흑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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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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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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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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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 (1)

DUMMY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루카스의 생환을 반기던 이들의 낯빛이 일그러진다. 그들 모두가 엘드란이란 마법사를 비호하고 있었다. 좌중을 뚫고 나온 중년의 남자가 탐탁지 않다는 듯 세드를 노려봤다.


“무례하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온 그가 세드 앞에 마주 섰다.


“보아하니 운 좋게 망령의 퇴치를 도운 모양인데. 자네 앞에 있는 엘드란 경은 죽어가던 엔덱을 살려낸 우리의 은인이네. 예의를 지키시게.”


웃음이 나왔다. 소영주를 구해준 사람한테 이런 태도라. 엘드란에 대한 신뢰가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누가 보면 엘드란이 영주라고 해도 믿겠어.


“예의가 없는 건 그쪽도 마찬가지 아닌가?”

“···뭐라?”

“사건의 정황도 모른 채 얄팍한 지식으로 타인을 추측하는 언행이라. 이게 예의가 없는 게 아니라면 뭐지?”

“그게 무슨······!”


남자의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다. 썩은 토마토가 꿈틀거리는 거 같다. 조금 더 긁으면 터져버릴 거 같아서 혀를 차며 손을 휘저었다.


“알았다. 그쪽 말이 다 맞으니 내가 잘못한 걸로 하지.”

“어억!”


남자가 뒷목을 잡고 휘청거렸다.

동시에 주변에서 원성이 쏟아졌다.


“어찌 그런 망발을!”

“소영주님! 저는 저 자의 만행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시끄러운데. 전부 입을 틀어 막아야 되나? 다행히 그럴 일은 없었다. 루카스가 앞을 가로 막으며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그만하시오. 말했듯 세드 경은 나를 구해준 은인이오. 지금부터 세드 경을 비난하는 발언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겠소.”

“하지만······!”

“그만. 두 번 말하지 않겠소.”


루카스가 단언하자 뭐라 말하려던 이들도 입을 꾹 닫았다. 신전에서 얼빠진 표정으로 침 흘리고 있을 땐 몰랐는데 카리스마가 있는 편인가. 루카스를 구한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거 같다.


엘드란은 희미한 웃음을 띄운 채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를 유지 중이었다.


“나는 괜찮으니 신경 쓸 거 없소. 그보다 소영주님. 시간도 늦었으니 일단은 들어가서 쉬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게 좋겠군. 헤더?”

“예. 소영주님.”


집사 차림의 노인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세드 경의 거처를 안내해주게. 귀빈실로 부탁하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드님.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러지.”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성의 내부는 투박하지만 기품이 느껴졌다. 여타 다른 귀족과는 다르게 사치품으로 도배된 게 아닌 딱 필요한 만큼의 장식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헤더는 말 없이 묵묵히 길을 안내했다.


“집사장인가?”

“그렇습니다.”

“일한 지 오래 됐겠군.”

“예. 이제 거의 40년이 넘어가는군요.”


앞서 가던 헤더가 힐끔 뒤를 돌아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세드는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인데.”

“아닙니다.”

“말해라. 들어줄 테니.”


그러자 헤더가 자리에 멈춰 섰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툭 털어놓듯 말했다.


“감사드립니다. 주인님을 구해주셔서.”


의외의 대답이었다.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걸 보면 엘드란을 두둔하던 이들과는 달라 보인다.


“그쪽은 나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이군.”

“소영주님이 직접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본인을 구해준 은인이라고.”

“소영주를 믿는 건가?”

“달리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헤더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제 주인을 향한 우직한 충성심이 눈에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 방 문 앞에 도착하자 헤더가 고개를 숙였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멀어지는 헤더를 바라보다가 방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적당한 크기의 공간이다. 침대와 함께 탁자, 그리고 의자가 비치되어 있다. 이 정도면 중세치고 훌륭한 방이다. 방 안을 살펴보던 세드가 가방을 내려놓고 자세를 낮췄다.


“탐색.”


가늘게 퍼진 마력이 방 내부를 샅샅이 훑고 지나갔다. 도청 장치 같은 물건은 느껴지지 않는다. 안심하고 쉴 수 있겠는데.


“후우.”


로브를 벗고 머리를 털어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숙소에 도착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세드는 직전 만났던 엘드란에 대해 생각했다.


“수석 마법사라.”


루카스의 말대로 그는 마법사였다. 갈무리된 마력은 실력자라는 증거. 아무래도 다른 이들은 그가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흑마법사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부정적인 시선을 받고 싶지 않을 때. 혹은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어떤 비밀스러운 음모를 계획하고 있을 때다. 엘드란의 경우 후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직 증거는 없지만.

이건 같은 흑마법사의 촉이다.


“쉽지는 않겠는데.”


가신들의 태도를 보면 엘드란에 대해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루카스도 마찬가지고. 섣불리 접근 했다간 역으로 공격 당할 터. 일단은 이곳에서 지내며 정보를 수집해야 될 듯하다.


걱정이 되진 않는다.

음흉한 놈들을 잡아 족치는 건 세드가 제일 잘하는 것 중 하나이기에.


세드는 7년 간의 중세랜드 생활을 겪으며 수많은 나사가 빠졌다. 인정하기 싫지만 펙트였다.


“칼렌.”


세드가 말하자 발 밑의 어둠 속에서 묵색의 관이 치솟았다. 중앙에 박힌 십자가 장식에서 붉은 빛의 기운이 감돌았다. 관이 살짝 열리며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신체의 변화는?”


관에서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쁨의 감정이 느껴진다. 놈이 생전 사람을 죽일 때 흘리던 웃음과 유사했다.


“허기가 지는데. 어떻게 하신 겁니까?”

“새로운 마법을 습득했다. 이거. 먹을 수 있겠나?”


세드가 가방에 들어있던 망령의 유해를 들고 흔들었다. 그러자 관의 틈새에서 일렁이던 어둠 사이로 붉은 빛이 점멸했다.


“죽고 나서 이런 적은 처음인데. 침이 막 고이는데요?”

“다행이군. 먹어라.”

“감사합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관 안으로 뼈를 밀어 우득 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칼렌은 중급 언데드. 스켈레톤과 다르게 자아를 가지고 신체를 형성하고 있다. 망령의 뼈를 전부 씹어 먹은 칼렌이 말했다.


“아까 그 마법사놈, 죽이실 겁니까?”

“아직. 생각 중이다.”

“제가 죽이게 해주십쇼.”


칼렌의 붉은 눈동자가 세차게 반짝였다.

그 속에 담긴 광기가 넘치다 못해 흐를 지경이었다.


“그 놈의 척추를 뽑아 칼 춤을 출 생각에 벌써부터 침이 흐릅니다.”

“일단 기다려라. 기회를 줄 테니.”

“약속 하신 겁니다.”


손짓하자 조소가 흘러나오던 관이 모습을 감췄다.


망령의 유해로 칼렌이 한 단계 성장했다. 짙어진 기운이 피부로 전달될 정도다. 아까 맞붙었던 웨어울프와 대적해도 밀리지 않을 수준이라고 판단된다.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던 세드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을 거 같다.

창틀 너머로 떠오른 달이 시커먼 먹구름에 가려지고 있었다.






*






이튿날.


“세드님.”


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안내를 맡았던 헤더의 음성이었다. 문을 열자 허리를 숙인 헤더가 인사를 건네왔다.


“소영주님께서 세드님과 함께 식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괜찮으시면 안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부탁하지.”


세드는 헤더를 따라 길다란 복도를 거닐었다. 사용인들을 지나칠 때마다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룻밤 사이에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세드 경. 어서 오시오.”


호화로운 음식이 차려진 식탁에서 루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엘드란을 제외하면 다른 가신들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 뿐인가?”


루카스의 배려인 듯했다.

귀족들은 대부분 가문에 속한 이들과 같이 식사하는 게 관례이기에.


“그렇소. 어제 있었던 일도 있고 해서 다른 이들은 부르지 않았지. 아직 세드 경에 대해서 잘 모르는 듯해서 말이오.”

“그렇군.”

“세드 경을 위해 준비한 음식이 많소. 식기 전에 드시오.”


세드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엘드란의 시선이 못 박힌 것처럼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어제랑 분위기가 다르네? 가신들이 없어서 그런 건가. 세드가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엘드란이라 했나? 할 말이 있으면 해라.”

“하. 어이가 없군.”


냅킨으로 입을 닦은 엘드란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대는 진정 예의를 모르는가? 그래, 나와 다른 가신들한텐 그럴 수 있소. 헌데 어찌 소영주님에게까지 막 대하는 거지?”

“불편한가?”

“불편 하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섬기는 주인이 모르는 자에게 하대 당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 있는 이가 몇이나 있겠소!”


충신 컨셉인가. 하고 싶지도 않은 말을 번지르르하게 내뱉는 걸 보아 입에 한 두 번 기름칠 한 게 아니다.


저 진심으로 분개하는 듯한 표정도 그렇고. 루넬 가문에 들어와 자리를 꿰찬 건 요행이 아닌 듯하다.


“미안하지만 태도를 고칠 생각은 없다.”


귀족은 엿 같은 놈들이 많다. 수그리면 지 보다 못한 줄 알고 개처럼 부려먹으려고 하는 종족이니까. 하도 시달려서 그런가 착한 귀족을 만나도 존대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


“소영주. 내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얘기해라. 자리를 비켜 줄 테니.”

“나는 괜찮소, 세드 경. 그대와 같이 훌륭한 마법사라면 귀족이라 해도 다름 없다 생각하오.”

“소영주님!”


엘드란이 식탁을 주먹으로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영주님이 저 자의 무례를 용인하신다면 위계질서가 해이해 질 겁니다! 작게는 가문의 위상이 떨어질 것이고, 크게는 엔덱 전체의 혼란으로 야기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세드는 세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건 뭐 귀족한테 반말 몇 번 했다고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소리 아닌가. 엘드란이 세드를 째려보며 미간을 구겼다.


“지금 웃음이 나오시오?”

“그럼 울어야 되나?”

“뭐? 지금 어디서 말장난을!”

“엘드란 경. 그만 하시오.”


루카스가 손을 저으며 상황을 중재했다.


“말하지 않았소? 나는 괜찮다고. 그리고 엘드란 경이 걱정할 만한 일은 없을 것이오. 세드 경은 경 못지 않게 대단한 마법사니까.”

“그걸 소영주님이 어찌 아십니까?”

“엘드란 경.”


루카스의 마력이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어미를 흉내 내려는 어린 맹수의 모습 같았다. 허나 그 속에 담긴 날카로움은 진짜였다.


“지금 내 안목을 무시하는 거요?”

“그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성급했던 거 같군요.”

“부탁 드리겠소. 두 사람 다 같은 마법사 아니오? 친분을 맺고 지식을 나누면 얼마나 좋겠소.”

“같은 생각이다.”


첨언하는 세드를 엘드란이 일그러진 얼굴로 바라봤다. 입가에 걸린 살의가 눈으로 보일 정도다. 흡사 부모의 원수는 대하는 표정. 멘탈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군.


“칼렌.”


세드의 등 뒤에서 거대한 관이 거꾸로 치솟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고기를 썰던 루카스가 손을 멈췄다.


“세드 경? 그건 대체······.”

“걱정 마라. 우려할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세드는 고기가 큼직하게 붙은 뼈를 관의 틈새로 던졌다. 관의 내부에서 쩝쩝 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분 나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재차 자리에서 일어난 엘드란이 소리쳤다.


“세드 경! 지금 뭐하는 짓이오?”

“보면 모르나? 음식을 주는 중이다.”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소! 그 관은 대체 뭐요? 어찌 이리도 흉악한 기운을 풍길 수가 있는 거지?”


등받이에 몸을 기댄 세드가 담담하게 답했다.


“흉악한 기운이라. 그럴 수 밖에. 안에 들어있는 게 언데드니까.”

“···뭐?”


냅킨으로 손을 닦은 세드가 엘드란을 똑바로 쳐다봤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마력. 루카스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이 주변을 집어 삼켰다. 흔들리는 식기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다.


“소영주가 얘기를 안 했나 보군.”

“무슨······.”

“나는 흑마법사다.”


숨 막힐 듯 무거운 정적 속에서.

처음으로 엘드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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