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트왕 김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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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pacta
작품등록일 :
2024.07.27 15:09
최근연재일 :
2024.08.2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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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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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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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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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누가 외야에 미친개를 풀어놨어?

DUMMY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부산 타이탄즈와 서울 시티즈의 시즌 7번째 맞대결이 펼쳐지는 사직야구장입니다. 저는 캐스터 정명석이고요, 유지태 해설위원과 함께하겠습니다."

"예, 안녕하십니까. 해설위원 유지태입니다."

"먼저 오늘 경기를 이야기하기 전에 짚고 넘어갈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점심시간이 지날 때쯤 트레이드가 하나 발표됐습니다."

"예, 맞습니다. 가을야구 경쟁권에서 이미 멀어져버린 대전 호크스가 리빌딩을 선언하며 유격수 장휘철과 마무리 투수 유승진을 부산 타이탄즈로 보냈습니다. 반면 6년만의 가을야구를 넘어 상위권 경쟁에 들어간 타이탄즈는 그 대가로 가능성이 아주 충만한, 어찌 보면 미래를 팔고 현재를 얻는 트레이드를 했다고 볼 수 있겠죠?"

"눈에 띄는 것은 오늘 트레이드로 타이탄즈로 이적한 선수 둘이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보시면 타이탄즈의 3번타자가 이적생 유격수 장휘철, 9번타자가 중견수 김대영 선수네요? 위원님, 보통 트레이드로 이적한 선수들은 하루의 휴식일을 부여하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등록만 정해진 시간 내에 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어제 경기 이후 타이탄즈에서 그간 유격수를 맡아오던 노장 유미래 선수와 외인 중견수 토마스 선수가 불의의 부상을 당했거든요. 그렇기에 타이탄즈가 트레이드를 가능한 빨리 조율하고 선수들을 바로 등록한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이동하느라 체력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오늘 경기 어떤 모습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자, 먼저 1회초 서울 시티즈의 라인업을 먼저 설명드리겠습니다. 1번타자⋯."




***




그라운드의 신선. 신경선 감독을 수식하는 단어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선수들에게도 함부로 말을 낮추지 않는 신사였고, 선수때나 지도자때나 그라운드 내에서 함부로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고작 그런 것들이 그를 '신선'이라는 말이 붙게 한 것은 아니었다. 타이탄즈의 감독직을 맡기 이전, 서울 스타즈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해 인천 드래곤즈와 광주 피죤스, 그리고 수원 캐슬즈를 지나오며 무려 한국시리즈를 5회나 우승한 그의 감독 커리어에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언제나 '신묘한 용병술' 그리고 '신묘한 작전 성공'이라 할 수 있었으니.

현대의 세이버 매트릭스 야구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에 확신을 가진 그는 언제나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야구라는 작은 전쟁의 승자였다.


그런 그였기에 이러한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해보려 했으나,


'아무리 그래도 이적 첫 날에 선발 출장이라고? 휘철 선배는 그렇다 치고, 나까지?'


아무리 머리를 싸매보아도 내가 선발로 출장한다는 것은 상정 외의 일이었다.


1군의 그라운드를 밟는 것조차 처음인 내가, 1군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다고? 안 봐도 인터넷의 반응이 보인다.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고 있지 않을까? 아니,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을 리가 없다. 부드럽기로 유명한 호크스의 팬들조차 납득이 되지 않는 선수를 기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비난하는 편인데, 사납기로 유명한 타이탄즈 팬이라면 오죽할까.

아마 '뒷돈 받았냐?' 정도면 양반이고, '비디오 갖고 있냐?' 따위의 원색적이고 모욕적인 비난까지도 들어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

물론⋯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자자, 집중! 경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밟아본 천연잔디. 고등학교 때나 2군 구장은 인조잔디였지만, 제대로 된 천연잔디를 깐 1군 야구장의 감촉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극상의 감촉이었다.

스파이크를 신었음에도 생그러운 느낌이 느껴질 법한 그런 느낌. 그런 잔디를 통통거리며 몇 차례 뛰어오르고, 또 몇 차례 움직이는 사이 그라운드 안쪽에서는 응원단장이 뛰어나와 수비 라인업 송을 부르며 관중들의 환호를 유도하는 것이 보였고,


"중견수! 김! 대! 영!"


그 우렁찬 함성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리자, 여태까지의 상념이 싹 사라지며 온몸에 소름이 돋고 말았다.

내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 그래, 나도 야구를 시작하며 이런 것을 꿈꾸지 않았나?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패배 의식에 찌들어 있었던 거지? 올 줄 몰랐던 기회? 그걸 반기지 못하는 멍청이였나? 아니, 아니다. 언제나 난 이런 기회를 꿈꾸어 왔다. 막 프로에 입단할 때만 하더라도 연습생 신화로 주전을 꿈꿨었는데. 그래, 한 번 해보자. 해봐서 손해볼 건 없다. 안해서 손해볼 건 있어도 말이야.



"플레이볼!!!"



심판의 우렁찬 경기 시작 구호가 울리자, 곧장 저 멀리 선발투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언제나 보던 풍경, 하지만 내가 평소에 보던 것은 나이를 먹고도 1군에 올라가지 못하는 노망주나 아예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도 않던 호크스의 투수들이었고, 오늘에 보는 것은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외인 에이스의 경기였다. 그러다보니 상념이 사라진 머릿속엔 도리어 실수를 해선 안 된다는, 경기에 과하게 몰입한 감정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딱-! 우와아아아!!!


저 멀리,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의 배트에 맞자 빠르게 날아오기 시작했고,


"마이볼! 마이볼!!!"


어느새 내 발은 소리가 들린 직후 낙구 지점을 완벽히 파악하기라도 한 듯, 미친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허나 너무 집중을 해버린 탓일까, 주변에서 들려오는 콜 신호를 전혀 듣지 못한 나는 주변 시야를 확인하는 것조차 잊고 말았고,


"마이볼!! 어, 어이씨!!!"


볼집에 공이 들어가 회전을 멈춘 것을 얼얼해진 손바닥으로 확실히 느꼈을 때가 되어서야 알아채고 말았다.


"어, 나 왜 여기까지⋯?"

"야 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 중견수가 여기까지 와서 그걸 잡으면 어떻게 해! 내가 파악 안했으면 다칠뻔했잖아!!!"


내 발 바로 앞엔 파울라인을 알리는 흰색 실선이 그려져 있었고, 타이탄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구현우는 조금은 화가 난, 또한 조금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푸념을 해대었다.


"죄, 죄송합니다 선배님. 긴장해서 아무것도 안 들렸어요."

"아니⋯ 그래, 그럴 수는 있지. 아니, 그럴 수 없어. 이 미친놈아. 어떻게 그걸 여기까지 왔냐? 너 진짜 미친놈이야? 이걸 다이빙도 안하고 뛰어와서 잡는다고?"

"그, 그러게요?"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아니, 현실에서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타구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고는 해도, 정상 수비 위치의 중견수가 좌익수 옆 파울라인까지 달려와 플라이를 잡다니.

이건 슈퍼플레이가 아닌, 민폐플레이가 맞겠지. 잘못하면 부상을 당할 뻔했으니.


"너, 이름이 대영이라 그랬지?"

"네, 넵! 김대영입니다!"

"상황 파악하고 귀 열어서 콜 들어. 내가 아무리 수비가 별로라도 이런 건 잡으니까. 넌 네가 잡을 거만 잡으면 돼. 오케이?"

"시정하겠습니다!"

"시정은 무슨⋯ 군대도 안 간 놈이. 돌아가. 네 자리로."

"옙!"


집중하자 집중. 아니, 조금 긴장을 풀자. 내 첫 1군경기, 이상한 짓으로 날려먹을 수는 없다!



---



"미쳤어요!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대체 몇 미터를 달려온거죠?"

"거의 70미터 가까이 달린 것 같습니다. 저 선수, 달리기가 대체 어느정돈지가 궁금하네요. 사실 좋은 수비는 아닙니다. 영상을 다시 보시면 좌익수 구현우 선수의 입모양은 분명히 마이볼이라고 외쳤어요. 이건 굳이 중견수가 달려와서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을 대비해 백업을 가는 정도로 그쳐야 하는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김대영 선수는 아예 그걸 생각도 안 한 듯 달려가 잡았거든요? 대단하기는 하지만 김대영 선수, 집중해야 합니다. 긴장한 것은 알겠지만 다칠 수 있는 플레이에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는 하네요.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런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는 아마 얼마 없을 것 같습니다."

"예, 그렇죠.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아무리 빠르다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한국 선수들과 100미터 기준 1초 이상의 차이가 나지는 않습니다. 한국 선수들도 발이 빠른 선수들은 11초대 초반까지도 끊거든요. 그런데 구대영 선수의 발을 보면 어쩌면 10초대 초반, 혹은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정도면 세계 신기록 아닙니까?"

"하하, 과장이 섞인 말로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예, 경기 집중하겠습니다. 다음 타자는 시티즈의 2번타자 한주성입니다. 한주성 선수는 타이탄즈의 선발 멜라니 선수와의 상대전적이⋯."



---



이후의 이닝은 삼진과 유격수 땅볼을 곁들여 삼자범퇴로 마무리되었다.

더 이상의 외야 플라이가 없었기에 집중을 한다는 것을 보여줄 여지가 없었기에 조금 아쉬운 마음도 있기는 했다만, 여튼 덕아웃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조금⋯ 두려웠다.

아무리 신선이라 불리우는 감독님이라도 이번의 플레이는 분명히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으니.


하지만,


"잘했습니다."

"예⋯?"

"피드백은 외야 수비코치와 하시면 됩니다."

"아, 예⋯."


신경선 감독은 놀라우리만치 별다른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고.


"대영아, 이쪽으로 와라."

"아, 옙 코치님."


고작해야 수비에서 콜 플레이를 잘 하라는 얼떨떨한 표정의 외야수비 코치의 피드백만을 들을 뿐이었다.


어, 음⋯ 알아서 잘 하라는 뜻이겠지.




***




"야 아까 그거 뭐냐?"

"몰라요. 아니 진짜 그게 말이 돼요?"

"되겠냐? 하씨 현우 형이라 혹시 뚝떨* 하나 해주나 했는데⋯." (*높이 뜬 타구가 외야수 앞에 뚝 떨어지는 안타.)

"야, 우리팀에 저런거 할 수 있는 놈 있냐?"

"있으면 야구를 왜 해요? 진작에 올림픽 나갔지."

"그렇지? 저게 말이 안 되는거 맞지?"

"당연하죠. 어느 미친놈이 그걸 거기까지 가서 잡아요? 한 50미터 달려가서 다이빙하는 거는 봤어도 거기서 거기까지 달려놓고 서서 잡는 건 진짜 처음 보네. 저 정도면 공 보면 무작정 달려가는 미친개 아니에요?"

"미친개? 야, 맞다. 미친개네 미친개. 공만 보면 정신나간 미친개다 아주."


시티즈의 덕아웃은 고작 1회초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흘러댔다.

이유는 한 가지. 경기의 첫 번째 타구가 잡힌 것이 문제였다.


타이탄즈의 좌익수 구현우, 나이가 40이 다 되었음에도 팀 사정상 수비를 나서는 그의 별명은 '구뚝떨'. 평범한 좌익수들은 쉽게 잡는 타구지만, 본래도 타구 판단이 좋지 않은데다가 나이를 먹으며 느려진 주력까지 더해져 어지간한 이지 플라이가 아니면 대다수의 타구가 안타로 만들어버리는 그였기에 시티즈의 선수들은 1번타자인 유상준의 타구 또한 양심따윈 잊어버린 기대를 하고 있었으나, 그걸 중견수가 잡는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나와버렸다.


단순한 해프닝이다, 그냥 미친놈이었다. 정도로 넘어가려는 베테랑들의 분위기 수습이 있기는 했으나, 이미 시티즈 선수들의 마음 속엔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고야 말았다.


'오늘은 절대 뜬공은 안 된다.'


현대 야구의 경향에 반하는 타격법. 시티즈 선수들에게 오늘의 사직 담장은 유독 높고도 멀어보였다.


작가의말

배고픈 아침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99 DarkCull..
    작성일
    24.08.24 23:50
    No. 1

    경기장 도착시간 수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경기 시작은 6시반이어도 선수들은 4~5시간전에 도착해서 훈련합니다. 회의,마사지, 스트레칭, 달리기,데이터에 따른 타격 너댓번 정도, 역시 데이터에 따른 수비훈련. 홈팀 원정팀 순서로요.
    부산 홈경기면 최소 1시에는 도착해야 경기에 나갈 수 있습니다. 3시간 운전해서 도착하자 마자 경기 출전은 아무리 KBO고, 아무리 소설이어도 이건 아닙니다.
    그 팀의 사인도 외워야하고요.
    사인...투포수만 아니라, 수비도, 타격도, 주루도 , 야구에서 사인 모르면...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 pacta
    작성일
    24.08.25 12:37
    No. 2

    좋은 지적 정말 감사합니다. 저 또한 선수들은 홈팀 기준 2시, 늦어도 3시까지 도착해서 훈련을 하고, 그 뒤 원정팀이 그라운드 훈련을 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에 대해선 조금 더 극적인 부분을 노렸으나, 독자님의 말씀대로 보시는 분들께 상황에 대한 불편함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말씀주신 부분을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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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달리다. +2 24.07.31 85 6 11쪽
» 누가 외야에 미친개를 풀어놨어? +2 24.07.30 8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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