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트왕 김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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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pacta
작품등록일 :
2024.07.27 15:09
최근연재일 :
2024.08.28 08:44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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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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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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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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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내달리다.

DUMMY

"높이 뜬 플라이볼, 이번에도 중견수 김대영이 무리없이 잡아내며 쓰리아웃! 이제 이닝은 3회말, 좋은 수비를 보여준 9번타자 김대영부터 시작하는 타이탄즈의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야구라는 건 참 변덕스러운 생물과도 같다. 아니, 어쩌면 그런 걸 보면 우리네 인생과도 같을지도 모른다.

'절대 해서는 안돼!'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외려 그쪽으로 향하고 있는 그것만 하여도 참으로 우리네 인생같지 않은가.

2회, 그리고 3회. 어떻게든 그라운드볼을 만들어내려는 시티즈의 타자들이었으나, 치는 족족 얕든 깊든 플라이만을 만들어내고 말아버리며 6개의 아웃카운트 중 무려 5개를 중견수 플라이로 끝마치고 말았다.


그렇게 돌아온 3회 말, 앞서 1개의 볼넷과 1개의 안타를 얻어냈지만 득점하지 못했던 타이탄즈의 선두타자는 9번타자로 선발출장한 김대영의 프로 데뷔 첫 타석이었다.




***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사람 인人을 그려 먹기를 세 번, 기왕이면 청심환이라도 사올 걸 그랬나.

매번 내 데뷔 첫 타석을 그려왔지만, 정말로 현실에 닥치자 가슴이 벌렁거려 죽을 것만 같다.

할 수 있다. 몇 번을 되뇌여도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 어차피 모두가 내게 기대가 없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지만, 또, 잘 하면 그만큼 칭찬을 들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사람이라는 게 이성적인 감정만을 갖고 사는 것이 아니니.


"이봐, 배터박스로 안 들어오고 뭐해?"

"죄, 죄송합니다!"


하도 시간을 끌어버린 걸까, 심판은 시범 운용중인 피치클락이 울렸다며 구두로 경고를 주며 내게 얼른 준비하라는 신호를 주었다.


같다. 완전히 같다.

잔디는 다르지만 이 마운드의 흙은 2군에서 경험해본 것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여기 흙이라고 어디 달에나 존재할 흙도 아니고, 그려진 배터박스도 금가루로 만든 것이 아니다.

투수가 던지는 저 공도 언제나 보던 그 공인구이며, 아무리 상대투수가 잘하는 투수라고 한들 메이저에서나 볼 법한 170km의 직구를 던지는 투수도 아니니까.


후우⋯ 집중집중.


준비 동작을 끝내고 타격 자세를 바로잡은 채 투수와 눈을 맞추자, 와인드업을 끝낸 투수의 손에서 하얀 공의 실밥이 채이며 빠르게 날아오는 것이 보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공의 실밥이 빠르게 회전하는 것이 하나하나 눈에 보이는 느낌.

이게 그 선배들이 말하던 공이 수박만하게 보인다던 바로 그⋯!!!


부웅-!


"스트~롸이크!!!"


하지만 그렇게 잘 보인 공조차 내 배트엔 스치지조차 못했다.

아니, 그렇게 표현하는 것조차 우스울지도 모른다.


"야야, 쫄았냐? 공 좋지? 우리 앤드류 오늘 컨디션 좋다?"

"⋯⋯⋯."

"새끼, 많이 쫄았네."


옆쪽의 포수가 내게 몇 마디 걸어오는 것이 들렸으나, 대꾸할 정신은 없었다.

투수판에서부터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는 18.44미터. 물론, 익스텐션(*투수판에서부터 투수가 공을 놓는 지점까지의 거리)에 따라 그 거리가 얼마나 좁혀질지는 모르겠다만, 투수가 던진 공이 그 거리를 날아오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느린 슬로우 커브라도 0.6초. 반면, 160의 직구라면 0.35초 정도의 시간. 전광판에 떠오른 방금 공의 구속은 148km. 즉, 내 눈에는 그 0.4초의 시간이 충분히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걸 건드리지도 못한다고? 내 데뷔 타석이 이렇게 어정쩡하게 끝난다고⋯?

어떻게 해야하지? 어떻게⋯ 어떻게 해야⋯.



[초심자의 행운!]


[데뷔 첫 타석을 축하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잊지 마세요!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간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걸. 정말로 가랑이가 찢어졌다간 짤방으로 남아 영구박제가 되고 말 거랍니다! 좋겠네요! 앞으로도 많은 팬들이 당신을 기억할테니. 그런 부끄러움을 겪기 싫다면 잊지마세요! 당신이 얻어낸 새로운 스킬을!]


[(SPECIAL) 번트 마스터의 길 1단계]



번트 마스터⋯? 번트⋯ 그래, 번트! 내가 그걸 왜 생각 못했을까.

출루율이 빛을 보며 생겨난 명언 '볼넷도 안타다.' 그렇다면 반대로, 외야를 벗어나지 못한 안타도 아무튼 안타다. 여튼간에 1루 베이스를 밟기만 한다면 그건 무조건 팀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지. 꼭 잘 맞은 타구를 날릴 필요는 없는 거야. 독수리가 빠르게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독수리처럼 날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못한 굼벵이는 굼벵이만의 살아남는 법이 있는 것.


'3루수는 전진, 하지만 유격수와 1루수는 보통 수비보다 조금 앞⋯.'


침착하게 수비 상황을 보자, 내 빠른 발을 경계한 3루수가 전진해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데뷔 첫 타석에 설마 번트를 치겠어? 라는 생각을 하기라도 한 것인지 그렇게까지 경계심을 올린 듯한 모습들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기회다.


"타자 아직 준비 안 됐나? 벌써 경고 2회다."

"죄송합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번트 안타를 치기 위해선 결코 내가 번트를 칠 것이라는 낌새를 보여선 안 된다.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는 순간 내야 수비수들은 곧장 뛰어들어올 준비를 할 테고, 내가 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빠른 수비가 있다면 잡힐 수밖에 없을테니까.

레그킥을 조금 더 깊게 준비하고, 배트를 조금 더 내려 더 강하게 칠 것이라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거라면 분명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못하겠지.


투수의 와인드업, 그리고 손가락 끝에서 채이는 공.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 하얀 공에 걸친 붉은 실밥이 돌아가는 것이 너무도 내 눈에 잘 보인다.


'이때다!!!'


이것이 바로 빈틈의 실.

바깥쪽 낮은 코스에 걸치는 포심에 배트를 가져다 대자, 묵직한 충격이 손바닥에 전달된다.

이 느낌은 확실한 느린 땅볼. 배트가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해 힘없이 굴러가는 타구가 나올 것이 확실했고, 나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젖먹던 힘까지 다하여 1루를 향해 양다리를 박차기 시작했다.


"허억⋯! 헉!"


세잎? 아웃? 제발, 제발!


간절한 눈빛으로 1루심을 돌아보자, 그는 고개를 한 차례 끄덕여주곤 양 팔을 벌리며 외쳤다.


"세잎!"



-우와아아아아-!!!!!


심판의 세잎 콜, 그와 동시에 터져나오는 우렁찬 함성들.

해냈다. 내가 해냈다. 내 처음, 내 데뷔 첫 타석을 안타로 장식했다.

머릿속에 아찔한 향이 퍼져나오는 것만 같은 느낌.


"우오오오!!!"


참을 수 없어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포효를 내뱉은 후, 보호장구를 벗어 1루의 코치님께 건네자, 코치님의 눈빛은 무언가 흥미로운 장난감을 본 듯한 표정이었다.


"와⋯니 진짜 빠르네. 100메다 몇 초 뛰노? 니 뭐 우사인 볼트가?"

"예?"

"모르모 됐다. 마, 단디 준비해라. 점마 저거 견제 빡시게 한디. 호흡 쪼매 길어지모 무조건 견제하이까네 뛰기 전에 잘 생각하고 뛰라. 감독님이 퍼런불은 주끄든? 근데 단디 알아서 해야된데이. 마, 찬물 뿌리고 뒤지뿌믄 안된다 알제?"

"예⋯?"

"단디 잘 하라고."

"아, 예, 옙!"


물론 대구와도 조금은 다른 부산 사투리를, 거센 억양과 빠른 속도로 내뱉는 코치의 말은 정신이 없는 이 상황에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저, 근데 코치님."

"와 그라노."

"제가 못 봐서 그런데 수비가 공 놓쳤습니까?"

"뭐?"

"아닙니까?"

"야, 인마 이거 진짜 웃긴 놈이네."


내가 지금에 제일 궁금했던 건 이것. 잘 댔나? 아니면 아슬아슬했나? 1루수에게 공이 오는 것조차 잊고 뛰어버린 나였지만, 1루수가 미트를 뻗고 있는 것은 보았으니 던진건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으니.


"마, 잡긴 했는데 던지지도 못했다. 근데 담 타석부터는 대비 빡시게 할 거니까 매번 이라지는 말고. 알제?"

"예, 유의하겠습니다."

"그라모 됐다."


코치의 말과 함께 1루 베이스로부터 딱 세 발자국 걸어나와 리드를 잡자, 투수의 눈이 쉴새없이 나를 향해 힐끔대는 것이 보였다.

이제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나를 향하는 시선은 투수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포수, 그리고 1루수, 2루수, 유격수. 심지어 그 뒷편의 외야수들과 3루수들. 그냥 이 그라운드 위에 시티즈의 군청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 모두가 나를 경계하고 있다.

수비에서 보여준 모습, 그리고 조금 전의 모습. 발이 빠른 선수에게 볼넷과 안타는 자동적으로 2루타라는 말이 있지.

그렇게 빠른 발을 가진 내가 도루까지 한다면 수비진의 골머리가 깨질 거라는 건 나 스스로도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렇기에 견제가 들어올 것이라는 것은 별달리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고, 그러니 딱 세 발자국, 그리고 몸의 중심을 과하게 쏠리지 않게 하여 언제든 1루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채 투수의 동작을 유의깊게 살폈다.


"후, 하아⋯ 습."


긴장감에 허덕이는 신음소리. 허나 이번의 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

이건 1루, 키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큰 주제에 잔뜩 얼어붙은 것이 보이는 1루수의 것.

그리고 그 긴장감으로 얼어붙은 그 표정으로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무조건 견제다.'


슈우우욱-!!!


예상대로 투수는 곧장 오른쪽 축발을 3루측으로 내딛고는 내쪽을 향해 빠르게 공을 던져왔다.

이것만큼은 내가 살면서 수도 없이 했던 연습. 발이 빠른 선수는 결코 루상에서 어이없이 죽어서는 안 된다.

발이 빠르다는 것 하나만으로 1군을 밟을 수도 있고, 하다못해 선수 생명을 이어갈 수도 있지만, 견제사와 주루사를 당한다면 순식간에 그 자리를 잃게 되고 마는 포지션이기도 하니까.


투수의 발이 빠지는 것을 보자마자 곧장 몸을 빠르게 숙이며 1루를 향해 미끄러지자, 곧이어 등 뒤편에 묵직한 감각이 느껴진다.


"세이프!"


첫 번째 견제. 하지만 이걸로 끝은⋯.



-하나, 둘, 셋, 마!!! 하나, 둘, 셋, 마!!!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 관중석으로부터 들려온 우렁찬 함성에 온몸이 쩌렁쩌렁 울렸다. 이게 그⋯ 사직구장의 명물 견제 구호인가? 투수도 깜짝 놀란 듯했지만,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 이걸 내가 당했다고 해준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지만 당황스러움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야.



다시 베이스를 잡고 일어나 유니폼 앞부분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1루수가 공을 던진 이후 리드 폭을 잡자 투수의 시선이 내쪽을 향하는 것이 느껴진다.


또다시 견제. 다시금 슬라이딩. 또 견제, 또 슬라이딩. 자그마치 4번 연속의 견제. 점점 관중석의 함성 속에는 귀가 아픈 원색적인 욕설이 섞이기 시작했고, 내가 졌다는 듯한 느낌으로 리드폭을 살짝 줄이자, 그제서야 투수의 시선은 포수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쉬이익-!


뛰지 않을 거란 생각, 그건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한 발, 두 발, 세 발. 내 보폭으로 1루에서 2루까지, 2발 반의 리드에선 정확히 7번 반의 내디딤. 그리고 강하게 2루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역시나,


"세잎!!!"


등 뒤의 묵직한 느낌.

점점, 야구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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