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휴게소 쉘터화(3)
[23:20:14]
밤이 무르익었다.
매점 벽면에 걸려 있던 시계는 다른 기계 장치들과 마찬가지로 맛이 갔다.
그렇지만, ‘몸속 핸드폰’을 통해 정확한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우는 밤 10시가 좀 넘었을 때 잠들었다.
반면 진수는 아직 깨어 있었다.
그는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좁은 쇠창살 틈새로 공격하려면 삽으로는 안 돼.’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그는 휴게소 뒤편에 심어진 어린나무들에서 지주목을 걷어 왔었다.
지주목은 길이 1.5m 정도에 두께는 255ml 음료수 캔 정도여서 봉으로 쓰기 알맞았다.
강도도 꽤 튼튼했고.
하지만 고작 목봉으론 구울들을 죽일 수 없을 터였다.
진수는 몸소 겪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놈들의 생명력이 얼마나 질긴지.
그 바퀴벌레 같은 것들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선 봉이 아닌 창이 필요했다.
애석하게도 촉(鏃)으로 쓸 만한 물건이 매점엔 없었다.
진열대와 창고를 뒤져 봐도 식칼 같은 날붙이는 발견하지 못했다.
어쩔까 고민하던 차에 발견한 것이 텐트낭에 들어 있던 고리 말뚝이었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가벼운 제품이 아니라 묵직한 쇠말뚝.
그는 목봉에 쇠말뚝을 결합해 간이 창을 만들었다.
목봉 하나당 쇠말뚝을 3개씩 달았다.
‘창고에 공구함이 있어서 다행이야.’
처음엔 목봉에 쇠말뚝을 대고 테이프로 둘둘 감았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내구성이 형편없었다.
잘 고정된 것으로 보여도 몇 번만 충격이 가해지면 금세 헐거워졌으니까.
그래서 못을 박았다.
못을 박고, 노끈으로 감고, 마지막으로 테이프까지 둘둘 감아 마감했더니 내구성이 한결 좋았다.
“후, 다 만들었다.”
진수는 쇠말뚝을 전부 써서 간이 창을 만들었다.
완성된 창은 총 세 자루였다.
대단할 것도 없는 무기지만, 이게 뭐라고 마음이 한층 든든해졌다.
‘더 제대로 된 무기가 있어야 할 텐데.’
총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날이 제대로 벼려진 창만 몇 자루 있어도 소원이 없을 듯했다.
여긴 시골이니까, 민가에 가면 쓸만한 재료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농기구라든가, 철근이라든가, 숫돌이라든가.
하지만 당장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단 자자.”
그는 맨바닥에 누워 두루마리 휴지를 벴다.
이르게 찾아온 열대야로 매점 내부는 여전히 후덥지근했다.
덥고, 또 생각이 많아져 잠이 오질 않았다.
진수는 뒤척이다가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간신히 잠에 빠져들었다.
***
······크헤에에엑.
“흡!”
진수는 깜짝 놀라서 번뜩 눈을 떴다.
주위는 아직 어스름했다.
반사적으로 주위를 두리번대고 있는데, 귀를 거슬리게 하는 소음이 또 들려왔다.
궤에에에엑.
크햐아악! 캬학!
크르르르르!
“이, 이런 씨······!”
그는 허겁지겁 몸을 일으켰다.
매점 문가에 기대 놓은 간이 창 한 자루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올려본 하늘은 짙은 남색 빛을 띠었다.
통이 틀락 말락 하는 새벽녘인 것 같았다.
“키햐아아악.”
“캬하학! 캬아아악!”
“크르르르르!”
괴성이 선명해지고, 장벽 너머에선 다수의 기척이 느껴졌다.
구울들이 몰려온 것이었다.
그는 장벽 한편에 뚫린 창살문으로 향했다.
구울 한 놈이 문에 붙어 창살을 마구 흔들어대다가 진수를 발견하곤 손을 쭉 뻗었다.
“키햐아아아악! 크햐아아아악!”
손아귀에 탐욕이 그득하다.
어떻게든 움켜잡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았다.
“꺼져, 이 개······!”
진수는 두 손으로 창을 잡고 쇠창살 틈새로 찔렀다.
“새끼야!”
“캬핰!”
콰직!
쏘아진 창끝이 운 좋게도 괴물의 눈알을 정확하게 찔렀다.
안구가 터지며 피와 체액을 쫙 뿌렸다.
진수는 창을 쑥 뽑곤 곧장 다시 찔렀다.
삼겹살을 든든히 먹고 잔 덕분일까?
아니면 근력 스탯이 1레벨 오른 덕분일까?
그의 창엔 힘이 실려 있었다.
“캬하아아악!”
“키헤에엑! 키헤에에엑!”
“쿠훠허어어!”
진수의 위치를 알아챈 구울들이 창살문으로 몰려들었다.
놈들은 창살에 들러붙어 입질을 해대고 손을 휘적거렸다.
진수는 그것들을 향해 무자비한 찌르기를 날렸다.
구울들은 창에 찔려 피를 줄줄 흘려도 달아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광분해서 포효해 댔다.
덥석!
“끄이잇! 이거 놔 이 씨빡새꺄!”
“크햐아악! 크르르르!”
무아지경에 빠져 창을 찌르고 있는데, 구울 한 놈이 창대를 콱 붙잡았다.
힘 씨름을 하는데, 역시나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놈은 팔 하나고 진수는 팔 두 개인데도 비등비등했다.
“놓으라고!”
“크르르!”
간신히 붙잡힌 창을 빼냈다.
진수는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일단 저 팔부터 어떻게 해야겠다.
그는 삽을 가지고 왔다.
삽자루를 두 손으로 쥐곤 장작 패듯, 허우적대는 팔들을 향해 내리쳤다.
쉭! 콰직!
“크하아악!”
“뒤져! 뒤져, 이 씨발! 뒤져!”
삽날에 부닥친 팔들이 속속들이 부러져 나갔다.
창살 너머로 뻗어온 팔들이 전부 축 늘어진 것을 확인한 뒤에야 진수는 다시금 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쑤셨다.
쑤셨다, 뽑았다, 쑤셨다, 뽑았다를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을 쑤셔댔으나······.
‘왜 이렇게 안 죽어 시발!’
사람이었으면 진즉에 요단강 건널 상처를 입었음에도 구울들은 좀처럼 죽질 않았다.
처음엔 기세 좋게 찔러대던 그였으나, 빠르게 지쳤고, 찔러대는 창질엔 급격히 힘이 빠졌다.
“허억! 허억! 캬악, 퉤! 허억!”
그는 결국 창질을 멈추곤 두세 걸음 물러났다.
“크햐아아악!”
“케헤엑! 케헤엑!”
구울들은 여전히 창살에 들러붙어 의미 없는 입질을 해댔다.
빌어먹을! 저것들은 지치지도 않나?
“대가리를······ 허억, 허억! 대가리를 깨버려야 하는 건데!”
저 질긴 놈들도 골통이 깨지고 뇌에 타격을 받으니 죽었더랬다.
하지만 내려치기가 아닌 찌르기 공격으로는 놈들의 골통을 깰 만큼의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전투.
진수는 짜증과 갑갑함, 또 초조함을 느끼곤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았다.
어차피 저것들은 쇠문을 넘어올 수 없으니, 담배나 한 대 피우며 쉴 생각이었다.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탈칵.
라이터로 불을 붙였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캬, 캬하학!”
“케헤에엑!”
“······음?”
구울들이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창살에 딱 붙어 더러운 면상을 비벼대던 것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난 것이다.
‘뭐야. 갑자기 왜 저래 저것들?’
진수는 멀뚱멀뚱 놈들을 쳐다봤다.
구울들도 으르렁거리며 이쪽을 쏘아보긴 했으나 아까와는 명백히 다른 반응이었다.
“후우.”
진수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놈들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그러자 구울들이 한 발짝 물러나며 한 곳을 응시했다.
놈들이 보는 것은······ 진수의 손가락 사이에 들린 담배였다.
‘담배를 무서워해?’
구울들이 담배를 무서워한다고?
어째서? 저것들 나치당 소속인가?
의문을 느끼던 진수는 이윽고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니야. 담배가 아니야.’
놈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담배가 아니었다.
“······불이다.”
바로 불이었다.
진수는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케, 케헤엑. 케헥!”
“크르르르!”
구울들이 눈에 띄게 경계하며 뒷걸음질 쳤다.
라이터 불을 꺼트리자.
“캬하아아악!”
“케헤에엑! 키헤에엑!”
“······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발광하며 쇠창살에 들러붙었다.
진수는 라이터를 껐다, 켰다 반복하며 계속 실험을 해보았다.
그리고 구울들이 불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덧붙여 불만 없어지면 곧바로 살의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불이 약점인 건가?’
진수는 구울들을 내버려 두고 매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하마터면 심장마비 걸릴 뻔했다.
“우왁! 어우, 놀라라!”
“······.”
시우가 잠에서 깼는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왜, 왜 일어났어? 더 자지?”
“······.”
“더 자, 더 자.”
시우의 시선이 문밖으로 향했다.
몰려든 구울의 기척을 느낀 모양이다.
어둑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녀석의 표정에 불안감이 서리는 것 같았다.
진수는 얼른 녀석을 안심시켰다.
“괜찮아. 저 샠······ 저것들 여기로 절대 못 들어와. 형이 다 혼내줄 거야.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
끄덕.
진수는 그렇게 말하곤 캠핑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동틀녘이긴 하지만 아직 어두워서 찾고자 하는 물건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있는 걸 봤는데!’
가방을 뒤지다가 성질머리가 나서 아예 내용물을 다 쏟아부었다.
“어! 있다!”
그는 바라던 물건을 찾아냈다.
그건 토치와 에프킬라였다.
“절대 밖에 나오면 안 돼! 절대!”
그는 토치와 에프킬라, 부탄가스 한 묶음을 챙겨서 매점을 빠져나갔다.
다시 창살문 쪽으로 가니 구울들이 반가운지 그를 격하게 반겨주었다.
“크햐아아아악!”
“꾸르르르! 쿠훠어어억!”
“캬하아악!”
진수는 부탄가스에 토치를 결합했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
“이 개새끼들아. 이게 뭔지 알아?”
“크햐아아악!”
“그래, 잘한다. 아가리 쩍 벌리고 있어라!”
푸쉬이이이이익!
그는 먼저 살충제를 놈들의 면상에 분사했다.
구울들은 살충제는 무서워하지 않는지 무슨 피부 보습 받는 양 쏟아지는 유분(油分)을 만끽했다.
진수는 분사 버튼을 꾹 누른 채, 토치의 점화 버튼을 눌렀다.
탈칵!
바로 그 순간, 부채꼴로 퍼지던 살충제가 거센 화염으로 바뀌었다.
“크햑!? 크햐아아아아악!”
“끼에에에에에엑!”
“꾸루어억! 꺼어어억!”
화르륵!
“허미 씨벌······.”
구울들은 피할 새도 없이 화염을 뒤집어썼고, 진수의 입에선 탄성 섞인 욕이 흘러나왔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원래 육체라는 것은 불이 잘 붙지 않는 소재다.
몸뚱어리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성분이 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울들의 몸뚱어리엔 너무도 쉽게 불이 붙었다.
마치 스티로폼처럼.
그리고 탄 부위는 순식간에 잿가루가 돼서 아래로 쏟아졌다.
“끼에에엑! 끼에에엑!”
“컄······ 캬캭! 캬하학······.”
“크륽······!”
쇠말뚝에 면상이 찔리고도 아랑곳하지 않던 것들이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고, 불붙은 면상을 벽에 비벼댔다.
그러며 종아리 맞은 애새끼처럼 서럽게 울어댔다.
‘끝내야 돼!’
진수는 벌컥 문을 열고 나갔다.
한 손엔 토치, 한 손엔 에프킬라를 들고, 가차 없이 불길을 뿜어냈다.
통구이가 된 것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진수는 놈들이 무력화된 것을 확인하곤 삽을 들었다.
그리고 한 놈의 대갈통 위로 삽날을 내리쳤다.
퍽! 파사삭!
쉬지 않고 몇 대를 때려야 깨졌던 골통이 단 일격에 숯처럼 부서졌다.
아무래도 불이 놈들의 육체 강도도 약화시키는 듯했다.
구울은 그대로 죽었고, 진수의 몸엔 경험치가 흘러 들어왔다.
진수는 멈추지 않고 나머지 놈들까지 처치했다.
총 다섯 마리를 골로 보내는 데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경험치가 밀려 들어오더니 한순간 넘쳤다.
진수는 앞서도 느꼈던 고양감에 휩싸였다.
가쁘던 호흡이 한순간 안정되고 지쳐있던 몸에도 힘이 보충됐다.
‘레벨업?’
레벨이 오른 것이었다.
-웅웅! 웅웅!
몸속 핸드폰이 떨렸다.
아마 레벨이 올랐단 알림이 뜬 것이리라.
아쉽지만 한가하게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캬하아아아악!”
“꾸르어어억!”
“쳇!”
휴게소 주위를 배회하던 것들이 소란을 엿들었는지 속속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차라리 잘 됐다고, 진수는 생각했다.
“그래! 여기다! 다 와라 이 씨방새들아!”
그는 버럭 소리쳐 구울들을 끌어모은 뒤 얼른 장벽 안으로 넘어갔다.
문을 단단히 잠그고, 막간을 이용해 레벨업 해 얻은 포인트로 스탯을 올렸다.
총 110포인트가 들어왔는데, 55씩 들여서 체력과 근력을 올렸다.
얼마 지나자.
“키헤에에에엑! 키헤엑!”
“캬하아아악!”
새로운 구울들이 쇠창살에 들러붙어 입냄새를 풍겼다.
‘우선 팔다리부터!’
공략법을 알았으니 괜한 체력 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
그는 삽으로 놈들의 팔을 쳐내 부러뜨리고, 뒤이어선 말뚝 창으로 다리를 노려 찔렀다.
구울들이 불구가 되면 토치와 에프킬라를 집어 들고 화염을 뿌렸다.
푸쉬이이이이익! 화르륵!
“끼에에에엑!”
“꺼어얽!”
구울들은 팔다리가 고장 나 도망도 못 치고 그대로 불길을 덮어썼다.
놈들이 무력화되면 다시 삽을 들고 나가서 마무리했다.
퍽! 퍼억! 퍽퍽!
“죽어! 죽어 썅! 죽어!”
동틀녘 여명 아래, 구울의 사체가 쌓여갔다.
Comment '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