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휴게소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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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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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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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생존자

DUMMY

퍽! 파사삭!


“껙.”


또 한 개의 골통이 으스러지며 구울이 죽었다.


“허억, 허억!”


진수는 삽으로 땅을 받친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흘끗 올려다본 하늘.


어느새 동이 트고 푸르러졌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쨍한 걸 보면 오늘도 지독히 더울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화창한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점곡휴게소는 끔찍한 몰골의 사체로 가득했다.


물론 모두 구울의 것이다.


그 수가 어림잡아 스물 서넛은 됐다.


진수는 바삐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구울이 더 몰려들 낌새는 없었다.


‘넘어가자.’


그는 장벽 안으로 넘어가 쇠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털썩 주저앉아선, 바지 주머니에서 다 찌그러진 담뱃갑을 꺼냈다.


두 대 남은 담배 개비 중 하나를 꺼내어 무는데 손마디가 저리고 덜덜덜 떨렸다.


지난 두 시간가량 삽자루와 말뚝창을 너무 세게 움켜쥐고 있었던 탓이다.


불을 붙이고 담배 연기를 빨아들인다.


니코틴이 퍼지며 머리가 뱅뱅 돌았다.


“하······ 죽겠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의 몸에 이렇다 할 상처는 없었다.


기껏해야 삽자루에 손바닥이 좀 쓸린 정도.


그는 뻐끔뻐끔 담배를 태우며 몸속 핸드폰을 불러냈다.


〔System :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New) 레벨이 올랐습니다.

-(New) 스킬북이 도착했습니다.

◂1/5▸


습관적으로 화면을 넘기려던 진수는 멈칫하고 말았다.


‘스킬북?’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New) 스킬북이 도착했습니다.’라는 알림을 터치했다.


그러자 책이 펼쳐지는 연출과 함께 세 가지의 선택지가 떠올랐다.


[스킬북을 선택해 주십시오.]

1. 마비의 일격

2. 신속한 질주

3. 투사의 본능


각 스킬 옆에는 [자세히 보기]라는 버튼이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스킬의 상세 설명이 떠올랐다.


◇마비의 일격 [액티브]

•설명 : MP 8을 소모해 마비의 기운이 실린 일격을 가한다. 적중한 적은 잠시간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신속한 질주 [액티브]

•설명 : 초당 MP 2를 소모해 빠르게 달린다.


◇투사의 본능 [패시브]

•설명 : 잠들어 있는 투사의 본능을 일깨워 전투 감각을 높인다.


“······.”


그는 스킬 설명을 읽으며 생각에 잠겼다.


5레벨이 되면서 스킬을 얻은 모양인데, 뭘 선택하는 게 최선이지?


맨 처음 끌린 것은 ‘마비의 일격’이었다.


구울을 마비시켜 못 움직이게 만들고, 그 틈에 골통을 깨든 도망을 치든 해버리면 만사가 능통한 거 아닌가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마음이 바뀌었다.


‘마비의 일격이랑 신속한 질주는 액티브고, 투사의 본능은 패시브야. 장기적으로 본다면······.’


RPG 좀 했다 하는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전사든 궁수든 마법사든, 결국 가장 중요한 스킬은 ‘마스터리’ 계열 스킬이라는 것을.


왜냐고?


그러한 패시브 스킬들은 캐릭터의 기본 체급을 올려주기 때문이다.


기본 체급이 낮은 상태로는 기교를 부려 봤자다.


왜, 손흥민도 말하지 않았던가?


기본기 갈고 닦는 데만 7년 걸렸다고.


“그래. 이거로 가자.”


진수는 ‘투사의 본능’을 선택하곤 화면을 옆으로 넘겼다.


상태창이 표시됐다.


〔System : 스테이터스〕

■유저 : 고진수(KOR)

■레벨 : 5

■포인트 : 250

[HP] 99/102

[MP] 32/32

------------------

■ 스탯

건강 Lv.3 [레벨⇧ Ⓟ60]

근력 Lv.3 [레벨⇧ Ⓟ60]

민첩 Lv.1 [레벨⇧ Ⓟ50]

방어 Lv.1 [레벨⇧ Ⓟ50]

정신 Lv.1 [레벨⇧ Ⓟ50]

마력 Lv.1 [레벨⇧ Ⓟ50]

------------------

■ 스킬

투사의 본능 Lv.1 [00.00%]

------------------

◂2/5▸


새벽녘 소동을 겪는 사이 레벨은 5까지 올랐다.


4, 5레벨 때 스탯을 못 올렸기에 포인트가 꽤 쌓였다.


이번엔 뭘 올려 볼까?


“흠. 다른 스탯도 올리긴 해야 할 텐데.”


짧게 고민하던 그는 그냥 하던 대로 건강과 근력을 2레벨씩 올렸다.


괜히 이것저것 문어발식으로 올려대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맞을 듯했다.


〔System : 스테이터스〕

■유저 : 고진수(KOR)

■레벨 : 5

■포인트 : 0

[HP] 119/122

[MP] 32/32

------------------

■ 스탯

건강 Lv.5 [레벨⇧ Ⓟ70]

근력 Lv.5 [레벨⇧ Ⓟ70]

민첩 Lv.1 [레벨⇧ Ⓟ50]

방어 Lv.1 [레벨⇧ Ⓟ50]

정신 Lv.1 [레벨⇧ Ⓟ50]

마력 Lv.1 [레벨⇧ Ⓟ50]

------------------

■ 스킬

투사의 본능 Lv.1 [00.00%]

------------------

◂2/5▸


“와, 씨. 미쳤는데?”


근력 스탯이 한 번에 2레벨이나 올랐기 때문일까?


주먹을 쥐락펴락하는데, 몸속에서 장어 100마리가 꿈틀대는 것 같은 힘이 느껴졌다.


이거, 마음만 먹으면 돌멩이도 손아귀 힘으로 쪼갤 수 있을 듯했다.


한번 해볼까?


그는 휴게소 뒤편 흙바닥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웠다.


한 손으로 쥐고 힘을 준다.


“으이익! 끄이이이익!”


그의 얼굴이 중증 변비 환자의 그것처럼 구겨졌다.


팔은 힘을 너무 준 나머지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던 한 순간!


“······에라이. 안 되네.”


진수는 끌끌 혀를 차며 돌멩이를 휙 던졌고, 매점으로 돌아갔다.


그는 보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가 세 조각으로 쪼개지는 모습을.



***



어제 저녁 식사에 이어 아침밥도 고기를 구워 먹었다.


세상이 멀쩡할 때도 아침 댓바람부터 고기 구워 먹는 날은 없었는데.


아니, 고기는 고사하고 아침을 챙겨 먹는 날도 거의 없었는데.


하여간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먹고 싶어서 먹은 건 아니고, 오늘이 지나면 다 버려야 할 것 같아 반쯤 억지로 먹은 것이었다.


이미 콘이나 하드 계열은 못 먹을 만큼 녹았고, 그나마 쭈쭈바들이 살얼음이라도 껴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아이스크림 3개를 해치운 그는 몇 가지 작업 도구를 챙겨 문가로 향했다.


“형, 일하고 올게. 얌전히 있어. 오줌 마려우면 화장실 가고.”


끄덕끄덕.


시우는 여전히 말을 못 했지만, 고개만큼은 착실하게 끄덕였다.


녀석을 뒤로하고, 진수는 매점을 빠져나갔다.


그는 화장실에 들러 플라스틱 대야를 있는 대로 찾아냈다.


그것을 챙겨 장벽 밖으로 나갔다.


창살문 인근에는 구울들의 사체가 악취를 풍기며 녹아가고 있었다.


코를 막고 후다닥 지나간다.


‘구울이······ 없다. 좋아.’


휴게소 부지에 구울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본인의 아반떼로 다가갔다.


곧장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차 밑으로 기어들어 가려 했는데······.


“어우씨. 뭐 이렇게 낮아?”


실패했다.


생각보다 차량의 지상고가 더 낮았기 때문이었다.


초장부터 계획이 틀어졌으나 포기할 순 없었다.


그는 가드레일 쪽에 세워져 있는 PE 방호벽을 다 가지고 왔다.


그것을 차량의 뒷바퀴 부근에 깔고, 자신은 트렁크 밑부분을 잡았다.


‘근력도 많이 올랐고. 할 수 있을 거야.’


“후우! 하나, 둘······!”


셋을 외치며 그가 차를 들어 올렸다.


놀랍게도 차 뒤꽁무니가 번쩍 들렸다.


“으기기기긱! 으이이익!”


그는 이를 빠득빠득 갈며 차 뒷바퀴를 깔아둔 PE 방호벽 위에 올렸다.


그제야 차 밑으로 기어들어 갈 만한 공간이 나왔다.


진수는 플라스틱 대야를 챙겨 차 밑으로 들어갔다.


“보자, 연료통이······ 아, 이거다.


연료탱크 아래에 대야를 받치고, 맥가이버 칼과 망치를 이용해 연료탱크에 구멍을 냈다.


혹시 폭발하진 않을까 걱정도 들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머잖아 연료탱크에 손톱만 한 구멍이 생겼다.


80%쯤 채워져 있던 휘발유가 졸졸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흘러나온 휘발유는 고스란히 대야에 모였다.


“아으, 기름 냄새.”


알싸한 기름 냄새에 머리가 아팠다.


그는 도로 기어 나와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폈다.


역시나 구울은 없었다.


그는 시선을 회수해 자신의 11년식 아반떼를 바라보았다.


조금 씁쓸해졌다.


지난 3여 년간 이 녀석을 타고 어디든 갔었는데.


주인이 돼서 불*원샷을 넣어주진 못할망정 연료 탱크에 구멍을 내버리다니.


“쩝. 미안하다. 근데 너 어차피 고장 나서 굴러가지도 않잖아. 이참에 그냥 푹 쉬어라.”


구울들의 약점이 불이란 걸 알아냈으니 화공(火攻)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름은 꼭 확보해야 할 자원이었다.


연료탱크에 썩혀놓는 것보다야 이렇게라도 뽑아 쓰는 게 낫겠지.


머잖아 대야 하나가 가득 찼다.


진수는 곧장 새로운 대야로 교체했고, 가득 찬 대야의 기름은 페트병에 옮겨 담았다.


참고로 페트병은 자판기 옆 쓰레기통을 뒤져서 찾아낸 것이었다.


기름을 받고, 페트병에 옮겨 담고, 다시 기름을 받고.


그 짓을 예닐곱 번쯤 반복했더니 아반떼에 있던 기름은 다 뽑았다.


진수는 카니발로 옮겨가서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흠. 이건 디젤이네.”


디젤은 휘발유에 비해 인화점이 높아서 생각보다 불이 잘 붙지 않는다.


그래도 기름은 기름.


모아두면 분명 쓸 데가 생길 테니 착실하게 받아뒀다.


기름 뽑아내는 작업만 한 시간 반은 걸렸다.


페트병에 잘 모은 기름은 뚜껑을 단단히 닫아 여자 화장실에 가져다 두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원래 피던 외산 담배는 다 피워서 휴게소 매대에 있던 걸로 교체했다.


휴게소엔 국산 담배밖에 팔지 않으므로 입맛에 썩 맞진 않았지만······ 담배가 있다는 게 어디야?


뻐끔뻐끔 연기를 뱉어대던 그는 문득 휴게소 부지 옆 언덕을 보았다.


‘한 번 올라가 볼까?’


저 언덕은 다른 곳보다 지대가 높으니 주변 정찰을 하기에 좋을 듯했다.


진수는 삽과 토치만 챙겨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의 높이는 대충 12~15m쯤 됐다.


경사가 제법 가팔랐는데, 곰처럼 네발로 기니 못 오를 것도 없었다.


“후하!”


그는 이내 정상에 도달했다.


언덕 정상엔 정자가 두 개 있었다.


그중 가장자리 쪽 정자에 서면 맞은편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진수는 납작 엎드려서 마을 방면을 주시했다.


‘조용하구만.’


죽을 사람은 벌써 다 죽었기 때문일까?


마을의 분위기가 어제처럼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공포영화 배경지 같은 을씨년스러움이 감돌았는데, 그런 마을을 배회하는 건 오직 잿빛의 구울들 뿐이었다.


“망할 놈들······. 깽판 다 쳤으면 좀 꺼지지. 왜 아직도 어슬렁거리고 있어?”


진수는 30분 정도 더 마을을 관찰하다가 매점으로 돌아갔다.


이날은 구울이 습격해오지 않았다.


대신 그는 더위란 적과 싸워야 했고, 그건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하루가 흘러 이 미친 사태가 발발한 지도 나흘째가 됐다.


진수는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벌레가 꼬이는 것을 발견하곤 채 먹지 못한 수십 개의 아이스크림을 갖다 버렸다.


아까웠지만 별수 없었다.


그런 뒤엔 구울들의 동태를 살필 심산으로 휴게소 옆 언덕에 올라갔다.


“······.”


구울들은 언제나처럼 마을을 배회했다.


간혹 드넓은 논밭을 가로질러 북상하거나, 혹은 고속도로 저 끝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는 놈도 있었다.


슬슬 빠지려는 것일까?


하기야, 놈들도 먹고 살려면 먹이(생존자)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겠지.


저런 작은 마을엔 먹을 것이 많지 않을 테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반짝.


“읏?”


갑자기 눈이 부셔서, 진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선가 날아든 빛이 눈가를 어지럽힌 것이다.


반짝. 반짝. 반짝.


‘아 씨, 뭐야?’


빛은 계속해서 눈 주위를 맴돌았다.


그는 빛에 이끌려 한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정확히 3초 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 ······헉!”


빨간 벽돌로 지어진 2층짜리 시골식 주택, 그 옥상.


그곳에서 한 사람이 거울로 햇빛을 반사해 이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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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009. 생존자(3) +17 24.08.06 24,466 63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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