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을 얻었더니 승소가 너무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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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호
작품등록일 :
2024.07.3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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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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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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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동상이몽

DUMMY

서초동의 점심시간은 뜨겁다.

사람도 많고 시끄럽고 다들 화가 많이 나 있다.

더구나 반지하도 아닌 깊은 지하에 자리 잡은 식당은 왜 그렇게 많은지.


오늘 점심은 형사팀 정주형과 박정수, 의약팀 구성회 변호사가 뭉쳤다. 세 사람은 시원한 복국을 앞에 놓고 대화를 나눴는데, 셋 다 나름의 이유로 들떠 있었다.


“구변호사한테 밥을 다 얻어먹네?”

“에이, 정변호사님, 저 그렇게 짠 사람 아닙니다. 어쩌다 기회가 없을 뿐이었죠.”


그렇다. 오늘은 구성회 변호사가 형사팀 두 변호사에게 점심을 사겠다고 제안했다.


“우리 차변이 일을 잘해서 그렇죠.”


박정수는 뜨끈한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말투는 심드렁했다. 왠지 입맛이 쓰다.


“그러게, 차민한 조카라며? 일을 어쩜 그렇게 똑부러지게 했지? 윤파마텍 경영관리실장이 직접 나한테 전화했어. 고맙다고 직접 인사받은 건 처음이야.”


구성회는 중요 고객사 법무최고책임자의 연락을 받은 것에 신이 난 상태였다. 실장이 통화에서 말하던 뉘앙스를 보면, 앞으로 큰 계약건도 완승 제약팀에 넘겨줄 듯했다.


“우리 대표님한테도 연락했나보던데? 대표님이 어제 불러서 이야기하더라고. 차변호사 보너스 두둑하게 챙기라고.”


이 말을 마친 정주형이 복국을 들이마시고 크윽~ 감탄을 내뱉는다.


눈살을 찌푸리며 그 장면을 보던 박정수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찾았다.


“두 분, 그거 내 덕인 줄 아세요. 내가 차변한테 요렇게 저렇게 해라, 지시를 잘 내려줬다구요. 그리고 구변호사님 어려운 요청을 내가 받아준 거잖아요. 사실 이 자리의 일등공신은 바로 접니다.”


“그래, 고마워, 박변호사. 내가 윤실장한테도 형사팀 이야기 잘 해놨어.”


구성회는 누가 뭐라든 싱글벙글이다.


“윤실장이 윤파마텍 장남이죠?”

“응, 그 집에 아들이 셋 있는데, 나머지 둘은 아직 경영참여를 안했어. 윤창민 실장이 승계하겠지.”


“회장님은 나이가 좀 있으시다면서요?”

“나도 직접 뵙진 못했네. 회사는 거의 안 나오시고 대표이사가 강신업 사장인데, 전문경영인이야. 당분간 전문경영인체제로 간다는데, 사실상 윤창민 실장이 좌지우지 하지 않을까.”


“언제 윤실장님이랑 자리 좀 마련해줘요. 같이 좀 삽시다.”

“그래, 안 그래도 차율무 변호사에 관해 물어보더라고.”


그 말에 정주형도 숟가락을 놨다.


“이 정도까지 전력을 다해주는 로펌 처음 봤다고, 감동했다는 말까지 했어요. 그러면서 차변 경력이랑 이것저것 묻던데, 내가 뭐 알아야지. 차민한 변호사 조카라는 거나 알지···, 나도 이번 일로 차변을 처음 겪었으니까.”


구성회는 희희낙락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차율무가 원래 그렇게 일을 잘했어요? 지난번 무슨 사건 잘했다는 소문은 듣긴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결과도 딱 이틀 만에 내놓은 거잖아요. 그러니 관심이 안 갈 수가 없네요.

내가 좋은 곳 예약해 둘 테니, 차변이랑 다 같이 술이나 한번 합시다.”


드디어 구성회가 은근슬쩍 속내를 비쳤다.


“우리 애한테 관심 가질 필요 없어요, 내가 잘 키우는 중이야.”

정주형이 단칼에 검은 속내를 잘라냈다.


“고마우니까 밥 사고 술 사겠다는데 왜 이래요? 응?”


사실 구성회는 마음이 급했다. 의약팀에서 담당하는 계약검토 건은 상당히 많다. 그리고 소송 역시 특허, 상표 등 지식재산권 관련한 분야가 대부분이다. 이걸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귀찮은 합의건을 형사팀에 떠넘겼다.


형사사건은 넘기겠다고 했지만, 사실 제약회사에서 발생하는 형사사건 자체가 많지 않다.

대표이사 횡령·배임이나 리베이트 사건 정도인데 이런 건들은 대표이사 형사처벌과 연계되어 크게 터지기 때문에 어차피 형사팀과 협업한다.

따라서, 박정수의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의외로 쉽게 받아 가는 박정수를 보고 의아한 것도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일주일도 안 돼 사건이 일단락났다.

그것도 합의금 한푼 지급하지 않고 상대방으로부터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는 비밀유지협약을 받아낸 것이다.


이렇게 되니 조금 욕심이 났다. 의약팀에도 형사 변호사가 있으면 유용하긴 할 거다. 제약사에서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리베이트 사건을 의약팀에서 한꺼번에 처리하면 좋지 않겠는가.


‘한 번 만나보고 우리팀에 관심 있나 확인해 봐야지. 안 그래도 형사팀에서 구박당했다는 뒷말이 있으니까.’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구성회는 박정수와 이야기했던 것은 깡그리 무시하고 오히려 윤파마텍 눈에 든 차율무를 영입해서 의약팀을 키울 꿈에 부풀었다.


다른 두 사람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오가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동상이몽에 사로잡힌 점심시간이었다.


***


대전 재판에 다녀온 후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에 식당에 들렀다. 굳이 사무실로 돌아갈 필요는 없지만 최근 윤파마텍 합의니 상고이유서니 새로운 일들을 처리하느라 기존의 사건 처리가 조금씩 지연되고 있었다.


들어가서 얼른 일을 쳐내자는 생각에 간단히 국수를 시키고 창밖을 바라봤다.


주식 테스트나 해볼까.

핸드폰을 꺼내 주식앱을 여는데, 옆 테이블의 통화소리가 자연스레 귀에 들어왔다.


“그 민원인은 제가 내일 출근해서 전화할게요. 네네, 죄송합니다.”

젊은 여자였는데, 화장기없는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상담은 했는데요, 크게 도움은 안 되네요. 이미 기소유예 받은 거라 더 이상 이의절차가 없대요.”


여자는 한참 동안 상대방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네, 내일 감사팀에 제가 찾아갈게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님.”


여자는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가 시킨 음식과 율무가 시킨 음식이 동시에 나왔다.


음, 향긋한 냄새.

msg 맛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냄새가 위를 자극했다.

한참 정신없이 먹다가 옆테이블을 보니 여자는 입맛이 없는지 먹는 둥 마는 둥 해서 차게 식은 국수가 잔뜩 불어 그대로 남이었었다.


아마도 변호사 상담을 하러 왔다가 실망한 모양인데?


서초동에서 흔하게 보는 광경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서초동에 변호사쇼핑을 오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요즘엔 그나마 인터넷 상담이 활성화된 편이다.


흘깃 보니 여자는 수저를 놓고 가방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꺼내 읽었다.


A4용지가 일반우편봉투에 들어갈 수 있도록 두 번 접힌 모양을 보니, 전형적인 처분통지서나 재판결과통지서인데.


순간 약하지만 찌르르한 느낌?!


뭐야, 어쩌라는 거야? 밥 먹다가 사건수임이라도 하라는 건가, 아니면 법률상담을 하라는 건가?

뭐든 간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데?

난감하다.


그때 건너편 자리를 치우고 쟁반 가득 더러운 식기와 남은 찬을 담아 움직이던 아주머니가 바닥에 쏟아진 물을 밟고 미끄러지려 했다.


불안한 눈으로 아주머니를 보고 있던 율무가 늦지 않게 일어나 아주머니가 넘어지지 않게 붙잡았다.


“아우, 고마워요. 손님들한테 다 튈뻔했네. 너무 고마워.”

아주머니는 연신 인사를 하고 조심스럽게 주방으로 걸어갔다.


하마터면 오물을 뒤집어쓸 뻔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는지 여자가 율무에게 살짝 묵례하며 ‘고맙습니다’ 라고 낮게 말했다.


율무는 잠시 망설이다 말을 걸었다.

“저기요.”


여자가 쳐다보는 눈길이 차갑다.


“제가 바로 옆 건물에 근무하거든요. 의도치 않게 통화를 들었는데, 혹시 상담하고 싶으시면 연락주세요. 기소유예 다툴 방법이 있긴 하거든요.”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던 여자의 눈이 마지막 말에 살짝 풀어졌다.

율무는 꾸벅 인사하고, 민망한 마음에 얼른 국숫집을 나왔다.


사무실로 돌아와 양치를 하고 막 앉자마자, 내선 전화가 울렸다.


“변호사님에게 상담하러 오셨는데요.”

혹시 아까 그분?


“젊은 여자분인가요?”

“네.”

“들여보내 주세요. 아는 분이에요.”


이 사건에 촉이 온 건 무슨 이유일까.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 육감이 발동되는지 알 수 없으니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다.


특별한 감각이 오는 사건은 모두 건드려보는 거다.

그분의 뜻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어떤 식으로 자신의 육감이 발현되는지 데이터를 쌓을 필요도 있었다.


잠시 후 여자가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두 사람은 직원이 내준 시원한 커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리 예약도 안 했는데···. 제가 다시 서초에 오려면 연차를 써야 해서요.”


“네, 저는 차율무 변호사라고 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김정원입니다.”


“처분서 갖고 계셨죠? 좀 볼까요?”

여자는 가방에서 한 장짜리 종이를 꺼내 건넸다.


[피의사건처분결과통지서]였다.


[결정죄명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죄.]


[결정결과는 기소유예.]


죄명은 복잡하지만 한마디로 인터넷에 글을 쓴 게 문제된 사건.


“제가 공무원이거든요. 인터넷 검색해 보면 기소유예도 나쁘지 않다, 뭐 이러는데, 제 경우는 감사부서에 알아보니 기소유예면 죄가 있다고 인정된 것이어서 징계위원회가 열린다고 하네요. 그래서 방법이 있나 찾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댓글 다신 건가요?”

“네, 제가 공무원 수험생활 할 때 쓴 댓글인데, 벌써 6년 전이에요. 댓글 달고 저도 잊어버렸는데, 석 달 전에 경찰에서 연락이 왔어요.”


“댓글 내용은 뭡니까?”

여자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창피함에 붉어진 얼굴. 정통망법상 명예훼손, 소위 인터넷 댓글로 수사를 받는 경우 이런 반응이 흔하다. 오프라인에서 자신이 인터넷에 쓴 글을 보면 대부분 부끄러워한다.


인터넷상의 자아와 실제 자아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많다. 아이디와 IP주소를 보면 자신이 쓴 것이 명백함에도 아니라며 끝까지 부정하기도 하니까.


“흠, 제가 성지완 선수 팬이거든요.”

“피겨 선수 성지완이요?”


“네, 6년 전에 쓴 댓글은, 성지완 선수가 성적조작을 했다는 글에 반박한 내용이거든요. 저는 성적조작은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댓글을 달았구요.”


김정원 의뢰인이 쓴 정확한 댓글 내용은 이랬다.


- 샤미르 사단의 성적조작의 수혜자가 성지완라고 치자. ○○○ 선수도 월 3천에 유학 갔는데 왜 성적이 고따위였지? 일본 △△△ 선수도 있었는데 샤미르가 그렇게 신이나 마찬가지 존재라면 왜 그 선수 결선 진출도 못 시켜줬는지?


“그런데, 저 전체 문장 중 ‘샤미르 사단의 성적조작의 수혜자가 성지완’이라는 부분만 발췌해서 고소를 했더라구요.”

“성지완 선수 측에서요?”

“네. 인터넷 비방글이 많다 보니 몇년치 한꺼번에 모아서 일괄 고소했더군요.”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에게 고소당한 팬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율무는 핸드폰을 꺼내 성지완 댓글 고소를 검색했다. 몇 달 전 보도된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네티즌들은 모두 고소를 응원하고 있다는 기사 제목도 보였다.


“제 댓글 전체를 보면 성지완 선수를 두둔하는 내용이라 죄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데 기소유예가 나온 거죠.”

김정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기소유예를 무혐의 처분과 엇비슷하게 바라보는 것은 오해다.

기소유예가 일종의 불기소 처분으로 흔히 피의자한테 ‘유리한’ 처분으로 받아들여지곤 하지만, 엄밀히 따져 ‘범죄는 성립했다’는 수사기관 판단이 내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원 의뢰인의 경우처럼 무고함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기소유예 처분은 오히려 ‘불명예’로 남을 수 있다.

특히나 공무원의 경우라면, 기소유예는 죄가 있다는 판단을 받은 것이기에 불이익한 징계처분을 받게 된다.


“변호사님, 방법이 있을까요?

오전에 두 군데 상담했는데, 한군데는 변호사 얼굴은 보지도 못했어요, 사무장과 상담했습니다.

한군데는 변호사님을 뵈었는데, 기소유예는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고소인과 고발인의 경우 기소유예에 대해 검찰항고와 재항고라는 불복절차가 있지만, 피의자의 경우는 기소유예에 대한 불복절차가 없거든요.”


“아,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말 억울해요. 인터넷에 비방 댓글이나 다는 사람으로 직장에 소문나는 것도 싫구요.” 김정원은 감정이 북받치는지 눈에 살짝 물기가 보였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정말요?”


“헌법재판소로 가보죠.”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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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을 얻었더니 승소가 너무 쉬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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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제24화. 낭만과 역사가 있는 삶 +3 24.08.20 4,897 132 13쪽
23 제23화. 달콤한 제안 +3 24.08.19 5,024 129 14쪽
22 제22화. 이의있습니다 +2 24.08.17 5,066 130 13쪽
21 제21화. 보리굴비 +4 24.08.16 5,050 130 13쪽
20 제20화. 내기 +3 24.08.15 5,097 129 12쪽
19 제19화. 꿈 +5 24.08.14 5,144 132 14쪽
18 제18화. 대법원 선고 +2 24.08.13 5,279 142 15쪽
17 제17화. 독스타그램 +5 24.08.12 5,252 135 15쪽
16 제16화. 호떡 뒤집기 +4 24.08.11 5,313 138 14쪽
15 제15화. 한의원 +3 24.08.10 5,375 131 12쪽
14 제14화. 하한가 +4 24.08.09 5,521 136 12쪽
13 제13화. 세상은 얼렁뚱땅 +9 24.08.08 5,585 135 13쪽
» 제12화. 동상이몽 +5 24.08.07 5,669 139 13쪽
11 제11화. 블러핑 +3 24.08.06 5,669 139 12쪽
10 제10화. 위기일발 +3 24.08.05 5,736 131 13쪽
9 제9화. 블랙? +4 24.08.04 6,091 147 14쪽
8 제8화. 너만 믿는다? +4 24.08.03 6,520 151 12쪽
7 제7화. 수제비 +8 24.08.02 6,696 156 12쪽
6 제6화. 행운의 복권 +8 24.08.01 6,789 188 12쪽
5 제5화. 대박촉이 왔다 +3 24.08.01 6,964 163 12쪽
4 제4화. 보복협박문자 +5 24.07.31 7,320 160 11쪽
3 제3화. 형사팀 +6 24.07.30 7,614 164 13쪽
2 제2화. 촉이 온다 +6 24.07.30 8,134 183 15쪽
1 제1화. 第六感 +12 24.07.30 9,791 17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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