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조상신이 도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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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훤
작품등록일 :
2024.08.0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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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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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이 쌓이면 덕이 되고 덕이 쌓이면 복이 된다

DUMMY

조정 기일.


작은 방에 모여서 대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맞은편에는 미영이와 내연남 백도현 교수님이 계셨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한 얼굴로 나타날 수 있을까?

가르친 제자의 와이프를 가로챌 생각을 하지?


사실상 조정 협상은 변호사가 알아서 진행했다.

사전에 조정한 내용을 확인하고 결정하는 정도의 절차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정작 당사자들은 멀뚱멀뚱 가만히 앉아있기만 할 뿐이었다.


“우진아.”

“···.”


역겨운 말투에서부터 소름이 돋는다.

원래는 중저음의 매력적인 보이스라 생각했었지만.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목소리가 되어버렸다.


“미안하게 됐다.”

“어떻게 그러십니까?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뭐라 할 말이 없구나. 그래서 최대한 섭섭지 않게 챙겼으니까···.”

“예? 뭐라고요? 위자료 말씀입니까?”


뭐 수십억이라도 주는 줄 알겠네.

그걸로 내 인생이 달라진다면.

솔직히 조금은 위안이 되었을까?


고작 몇천만 원.

그걸로 내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렸다.

미영이를 잃은 건 둘째치고.


가정을 파탄 내고.

한 사람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더 열 받는 건.

이 사람들의 태도였다.


저 뻔뻔하기 그지없는 모습.

뭐가 그리 당당할까?

자기들은 법적으로 아무런 저촉되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자료도 법에 명시된 대로 최대한 너그럽게 협상해서?


좆 까라 그래.


“교수님. 미영이랑 지옥에나 떨어지세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주였다.

하,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고작 저딴 말이나 한단 말이야?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네만. 사랑이 죄는 아니잖나.”


막장 드라마에서 저런 대사가 나왔을 때 깔깔대며 웃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저런 미친 소리를 한단 말인가.

그렇게 작가를 비웃었었는데.


지구 작가는 그보다 더 대단한 일들을 지어내고 있다던데.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역겨우니까 더는 말 걸지 마세요.”

“차우진. 너 교수님 앞에서 무슨 말버릇이야?”

“전미영. 너도. 한순간이나마 널 사랑했다는 게 미치도록 역겨우니까.”


그 이후에는 깔끔한 조정으로 이어졌다.

충분한 위자료와 재산분할까지 우리측 변호인이 요청한 것을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마치 우리가 너그러이 받아들일 테니.

너는 그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서 돌싱남의 생활을 만끽하면 된다는 듯이.


“고생하셨습니다. 그래도 제일 힘겨운 부분을 이겨내셨어요.”

“그런가요?”

“네. 당사자와 대면하는 게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죠. 저···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변호사와 헤어졌다.

알아서 잘 처리해 주겠지.

집은 대출을 많이 끼고 사긴 했지만 미영이 쪽에서 해준 거다.

가져갈 줄 알았는데.


마지막 선물이라는 듯이.

나에게 주어졌다.


작은 아파트.

그게 어딘가.


위자료도 대략 전부 다 해서 5천만 원 정도 받기로 했다.

변호사 말처럼.

이게 가장 힘든 부분이었으면 좋겠다.



*



변호사가 거짓말했다.


가장 힘든 부분은 지금부터였다.

혼자된 기분.

단란한 가족을 꾸리며 어떻게든 꿈을 향해 나아가던 삶이 무너진 지금.


불면증에.

하루에도 술을 셀 수도 없이 마셔댄다.

그렇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어쩌면 당연하겠지.

이혼 전문 변호사라고 해도.

직접 이혼을 당해본 건 아니니까.


이혼 이후의 삶이 얼마나 힘겨운지.

모를 만했다.


입시학원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걸려 온다.

학원에 가고 싶은 생각조차 없다.

아니, 있어도 이 몸으론 가도 쓰러지기밖에 더 하겠는가.


이제 떨어질 나락도 없는 듯했다.

그냥 콱- 죽어버릴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스치자 아직 남은 인연이 스쳐 지나갔다.


가족, 지인, 친구.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드디어 내 몸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모양이다.

이틀 동안 잠을 못 잤으니.


씻지도.

자지도.

먹지도 않고 술만 퍼마셨다.


이제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눈이 서서히 감긴다.

어깨가 무언가가 짓누르는 듯한 느낌에 정신을 잃었다.



*



“쯧. 고약한지고.”

“누구··· 세요?”


주변을 둘러보았다.

청명한 하늘에 구름 몇 점이 떠다니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하늘에 떠 있는 걸까?


그리고 더 이상한 건.

내 앞에 구름을 타고 나타난 신령 같은 사람.


“착해빠진 심성은 어디 안 가는구나.”

“예?”

“세월이 흘러도. 우리 가문의 본성은 이어지는구나 싶어서 그렇다.”

“신령님이세요? 저··· 혹시 죽었나요? 술을 좀 많이 마시긴 했는데.”

“죽긴. 누가 죽어! 예끼! 생각도 말 거라.”


죽지 않았다면.

개꿈이구나.


“선행은 쌓이고 쌓여 덕이 되고. 덕은 쌓이고 쌓여 복이 되는 것이다.”

“선행··· 덕? 복이요?”

“우리 가문은 대대로 선행을 쌓고 덕을 쌓으며 그 연을 이어갔다. 그리고 결국에는 전부 복으로 돌아왔지. 너도 다르지 않다. 착한 심성 덕분에 복을 받는 게지.”


복을 받는다라.

솔직히 기분 좋은 소리였다.


복 받는다는데 싫을 사람이 어딨겠는가.

근데 은근히 찔렸다.


선행을 베푼 것은.

내가 착하기 때문이 아니라.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착한 사람 증후군 때문이다.


우러나와서 베푼 선행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그 복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있다. 있고말고. 우러나와서 베푼 선행은 덕이 되고. 우러나오지 않은 선행은 똥이 된다더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선행은 선행이란 말이다. 어떤 마음가짐이건. 그 또한 네 심성이고 선행이며 덕이며 복이란 뜻이다.”

“아···.”

“이때까지 고생하지 않았느냐. 저 바닥까지 내려갔잖느냐. 이제 올라가야지. 복이 있을 것이다.”


복이 있을 것이다.

참으로 위로되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떤 복이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미영이를 돌려줄까?


이미 망가져 버린 미영이가 돌아온다고 한들.

마냥 기쁠까?


“인연으로 받은 상처는 인연으로 아무는 법이다. 돈으로 받은 고통은 돈으로 푸는 법이고.”

“로또 번호라도 알려주시렵니까?”

“오. 로또 번호라~ 잠시만 기다려 보거라.”


순간 진짠가? 싶었다.

신령은 주머니를 뒤지며 무언가를 찾는 시늉을 했다.


“까먹고 안 가져왔네.”

“아.”

“낙심하지 말거라. 그런 로또보다 더한 복이 올 것이니.”

“하하. 그랬으면 좋겠네요. 근데··· 그래도 제 삶이 나아질 거 같진 않지만요.”


그 말을 끝으로 잠에서 깼다.



*



그래도 이틀 만에 숙면했다.

꿈까지 꾸다니.

자기방어 뭐 그런 건가?


죽을 위기에 처한 몸이 신호를 보내서 어떻게든 수습한 듯한 느낌이었다.

대략 시간으로는 5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았는데.


이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띠리리.


전화가 울렸다.

강태준.

입시학원에서 찾는 전화다.

며칠 안 나갔으니.


정신을 조금 차린 걸까?

전화를 받았다.


“예, 형.”

“야! 너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 있어?”

“아뇨. 조금 바빴어요.”

“놀랐잖아.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아냐?”

“죄송합니다.”

“너 오늘은 나올 수 있고?”


걱정은.

땜빵 구하기 어려우니까 어떻게든 출근시키려는 수작이지 뭐.


“나갈게요.”


입시학원도 뭐.

때려치워야지.

학원까지 다닐 여유는 없다.


“지금 갈게요, 형.”

“그래. 다행이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예. 그냥. 뭐. 가서 할 말도 있어서요.”

“그래. 일단 와라.”


전화를 끊고 나갈 준비를 했다.

대충 씻고.

넥타이도 걸치지 않고 정장을 입었다.

머리도 헝클어져 있다.

슥슥- 손으로 빗질했다.


원래라면 완벽하게 다려진 셔츠에.

왁스로 단정하게 꾸민 머리.

요일마다 색상을 달리하는 넥타이까지 갖춘다.


지금은 굳이.



*



학원에 도착했다.

낡고 허름한 건물에 퀴퀴한 냄새까지 난다.


이러니 용을 써도 학생이 안 늘지.


“우진아!”

“태준이 형.”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죄송합니다. 근데 형. 제가 할 말이···.”

“야야. 일단 그건 나중에. 전에 내가 부탁했던 거 있지? 이거 진짜 큰 프로젝트거든? 꼭 좀 부탁한다?”

“예? 지금요?”


떠밀리듯 강의실에 들어갔다.

강태준이 힘은 장사였다.

예전부터.


힘에 못 이겨 억지로 들어간 강의실에는 이미 학생들로 가득했다.

그뿐만 아니라 실시간 전송되는 카메라까지 세팅이 완성되었다.


온라인 수업과 병행하는 프로젝트를 만들겠다며 나한테 도와달라고 했던 기억이 그제야 떠올랐다.

그게 오늘인지는 몰랐지만.


그만두러 왔는데.

졸지에 실시간 강의하게 생겼네.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내가 무작정 안 한다고 나가버리면.

강태준 입장이 곤란해지니까.


마지막으로.

진짜 마지막으로 부탁 들어주고 끝내자.


“여러분. 잘 오셨습니다. 다들 공부하느라 힘들죠?”


그렇게 수업이 시작되었다.

원체 노예계약에 버금갈 정도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며 단련된 강의 실력이라 라이브로 하는 건 어렵지도 않았다.


“여기 지문에 보면 말이죠···.”


무난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이 지긋지긋했던 일도 끝이다.


그런데.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평소의 내가 아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거기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농땡이 피우는 학생이 한둘 눈에 들어왔다.

약간 거만한 자세로 몸을 뒤로 젖히고 팔짱을 끼며 네가 얼마나 잘 가르치는 보자는 식으로 노려보는 학생도 보였다.


이때까지 날 착한 쌤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호구 쌤으로 기억하는 건 아닐까?

나긋나긋하게.

항상 학생들 니즈에 맞춰서 수업에 집중하는 게.

어쩌면 호구라 생각하는 건 아닐까?


“쌤. 여기까지 하시죠?”


사실 강사 일하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여기까지?

감히 어떤 학생이 수업 중에.

그것도 돈 내고 듣는 수업 중에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좀 지겨워서요. 이거 전에도 설명 들은 건데.”

“···.”

“첫사랑 얘기나 해주세요!”


짓궂은 표정.

킬킬대며 친구의 옆구리를 툭툭- 치는 모습까지.


열 받는다.


거기다 뭐?

첫사랑?

내 첫사랑이랑 얼마 전에 이혼했거든?

참 재밌는 경험이었어.


이런 말이 듣고 싶은 건가?

그런 거야?


“아까 전에 설명했던 이 지문. 학생은 맞췄어요?”

“아뇨. 틀렸는데요.”

“···.”

“그거 뭐 하나 틀린다고 대학 떨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걸로 만회하면 되죠.”


가만 보니까.

기억이 난다.

항상 뒤에서 뭐라도 된 사람처럼 팔짱 끼고 나를 노려보던 그 학생이다.

이때까지 딱히 딴지를 걸지 않아서 나도 무시했었다.


나를 무시하는 새끼였다.

처음부터.


“··· 이거 틀린 새끼들은 경고야. 내가 분명히 근현대 문학에서 이 작가 지문은 반드시 숙지하고 의도 파악까지 끝내야 한다고 얘기했지?”


나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올 수 있나?

어제 겪었던 꿈보다 더 꿈 같은 일이었다.


“근데도 틀린 새끼는 위험하다. 내가 위험하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이게 무슨 말인 줄 알아? 넌 안 된다는 거야. 그딴 정신머리로 무슨 수능 공부를 하겠다고. 너 재수지? 그런 정신머리론 넌 삼수에 사수에 오수에 육수까지 질질 흘릴 거다. 차라리 젊을 때 당장 때려치워. 그게 널 위한 길이야!”


말하고 난 뒤에 아찔했다.

이게 지금 정말 현실이 맞나.

아직 꿈을 꾸는 거겠지?

어쩐지.

오늘 너무 개운하긴 했다.

꿈이니까 그렇지.

이틀 밤새고 술에 찌들어서 고작 5시간 잤는데 개운할 리가 없지.


그런데.

왜 깨질 않지?


“어··· 음. 계속 할게요. 오늘 나가야 할 진도가 많으니까. 크흠.”


계속 이어서 강의를 진행했다.

무슨 정신으로 진행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들 수고했습니다.”


마무리까지 했다.

근데도 꿈에서 깨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이건 꿈이 아니다.


“씨발. 진짜 조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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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게 된다고? +11 24.08.07 4,151 70 12쪽
» 선행이 쌓이면 덕이 되고 덕이 쌓이면 복이 된다 +6 24.08.06 4,234 75 12쪽
1 착한 사람 증후군 +9 24.08.05 4,986 6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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