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작곡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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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7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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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DUMMY

주홍빛 포장마차.

이제는 대부분 옛 추억이 되어버린 와중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포장마차.

그곳에서 나는 송준식을 만났다.


“태오야, 한잔 받아라.”

“네, 선생님.”


송준식이 내 잔에 초록색 소주병을 기울였다.

꼴꼴꼴 차오르는 소주.

잔을 받은 나는 송준식의 잔도 채워주었다.

그렇게 가볍게 잔을 부딪친 우리는 소주를 마셨다.


‘쓰다······.’


썼다.

무지막지하게 썼다.

원래도 쓴 소주지만 오늘은 더더욱 썼다.

아무래도 내 기분이 씁쓸한 탓일 것이다.


“태오야, 미안하게 됐다.”


잔을 비운 송준식이 내게 말했다.

내가 아르메 엔터에서 쫓겨난 일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었다.


“미안하긴요. 선생님께서 왜 미안하세요.”

“아니다. 선배가 되어서 너 하나를 지켜주지도 못했어. 미안하다, 태오야. 내 잘못이야.”

“아닙니다, 선생님. 선생님 잘못이 아니세요. 그러니 죄책감 갖지 마세요.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선생님께서 사과를 하세요.”

“휴······.”


송준식이 한숨을 내뱉었다.


“선생님, 그나저나 아르메 엔터 상황은 어때요?”

“난리 났다. 태오 네 음악 장비들을 말도 없이 빼버린 것에 다들 충격을 받은 모양이야.”

“그래요······?”

“어. 그 바람에 팀장들이 대표님께 따지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몇 명이 사표를 쓰기도 했어.”

“사표를 썼다고요?”

“그래. 그동안 참은 게 곪아있다가 확 터진 거지. 아마 네가 쫓겨난 게 남 얘기 같지 않았을 거다.”

“그랬군요······.”


팀장님들까지 그렇게 되셨다니.

왠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로즈골드 멤버들도 대표실에 쳐들어갔었단다. 태오 널 복귀시키지 않으면 앞으로 활동하지 않겠다고 했어. 실제로 행사들을 잔뜩 캔슬하기도 했고.”


이 소식은 나도 알고 있었다.

황은비를 비롯한 로즈골드 멤버들이 내게 문자와 연락으로 알려주었으니까.


“걱정이네요. 그러면 대표님뿐만 아니라 로즈골드 멤버들한테도 피해가 갈 텐데.”

“그러게 말이다. 그렇게 펑크내면 다시 불러주지 않으니까.”


하아.

곽기백 한 명 때문에 난리네, 난리야.


“그나저나 대표님은 뭐라고 하세요?”

“꿈쩍도 안 하더구나.”

“그래요?”

“어. 사표낸 사람들은 어차피 자를 사람들이라고 했고, 또 태오 네 빈자리는 좋은 작곡가 하나 사 오면 되는 거 아니냐고 뻗대는 중이야.”

“하하, 대표님답네요.”

“그래. 대표님답다. 정말 대표님다워서 혐오감이 들 정도야.”


송준식이 자작을 했다.


“그래서 나도 회의감이 많이 들더구나.”

“선생님도요?”

“그래. 대표님이 엔터업계에 대해 모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어. 작곡가의 음악 장비를 허락도 없이 건드리다니. 그건 예술가에 대한 존중이 아예 없는 거잖아.”

“그렇죠······.”

“어. 그래서 나도 회의감이 많이 들더구나.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아르메 엔터를 위해 헌신한 건가 싶었어.”

“선생님 심정도 이해가 되네요.”


나는 송준식의 빈 잔에 소주를 채워드렸다.

그렇게 안주로 시켜둔 꼼장어 볶음이 삐들삐들 말라가던 중.

송준식이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SN 엔터 입사 테스트는 잘 치렀니? 이 대표님께 듣자 하니 메일 보냈다던데.”

“아, 네. 나름 열심히 해서 보냈습니다.”

“곡은 잘 빠졌어?”

“제 마음에는 드는데요, 신성진 가수님이 마음에 들어 하실지는 모르겠네요. 하하.”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분명 마음에 하실 거다. 태오 네 곡은 좋으니까.”

“감사합니다, 선생님.”

“으응. 그나저나 곡명이 뭐야?”

“아아, <까마귀의 꿈>이에요.”

“<까마귀의 꿈>? 제목이 꽤 특이하네?”


송준식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하, 네. 신성진 가수님에 대해 조사하다 보니까 최근에 가슴 아픈 일을 겪으셨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영감으로 삼아서 작업해 봤어요.”

“그렇구나. 신기하네. 제목도 특이하고.”


송준식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번에 꼭 잘 되어서 SN 엔터에 입사하면 좋겠구나.”

“네, 선생님.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래. 네가 SN 엔터에 입사하면 모든 게 다 잘 풀리는 거야. 네 인생도 펴는 거고, 아르메 엔터 대표님한테도 복수하는 거고.”

“그렇죠. 저도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작업했어요.”

“잘했어. 꼭 붙어라, 태오야.”


송준식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의 응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씁쓸한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 * *


SN 엔터 사옥.

궁전과도 같은 이곳의 한 작업실에 가수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신성진’.

발라드의 황태자라 불리는 그는 새로운 앨범을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 한번 들어볼까?”


데뷔한 지 30년도 더 지난 그는 자신이 낼 곡들을 전부 직접 골랐다.

그렇기에 지금도 SN 엔터 A&R팀에게 전달받은 곡을 들어보려 했다.


“이야, 100개도 넘네. 이걸 언제 다 듣냐.”


신성진은 헛웃음을 치며 음원 파일들을 차례로 재생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울려 퍼지는 노래들.

그것들은 대부분 느릿한 발라드였다.

물론 중간중간 살짝 빠른 템포의 댄스곡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발라드였다.

발라드의 황태자인 신성진을 노리고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흐음, 역시 다 사랑 노래네.”


벌써 40곡도 넘게 들은 신성진.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맛을 쩝 다셨다.

아무리 발라드의 단골 주제가 사랑이라지만, 너무 죄다 사랑 타령이었다.

사랑해서 미치겠고, 사랑해서 죽겠고, 사랑해서 떠나주고.

뭔 놈의 사랑 얘기가 이렇게 많나 싶었다.


“퀄리티는 다 좋은데 느낌이 오는 게 없네.”


신성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SN 엔터 내 작곡가와 해외팀에 의해 추려진 곡들이기에 퀄리티는 뛰어났다.

대부분이 타이틀곡으로 삼아도 될 정도의 하이 퀄리티.

하지만 신성진의 마음을 울리는 곡은 없었다.


“괜찮은 것 좀 없으려나. 삘이 딱 꽂히는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신성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음원 파일들을 계속해서 재생했다.

그러나 여전히 뻔한 사랑 노래들뿐이었다.

노래도 좋고, 열심히 한 티도 나지만 느낌이 확 오지 않는 곡들.

그동안 자신이 냈던 곡들을 레퍼런스 삼아 적당히 만들어낸 곡들.

그런 곡들에 신성진은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그때였다.


“응? 이건 뭐야?”


음원 파일들을 건성으로 듣고 넘기던 신성진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이 ‘사랑’이란 키워드를 넣은 곡들 사이에서 특이한 곡명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까마귀의 꿈>이라고? 제목이 뭐가 이래?”


너무나 뜬금없는 제목.

수십 년 동안 가수 활동을 하면서 처음 들어본 곡명에 신성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들어볼까?”


맘 같아선 그냥 패스하고 싶었다.

솔직히 노래는 제목만 들어봐도 아는 법이고, 이 곡의 제목은 그리 맘에 들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일단 들어나 보자는 마음에 클릭한 음원 파일.

거기에서 클래식 피아노 반주와 함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주름 깊게 새겨진 손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그 손길

차가운 밤마다 지켜주셨던 품

그 따스함 속에 내가 자라났네


“어?”


가사를 들은 신성진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사가 사랑에 대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 어린 날의 철없던 꿈들

난 몰랐네, 사랑의 무게를

그 무거운 짐 홀로 짊어지니

어머니의 눈물 마르지 않으셨네


어머니.

그 단어가 나오자 신성진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렇게 신성진이 숨을 죽인 와중에 <까마귀의 꿈>은 절정을 향해 달렸다.


- 까마귀의 날개 아래 숨겨진

그 큰 사랑 이제야 깨달아

어머니의 눈물, 내게 남겨진 빛

이제 내가 지킬게, 그대의 길을


후렴구의 훌륭한 멜로디와 감동적인 가사.

그것을 들은 신성진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 긴 세월 지나 내가 자라났고

어머니의 손길 점점 약해지네

그 많은 고통 속에서 버텨줬던

그 여린 마음 이제 내가 안아줄게


그러한 신성진의 작업실에 2절이 울려 퍼졌다.


- 세상이 힘들어 잊기로 한 그대

이제는 내가 그대의 빛이 될게

어머니의 사랑, 나를 키운 힘

이제부턴 내가 그댈 지킬게


클래식 피아노의 웅장한 반주와 함께 흘러나오는 가사.

그 가사가 신성진을 완전히 마비시켰고, 곧이어 피니시를 날렸다.


까마귀의 날개 아래 숨겨진

그 큰 사랑 이제야 깨달아

어머니의 눈물, 내게 남겨진 빛

이제 내가 지킬게, 그대의 길을


또 한 번 터져 나오는 후렴구.

2절의 후렴구까지 들은 신성진은 그제야 이 곡의 의미를 깨달았다.


-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고백

어머니, 정말 감사해요 사랑해요

그대 나를 까맣게 잊는대도

이제 내가 곁에서 지켜줄게요


절절한 슬픔이 묻어나는 브릿지.

그와 함께 곡의 감정이 천천히 정리되었고, 이윽고 아웃트로가 흘러나왔다.


- 까마귀의 날개 아래 숨겨진

그 사랑을 이제 내가 이어가요

어머니의 숨결, 내게 남겨진 힘

영원히 지킬게요, 그대의 곁을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마무리되는 곡.

그 연주가 끝났음에도 신성진은 움직이지 못했다.

곡의 가사에 완전히 압도됐기 때문이었다.


“이, 이거 뭐야······?”


겨우 정신을 차린 신성진이 눈을 연신 껌뻑거렸다.

믿을 수 없었다.

곡이 좋아서?

그것도 맞다.

반주와 멜로디는 너무나 좋았다.

가상 악기의 조합과 가이드 보컬의 애드리브도 너무나 적절했다.

하지만 신성진이 가장 꽂힌 부분은 가사였다.


“이건 꼭 내 상황을 다 알고 만든 것 같잖아······?”


<까마귀의 꿈>.

이 노래는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신성진을 완전히 감동시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근 신성진의 모친은 치매 판정을 받았고, 그 때문에 신성진은 마음이 너무나 아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는 마치 자신의 사정을 모두 아는 것 같았다.


“특히나 이 부분이······.”


신성진은 음원 파일에 첨부된 가사집을 보았다.

그중에서도 신성진이 가장 감동받은 부분은 ‘세상이 힘들어 잊기로 한 그대’였다.

어릴 때부터 파출부, 식당 일, 화장실 청소까지 안 해본 일이 없는 신성진의 모친.

그런 모친이 치매에 걸린 것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치매라는 질병을 ‘세상이 힘들어 잊기로 했다’라고 표현하다니.

신성진으로선 소름이 오소소 돋는 일이었다.


“반포지효라는 고사성어를 주제로 만들었다고?”


<까마귀의 꿈> 폴더에는 노래의 주제에 대한 설명이 간단하게 첨부되어 있었다.

반포지효.

까마귀는 태어난 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다 자라면 자식이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갖다준다는 뜻의 고사성어.

그토록 지극한 효심을 주제로 만들어보았다고 쓰여있었다.


“······.”


신성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사람은 뭘까.

뭔데 이런 주제로 노래를 만든 걸까.

마치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말이다.


“이 사람 이름이 뭐지?”


어안이 벙벙했던 신성진은 <까마귀의 꿈>을 보낸 작곡가의 이름을 살폈다.

누굴까.

SN 엔터 작곡가인가?

아니면 해외팀?

신성진은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작곡가 정보를 찾아보았다.


“······유태오?”


그런데 크레딧엔 처음 보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태오?

이게 누구지?

신인인가?

처음 들어본 이름에 신성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름값이 중요한 건 아니지.”


물론 상관없었다.

신인이든, 무명이든, 기성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이 <까마귀의 꿈>이라는 가사가 신성진의 마음을 완전히 녹여버렸다는 점이었다.

모친의 치매로 인해 곪고 썩었던 신성진의 마음을 치유하기도 했고.


“좋아. 결심했어.”


그래서일까.

신성진은 <까마귀의 꿈> 폴더를 따로 빼놓으며 결심했다.


“이걸로 간다.”


차기 앨범의 타이틀곡을 <까마귀의 꿈>으로 정하겠다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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