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에서 최종보스는 잡화점을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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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피아재
작품등록일 :
2024.08.14 15:09
최근연재일 :
2024.08.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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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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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

DUMMY

계산대 위로 팔꿈치를 올린 그녀의 표정은 한껏 구겨져 있었다.


쓰고 있는 각진 뿔테는 그녀의 올곧은 성격을 대변했는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툭툭 치는 행동을 보자면, 그녀가 꽤 분노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몇 번이나 라울에게 목소리를 높인 그녀는 미헬.


아니무스 탑과 잡화점이 있는 영혼의 차원을 오고 다니는 일꾼이며, 온몸이 연보라색을 띠고 날카로운 꼬리가 달린 서큐버스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저 꼬맹이를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잖아?”


미헬은 눈살을 찌푸리며 활짝 열린 잡화점 문밖을 바라봤다.


그러자, 어린 고블린이 작은 덩치에 어울릴 기합을 내지르며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60레벨인 그녀가 보기에 조잡하게 찌르고 베는 모습은 어설프다 못해 귀여웠다. 때문에, 그녀는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 라울을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그렇지. 유저를 죽이면 어쩌자는 거죠?”


“쯧.”


그녀의 잔소리는 벌써 20분째였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라울도 슬슬 짜증이 났는지, 미간을 슬쩍 찌그렸다. 그러나 투명한 안경알 뒤로 보이는 그녀의 매서운 눈빛을 보고는 이내, 고개를 숙였다.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경솔한 짓 하지 말라고.”


“그랬지.”


“그런데 승인 없이 탑을 가고, 유저를 죽여요? 그것도 궁극기를 써서? 참나.”


‘악몽의 화염’


지금도 라울 몸에 흐르는 나이트메어의 힘을 순간적으로 발산하는 마법으로 그저 하나의 대상을 죽이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를 소거시키는 궁극기였다.


미헬은 이마에 두툼한 핏대까지 세우다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라울은 계산대 옆에 놓인 작은 협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꽃무늬가 가득한 찻잔에 허브티를 우려냈다.


“그만 열 올리고, 이거나 좀 들이키게. 이미 일은 엎질러졌는데 어쩌겠나?”


라헬은 그가 건넨 찻잔을 받고는 입을 대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어요. 아마도 조치가 있을 테니, 그때까지 근신하세요.”


“알겠네.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라울은 한시름 넘겼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이내 손으로 턱 끝을 매만지며 라헬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저 녀석은 어쩌지? 보육원도 요즘 꽉 찼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니무스라는 게임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그 사회성이나 대인관계를 실제와 가깝게 구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그것은 몬스터가 속한 세상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들도 인간처럼 가족 단위를 이루고 아이를 낳았다.


그런 이유에서 어린 고블린처럼 부모를 잃는 아이들도 종종 있었는데, 그들이 먹고 자며, 교육을 받는 곳이 보육원이었다.


“휴···. 그러게요. 도대체 요즘 무슨 일인지······.”


“그래. 나도 그게 궁금하다고.”


라울은 라헬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팔꿈치를 계산대에 올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몬스터들이 왜 계속 죽어 나가는 거지? 탑에서는 어디까지 알아냈나.”


그녀는 대답에 주저함이 없었다.


“모르겠어요. 알아도 당신한테는 말 못 하고요.”


“참나.”


라울은 어제 일로 라헬이 자신에게 꿍해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얼음처럼 차가운 그녀의 태도에 기분이 상했지만, 애초에 거짓말할 여인은 아니기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뭔가 알아내면 꼭 알려주라고. 그래야지 내 역할을 제대로 할 것 아닌가?”


거대한 탑이 날개가 꺾여 떨어진 악몽의 용에게 내민 협상카드.


그것은 새로운 최종 보스가 탄생할 때까지, 리스폰 구역에서 몬스터를 도울 것. 그게 라울의 잡화점 역할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끝마치면, 마침내 현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무튼, 저 꼬맹이는 당분간 당신이 맡아 주세요.”


“뭐?”


라울은 양손을 허공으로 들더니, 얼굴을 구기며 입을 벌렸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여긴 혼자 지내는 것도 비좁은데, 거기다가 혼자 지낸 지 너무 오래됐다고. 누구랑 같이 있는 건 여간······.”


“됐고요.”


라헬은 비정하게 그의 말을 뚝 잘라냈다.


“너무 많은 걸 봤잖아요.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면, 당신이 더욱 난처하잖아요. 그렇죠?”


라울은 눈동자를 위로 치켜뜨고 변명거리를 생각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러니 자기 앞가림할 정도까지는 봐주세요.”


“쯧.”



.

.

.



라울과 어린 고블린이 마법진 앞에 도착하자, 반투명한 푸른빛 기둥이 위로 솟았다.


좋던, 싫던 당분간 녀석과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어린 고블린에게 이름이 필요했다.


“앞으로 제이라고 부르마. 알겠니?”


“제이. 응. 좋아.”


제이의 부모는 녀석에게 이름을 채 붙여주기도 전에 죽었다.


그래서 그저 엄마, 아빠 이름의 앞 글자를 따서 제이라고 지어줬다.


라울은 빛바랜 방패 하나를 찾느라 애먹었다.


그것은 오래전에 수집한 것으로 좁은 잡화점 안에서도 가장 깊고 구석진 곳에 박혀 있었다.


“제이. 그 방패를 내려두고 이걸 들어라.”


녀석은 말똥한 눈빛으로 자신이 든 방패와 라울이 든 것을 번갈아 봤다. 그러다가 이내 자신이 든 방패가 부모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나, 별다른 추억거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좋다. 알. 았다.”


제이는 라울이 건넨 방패를 두 손으로 집더니, 앞으로 뒤집고는 눈으로 천천히 훑었다.


그 방패는 원래 자기가 들던 방패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딱 하나 빼고.


“이거. 가운데. 뭐냐.”


녀석은 손가락 하나로 방패의 정중앙을 가리키며 라울을 쳐다봤다. 그리고 거기에는 별처럼 반짝이는 빨간 보석 하나가 박혀 있었다.


“고급 루비다. 네 녀석 레벨에서는 견줄만한 방패는 없지.”


제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쥔 루비가 박힌 방패.


그것은 오랜 과거.


마법사로서 탑을 누비던 라울이 직접 제작한 방패였다. 물론, 초급 아이템으로 5레벨 정도까지 사용했지만, 어린 고블린에겐 가히 최강이었다.


심장을 꿰뚫는 빛을 두른 화살이나, 시퍼렇게 날이 선 검도 막아낼 수 있을 터.


그는 제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자연스레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라울이 운영하는 잡화점은 그랬다.


그가 아니무스 세상을 탐험하며 수집하고 제작한 아이템, 마왕으로서 군림했을 때 지니고 있던 마물이 가득했다.


물론, 물약과 같은 소모품은 탑 측에서 매일 배송을 받았다.


그는 벌써 며칠째 잡화점을 쓸고 닦으며 정리하고 있지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크고 작은 아이템들이 몇천 개나 되니까.


참고로 아무리 강력한 아이템이라도 몬스터의 레벨에 맞춰 줄 수 있었다.


예컨대 1레벨 고블린은 흑마력이 깃든 80레벨 흑수정 반지를 착용할 순 없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제이가 휘두르는 귀여운 칼날에 라울은 갈기갈기 찢길 게 분명했다.


“조금 전 들었는데, 레벨 제한을 5까지 내렸다고 하더구나. 그래도 항상 방패를 놓치지 말거라. 알았지?”


“그래. 알았다.”


무엇이든 존재가 달라도, 말이나 눈빛이 몇 번 교차하면, 정들기 마련이었다.


라울은 탑에 최상층을 지키던 마왕으로서, 정을 마음에서 지운 지 오래였다. 그러나 우연히 그의 마음 한편을 비집고 들어온 고블린 하나.


그 작은 존재 혼자서 드넓은 바닐라 숲을 누빈다고 생각하니, 작은 돌덩이 하나가 가슴에 얹힌 듯 무거웠다.


라울은 제이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녀석의 머리에는 보랏빛 머리털이 몇 가닥 없었는데, 두께가 굵고 깊숙이 박힌 모발은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 맞다. 인사.”


제이는 리스폰 구역에서 멈칫하더니, 이내 잡화점 뒤편으로 향했다. 라울도 고개를 숙이며 팔짱을 끼고는 녀석을 뒤따랐다.


그러자 커다란 나뭇잎 사이를 통과한 빗줄기 몇 가닥이 닿은 곳. 그곳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두 개의 무덤이 보였다.


제이는 방패와 단검을 곧게 쥐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훤히 웃으며 말했다.


“안녕히. 자라.”



.

.

.



잡화점은 리스폰 구역 바로 앞에 있으니, 몬스터 눈에 잘 들었다. 영혼의 차원에서도 슬슬 입소문이 났는지, 많은 몬스터가 그곳을 들렸다.


보통은 레벨에 맞는 물약을 샀지만, 어떤 이들은 새로운 무기나 방어구, 장신구를 사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들리는 부류는.


“발목에 이걸 감아보라고. 가능하면 전투는 피하고. 그리고 꼭 병원에 가봐! 어?”


어딘가 다친 환자들이 많았다. 크게 상처를 입었다면 병원에 갔지만, 애매한 경우에는 웬일인지 잡화점에 들렀다.


그도 그럴 것이, 간단한 상비약이나 치료 도구 정도는 잡화점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케이. 오도독.”


한 해골 창병은 어제, 인간과의 전투에서 새로운 기술을 써보려다가 그만 발목을 겹질렸다며, 라울을 찾아왔다.


그는 아프면 병원을 가보라며 미간을 찌푸렸지만, 해골 창병은 그 정도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자네가 의사인가? 참나.”


“아니. 헤헤. 오도독.”


지난 과거를 되짚자니, 인간이던 라울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귓속이 따끔거려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며칠이 지나자 미열과 함께 상당한 통증이 찾아왔다. 그리고 근처 이비인후과에 가자, 하얀 가운을 걸치고 마스크를 쓴 의사가 그를 한참을 노려봤다.


“아프면 곧장 와야지. 왜 이제야 옵니까? 중이염입니다.”


라울은 그 기억을 떠올려, 해골 창병을 한동안 닦달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두개골을 긁적이며 알겠다고 말했으나, 딱히 갈 마음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그가 잡화점을 지킨 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그간 어린 고블린도 방어에 꽤 능숙해졌다. 라울은 녀석에게 공격보다 방어를 주로 알려줬는데, 그 이유는 가족 없이 혼자 다녀야 하는 점. 그리고 아직 어려서 완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말했지? 가만히 들고만 있으면 안 된다. 보통 1층을 거니는 초보들은 원거리 마법을 사용하지. 그러니 견고하게 방패를 들고 조금씩 전진해야 한다. 알겠니?”


“알았. 다요.”


어쨌든, 무엇이든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어제는 자신이 마법사 하나를 귀환시켰다며,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이트메어 드래곤으로서 커다란 대리석 의자에 앉아, 인간들을 마주하고 파멸시키는 것도 성격에 맞았다. 그러나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느긋하게 허브차를 마시며, 쏠쏠한 즐거움을 찾는 것도 썩 나쁘진 않았다.


“계시오······?”


라울이 잡화점 한편에서 주홍 물약의 개수를 확인하고 정리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를 찾았다.


문 앞에 서 있는 몬스터는 온몸이 연초록색으로 물들고, 거대한 송곳니를 드러낸 한 젊은 오크.


그가 한껏 처진 어깨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래. 어서 오라고. 필요한 건?”



.

.

.



“자신감을 올릴 수 있는···. 물약은 없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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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큐버스 24.08.19 18 0 11쪽
3 인간 24.08.16 29 1 11쪽
2 고블린 24.08.16 36 0 11쪽
1 잡화점 24.08.14 7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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