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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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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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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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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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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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이혼 후 나락(1)

DUMMY

오랜만에 꿈을 꿨다.

몸을 좌로 굴려도, 우로 굴려도 떨어지지 않는 킹사이즈의 푹신한 침대 안에서.


희끗희끗한 머리를 한 노인이 잇몸을 환히 드러내며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다가가려 했지만 아무리 달려도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멀리서 마음의 짐을 이제 그만 내려놓고 네 삶을 살아가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나의 사랑.

나의 어머니.


어렸을 적 우리 집안은 평범했다.

아버지가 과로로 인한 간경화가 시작되면서 가세가 기울기 전까지는.


그렇게 마흔 중반의 나이에 세상을 먼저 떠났다.

어머니는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아니면 아버지가 떠나고 가장으로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게 힘들었는지 내가 취업을 하는 해에 맞춰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이미 병든 육체를 내가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을 때 까지 꿋꿋이 버텼던 것 같다.


돈이 없을 때는 효도를 할 수 없었고.

돈이 있어도 이제는 효도를 할 수 없었다.


이제는 세상에 정말 나 혼자였다.


***


침대에서 일어나 리빙룸으로 나가 블라인드를 쳤다.

남향이라 그런지 햇빛이 거실 곳곳을 비추기 시작했다.

따사롭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지나가는 자동차 마저 레고블럭 같이 보였다.

따지고보면 직장인들도 레고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결국에는 누군가의 조종(지시)이 있어야만 움직여지고, 모양을 갖춰가니까.

그리고 그 결과물은 조종(지시)하는 사람이 잘 했느냐 못 했느냐에 따라 천지차이니까.


차이점이라면 직장인들은 지시한 대로 했을 뿐인데 책임을 져야할 때가 있다는 것 정도?


건물 밖으로 비쳐진 자동차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결심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블럭이 되지 않으리라고.


나는 추리닝을 입고 타워펠리스를 나왔다.

어제 흥신소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근처 아울렛에서 필요한 옷가지들을 구입했다.


돈이 많다해서 꾸찌나 텀브라운 따위로 된 추리닝을 살 생각은 없었다.

정장이나 일상복이라면 모를까.

그저 지금처럼 평범한 다이키나 삼디다스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이어팟을 귀에 꽂고는 타워펠리스 앞에 위치한 양재천 길을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시간임에도 조깅하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예전 같으면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갔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사람들과 눈을 가볍게 맞추며 고개를 짧게 숙였다.


분명 이 중에는 이웃들도 있을 것이고 그 이웃 중에는 먼 미래에 내게 도움이 되는이들이 나타날 것이다.


‘미래시’가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부동산과 주식만 해당된다는 것 이었다.

그 사람의 가치마저 평가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마저 가치로만 평가하게 되면 정말 계산적인 사람이 될 것 같아, 이내 고개를 내젓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어?”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여자 한 명이 나를 보며 멈칫거렸다.

사람이라도 잘못본 건가 싶어 나도 잠시 멈추고는 그 여자를 응시했다.


“무슨 일이죠?”


여자는 긴가민가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혹시, 최근에 뽀르쉐 용산점 다녀가신 분 아니신가요?”

“아- 맞습니다.”


낯이 익다했더니, 그 때 그 점장이었나.


“어머, 안녕하세요. 이 부근에 사시나 봐요?”

“네, 뭐. 여기 근처에 잠시 지내고 있습니다.”

“잠시요?”


내년에는 되팔아야하니 잠시가 맞다.

그리고 굳이 내 입으로 타워팰리스에 산다라고 말 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돈을 보고 접근하는 여자라면 딱 질색이니까.


“네, 개인 사정이 있습니다. 그럼, 나중에 차 나오면 다시 연락주세요.”


나는 그 여자를 뒤로한 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나연은 자신을 지나쳐가는 김민규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흐음···”


그의 모습을 보며 이나연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타워펠리스 입주 이후 나만의 하루 루틴을 세웠다.


어느 재벌가 회장님들의 자서전에나 무조건 나오는 내용인 아침을 일찍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조깅을 했고 주식과 부동산에 대해서도 짬짬이 공부했다.


오후가 되면 골프 레슨을 받았다.

나이가 들어보니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또 골프만한 게 없었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흥신소로부터 연락이 온 건 딱 닷새가 지나서였다.


“아이고, 먼 길 오셨습니다.”


흥신소 사무실.

나는 정호석을 마주했다.


“좀 나온 게 있던가요?”

“하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일단 한 번 보시죠.”


그가 묵직해보이는 서류봉투를 건넸다.

봉투에서 수백장의 사진들이 들어있었다.

나는 사진들을 꺼내 차례대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진영이라는 남자가 나흘의 기간동안 무려 두 번이나 민규 씨의 집에 들어가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집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증거가 부족하다.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한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정호석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 다음 사진입니다.”

“그 다음 사진?”


나는 사진을 넘기자 그대로 손이 경직됐다.


하하···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이건 꽤나 충격이네.


나와 주진영의 회사는 광고대행사였던 만큼 클라이언트들과의 외부 미팅이 많았다.

그리고 아내 또한 제약회사의 영업팀에서 근무했던 터라 일정 주기로 외근이 많았다.


내가 바라본 사진에는 대낮에 주진영의 차 안에서 둘이 사랑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시발.

어쩐지 주진영이 외근 나갔다오면 유독 늦었던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나.


“자료는 이 정도면 충분할까요?”

“네, 충분할 것 같습니다.”


나는 자켓 안주머니에서 가져온 돈봉투를 꺼내 그의 책상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고는 다시.


“비용은 섭섭지않게 넣어드렸습니다.”

“아이고, 잘 받겠습니다.”


정호석은 많이 넣어봐야 한 백만원 더 넣었겠거니 생각했다.

그래봐야 자기 조카와 같은 회사인데 월급이 거기서 거기 아니겠나.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봉투를 살짝 열어 속을 확인했다.

잠시 후,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이 크게 떠지기 시작했다.


“기존 보수의 두배인 천만원입니다. 앞으로 이런일이 있을 때 또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때도 지금처럼 잘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정호석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허리를 폴더폰처럼 접어 인사했다.

돈 앞에서는 조카의 친구고 뭐고 없었다.

그저 자신의 VIP고객이었을 뿐.


나는 옆에 있던 메모장에 메일 주소를 써 그에게 건넸다.


“파일 원본은 이쪽으로 보내 놓아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


오후 7시.

경기도 평택 내 집 앞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이 정도 아파트면 살만했다 생각했었는데 타워팰리스에서 살다보니 이렇게 허름할 수가 없었다.


94년도에 지어진 아파트.

29평의 아파트를 2.8억원을 주고 매입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나왔던 보험금과 중고차를 사고 악착같이 모아둔 1억원.

아내는 가져온 돈이 3천만원이었지만, 장인의 도움으로 1억을 맞춰 가져왔다.

그리고, 남은 돈은 전부 내 명의로 대출을 받았다.


김수영.

이 중에서 네게 줄건 하나도 없다.


30여분이 지나자, 먼발치에서 김수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에 맞춰 연초를 입에 물었다.


탁-


불을 붙이고 숨을 깊게 빨아들이고는 천천히 내쉬었다.


앞으로 오래오래 살아야하는데 담배를 계속 태울 생각은 없었다.

그저, 담배도 그녀도 오늘로서 끝내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거랄까.


나는 그녀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그녀는 뭐가 좋은지 휴대폰을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도 웃음이라니.

나도 기가막혀 웃음밖에 안나왔다.


“김수영.”


귓구멍에도 이어팟을 깊숙이 박아놨는지 내 부름에도 전혀 미동도 없었다.


“김수영!!”


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 소리에 그제서야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웃음기는 어디갔는지 사라지고 못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얼굴은 금세 사색이 되어 있었다.


“여··· 여보?”

“표정이 왜 그래? 병원에 누워있어야 할 사람이 멀쩡히 일어나서 그래?”

“언제 퇴원한거야? 몸은 괜찮아?”


나는 그녀의 걱정스런 말투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되도 않는 소리 말고, 따라 들어와. 할 말 있으니까.”


엘리베이터가 이렇게 좁았었나.

둘만 탔을 뿐인데도 공기마저 답답한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를 힐긋 쳐다봤다.


아무리 재벌이라도 그럴 리가 있나.

좁아서 답답한 게 아니라 불편한 년이랑 함께 타서 답답한거다.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둔 채 양손으로 핸드백을 꽉 쥐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내가 번호키를 누르려 하자 그녀가 다시 한 번 당황한 듯 나를 멈춰세웠다.


“잠, 잠깐만!”

“이번에는 또 뭐야? 남자라도 숨겨놨어?”

“···”

“비켜.”


나는 번호키를 마저 누르자.


-띠리리리리.


번호를 틀렸다는 듯 경고음이 울렸다.


“너··· 설마 번호 바꿨냐?”

“미안해.”

“여기가 네 집이야? 그걸 왜 네 맘대로 바꿔.”

“나도 여기 지분은 있어.”


김수영도 이미 이혼을 각오한 듯 자신의 지분을 강조했다.

나는 그녀가 뭘 믿고 자신만만한지 알고 있다.


메모리칩도 파기됐겠다.

휴대폰에 기록들도 삭제했으니 그녀도 이제 부끄러울 것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을거다.


그건 네 생각이고.


“왜? 이혼하면 재산분할 때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려고? 문이나 열어. 창피하니까 밖에서 이야기하지 말고”


내 말에 아내는 번호키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 그대로 거실 소파에 앉았다.


"앉아. 짧게 이야기 할테니까."

"이야기 해. 서서 들을테니까."

"그러던지."


나는 가져온 봉투를 그녀의 앞으로 툭- 던졌다.


"이게 뭐야?"

"봐바."


그녀는 약간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봉투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사진들을 쳐다보자 그녀의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미쳤어? 나를 미행한거야?"

"미쳐? 네가 아니고 내가?"


그녀는 내 앞에서 사진들을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설마 사진이 그거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원하는 게 뭐야. 이혼? 이혼이라면 얼마든지 해줄게."

"위자료."

"뭐?"


불륜으로 인해 이혼을 할지라도 재산분할은 자산 형성에 대한 기여도로 분배되기 때문에 자산을 되레 적게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불륜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건 위자료 뿐이었다.


"이 집을 위자료로 줘. 한 푼도 가져갈 생각하지 말고 조용히 나가. 나가서 주진영이랑 살든 차에서 살든 그건 네 알아서 하고."

"그게 지금 말이라고 하는거야?"

"대신, 그 불륜에 대해 평생 무덤까지 가져갈게. 그게 네 신상이나 주진영 신상을 위해 좋지 않겠어?"


불륜으로 인해 이혼했다라는 소문이 퍼지면 그들은 회사든 어디든 얼굴을 제대로 들고다니지 못할 것이다.


사진을 손에 쥐고 있던 김수영의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마치, 내가 블랙박스를 처음 확인했을때 처럼.


"네 말대로 해주면 정말 그 비밀 지켜줄거지?"

"당연하지."


나는 그녀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당연히 구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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