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이혼 후 나락(2)
김수영이 순순히 응해준 덕분에 이혼절차는 복잡하지 않게 끝낼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반항기가 보였다면 전문로펌을 대동해 상대해주려 했건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김수영은 불안한 듯 나에게 계속해서 되물었다.
“약속 꼭 지켜. 안 그러면 나도 이판사판이야.”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난 날.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콧방귀를 한 번 뀌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그게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제는 진짜 혼자가 됐다.
그리고 나는 회사를 정리하기 위해 첫 출근을 했다.
“얌마!”
오 부장이 나를 불러세웠다.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아무리 잘하려고 노력해도 그냥 마음에 안 들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오 부장에게 있어서는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난 사람을 보고 뱉어낸 첫 마디가 ‘얌마’라니.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너, 들어보니까 깨어난지는 좀 됐다며? 그런데 왜 이제야 회사에 모습을 드러내?”
보통은 몸은 괜찮냐고 물어보는게 먼저이지 않나?
그런데 그 사실은 또 어떻게 안거지.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주진영을 쳐다봤다.
주진영은 내 눈치를 힐끔 보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회피했다.
하하..
저 새끼가?
“일이 조금 있었습니다.”
“일? 무슨 일?”
“이혼했거든요.”
“뭐, 뭐?!”
사무실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느낄 수 있었다.
모두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는 걸.
그리고, 직원들의 타자소리가 급격히 빨라졌다.
아마 메신저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겠지.
회사는 화젯거리를 좋아한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자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니까.
“아내와 이혼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아- 민규야"
오 부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이 때까지 이름을 불렀던 적이 있던가?
"네 부장님."
"그걸 왜 이제 말해.”
오 부장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따스함이 묻어나왔다.
“네?”
“괜찮아.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다 이겨내지더라. 김 대리도 힘내!”
오 부장은 내 어깨를 툭툭치며 나를 다독였다.
설마.
이게 동병상련의 아픔이라는건가?
오 부장도 몇 년전에 이혼했다.
그의 슬하에는 자녀가 두 명이 있었는데, 그 양육권이 아내에게로 간 탓에 오 부장은 월급을 버는 족족 자녀들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의 성격이 평소에도 지랄맞은거에는 이런 속사정도 있었으니라.
“왜 이혼 당했는지 안 물어보십니까?”
“김 대리.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런건 애써 말 안해도 돼.”
물어봤어야 했다.
그래야 다음 계획이 진행되는데.
“아내가 바람을 폈습니다.”
“뭐?”
직원들의 타자소리가 더욱 더 빨라졌다.
[대박, 방금 내가 제대로 들은게 맞지?]
[어떡해. 그럼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진 남편을 두고 바람을 핀거야?]
[김 대리님 괜찮으신 분인데 어쩌다 그런 일을···]
주진영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시발··· 저 이야기를 왜 하는거야 대체. 미친거 아니야?’
저런 말까지 하는 정도면 제정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본인입으로 저렇게 떳떳하게 이혼남이라고 말할 수 있겠나.
“그런데, 그 상대방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TV를 보다보면 꼭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1분 후 계속됩니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때마다 묘한 짜증을 느꼈다.
지금 여기있는 직원들이 느끼는 감정이 그 감정일 것이다.
빨리 내 입에서 그 다음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겠지.
만류하던 오 부장도 이제는 아무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대로 오른손을 하늘로 높이 들었다.
직원들의 시선도 내 손을 향해 따라 올라갔다.
잘가라.
주진영.
나는 그대로 검지손가락만을 꼿꼿이 세운 채 주진영을 가리켰다.
“저기 있네요. 제 아내와 바람피운 남자.”
“김 대리님!!”
주진영이 자리를 벌떡 일어나 큰 소리를 내질렀다.
아까의 침묵은 온데간데 없이, 사무실에서는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못 믿겠다 하시는 분들은 제게 직접 연락주세요. 제가 쓰러졌을 때 아내와 저희 집에 들어가는 모습부터 차에서 그 짓거리를 하는 모습들까지 다 있으니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참, 오 부장님.”
“···어? 응 김 대리.”
“더 이상 회사는 못 다닐 것 같네요. 사람들이 제 아내의 불륜에 대해 다 알아버려서요. 그래서 말인데, 퇴사하겠습니다.”
오 부장은 생각했다.
‘네가 말했잖아. 새끼야.’
“아니, 일단 진정하고 퇴사는 다시 한 번 생각하는게···”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나는 오 부장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고 그대로 허리를 돌려 주진영에게로 향했다.
주진영은 씩씩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미 여론이 기울었는데 여기서 뭘 더할 수 있겠나.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잘 버텨봐.”
모든 게 끝났다.
회사를 떠나든 안 떠나든 그건 주진영의 몫이다.
하지만 어딜 가든 이 바닥에서 그 꼬리표를 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거니까.
회사 건물을 벗어나자, 정호석 대표에게 전화가 들어왔다.
“네, 대표님.”
- 시키신대로 전부 완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중으로 금액은 입금 될 겁니다.”
- 하하! 감사합니다. 언제든 시키실 일 있으면 편하게 연락주십시오.
“네, 고생하셨어요.”
아내의 회사 그리고 그녀가 만나고 다니던 고객사까지 그녀의 불륜으로 인한 이혼 소식을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퍼트려달라고 의뢰했다.
지금쯤이면, 그녀 또한 이 사실을 알았겠지.
지이잉- 지이잉-
귀신 같이 김수영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봐야 떽떽거릴건데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싶어, 그대로 김수영의 전화번호를 차단시켰다.
회사도 퇴사했고, 평택에 있던 집도 부동산에 내놨다.
이제 그녀가 나를 찾을 방법은 없다.
어릴 적 보던 만화 주인공인 루피가 원피스를 먼저 찾을지, 그녀가 나를 먼저 찾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야, 김민규!”
그 때, 뒤에서 정우용 대리가 나를 불렀다.
자식.
그래도 내가 떠난다니까 아쉬워서 급히 뛰어나왔나 보네.
정우용은 짧은 거리임에도 내게 빠르게 뛰어왔다.
“우용아. 무튼 그렇게 됐다. 퇴사하는 거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하다. 앞으로 종종 연락하면서 지내자.”
나는 그에게 악수를 건넸다.
하지만 그가 잡은 건 내 손이 아닌 내 멱살이었다.
“이 자식아! 신통제약 그 때 사라고 왜 더 강하게 말하지 않았어!”
하하..
이새끼가?
나는 그가 잡은 멱살을 풀고 다시금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이라도 사. 늦지 않았으니까.”
신통제약은 5,580원에 처음으로 매수를 시작했는데, 한 달이 지난 지금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며 20,000원대에서 횡보했다.
100억을 전부 매수하고 나니, 어느 덧 평단가가 10,000원대가 되어 있었다.
“너, 무슨 내부 정보라도 들은 거 있는거야? 아니면 제수씨가 제약쪽에서 일하니까··· 흐읍!”
정우용은 아내 이야기를 꺼냈다가 자신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그런 거 없고. 그냥 감이야. 나중에 만났을 때 멱살이 아닌 악수를 하려면 나 믿고 사봐. 그럼 간다.”
떠나가는 김민규를 보며 정우용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금은 너무 고점인데···”
***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재벌들은 보통 두 가지 부류로 나뉘게 되는데 자수성가 혹은 벼락부자로 된 졸부로 나뉜다.
나는 졸부 그 자체였다.
한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자수성가 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업체를 이끌어나가며 바쁜 삶을 살아가지만, 졸부들은 딱히 할 일이 없는데 심심하지 않을까?
그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자, 미친 생각이었다.
그 동안 돈이 없어 못하던 것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바쁘게 흘러갔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루틴에, 영어회화 1:1 과외를 추가했다.
해외여행도 자주 다닐텐데, 매일같이 번역기를 돌리고 있으면 좀 없어보이지 않을까 싶어 영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중, 고등학교때도 영어 공부를 했고, 대학교 때도 취업을 위해 토익과 토익스피킹까지 공부했는데도 늘지 않던 회화 실력이 1대1 과외를 하자 실력이 쭉쭉 늘고 있었다.
남는게 시간인지라, 대부분을 영어에 투자를 한 것도 한 몫 한 듯 했다.
나는 종종 시간이 날 때마다 HTS창을 켜 신통제약 주가를 확인했다.
현재 가격은 15만원.
1,500% 수익률이었다.
100억원이던 주식 계좌는 어느 덧 1,500억원이 되어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9월이면 200,000원 수준부터 분할 매도를 쳐야하는데 그 이후로는 어떤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지이잉-
사색에 빠진 사이, 한 동안 조용하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뽀르쉐 용산점 이나연 점장입니다. 신차가 출고되어 연락드렸습니다. 픽업 주소 말씀해주시면, 해당 주소로 차량 도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용산점에 두세요. 직접 가겠습니다. 어차피, 렌트카도 반납해야하니까요.”
- 그럼, 오늘 17시 이후로 방문해주시면 되세요.
“17시면 곧이네요. 맞춰 가겠습니다.”
나는 책을 보느라 뻐근한 목을 한 번 돌리고는, 타워팰리스를 나섰다.
차를 용산점 앞에 정차시키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터보 모델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걸 확인했다.
이게 내 차인가 보군.
역시, 다시 봐도 예쁘단 말이지.
드림카를 보니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차량을 빨리 인도받기 위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몇 보였다.
그 중에서도 김석두 주임이 나를 먼저 알아보고는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 확실히 예전보다는 고분해져 있었다.
“점장님께서 연락 주셔서 방문했습니다.”
“아, 잠시만요.”
김석두는 이나연과 잠시 통화를 하는 듯 하더니, 나를 2층의 점장실로 안내했다.
차만 인도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
점장실로는 왜 안내하는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김석두의 안내에 따라 점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네요.”
“네, 그런데 점장실은 왜···?”
“제가 따로 대화 좀 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 정도 시간은 괜찮죠?”
나는 손목에 차고있던 시계를 힐긋 쳐다봤다.
딱히 다음 일정도 없어 할 것도 없었지만, 뭔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네, 잠깐은 되겠네요.”
“그럼, 이쪽으로 앉으시죠.”
나는 그녀의 권유에 맞춰 자리에 착석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죠?”
“혹시, 하시는 일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딱히 없습니다.”
“네?”
“지금은 쉬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지는 고민중이고요.”
“그렇군요.”
그녀는 뭔가를 말하길 꺼려하는 듯 앞에 놓인 찻잔을 계속해서 어루만졌다.
“더 이상 할 말 없으시면 자리에서 일어나 보겠습니다.”
내가 일어나려 하자 그녀가 나의 손목을 다급히 잡아챘다.
이내, 그녀의 얼굴이 발그레 상기됐다.
“혹시··· 제 남자친구 역할을 한 번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뭐라?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이 무슨 뻔한 클리셰같은 이야기란 말인가.
그런데, 그 뻔한 상황이 내게 일어났다.
그녀는 차분히 자신이 그런 부탁을 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왜 나였어야만 했는지까지.
Comment '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