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혐오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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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16 22:23
최근연재일 :
2024.08.2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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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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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책을 사고 모을 수 있어도 정작 읽을 시간도, 읽을 필요가 없는 시대였었다.


찬란한 문명과 왕국의 발전을 위해 애국심을 불태우는 젊은 청년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였었고,

과거보다 더 나은 현재를 위해, 현재보다 더 나을 미래를 위해 그들의 삶을 한 가지 양식에 거리낌 없이 던지던 시대였었다.








"렌소르.........."




애커스와 렌소르는 서로를 한참 노려보기 시작한다.



그들은 그저 그렇게 살아나가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풍족한 자원을 찾아, 그들의 삶을 꾸려나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어려운 것은 피하기도 하면서 이런 저런 난관을 헤쳐나가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과거요, 현재요, 미래였다.






하지만, 그런 것을 전부 뒤로 두다 못해 내다버리고,



몇 번의 교전을 마친 뒤 숨을 몰아쉬면서, 각자 갖고 있는 무기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공격에 대한 대처 방법과 전술을 떠올리고 있지만,

이미 승부는 나 있던 상황이었다.


애커스가 갖고 있는 흑검이라는 칼 두 자루는, 이전에 렌소르로부터 받은 것인데,

도대체 뭘로 만들어진 것인지 칼날이 무뎌지지도 않고 그 어떠한 마법에도 흠집도 나질 않았었다.

심지어 그 흑검을 만든 렌소르의 마법에도 멀쩡했던 것이다.








흑검은 손잡이부터 검신, 그리고 그 끝까지 싹 다 시커먼 색깔로 주변의 모든 색들을 전부 흡수하는 것만 같아서,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걸 보는 것처럼, 보는 이에게 위압적이고도 기괴한 기분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애커스는 그걸 왼손에는 역수로 들고, 오른손으로는 정수로 든 상태로 천천히 옆으로 움직이면서 공격적이고도 방어적인 자세를 수시로 유지하고 있었다.

렌소르는 그를 보며, 자신이 만든 역작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걸 보며 내심 기쁜 마음이 들었다.



렌소르는, 과거에(그가 왕국에 앙심을 품고 모든 것을 부숴나가기 전에 멀쩡했던 시절) 왕국에서


찬란한 영광과 명예를 축복하기 위한 장소라고 불렸던 이 영광의 제단에 함께 올라서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사실에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래에서 올려다봤던 이 절벽과도 같은 제단에서,

이젠 칼바람을 맞아가며 땀을 식히면서 싸우고 있다니....


역시 높은 곳에서 보는 풍경이 나쁘지 않구나.'





그는 대놓고 고개를 돌리며 한 눈을 팔며 밑을 내려다봤다.

애커스는 그가 빈틈을 보인 순간 득달같이 달려들려고 했으나, 이내 걸음을 재빠르게 멈추고 천천히 숨을 한 번 다시 몰아쉬며

자신의 친구를 따라서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본다.


수많은 왕국군과 렌소르에게 목숨을 바쳤던 그의 동료들의 시체들이 이리 저리 뒤엉켜 그 하얀 대리석 바닥들을 피바다로 만들어 물들이고 있었다.









애커스는 눈을 흐리게 뜨면서 그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소나리는 어떡할건데......."



"소나리?"



렌소르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곧장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 맞다. 너 여자 진짜 조심해라, 애커스.


남자한테 어떻게든 여자를 안겨줘서 국가에 조건 없는 충성을 바치도록 한 것이 바로 이 왕국이야.

정말 이 빌어먹을 늙은 너구리 새끼들의 수작질이지.


이렇게 젊은이들 속여 먹는 방식은 저 볼 일 없는 허접한 왕국도, 어디든 마찬가지일 걸?


넌 여자 보는 눈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아."




"물어본 내가 머저리지, 진짜......"




"너야말로 날 어떡할 건데?"





"말했잖아......."





"날 잡아가겠다고? 죽이는 게 아니라? 아직도 생각이 안 바뀌었어?"




"그래."



"왕국의 기사니까?"



"그래. 기사니까."



"하하하.... 우리 왕국 수도 아카데미는 정문에 발을 내딛기만 해도 사람이 바뀐다고 하던데,

애커스, 너나 나나 그럴 팔자는 전혀 아니야."




"............."









애커스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까보다 체력이 훨씬 떨어진 것을 느끼며 이를 꽉 물었다.

렌소르의 단원들을 쓰러뜨리는 것은 상상을 초월했었다.


어떤 인물들 중에는 렌소르보다 훨씬 뛰어난 마법을 구사할 수 있던 인원들도 있었다.

사람만한 칼을 가볍게 휘두르는 인물부터, 긴장의 끈을 한 순간이라도 놓았다간 그대로 죽어버릴 수 있는 파괴 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하는 인물이나...



도대체 그런 괴물같은 자들을 어떻게, 무엇으로 설득해서 목숨까지 바쳐서 싸우게 만들 수 있도록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었던 걸까....

렌소르는 그런 애커스의 생각을 이미 읽었다는 듯이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내 단원들, 엄청 강했지? 하지만 그들을 내 편으로 모으는 데에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 진짜야."





"............"





"애커스, 너 엄청 놀란 눈치더라.

하하하... 만약 내가 네게 흑검을 준 게 아니었으면, 좀 더 볼 만한 싸움이었을려나?





나도 네가 그렇게 잘 싸울 줄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말이지."




.....그리고 그런 그들을 상대로 애커스는 혼자서 싸워서 이긴 것이었다.



동료애가 생길 정도로 친한 사람들도 아니었지만, 왕국 역사상 최악의 반란군 수장 렌소르를 처치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모인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애커스 편에서 함께 싸웠건만, 그들은 죄다 전부 순식간에 죽어버리고 애커스만 살아서 그들과 싸워 이긴 것이었다.




애커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강한 그 능력에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었지만......

이젠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너 도대체 나한테 뭘 줬던 거야..."



렌소르의 여유만만하고 자신있던 태도가, 그 질문 하나에 애잔함과 아련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널 설득하기 위한 준비물....."



"설득이라고?"



"그래."




애커스는 영문 모를 소리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아주 옛날도 아니건만, 과거의 일을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렌소르는 이 순간을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려 왔던 것이 분명했다.

왕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하나하나 착실히 자신의 머릿속에만 꽁꽁 숨겨두고 있는 잔인하고 끔찍한 계획들을 하나하나 이뤄나간 이 순간을..


어쩌면 자신이 렌소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애커스는 옛 생각에 머리가 무겁다 못해 앞으로 코를 쳐박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렌소르는 약간은 웃고 있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피칠갑이 된 얼굴과 손이지만 여전히 옛 모습이 남아있었다.













'애커스, 난 말야, 타고난 마력이 부족해도 마법을 잘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법을 만들어낼 거야!

그러면 더 이상 마력이 부족하다고 슬픈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 거고, 다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겠지?


너는 기사가 되는 거야, 애커스.

네가 기사가 돼서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지켜줘.


그러면 그들을 도와줄 마법을 내가 연구할게.


수도에 입학한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것도 아니야!



우리의 힘으로 세상을 바꿔보는 거야!

네 칼과 내 마법으로 말이지!'
















"렌소르........"



"왜, 옛날 생각나? 애커스?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냥 좋았던 옛 추억으로 남겨둔 거면 충분하다니까?

지금 이 순간에서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하나도 없으면 정말 얼마나 아까웠겠어."



"............."





애커스의 흑검에 짙은 검붉은 색의 마력이 흉흉하게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렌소르는 이젠 싸울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애커스, 이러나 저러나 중요한 점은, 이미 이 왕국은 멸망해버리는 게 순리라는 거야.

이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은 평생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다 죽어버리는 게 맞다는 거야.



기사들? 마법사들?....... 지들이 파는 삽질이 누구 들어가기 위한 삽질인 줄도 모르는 머저리들이야.

그러니까 나이만 쳐먹은 그런 뒷방 늙은이들한테 속아서 평생 서로 싸움질이나 하고 있는 거라고.


넌 이런 세상이 만족스러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뀔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근거는 뭐야?"




"...그렇다고 네 방식대로 세상이 바뀔 수 있진 않다고 생각해."




"아니, 나같은 놈이 하나 정돈 있어야 한다고, 애커스.

아직도 모르겠어?!"




렌소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늘 온화하고 조용한 태도를 갖췄던 그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모습을 보니,

애커스는 그제서야 진정한 렌소르의 모습을 본 것만 같았다.















"마력이 부족하다고 서로 돕지는 못할 망정!


물어뜯고 죽이지 못해 안달 나있고!



돈 많고, 마력 많고 능력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나라가 제대로 된 거냐라던지, 그런 정치적인 얘길 하려는 게 아니라니까?


좀 더 근본적인 거! 사람됨이 글러쳐먹었다고!

이제 진짜 늦었다고! 고이다 못해 썩어버려서 이제 더 이상 인간상이 더 나아질 수가 없는 나라! 그런 세상의 사람들!



그리고 그런 나라일 수록!

악에 받치고 피가 쏠리는 미친 사람이 최소한 하나 정도는 나와줘야!


다시 사람들이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되는 거야! 명예와 생명의 숭고함을!



그냥 우리보다 일찍 태어난 것일 뿐인 늙어빠진 역겨운 늙은이들한테 쓰이고 버려질 우리가 말이지!

너야말로 어째서 나와 함께 하지 않는 거냐고, 애커스!!!"









애커스는 들끓는 목소리로 그의 이야기를 곧장 받아친다.




"그렇다고 전쟁을 일으키면 어떡하자는 거야, 렌소르!

게다가 이웃 왕국은 대체 무슨 죄야? 제발 정신 좀 차려!!


그 곳에 살고 있던, 우리와 전혀 상관 없는 사람들까지 휘말리게 하는 건 대체 뭐였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만족하겠어!"













렌소르는 차갑게 웃으면서 이빨을 드러내보인다.



"상관없어. 그렇게 덜떨어진 머저리들 따위.

그 사람들뿐만이겠어?


내 일이 아니라고 눈만 가리고 앞만 보며 살아온 사람들도 전부 책임이 있는 법이야.

그까짓 놈들이 무섭다고 공포에 아주 절여져선 덜덜 떨기만 하는 머저리들을 사람이라고 봐야해, 내가?



아니, 그런 인간들일 수록 더더욱 추악하지. 약한 척을 하면서 그들의 내면을 숨기고 있는 것 뿐이야...."




"그게 정말 네가 원한 세상이었어?"




"적어도 지금 여기의 내가 분명히 원하는 세상이지.



이제 더 이상 아가리로만 애국을 떠드는 놈들을 대신해서 애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릴 일도,

어차피 잊어버릴 희망에 기대를 거는 그런 실낱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도,


전부 없어질 거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야."



"뭐가 널 그렇게 바꾼 거냐고...."



"네 두 눈으로 직접 봐보라고.

네가 날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난 분명히 믿어...."



렌소르의 두 손에 검붉은 마법진 두 개가 생성된다.

흔히 여겨지는 마법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기괴하다 못해 흉측하고 복잡한 모양의 마법진이 하나로 얽히더니,



순식간에 애커스에게 날아가 그를 휘감쌌다.



"?!"



애커스가 미처 반응도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순식간에 애커스에게 스며들더니 사라져버렸다.



그는 곧 몸이 무거워지며 흑검을 놓치고 무릎을 꿇어버렸다.




그건 바로 렌소르의 '아티팩트 전이' 마법이었다.

애커스는 렌소르가 이전에게 자신에게 새로운 아티팩트 마법진을 전이해줄 때마다 고통을 겪는데, 이번 것은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렌소르는 이미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네가 이 왕국을, 사람들을 혐오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 말이지......"




렌소르는 애커스가 놓친 흑검 두 자루를 전부 주워든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래로 휙 던졌다.

흑검은 여러번 챙그랑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제단 아래로 떨어졌다.




"나중에 주워. 이렇게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는 모양새가 있어야, 더욱 극적으로 보일 테지."



"렌소르....!"



애커스의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찌릿한 통증에 그는 온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운 전이 마법이 아니건만, 도대체 무슨 아티팩트를 전수해준 것일까?

그는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장 움직여서 렌소르를 막아야하건만,


렌소르는 이미 나머지 흑검 하나를 거꾸로 잡고 스스로의 심장에 겨냥하고 있었다.










"너, 내가 이겼다는 사실, 너도 잘 알고 있지? 아무리 모르는 척 해도 소용 없어....

어디 한 번 지켜보라고. 내가 그리워질 테니까."



"..........."



애커스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렌소르의 아티팩트 마력이 자신의 온몸의 혈관 마디 하나하나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지며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두 눈을 감으며 마지막으로 본 것은, 흑검을 자신의 가슴 한복판에 꽂는 렌소르의 모습이었다....





















그 날, 엔칼리움 왕국의 반란군의 수장 렌소르는,

영광의 제단에서 애커스의 흑검에 맞아 쓰러졌다고 왕국 전역에 소식이 퍼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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