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혐오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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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T
작품등록일 :
2024.08.16 22:23
최근연재일 :
2024.08.2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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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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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애커스는 기사단들을 위해 구비해놓은 무기 창고에 갔었다. 퀴퀴한 먼지 냄새와 땀냄새가 섞여서 들어오는 이들을 절로 긴장하게 만들건만,

애커스는 용케도 그 냄새중에서 피냄새를 골라서 맡아내고는 표정을 찌푸렸다.


그는 무기를 대여받기위해 기사들이 작성해야하는 장부들이 놓인 방으로 들어갔는데, 창고의 관리관이 책상에 발을 걸치고 삐딱하게 앉아있다가 애커스를 알아보고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했다.




"애, 애커스님?! 충성!"




"됐어요.... 무기만 대여하려고요."



"지금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어떤 것이 필요하십니까?"




"......."



애커스는 잠깐 고민한다.

그는 무기는 물론, 일상에서 편히 사용되는 물건들(특히 옛날 물건으로 취급되는 것들)조차 이전부터 써온 것만 고집하기에,

왕국에서 그에게 부여한 직함에 걸맞는 무기는 그의 손에 전혀 맞지 않았었다.



또한 굳이 꺼내주겠다는 그 과잉 친절에 약간은 불편함을 느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고 말했었다.



"그냥 대인전 기본 장비로 부탁해요."



"네! 알겠습니다.

여기 장부에 서명만 해주십쇼, 애커스님!"


물론 번거로우시겠지만, 서명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 부디 양해해주십쇼."




혹시라도 장부에 서명한다는 것에 대해 껄끄러워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관리관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애커스는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어진 장부를 잡아들고는,

대여할 무기 목록과 자신의 서명을 적어나갔다.


장부는 얼마나 많이 사람 손에 잡히고 손때가 묻은 것인지 너덜너덜해져있었다.



'어느 기사회 건물의 무기고를 찾아봐도 보이는 건 다 비슷비슷하긴해......'























애커스는 어떤 것을 할 때에 기다리느니 직접 자신이 행동하는 방식을 선호했었는데,

다행히 그가 기다리는 것에 실증이 나기 전에 관리관이 무기들을 가져온 것이다.


"여기 가져왔습니다, 애커스님. 제일 깨끗하고 최근에 들어온 장비들입니다."




애커스는 그 무기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황금색 손잡이에 은색 칼날이 멋들어지게 솟아있었다.

검집과 더불어서 놓여져 있는 것이, 그걸 차고 돌아다니기만 해도 위엄이 넘치는 기사의 모습이 될 것임을 알려주는 듯 했다.


다른 그것보다 작은 칼들도 마찬가지로 오히려 보기만 해야지 그것을 '칼'의 용도로 쓰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자태였었다.





"........"




하지만 애커스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그 커다랗고 넓은 책상에 놓여진 장비들을 보며 그저 아무 말도 없다.

관리관은 혹시 애커스가 장비 상태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아서는 아닌지 전전긍긍하며 떠들었다.




"물론, 최근자 장비가 아니더라도, 저희는 기사단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며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평상시에도 만반의 준비를...."



"아니.... 그런 걸 묻는 게 아닙니다.

역시 됐어요. 중급 기사단이 쓰던 칼 아무거나 하나 주세요."




"네... 네? 네!"



관리관은 그의 변심에 어리둥절했으나 의심조차 품으면 실례라는 생각이 번쩍 들어,

저만치 창고 문 앞에 서있는 다른 인원에게 손짓을 했다.



그 인원은 곧장 구석으로 들어가더니 칼 하나를 가지고 왔다.




애커스가 그 무기를 검집째로 받았다. 상급 기사단이 주무기로 쓰던 기다란 검에 비해 볼품 없고 허름하긴 했다.

어쩌면 관리조차 할 필요가 없어서 안한 것이리라,


양손으로 잡자니 너무 가벼워, 한손으로 잡고 휘둘러야 제격인 무게였다.

애커스는 잠깐 들어보이며 무게를 체감해본다.





"그래도 여기 무기 대여소에서 중급 기사단 장비도 갖추고 있었네요."




"아, 아 그럼요!


진짜로, 어디 먼 촌구석의 기사단 제식 장비들까지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본부에는 온갖 출신 기사단들이 다 모이다보니까요.


물론 중급 기사단 장비는 아무거나 있긴 하지만......"




'웬만한......'



애커스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혹시 그럼 검.......



아, 아니. 됐어요. 알겠어요."


애커스는 무언가를 더 물어보려다, 고개를 젓고는 뒤돌아서 창고를 나갔다.



그의 등에 대고 관리관의 경례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오는데, 나가는 복도에서 헤리츠와 딱 마주쳐버린 애커스였다.


헤리츠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고 두 손에 무슨 가죽 주머니를 들고 있었는데,

애커스를 보자 눈이 곧장 동그래지며 말했다.









"애커스! 왜 무기 대여소에서 나와요?

빨리 흑검 가져와요, 흑검! 이번엔 꼭 보고 말 거야!"




"아니.... 흑검은 안 가져와도 될 것 같아서."



애커스가 단호하게 말하며 대화 주제를 끊어버리자 헤리츠는 입술을 대놓고 삐죽였다.







"으, 진짜 치사하다!.. 나중에 애커스 집에 몰래 숨어서라도 훔쳐와야겠어.

언젠가 자다가 일어났는데 흑검이 사라졌으면, 그거 저인줄로 아세요."



"그러던지...."



"어, 진짜로 자기 집에 꽁꽁 숨겨두고 있단 거네요?

좋아쓰! 진짜 훔치러 가야겠다!"



"넌 어디 갔다오는 길인데?"



"오호, 뭐예요. 자연스럽게 화제 전환하기?

뭐 좋아요. 어울려드리자면...


전 우리 일행들 여행 경비좀 챙겨왔지요오~"



헤리츠는 딱봐도 질길 것만 같은 가죽주머니 하나를 풀어헤쳐서 안을 내보인다.

금화가 빡빡하게 들어있는 것이 제법 무거워보였다.


애커스는 그 주머니를 들어서 헤리츠의 가방에 넣고 그걸 자신이 어깨에 둘러맸다.






"꽤 많이 수령해왔네. 예산 관리부가 빡빡하게 굴었을텐데."


헤리츠는 자기 상체 크기 만한 가방을 손바닥으로 두들기고는 우쭐해했다.

둘은 다시 건물의 높으면서 여러 명이 다니기에는 그래도 적당한 폭의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흐흥, 저처럼 계산 철저하고 똑부러지는 여자 아니면 이렇게 예산 타올 수 있는 사람은 기사단에 없을걸요?



그리고 우리 수행원도 한 명 더 추가될 거고,

네 명분의 경비가 충분히 필요하고, 고위험 임무라고 핑계를 적당히 섞었거든요.



왜 네 명이냐고요? 아까 애커스랑 소나리 언니가 싸우고 나갔을 때 단장님한테 엄청 졸랐어요.

아마 기사건 마법사건 기타 수행원이건 한 명 더 붙여주실 거예요. 저도 그게 편하거든요.


아마 우리 후속 지원으로 붙여줄 거 같아요.

일단 오늘 근무표에 남는 사람은 없었거든요.



참, 단장님은 애커스하고 소나리 언니하고 왜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은지 아직도 모르고 있었더라고요?


애커스가 이제 1년이 됐었던가요?

아니, 1년은 확실히 넘었었죠.


단장님은 처음에 우리 기사단이 새로 개편되고 다른 곳으로 합쳐진다고 했을 때 그렇게 귀찮다고,

일 많아진다고 짜증내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나 지났는데도 말이죠.




어쩌면 켈 단장님은 일 말고는 관심이 없는 거 아닐까 싶어요.

서류, 서류..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온 왕국을 다 뒤져도 저렇게 일만 하는 단장님도 없을 걸요?


하여튼 그렇게 서류에만 파묻혀서 사니까 현장 나가는 일은 전부 떠넘길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싶어요."









"............"









"단장님은 우리 나가고 이따가? 하여튼 늦은 오후부터 출전이라,

그 전에 장비, 여행 경비 대금, 마차 시간대 알아보고 다 준비한 다음에 점심 먹고 출전하면 끝이예요.



애커스는... 뭐, 역시 그 옛날 구닥다리 칼일줄 알았어요. 워낙 옛날 물건을 좋아하니까.


뭐 어쨌든? 뭐쨌든?

장비도 다 챙겼고, 예산도 타왔고...


마차 승강장은 소나리 언니가 갔으니까 이따 합류하면 되고, 마법 장비만 몇 개 챙기고 밥 먹으러 가요, 애커스.

난 애커스랑 함께 일하게 된 이후로 일이 얼마나 편해져서 좋은지 모르겠어요.



음, 그러니까 내 말은,



사실 출장 예산 타오는 것보다 마법 장비 받아오는 게 더 힘들어요.


그러니 애커스가 같이 가서 얼굴 한 번만 비춰줘요. 그래야 귀찮은 서류 작업들도 일사편리에 해결되고 시간이 남아요.



어쩌면 점심먹기 전까지 카페에서 커피 마실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을 지도?



아니면 알펭에 도착하고 나서부터라던지?

제법 괜찮은 카페가 있으면 좋기야 할텐데, 아니 숙소 정도는 괜찮아야 할 텐데 말이죠?



애커스, 같이 어디 커피 마시러 가도 괜찮죠?

소나리 언니는 커피 싫어하니까 단 음료수로 사주면 돼요.




참, 아니 그게, 음료수 커피 잠잘 곳 숙소가 문제가 아니라,


저번 임무 마칠 적에 들었었는데, 마법 장비 관리부랑 다른 기사단에서 한 번 대판 싸운 일도 있었다는 거예요.

다행히 우리 단원들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관리부에서 몰래 리스트를 작성해서 잘 잃어버리지 않는 기사단들 위주로 물건을 대여해준다는 소문도 있었거든요.




가뜩이나 비싼 장비들인데 분실했다던지, 분실했는데 사유도 모른다던지...


아니, 근데 이렇게 험한 일을 하는데 장비들 잃어버렸다고 우릴 탓하지 뭐예요?

기사보다 마법 장비가 더 귀하단거야 뭐야~"







"..........."




애커스는 잠자코 있으며 나란히 복도를 걷다가, 헤리츠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마법 장비가 꼭 필요한 거야?"




"이번 임무는 어차피 별 다른 마법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만반의 대비를 해야하는 것도 맞으니까!


혹시 모를 상황도 생각해야죠.



전 죽는 게 무서운 걸요.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항상 애커스한테 매미처럼 달라붙어서 일 할 수도 없고."




".........."




"돈도 벌어야 하고. 돈도 모아야 하고, 돈도 써야 하고...

으, 진짜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평생 이렇게 위험한 일이랑 고생만 하다가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해요.


가끔, 아주 가끔은, 그냥 다 내던지고 살면 좀 더 즐겁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고요.


근데 겁이 나는 걸요.


돈 많이 준다는 소리에 뒷일 생각 없이 덜컥 입단해놓고,

겁은 겁대로 많이 내면서 돈은 돈대로 벌고 싶어하고...



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겁쟁이에 불과하니까...

칼은 들었지만 칼 쓰는 걸 무서워하는 기사...


칼이 아니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사람에 불과한 기사?

아하하, 애커스가 불리는 호칭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네요."




"................"






"무엇보다도 마수가 언제 갑자기 나타날지도 모르잖아요?



마수 토벌 의뢰를 맡은 기사단이 큰 피해를 입고 돌아와서,

저번 급료에서 보험료가 너무 많이 빠졌다고 다들 그 고생했던 기사단을 욕하더라고요.





전 다행히 애커스가 있는 기사단에서 일하니까 별 다른 차이는 없었지만...



일단 내가 죽으면 전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버리는 거잖아요.



지금도 마수 토벌 의뢰가 우리 기사단으로 들어올까봐 무섭기도 해요.

그 순간에 애커스가 만약 기사단에 없으면 어떡할까란 상상도 해보고요.



이렇게 평화로운 일상과 근무를 하던 도중에도 갑자기 마수를 마주칠까봐 무섭기도 하고요."




'마수'라는 단어를 듣고 애커스는 혀를 잠깐 어금니 사이에 넣고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것은, 렌소르가 죽고 난 뒤부터,

이따금 밤이 아닌 낮에도 그의 허상, 렌소르의 목소리가 들릴 때(혹은 들리고 보일 것만 같은 예감을 느낄 때) 하는 버릇이었다.






애커스는 자기도 모르게 어둡고 우울한 목소리로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럼 기사를 그만둬. 이 일은 너무 위험해."



"..........."












헤리츠는 상당히 무례한 그 말에 눈이 커다래져서 그의 옆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했으나,

이내 피식 웃고는 평소의 그 높고 발랄한 목소리가 아닌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넌지시 말했다.





"그럼 전, 돈을 못 벌고 저기 어디 지역으로 내몰려서,

바람 한 번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갈대처럼 살다가 꺾여져서 죽고 말겠죠.


결국 이러나 저러나 죽는 건 매한가지니,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살다가 죽고 싶은 걸요.

아무리 비겁하고 모순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할 지라도.... 살고 싶으니까...."




"...........다른 분야를 찾아보는 건 생각해본 적 없어?"


그녀는 잠시 고민하듯이 끙소리를 내고 말한다.




"뭐... 의료 간호 계열쪽이라던지요?


난 안 그래도 덩치도 작고 힘도 약한데, 괜히 고집까지 쓸데없이 쎄가지고는...

그 쪽 계통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안 들더라고요.



아카데미에서 한창 공부할 적에 다른 친구들....한테,

하도 무시를 당했더니, 괜히 더 기사가 되고 싶은 거 있죠.


무엇보다도 그쪽 계열에 제 동기들이 많아서요..

딱히 거기 가서 일 해보고 싶진 않네요."




".........."



"왜요, 너무 비겁한데다가 의지까지 없어서 한심해보여요?"



"................"



"치, 너무했다. 이럴 땐 그냥 겉치레라도 아니라고 말 해주지..."







헤리츠는 이내 좋은 수가 생각났다는 듯이 박수까지 짝 치고 약간은,

그 평소의 활기찬 태도를 일부러 흉내내며 말했다.




"아!


아니면, 애커스가 우리 왕국의 모든 악당들이랑 마수를 퇴치해주면 안 되려나요?



그럼 나도 마음 놓고,

칼 안 휘두르는 주제지만 고위 관직 기사라고 대접 받으면서 평생 잘 살 수 있겠네요!


위험한 건 무섭고, 돈은 많이 벌고 싶고, 죽기엔 무서운 저같은 겁쟁이 기사도 말이죠!"




"..........."



애커스는 이번에도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헤리츠는 활기찬 표정을 거두고는 고개만 짧게 끄덕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던 길을 걷는다.



























"그건 당연한 일이지.

악인들도, 그 마수들도 전부 내 몫이야...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서 기사가 된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잖아."




"........."





이번엔 헤리츠가 아무 말도 없었다.

애커스는 그저 앞만 보고 있었기에 헤리츠가 자신을 쳐다본다는 느낌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 표정까지 읽어낼 수는 없었다.




"그럼 난 애커스가 잘 하나 지켜봐야겠다~

애커스도 날 지켜봐주던지~ 말던지~ 알아서 하시고!


하여튼 빨리 마법 장비만 받고 커피 마시러 가요!"





"천천히 가."



헤리츠는 그가 둘러메고 있는 가방을 툭 치고는 앞서서 달려나가면서 그를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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