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혐오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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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T
작품등록일 :
2024.08.16 22:23
최근연재일 :
2024.08.2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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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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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DUMMY

"............."



애커스는 자고 있느라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더욱 눈을 꽉 감으려했다.

익숙한 시간대에, 그 시간대에 들리는 창밖의 소리, 닫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커튼에 걸러져 눈살을 찌른다.


애커스가 책임을 질 사람들도, 애커스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도 딱히 없어 그냥 그대로 다시 자도 상관 없을 것이었지만,

옛날의 그 잔잔했던 일상은(사실 그렇게 잔잔한 편도 아니었지만) 잃어버린 지 오래였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짜증스럽게 일어나며 이젠 익숙해진 자신의 바뀐 일상 속으로 녹아들려고 한다.

따뜻한 물이 쉴 새 없이 계속 떨어지는 수전을 바라보며 목욕물에 잠깐 잠긴다.


화려한 옥색의 장식들과, 웬만한 가정집 거실보다도 더 커다란 화장실에서 오직 애커스의 숨소리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는 잠시 눈을 뜨고 자신이 있는 그 장소에서의 위화감을 시야에 담으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가족을 잃고, 자신을 이해할 수 있던 유일한 친구까지 죽게 만들고 일궈낸 삶이 주는 그 기묘한 위화감....


어쩌면 그는 스스로가 죽은 사람이고 영원히 지옥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애커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원래라면 그래도 나름 중견 쯤에 해당하는 기사단에 속해있었지만, 렌소르와 그의 잔당들, 검파살을 처치하고 왕국을 위기에서 구한 공로로

상급 기사단을 넘어선 왕립 기사단장직을 수여받게 된 것이다.


왕국은 그에게 왕실 직속 명예 기사직 등을 부여했었고 영광의 제단 아래에서 축복했었지만, 그는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는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그저, 애커스는 이제 모든 싸움이 끝났으니 다시 본직으로 돌아가겠다며 단장직을 거부하였고, 다른 보상들도 거부하고 원래의 기사단으로 복귀한 것이었다.





이름을 받을 명예조차 없어서 북부 국경 지역 444번 기사단으로만 불렸던 기사단은 진작에 전부 사망하거나 탈단해버려서 애커스만 유일하게 남아버렸었는데,


오랜 싸움이 끝나고 나면 해방감과 자유를 느낄줄 알았지만, 찾아온 것은 상실감 외에 슬픔 뿐이었다.


그는 그러한 우울감들을 머릿속으로 스며들게 하고는 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며 그 커다란 방을 떠났다.



그는 왕국에서 전후 복구 및 안전 체계 확보를 위해 편성한 기사단, "엘미츠"로 들어가게 됐었다.


하지만 말이 기사단이지, 마법사들은 물론, 그저 경비대장이라던지 지역의 의원들까지도 있는 특이한 조합이었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기사단과 전혀 다른 개념이긴 했었지만, 애커스는 적응하는 데에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저 조용하게 쉬고 싶었지만 국가가 여전히 그를 필요로 한 것이고,

애커스는 기사로서의 무거운 의무에 응했을 뿐이었다.












"아, 오셨어요? 우린 꼭 출근 길에 같이 만나는 것 같네요!

신기한 우연의 일치랄까?"



애커스가 마차에서 내리고, 넓고 기다란 계단을 오르면서 왕립 기사회 건물로 들어서려는데 누군가가 옆에서 곧장 따라 붙으며 말을 건넸다.

그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만 한 번 돌려보고는 다시 앞을 보며 걸어간다.









"헤리츠."



"반갑단 거죠? 아침인사? 뭐, 하여튼 주말이 지났으니까 직장 동료를 다시 보는 거겠죠."


헤리츠라는 여기사는 엘미츠 기사단에서, 왕국을 위기에서 구한 구국의 용사임에도 불구하고 늘 우울한 얼굴을 보이는 애커스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인물이었다.

키는 애커스보다 훨씬 작은데 목소리는 또렷하고 커서 존재감이 돋보였었다.



그녀는 애커스의 몸 구석구석을 과장되게 살펴보면서 물었다.





"흑검은요?"



"안 가지고 왔어."



"아, 또! 거짓말 했어.

나한테 보여주겠다고 가져온다고 얘기했었으면서!"



"그런 말 한 적 없어."



"오. 적어도 저랑 대화했던 내용은 기억하시나보네요.

주변 사람들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야."



"에~ 거짓말. 내가 봐 온 게 있는데?"



"얼마나 봤다고, 날."



애커스는 단답형으로만 대화를 끊고, 헤리츠는 어떻게해서든 말꼬리를 잡을 뿐인 그 이상한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그들은 엘미츠 기사단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그 건물 내부로 들어간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보이며 그 둘 역시 그들 틈으로 섞여들어간다.






"그럼 오늘 어떤 업무를 할 지 알아요?"



"아니.... 그냥 늘 뻔한 일이겠지. 우리한테 선택권이 있었나, 뭐."



"뻔하다뇨! 왕국을 재건하기 위한 중요한 사업들을 그렇게 표현하다니! 왕실 직속 명예 기사님!"



"그렇게 부르지마."



"444번 기사단!"



".........."




애커스와 헤리츠는 이제 엘미츠 기사단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미 넓은 책상에 수많은 책들과 서류들이 땅바닥에 굴러다니면서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과 의자에 앉아서 펜을 잡고 이마를 문지르는 중년 남성이 보였다.








"켈 단장님! 저희 왔습니다!"



"헤리츠, 저만치 복도에서부터 네 목소리 말고 아무것도 안들린다..."



"반갑단 거죠? 아침인사?"



"아니. 이게 내 아침 인사다."



"아, 하나같이 재미없으셔들!"



켈 단장은 서류 뭉치 하나를 내밀었고, 헤리츠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마치 더럽고 고약한 물건을 잡는 것 마냥 서류를 꼬집듯이 잡고는 읽어나간다.

그는 경악하듯이 변해가는 헤리츠의 표정을 보면서 만족스럽다는 듯이 씩 웃고는 다시 자신의 책상 위로 시선을 옮겼다.



"세상에, 단장님! 마약 사건 조사라뇨?"



"마약 사건 조사?"



애커스가 고개를 슬쩍 끼어들자 헤리츠는 그도 같이 보라는 듯이 서류를 길게 붙잡아 펼쳤다.














_

최근 동부 알펭 지역의 수페르 마을에서 마약 관련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검파살에 의해 습격을 당하고 가문들은 물론 마을이 초토화되면서,

해당 지역 가문에서 갖고 있던 사업들의 잔재물들을 누군가들이 악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해당 지역에서 안전 확보 지원 요청이 올라왔다.




엘미츠 기사단은 해당 지원 요청을 수락하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여 보고하라.



추신:임무의 난이도가 고강도로 예상되니 숙련된 자들로 조를 편성하길 권함.





중앙 보국회 기사장교 크로노스 의원

_




헤리츠는 끙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으.. 갑자기 웬 마약이지? 이거 진짜 귀찮....... 복잡해보이는데요.


다른 임무는 없어요?"




"아주 많아. 어쩌면 다음 달부터는 교대 근무로 근무 방식이 변경될 지도 모를 정도로 업무량이 많지."



"네엑? 그정도라고요?"




"그러니까, 쉬운 임무 골라가면서 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일단 싸그리 해치우고 와! 교대 근무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에에엑!!!"




헤리츠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절규했다.

애커스는 그녀의 앞으로 나서며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저희말고 추가 인원은요?"



"지금 인원들 대부분이 빠져있는 상황이라서... 마법사 한 명과 함께 가시지요."



"마법사?"



"소나리 아르마 모르타레티입니다.

전일 업무때문에 아직 도착하지 못했는데, 곧 올 겁니다. 기다리시지요."



".........."



애커스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소나리 언니요? 아니, 잠깐만요, 단장님!"



"언니라니... 헤리츠, 너 호칭 똑바로 안할래?"


켈 단장은 얼굴을 확 구기면서 씁 소리를 냈지만 헤리츠는 곧장 단장 옆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단장님.... 왜 하필 소나리 언니에요?

다른 마법사들도 많잖아요! 애커스랑 언니, 저, 이렇게 셋이서 보내면 전 어떡하라고요?

싸늘하다못해 얼어죽을 거라고요!"




하지만 켈 단장은 헤리츠의 반응까지도 예상했다는 듯이 책 하나를 곧장 펼치며 보여준다.

진작에 엘미츠 기사단에서 파견 혹은 임무 수행을 나간 인력들의 근무표였다.




"미안합니다만 헤리츠 기사, 지금 가용 가능한 인력들이 대부분 빠져있어서,


이번 임무는 소수 정예로 편성해서 속전속결로 해결하고 오는 게 낫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그리고 상원 장교님께서 우리를 콕 집어서 내리신 명령이니, 받아들이시지요."




"아니, 누가 안 나가겠다고 했나요?


한 명 더 붙여줘요! 진짜 껄끄럽단 말이에요... 아시잖아요! 몰라요, 설마?

니스올은요? 걔도 나갔어요?"



"아휴, 너 진짜...!"


켈 단장과 헤리츠가 옥신각신하는 동안, 애커스가 잠깐 생각에 잠긴 듯 했었는데 이제 입을 열었다.




"그쪽 지역에 몰락 가문들이 대거 있었던 걸로 압니다."










"몰락 가문?"


헤리츠와 켈 단장이 동시에 반문하며 그를 쳐다봤다.




"알펭 지역은 중앙 수도보다 가난했던 지역이라,

무리한 사업을 벌이다가 망하거나 중앙에 입단하지 못했던 이들이 많았었죠.








동부 지역 관료들도 중앙에 진출하고 싶어하면서도 시기심이 많았었고...


특히 그 곳에서는 주로 기사단들이 쓸 치료제와 약물들을 만들어내던 가문들이 있었는데,

주 공급처로 채택받기 위해 경쟁이 심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검파살이 습격하고, 전부 쑥대밭이 되버리고...

그 유명무실해져버린 잔재물들을 이용하는게 아닌가 싶군요.



동부에서 일부러 자신들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관련 피해 자료를 축소해서 중앙에 지원 요청을 한 것일 수도 있으니,

인원 배치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데 곧장 뒤켠에서 싸늘하고 차가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건만, 대뜸 들린 목소리에 헤리츠가 화들짝 놀랐다.









"그래서 애커스 씨, 제가 당신을 배치하도록 요구한 겁니다만."



애커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턱을 괴고 말을 덧붙이는데, 대답하기가 상당히 귀찮은 태도를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었다.













"임무 도중에 사상자가 발생해도 괜찮나요?"



"사상자요? 어디까지나 마약 관련 조사일 뿐, 현장에서 추가적인 상황이 부여되면 제 지시에 따라서 그 때 행동하도록 하세요.

그 전까지는 기사단 안전 지침을 따르는 것이 우선입니다. 당연히."



"그 때가 되면 이미 늦을 텐데요."



"그러니까 그런 상황이 생기질 않도록 잘 조치하세요. 기사잖아요?

그리고 이번 임무의 무장은 대인전 기본 예비 양식 1번으로 허용됩니다."




"부무기만 들고 가라고요?"



"대인전 기본 예비 양식 1번은 주무기와 부무기, 보조 무기까지 셋 입니다.

상급 기사단 기본 제식 무장 양식에 대해서 제대로 숙지하셔야겠군요."




"상당히 송구스럽군요. 상급 기사단이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어서 적응이 안 됐나봅니다."




"할 생각이 없는 거겠죠.

그런 주제에 반란군 수장 렌소르는 어떻게 죽인 건지 참 놀랍네요."




"렌소르는 그저 제 손에 죽어준 것이니까요.

이전에, 분명히 말씀드렸듯이."



"........."



소나리가 그제서야 침묵하자, 애커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소나리는 분노를 간신히 참는 것처럼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그를 노려봤고, 애커스는 그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사무실 내의 인물들은 마치 그들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제각기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힐끔거리며 쳐다봤었다.









"먼저 마차 승강장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무장좀 고르고 오겠습니다."



그러나 둘은 이내 각자 할 말만 하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소나리가 그 기사단의 단장인 것처럼 보일 행동거지임이 분명했다.





켈 단장은 자신의 등 뒤에 찰싹 달라붙은 헤리츠에게 그제서야 숨을 내쉬며 물어봤다.









"후아아.... 아니,.. 뭐야? 저 둘, 왜 저렇게 사이가 안 좋아?

그냥 둘 다 싸가지가 없어서 그런 것이려니 했었는데."





헤리츠는 오히려 켈 단장을 탓하듯이 답했다.




"아휴, 단장님. 진짜 모르셨네?

어쩜 이렇게도 서류더미에만 파묻혀서 살으셨을까!



귀좀 열고 살으셨어야죠!"



헤리츠는 아예 켈 단장의 양쪽 귀까지 주욱 잡아당기는데 그는 이미 잔소리를 하려다가 체념하고 말했다.







"나도 칼보다 펜을 더 많이, 더 오래 잡고,

너같은 딸뻘한테 귀 잡아당겨지면서 살 줄은 몰랐지..."



"원래 애커스랑, 소나리 언니랑, 그 반란군 수장 렌소르... 그 셋이서 친구였었대요.



그런데 소나리 언니랑 렌소르하고 연인사이였다는 거예요..!"




"뭐?"




"진짜에요. 소나리 언니가 이전에 말했었대요.

소나리 언니 입장에서는 친구인 애커스가 자신의 연인을 죽였으니...



적어도 자신의 손으로 연인의 최후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었을텐데,


그 영광의 제단 전투에서 끝까지 갔던 건 애커스니까... 음, 애커스가 밉지 않았을까요?

배신감이라던지?"




"어... 음.. 난 이해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무슨 복잡한 일들이 있었던 거겠죠.

다들 그냥 추측만 하고 정확한 정황은 폐하와 나랏님들만 안다고들 하는데, 묻지를 못하겠다니까요..."




"에휴....... 헤리츠, 기다려봐라. 붙여줄 수 있는 인원 있는지 어디 한 번 볼게, 그래...."




헤리츠는 그제서야 박수까지 짝 치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쵸! 무조건 더 데려가야한다니까요!

이런 조합이 가장 최악의 조합이라니까요?


왕국 최강의 마법사, 기사면 뭘 해요.

제대로 풀지 못한 사연 하나만 있어도 저렇게 싸우려드는데!


분명 현장에서 사고 몇 개는 터질거라니까요?"



헤리츠는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휴, 제발 일에만 집중하면서 살고 싶다, 진짜...."


켈 단장은 벌써 몇 년은 폭삭 늙은 듯한 얼굴로 기사단의 근무표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그 덕분에 원래 있던 서류는 구겨졌지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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