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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대
작품등록일 :
2024.08.20 23:12
최근연재일 :
2024.08.2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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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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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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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각성 (3)

DUMMY

쿵. 쿵. 쿵. 대리석 천사가 걸어온다. 얼굴은 분노로 흉측하게 찡그렸다. 오목하게 살짝 파인 동공이 움직이며 적을 찾는다.


“씨발, 씨발!”


바린이 떨어진 권총을 쥐고 마구잡이로 쏘았다. 가까운 거리였는데도 조준이 엉망이었다.


물론 제대로 맞았다고 해도 저 손날을. 하늘을 찌를 듯 치켜올렸다가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손날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퍽!


사람이었던 것이 쓰러졌다.


“바린.”


팀장 모리가 입을 쩍 벌렸다. 공포가 경악으로, 경악이 광증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총을 들으려는 모리를 유진이 가로막았다.


“쏘지 마세요!”

“비켜!”

“쏘지 마세요! 봐요, 저기서 으르렁거리기만 하잖아요! 게다가 폭발도 막아줬다고요!”


유진은 왜 사람들이 답답하게 구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천사는 분명 호의적이었다. 차체를 뜯어 폭발물을 막아주었고 이쪽을 보며 미소까지 지어주었다.


스트릿의 대성전의 벽화에 있던 그림과 똑같았다. 하늘에서 기쁜 소식을 들고 지옥에 내려온 천사. 악령들은 물러나고 고통받던 인간들은 경배하는···.


“바린 대가리를 터트렸잖아!”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엘마가 자동소총을 쏘았다. 모리가 유진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바닥에 넘어진 유진은 머리를 감싸쥐고 엎드렸다. 동시다발적으로 들리던 총소리가 하나씩 줄어들었다.


유진의 등에 묵직한 것이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밀쳐냈다. 목이 기이하게 꺾인 팀장이었다. 푸들푸들 떨고 있었다.


쿵. 쿵. 쿵.


대리석 천사가 발을 구르며 입을 벌렸다. 혀도 성대도 폐도 없는 돌덩어리에서 진동이 퍼져나왔다. 사람의 몸을 굳게 하고, 오금을 저리게 하며,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포식자를 마주친 연약한 사냥감.


살아남은 건 유진 하나였다.


유진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총에서 멀찌감찌 떨어졌다. 천천히 그대로 절을 하며 엎드렸다. 대성전의 벽화에서 인간들이 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한 번. 그리고 다시 또 한 번. 혹시 부족했을까 싶어 마지막으로 한 번.


“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사는 인상을 쓰고 있었으나, 유진의 모습에 조금 분이 풀린 듯 했다. 유진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저희를 도와주려고 하셨는데, 저희는 몰라봤습니다.”


쿵. 쿵. 천사가 유진 쪽으로 걸어왔다. 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철컥. 뭔가 뒷꿈치에 걸려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피로 젖어 찐득한 소총이었다.


천사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권총을 난사했던 바린을 쳐다보고, 다시 유진을 바라보았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는···!”


돌덩어리가 눈 깜빡할 틈새에 유진의 앞으로 옮겨졌다. 멱살을 잡고 끌어올려 목을 한 손으로 쥐었다. 억, 꺽. 하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유진은 들었다. 목에서부터 위로는 뇌로 아래로는 척추로 울리는 뚝 하는 진동을.


‘부러졌다.’


급작스럽게 먹먹한 하늘이 보였다. 꺾인 목이 젖혀진 것이다.


보다보니 너무하네.


아니.


그렇잖아?


사과했는데.


해칠 의도는 하나도 없었잖아.


.


···.


······.


그렇다.


억울한 일이다.


부당한 일이기도 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유진이 된다.


유진은 내가 된다.


‘나’는 고개를 다시 내렸다.


우드드득! 부러진 목뼈가 억지로 짜맞춰졌다. 이미 꺾인 나뭇가지를 억지로 다시 펴놓는 것이었으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


“사과하지 않았나?”


대리석 천사가 두 눈을 부릅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사과하지 않았냐고.”


대리석 천사의 목을 움켜쥔다. 연악한 인간의 손. 돌덩어리 조각상의 목을 조를리가 없다. 그런데도 나는 손으로 놈의 목을 잡아뜯는다. 유진의 오른손 검지에 검붉은 띠가, 반지와 같은 것이 그려진다.


<크으으으윽!>


천사가 괴로워했다. 내 목을 부수어 놓을 듯 다시 움켜쥔다. 나도 놈의 목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서로 마지막 한 끗을 남겨놓은 채 눈씨름을 한다.


“내기할까? 난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어. 그런데 네 육신도 그럴지 모르겠네.”

<감히···인간 놈이···!>


나는 놈을 밀쳤다. 놈도 나를 밀쳤다. 우리의 몸은 뒤로 휙 날아갔다. 부수어지려는 목을 간신히 붙들며 일어섰다. 천사의 목엔 녹아내린 손자국이 생겼다.


<너는 뭐냐>


그러게. 내가 뭘까? 나도 잘 모른다. 그저 유진을 따라다녔을 뿐이다. 모니터 저편의 관찰 카메라로 지켜보듯 어린 시절부터 유진을 지켜보았다.


꿈을 꾸는 것처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봐 와서 그런지 안타까웠으니까.


“···그러게.”

<너도 우리와 같은 족속이냐>


우리? 우리가 누군데.


순간 머릿속에서 단어가 하나 떠올랐다. 단순한 단어가 아니었다. 일상생활에서 어린 시절 다녔던 초등학교 이름을 떠올렸을 때. 친구들. 이름은 모르지만 분위기는 기억하던 선생님들. 부끄럽고 철없던 에피소드가 연달아 기억나는 것처럼.


“괴이.”


인간이 아닌 것들.


인간이 아닌데 인간 사이에 섞여 사는 것들.


그래.


여기는 괴이와 인간이 섞여 사는 세상이다.


기억났다.


“기억났다고?”


나는 멍청하게 혼잣말을 되뇌였다. 천사가 당혹한 듯 나를, 내 손의 검지를 바라본다.


<···그 손의 반지!>


“반지? 무슨 반지?”


나는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검게 둘러진 띠가 보였다. 얼핏 보면 피멍처럼 보일 지경이다. 아니면 엄청 멋없게 새긴 문신이거나.


<때가 되었는가!>


천사의 얼굴이 환해졌다. 유진이 대성전에서 보았던, 환희에 가득 찬 천사의 표정이었다.


유진이 틀렸다.


유진은, 그리고 스트릿의 사람들은. 지옥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천사가 기쁜 소식을 가져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천사가 지옥의 인간을 보고 기쁜 소식을 얻은 것이었다. 천사는 소식을 전하러 오지 않았다. 소식을 전하러 갈 것이다.


“알아듣게 말해, 돌대가리 새끼야!”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찡그린 하늘의 저편에서 헬리콥터 두 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때는 되었는데, 그대는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아직 깨우치지 못했어>


천사가 걸어왔다. 기쁜 얼굴을 한 천사가 걸어와 내, 유진의 머리에 두 손을 얹었다. 돌대가리 주제에 입에서 알 수 없는 기도문을 외웠다.


“끄아아아아악!”


내 몸이 뒤틀린다. 1cm 크기의 정육면체로 조각났다가 억지로 다시 쌓아올려지는 것만 같다. 머리를 쫙쫙 늘렸다가, 뭉쳤다가, 늘렸다가, 뭉쳤다가, 쫙 잡아 찢었다가 다시 꽉 뭉치고 짜내는 것만 같다!


“아아아아아악!”


눈이 튀어나갈 것 같다. 볼에 진득한 것이 흘러 턱에서 뚝, 뚝 떨어진다. 머리에서. 기억이 떠오른다.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다. 유진은 경험하지 않았던 것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기억이.


나의 기억이.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 내가 겪었던 일이.


‘···설정집이네.’


책을 들어 올렸던 기억이 난다. 꽤 큼직하고 두툼한 책이다. 올컬러에 글자가 빼곡하다. 인쇄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뜯지 않은 비닐 냄새가 났다.


‘와. 이런 것도 나오기로 되어 있었구나.’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겼었다. 온갖 기이한 것들과. 이상한 세계가 보였다. 괴이로 인해 멸망 위기까지 몰린 세계와. 도시국가와. 힘겹게 살아가려는 사람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괴이들이.


페이지가 너무 많아서 다 읽을 수가 없었다. 후다닥 넘기다 짚히는 대로 펴들었다. 대리석 천사가 보였다.


- - - - -


#File No. 330 - 즐거울 천사


평가 : 우호


대리석 조각상에 깃든 천사입니다. 실체에 대해선 누구도 모릅니다. 그저 본인이(인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편의상 표현입니다) 대리석 조각상 천사에 깃드는 걸 좋아할 뿐입니다.


인간에게 대체적으로 우호적입니다. 얼마나 우호적이냐면, 산성비로 자기 몸이 전부 녹아내릴 때까지 대성전 벽에서 인간들을 지켜볼 정도로 말입니다. 무수한 인간을 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창고에 가둬놓는 건 권장하지 않습니다.


만약 즐거울 천사를 화나게 했다면 다음 지침을 따르십시오···. ###


- - - - -


두투투투, 헬리콥터가 착륙했다. 지독한 두통에 나는 무릎을 꿇었다. 누군가 꿈에서 억지로 깨운 것만 같았다.


헬기 두 대에서 제복을 입고 중무장한 인원들이 뛰쳐나왔다. 전신을 가리는 헬멧과 방호복에 장비까지 잘 갖추고 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인간이 맞긴 한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인간형이라는 것만 확실했다.


마지막으로 선글라스를 낀 정장 차림의 여자가 내렸다. 어깨를 살짝 덮는 적금발이 어두운 하늘 아래서도 생기있게 넘실거린다. 그녀 허리춤의 권총이 보였다. 나는 힘겹게 말을 짜냈다. 즐거울 천사는 자극받으면 자극받는대로 더 강해진다.


“쏘지···마···.”


중무장 인원들이 천사에게 소총을 겨누었다. 즐거울 천사의 얼굴이 이지러졌다. 나는 어떻게든 일어서서 천사의 앞을 가로막았다.


“사람 구경···좋아하는 놈일 뿐이야. 쏘지 마라고···미친 놈들아···.”

“총 내려.”


정장 여자가 팔을 내뻗었다. 중무장 인원들이 동시에 팔을 내렸다.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머리가 아파서. 목이 쪼개질 것 같아서. 여자 앞에 허물어지듯 무릎을 꿇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편안한 여행을 보장드리려 했는데, 저희 생각이 짧았습니다.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나긋나긋하고 싹싹한 목소리.


‘제대로네.’


땅이 솟아올라 내 뺨을 때렸다.


* * * * *


아.


유진의 몸에서 튕겨나왔다.


마치 그들 모두에게서 열 발자국은 뒤로 물러난 것 같이.


중무장 인원들이 유진의 몸을 수습한다. 아직 살아있다,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길쭉한 대형 트레일러가 도착해 도로를 틀어막고 사방을 정리한다.


즐거울 천사는 ‘내’가 있는 곳을 정확히 바라본다.


<자신을 깨우쳐라>


나는 뭘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들었을까? 들었나보다.


<할 수 있는 일을 해라 모르는 것은 질문하라 떠올릴 수 있는 것을 떠올려라 답은 안에 다 있다. 이것이 그대에게 지은 내 죄의 값이라 생각한다. 그대의 말이 맞다. 이 자는 그렇게 죽을 일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일?


즐거울 천사가 수습하려는 인원들을 밀쳐낸다. 쓰러진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고 눈에 입을 맞춘다. 그러자 ‘내’ 눈 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 - - - -


#File No. 미입력 - 미입력


평가 : 미입력


유진의 몸에 깃든 자입니다. 이 세계가 설정집 속 세상이라 알고 있습니다. 책을 본 적 있습니다.


도움 항목 :


#1. 즐거울 천사는 ‘자신이 누구인지 깨우치라’ 고 하였습니다

#2. 유진의 몸에 들어왔다 나왔다 할 수 있습니다.

#3. 스트릿에서 자라난 유진은 괴이를 만나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즐거울 천사는 죄책감을 느끼며, 당신을 돕고자 합니다.


- - - - -


<그대에겐 정보가 필요하겠지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이것으로 죄값음을 하였으면 한다>


울컥, 유진의 입에서 피가 터져나온다. 아직 살아 있다, 라고 요원들이 외친다. 즐거울 천사는 헬기에 올라탔다.


나는 아까 한 것처럼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쑥, 하고 유진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캬악.”


적금발 선글라스 여자가 한쪽 무릎을 꿇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사람 챙겨. 기지로 돌아간다.”


매정하리만치 벌떡 일어섰다. 요원들이 들것을 들고 유진의···아니. 이제는 내 몸을 옮겼다.


그들의 팔에는 부대 소속을 나타내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박물전시관.’


썩 멋진 이름은 아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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