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릿광대와 꼭뚜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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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21 16:15
최근연재일 :
2024.08.2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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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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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광대(1)

DUMMY

나는, 광대다.


이름은 로운이고 성은 클라피에.


원래는 고아인지라 이름이 없었지만, 예전에 전쟁터를 전전하며 공연을 하던 시절에 군인들이 광대를 뜻하는 '피에로'와 '클라운'을 음차에 만들어준 이름이었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스무 개의 저글링 공이 허공에서 회전한다. 나는 저글링 공을 놓아 하나씩 날아가게 했다.


퍼엉! 퍼엉!


날아간 저글링 공은 정확히 관객석 앞에서 멈추고 하나씩 허공에서 터져나가며 화려한 꽃잎을 내뱉었다.


살랑- 살랑-


어디서 불어온 것인지 모를 바람이 꽃잎을 허공에서 휘날리게 만들었다. 지금의 날씨는 겨울이었지만, 이곳의 날씨는 봄이었다.


변칙적이게 흩날리는 꽃잎이 관객들의 눈빛을 사로잡았다. 나는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인사를 한 뒤에, 무대의 뒤로 물러났다.


"와하하하하!!!"


무대의 뒤에서는 관객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땀 범벅이 된 몸을 닦기 위해서 모자를 벗고 주변에 항상 비치되어 있는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12월의 겨울은, 문화계 직종들의 성수기였다. 하지만, 그날따라 유독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린다면 그것은 다른 쇼를 진행하는 진행자나 묘기를 부리는 이가 잘한 것이 아니라 광대의 실력이 출중한 것이었다.


광대는, 무대가 시작하기 전에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맡고 있다. 아무리 신기한 것을 하더라도 분위기가 받쳐주지 않으면 말짱 꽝이었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간건가.'


물론 이게 끝은 아니었다. 나는 얼굴에 진득하게 눌러 붙은 분장을 능숙하게 때 내었다. 분장을 푼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대자로 뻗으며 누웠다.


그럼에도, 힘든 내색을 해서는 안 되었다. 광대는, 분위기를 띄우는 자. 광대가 무너지면, 그 날의 쇼는 망한다.


그래도 다른 극단들은 광대에게 쉬는 시간조차 주지 않지만, 내가 지금 일하는 이 '안개꽃' 극단은 광대의 복지가 좋은 편이었다.


10분의 쉬는 시간 동안, 체력을 모두 회복한 나는 전에 했던 분장과는 다른 새로운 분장을 하며 분주히 다음 공연을 준비했다.


'어? 주사위가.'


없었다.


나는 항상 중요한 일을 앞두고, 주사위를 굴려 나오는 숫자에 따라 결정하는 버릇이 있었다. 별로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않으나, 마음을 안정 시켜주는 효과가 있었기에 공연 전 루틴으로 꼭 주사위를 굴리는 편이었다.


'없다. 어디갔지?'


광대복에는 매우 많은 주머니가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주머니에도 주사위는 없었다.


'떨어트린건가.'


나는 무대에서 급하게 나와 주사위를 찾았다. 다행히 주사위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찾았다!'


쿵!!


무언가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약하게 밀려났다. 내 손에는 주사위가 쥐여져 있었다. 나는 충격을 수습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얼굴인데.'


앞에는 나와 부딪힌 충격으로 살짝 넘어진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아무래도 공연을 관람하러 왔다가 길을 잊어버린 듯 했다.


"저기, 공연장은 저쪽이에요."


나는 손가락으로 공연장 방향을 가리켰다. 몸을 일으킨 소녀는 날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그제서야 소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


귀엽다. 그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른 이 소녀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 다른 미사어구는 오히려 방해일 뿐이었다. 내가 소녀를 빤히 쳐다보자 애처롭게 떨리는 뺨이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사과했다. 미안함 말고도 무언가 이상한 감정이 섞여있는 듯 했다. 소녀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괜찮소. 공연 시작이 코앞인 것 같으니 이만."


소녀의 말투에 압도된 나는, 그저 벙쩌있었다. 힘이 풀린 손에서 주사위가 떨어지며 굴러갔다.


또르륵-


그렇게, 주사위가 굴러가며 나온 숫자는.


'6'이었다.


몇 초나 의식을 잃었을까. 금새 의식을 차린 나는 '6'이 나온 주사위를 바라보았다. 주사위의 옆에는 반지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저 분은 뭐하시는 분일까.'


궁금증이 일어났지만, 아무래도 귀족일 확률이 농후했기에 나는 주사위와 그녀가 잃어버린 것 같은 반지를 다시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공연 끝나면 돌려드려야겠다.'


무언가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난 것은 조금 늦은 뒤였다.


'아, 공연!'


나는 빠르게 뛰어 공연장으로 향했다.



***



'젠장, 이 자식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극단의 매니저, 호세는 공연 시작 직전에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로운을 찾고 있었다.


그때, 무대 뒷편의 구석진 곳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불편한 광대복의 레이스를 잡고 뛰어오는 나. 호세는 늘 그렇듯, 레이스를 붙잡고 뛰어오는 내 모습을 보고 비웃기보다는 차분하게 늦어버린 내게 말했다.


"늦어서 죄송할 거면 죄송할 짓을 하면 안되지. 늦은 건 이미 지나간 거니까 빨리 무대 설 준비나 해. 이게 마지막 공연이니까 혼자서 집에 가면 돼."


"넵. 알겠습니다."


안개꽃 극단은 하루에 일곱 번의 공연을 했다. 마침, 이 공연이 일곱 번째 공연이었다.


나는 혹시 방금 만난 그녀가 관객 중에 섞여있을지 몰랐기에 최대한 화려한 것을 골랐다.


'이거다.'


그러자, 호세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아직 말해주지도 않았는데."


"네? 무슨 일 있나요?"


"어. 오늘 공작가에서 일곱 번째 공연을 보러 오기로 했거든. 그래서 최대한 대단한 걸 보여줘야 해서 그 막대기 가져가라고 말하려 했는데······."


"······음."


아무래도 내가 부딪힌 소녀는 생각보다 대단한 신분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약간 의아한 점은 수행원이 있을 것이 분명 할 텐데 왜 길을 해매고 있었냐는 건데.


"어이! 언제까지 죽치고 있을 거야!"


소녀는 생각보다도 거물인 모양인지 바빠서 얼굴 보기가 힘든 극단주가 우리를 재촉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무대로 올라갔다.


'그럼, 시작해볼까?'


저벅. 저벅.


공연을 시작하기 전의 무대는 항상 조용하다. 그 고요를 깨는 발소리가 조용한 무대를 잡아먹었다. 나는 막대의 끝에 부싯돌을 비볐다.


촤악-!


막대 끝에 불이 붙으며, 어둠으로 가득 채워진 무대에 한 줄기의 빛을 만들었다. 나는 그대로 막대를 그어 빛의 선을 만들었다.


스윽.


허공에 빛의 직선이 세겨졌다. 나는, 그곳에 획을 더 그어 '환'이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그것으로 멈추지 않은 내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끝내, '환영합니다.'라는 빛으로 이뤄진 문구가 어둠을 밝히며 허공에 세겨졌다.


퍼엉!!


폭죽이 터지며, 빛 마법으로 밝혀진 조명이 일제히 켜졌다. 잠깐 눈이 아팠지만 다시 표정을 굳힌 나는 관객석을 향해 지팡이를 몸쪽으로 가져다대며 우아하게 인사했다.


'그녀는 어디에 있지.'


잠깐 시선을 옮겨 그녀를 찾던 나는 너무 많은 관객 탓에 그녀를 발견 할 수 없었다. 박수갈채를 보내는 진갈색의 머리칼의 사내. 푸른 머리칼의 차가운 인상의 여인. 수많은 인파에 나는 찾는 것을 잠시 포기하고 그대로 공연을 계속 진행했다.


하지만, 공연을 계속 진행한 나는 끝까지 그녀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묘기가 끝나고 무대 밑으로 내려가는 중.


날 쳐다보는 시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시선의 근원을 바라보았다.


시선의 근원은, 매우 높은 곳에 있었다.


관객석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일명, '특등석'. 그곳에서, 그녀는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날, 바라본다.'


속에서 무언가 감정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 나는, 일단 눈을 맞춰주고 다시 무대 뒤로 물러났다. 무대 뒤에서는 극단주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훌륭해. 역시 자네를 채용하는 보람이 있군."


극단주는 내 손에 커다란 금화 주머니를 쥐어주었다.


금화 주머니를 열자, 찬란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척 보아도 내 월급의 배는 되어 보이는 양. 상당한 양이었기에,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금화를 세어보았다.


'흐흐.'


10개의 금화. 이 정도면 아직 16세가 되지 못해 성인이 아닌 나일지라도 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그녀에게, 무언가 선물해줄 수 있었다.


'······공연이 다 끝나면 가볼까.'


우선 반지를 가져다 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 나는 그녀에게 줄 선물을 고민했다.


'웬만한 장신구는 다 있을 것 같고. 서민의 음식은 익숙하지 않을거고.'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여자가 관심 있어하는 것을 알아볼걸. 조금 늦은 후회였지만, 그래도 아무 생각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는 극장의 구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1평이 채 안되는 조그마한 방에는 침상 하나만이 우두커니 있었다. 다 낡은 침상은 벌레가 조금 파먹었지만, 그래도 내 몸 하나 눕히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하······.'


그렇게 고민하기를 10분. 그때, 방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고민이 많아보이는 얼굴이네."


허름한 침상에 걸터앉아 고민하는 나를 본 호세는 내 어깨에 팔짱을 꼈다. 동시에, 웃으며 말했다.


"흐흐. 이 나이대의 사내아이가 그런 표정을 짓는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그 이유가 뭔데."


"좋아하는 사람 생겼냐?"


"······눈치 하나는 귀신같네."


"유독 감정표현이 없는 놈이니까. 알아채지 못하는 놈이 바보인거지 뭐."


그렇게 티가 났나? 하여튼 눈치 하나는 작살나게 빠른 놈이다.


호세는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와 눈을 맞췄다.


"말해봐. 이 형님이 다 들어주지."


"뭐, 말하면 도와줄 수는 있고?"


"어허. 이럴 때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면서 그냥 말해주는 거야."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최대한 전혀 관심 없다는 투로 응수한 뒤에, 녀석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쳇. 두고 보자."


뭘 두고 보자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다시 조용해졌다.


'이제 좀 만족스럽네.'


침묵은 아주 귀중한 시간이다. 관중들의 환호를 듣는 것도 기분은 좋지만, 이런 고독한 침묵도 있어야지 삶에 균형이 생기는 법이다.


그때, 호세가 다시 방에 들어왔다.


"야. 나와봐."


나는 손을 저으며 다시 축객령을 내렸지만, 이번에는 호세의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심한 일이야! 나와보라고!"


콰아앙!!


동시에, 누군가가 벽에 처박혔다. 방금 내게 박수 갈채를 보내던 이였다. 그제서야 상황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두 단검을 꺼냈다.


"무슨 일이야."


"저놈··· 범상치 않아."


극단에는, 기본적으로 강한 사람들만 있었다. 애초에 전국을 유랑하며 공연을 한다는 발상부터 강한 이들로만 구성된 집단에서만 나올 수 있는 발상이었으니까. 이동하는 중에 전쟁에 휘말리거나 산적을 만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에. 공연을 하는 이들은 웬만한 강자들로 이뤄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그런 강자들로 이뤄진 집단을 뚫고 들어온 이가 한 명이라는 것이었다.


"찾았다. 어릿광대."


광택조차도 삼켜지는 칠흑빛 갑옷의 사내. 보아하니 상당한 강자인 모양인데.


그것을 증명하듯, 사내의 주변에는 단원들이 쓰러져 있었다. 상황을 모두 파악한 나는 두 자루의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무슨 볼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애들을 건든 대가는 치르게 해주지."


칠흑 갑옷의 사내는 칠흑과는 반대되는 백색의 빛을 뿜어내는 길다란 장검을 꺼냈다.


'상당한 명검이야. 도대체 누구지?'


내 단검도 나름 이름이 있는 명검이지만, 저 검은 아무래도 차원이 다른 듯 했다. 이런 식으로 싸움이 시작하기 전부터 기세가 죽으면 곤란했다.


나는 공연으로 다져진 다리 근육을 뭉치며 몸을 쏘아 보냈다.


카앙!!


쇠붙이와 쇠붙이가 부딪히며, 마찰음을 냈다. 나는 이 한번의 충돌로 사내의 '경지(境地)'의 가늠할 수 있었다.


'최소한 3년 이상은 검술을 수련 한 건가.'


장비에 비해서 초라한 경력이라고 판단한 나는 힘을 풀고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 허공을 날며 곡예를 펼쳤다. 동시에, 나는 주머니에서 저글링 공을 꺼내 폭발 시켰다.


퍼엉!!


꽃잎이 흩날리며, 사내의 시선을 가렸다. 확실히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된 나는 공중에서 방향을 한번 더 틀어서 사내의 후두부를 베었다.


아니, 정확히는 베었다고 생각했다.


까가가각!!!


내 단검은, 사내의 갑옷을 뚫지 못했다. 그리고 일격을 실패한 오만한 자에게 심판이 떨어졌다.


쿠웅!!


무거운 검의 검집이, 내 관자놀이에 처박히며 내 중심이 무너졌다. 나는 무력하게 쓰러졌다.


쓰러지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목격한 장면은.


반지를 떨어트린 소녀가 내 앞을 막고 있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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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릿광대(1) 24.08.24 8 0 13쪽
1 프롤로그 24.08.21 14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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