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안 하는 재벌가 배우님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새글

담은™
작품등록일 :
2024.08.22 14:38
최근연재일 :
2024.09.19 20:20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32,125
추천수 :
958
글자수 :
142,768

작성
24.09.19 20:20
조회
210
추천
12
글자
10쪽

재벌 3세의 망나니 재벌 연기 (2)

DUMMY

별거 아닌 장면이었다.

그냥, 언더커버로 불법 카지노에 잠입한 주인공이 도박에 미친 재벌을 하나 만나게 되는 장면.


훗날 주인공을 더 큰 판, 더 깊은 곳으로 인도할 그 재벌은 이제 막 큰 판을 딴 참이었다.

셀 수도 없는 승리로 인한 나른한 희열과,

광기가 묻어나는 웃음소리,

조도 낮은 불빛이 밝혀 놓은 음습한 눈.


그냥 좀 웃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대사를 치고.

리딩에서는 그 정도로 넘어갔어도 됐을 장면인데,

백재열이 판을 뒤집어 놨다.


“우리 선생님들 속 쓰려서 뭐, 소화제라도 사 드려야겠네. 자, 이걸로 하나씩 사 드세요.”


툭, 툭.

있지도 않은 엑스트라 앞에 돈다발이 하나씩 던져진다.

의자에 푹 기댄 몸은 반듯하다. 모로 기울어지는 고개며 한 박자 늦게 벌어지는 입, 그리고 들뜬 눈만이 그가 제정신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아. 소화제 까 드실, 손이 없겠구나?”


안타깝다는 양 손을 흔들어 준 백재열이 이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다.

있지도 않은 엑스트라가 어딘가로 끌려 나가고,

자리를 지키고 앉은 카지노의 왕이자 금수는 눈알을 굴렸다.

먹잇감을 탐색하는 시선. 마주친 이들을 겁먹게 만드는 선득한 눈길.

그렇다. 그의 갈증은 아직 해갈되지 않았다.


*


대회의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하나같이 경악한 이들이 침묵을 지켰다.

박거용 PD도 예외는 아니었다.


분명 적당히 헐렁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던 리딩장이었다.

주연 배우가 이끌었고 모두가 동의했다. 박거용도 마혜진도 캐릭터만 제대로 보인다면, 배우들이 리딩에 얼마나 애를 쓰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어쩌면 힘을 뺀 채로 캐릭터를 보여 준다는 게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고 생각했다.

그 웃음이 들려오기 전까진.


‘대사 한마디도 없이 웃음소리 하나만으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박거용 PD는 침을 꿀꺽 삼켰다.

웃음 속에 어린 광기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처럼, 소름 끼치고 불길하기 짝이 없는 그런 웃음.

모두의 시선이 단번에 쏠린 이유였다.


이어지는 대사는 또 어땠는가.

백재열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놓고 놓아주질 않았다.

등줄기를 타고 올랐던 불길한 감각은 곧 백재열의 아우라가 되었다.

박거용 PD는 어느새 카지노의 가장 깊숙한 곳, 제일 커다란 도박판 앞에 앉은 백재열을 보고 있었다.

그 괴물의 판돈은 사람이었다.


박거용, 마혜진, 신민영, 조연출과 홍보팀 스태프, 기자, 그리고 다른 배우들까지.


그들의 목숨은 한순간 백재열, 아니 김의철의 것이 되었다.

사람 하나 시멘트에 빠트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그 미친 재벌이,

도박판의 주인이 매섭게 모두를 훑었다.


이번엔 누가 좋을까.

어떤 놈이 이기고, 어떤 놈이 져야 재밌을까.

어떤 놈을 제물로 삼아야 불길이 커질까.


연기를 분석하던 박거용 PD는 어느덧 진심으로 두려워졌다.


‘지, 진짜 죽여 본 거 아냐? 도박도 해 봤고?’


그 사실을 알아챈 걸 들키면, 다음은 자신이 되지 않을까?


“완벽해······.”

“헉, ······.”


곁에서 들려온 황홀한 중얼거림에야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마혜진 작가만이 자신이 조각하고 백재열이 완성한 인물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똑바로, 동시에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당연했다.

김의철 그 자체가, 아니, 어쩌면 김의철보다도 더한 것이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정신을 붙잡을 수가 있을까.

누군가에게 극도의 두려움을 끌어내는 것은, 누군가에겐 극도의 이끌림을 주는 법이다.

장르물 작가로서 온갖 콘텐츠를 섭렵해 온 마혜진에게 지금 백재열의 연기는,

그간 봐 온 어떤 것보다도 매력적이었다.


저 배우를, 저 연기를 자신의 드라마에 넣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해 미칠 정도로.


“······.”

“······.”


그렇게 리딩의 흐름이 한번 끊겼다.

확 끓어오른 분위기를, 누구도 따라잡지 못해서.


“15분······ 쉬었다 다시 하시죠.”


박거용 PD는 늦기 전에 덧붙였다.


“처음부터.”


박거용의 역사에 이런 대사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리딩을 처음부터 다시 하겠다고 선언하다니.

배우들에게는 ‘내가 니들 전체적으로 마음에 안 들어서 안 되겠으니까, 다시 제대로 하자’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발언이다.


“후우······.”

“네.”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반기를 드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박거용 PD와 비슷한 마음이었다.


신민영은 대본을 더 보는 대신 바깥으로 나왔다.


긴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반대편으로 꺾으니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야외가 보인다.

정원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저 맞은편의 동과 이어 주는 삭막한 공간이지만, 지금 그에게는 이런 공간이라도 절실하게 필요했다.


“······리딩을 가볍게 하려고 한 모양이라고? 하, ······.”


그는 자신이 우스웠다. 백재열은 그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와서 대본을 보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그걸 보고 자신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정장도 일부러 입고 온 거였어.”


리딩 날은 보통 편하게 입고 오는 일이 대다수다. 그런데 백재열은 정장 차림이었다.

신민영은 그걸 보고 재벌 티 내는 건가, 속 편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는 머리를 마구 쓸어 넘겼다.

부끄러웠다. 명색이 극을 끌고 나갈 주인공인데 조연 배우보다도 못한 걸 보여 줬다.

스케줄이 아무리 피곤했어도 작품에는 진심으로 임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진심으로 임했다 해도, 그걸 뛰어넘을 수 있을까?


신민영은 문득 아득해졌다.


“대단하더라.”

“선생님. 여기까지 나오셨어요.”


그때 조연을 맡은 원로배우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둘은 이전 작품에서도 몇 번 만났던 사이였다.

소속사가 같기도 하고.


“너 또 땅 파고 있을 것 같아서 나왔다.”

“······제가 뭘.”


그러니 둘은 서로를 잘 알 수밖에 없었다. 신민영은 딴청을 부리려다 한숨을 쉬었다.


“이번이 두 번째 작품이라는 게 말이 안 돼요. 어떻게 그런 연기를 하죠?”

“그러니까. 나도 겁먹었어. 그놈이 정말 사람 잡아먹은 것 같아서.”

“듣기로는 연기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됐다던데.”

“천재지, 천재. 그러니까 SBC에서도 전작으로 그렇게 홍보를 했던 거고.”

“그냥 천재 타이틀 달아 주려고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원로배우 조창규가 끌끌 웃었다.


“기죽지 마라, 민영아. 너만 그런 생각했던 거 아니야.”


실제로 백재열의 연기는 아직 검증이 필요했다.

<너와 나의 파레트>는 돈으로 밀고 들어갔다는 소문이 자자했고,

<역성의 늪>도 비슷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전작에서 보인 훌륭한 감정 연기는 일상물이라 가능했을 거라는 말들이 돌았다.

먼저 다가가 놓고도 백재열을 ‘배우’로 인정하지 않은 배우가 태반이었다.

신민영이야 그를 배우라고 여겼지만, 저만한 연기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저건 그냥 대단한 수준이 아니에요. 산, 같았어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연기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됐다는 신인은 더더욱.


조창규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먼 빌딩을 바라보는 신민영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더 힘들어지겠구만.’


싫은 일은 아니었다.

조창규 본인도, 이제는 백재열이 얼마나 더 보여 줄 수 있을지 기대됐으니까.



······이 미묘한 분위기는 뭘까.

그리고 그 시각 대회의실.

갑작스럽게 중단된 현장을 보며 백재열은 생각에 잠겼다.


연기를 할 때 참고했던 인물이 하나 있기는 했다.

대현 건설사 회장 막내 손자인데, 도박에 미쳐 집안 망신은 다 시킬 예정인 놈.

전생에선 그랬다. 지금은 아직 도박에 미치기까지 하진 않은 듯하다.


······그런데 그놈이 이만한 여파를 불러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뭐 방법이 있나.

밀고 나가야지.


그는 괜히 애를 쓰진 않기로 했다.

서연주가 좋아했던 배역을 1,000%로 살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


[‘너와 나의 파레트’ 최고 시청률 21.0%로 유종의 미 거뒀다]

[‘너와 나의 파레트’로 새로 쓰는 SBC 드라마의 역사]

[‘로코보단 장르물이다’라던 KBC, ‘너와 나의 파레트’ 종영 이후에도 처참한 성적]

[KBC 드라마에 실망한 팬심, SBC로 돌아서나?]

[장르물도 SBC다, 마혜진 작가 출격! 백재열을 등에 업었다]

[흥행메이커 마혜진 신작, ‘역성의 늪’ 신민영X백재열X강건 화려한 라인업 완성]


SBC 드라마 제작국 국장실.

마우스휠 굴러가는 소리가 드륵드륵, 기분 좋게 귓가를 울렸다.

드라마 제작국 국장, 조광현은 꽤 푸근한 얼굴로 웃었다.


‘우리 SBC 드라마국, 다시 영광의 시절을 되찾아야지.’


우진환 PD와 곽동기 부장과 가졌던 술자리.

거기서 했던 말이 그대로 실현되었다.

기세등등했던 KBC 드라마국 국장 놈은 요즘 PD들 쪼기에 정신이 없다고 하고,

편성이 SBC라고 하면 난색을 보이던 투자자 놈들은 어떻게든 돈을 더 대려고 안달이다.


“당연히 그래야지.”


조광현은 <역성의 늪> 대본 리딩에 참관했다.

1부 백재열의 연기만 잠깐 보고 나가려고 했는데, 리딩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옮기지 못했다.

그는 시종일관 백재열만 응시했다. 그러려고 한 게 아니었다. 도무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가히 SBC 드라마국의 개국공신이라고 불릴 만한 연기였다.

누가 감히 그 앞에서 다른 배우를 볼 생각을 하겠는가.


“천재? 아니지. 괴물이야, 괴물.”


[‘너와 나의 파레트’ 팀, 포상 특별 휴가, 하와이로 떠난다!]

[[단독] <역성의 늪> 대본 리딩 현장 전격 공개! 진짜 재벌이 연기하는 미친 재벌!]


“판을 뒤집어엎고도 남을 괴물.”


배우는 시기와 작품을 잘 타야 한다.

연기력 하나만으로는 어떤 경지에 오르지 않고서야 주목받기 힘들다.

매력적인 배우는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고, 어느 정도의 연기력은 이미 지녔거나, 갖추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야말로 생태계 교란종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 업계였다.


백재열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작가의말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꾸준히 읽어주신 분들껜 정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이번 작품은 오늘 회차를 마지막으로 연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짜놓은 설정도 많고 이제야 다른 작중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벌써 이런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번 작품으로 또 하나 배웠으니, 차기작은 좀 더 열심히 집필해 차주 월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무엇보다 독자분들께 재밌는 작품을 선사해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차기작으로는 그 바람이 잘 이루어지길 바라며, 오늘도 고민해서 집필하겠습니다.

연중 공지는 내일 중으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후회 안 하는 재벌가 배우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작품 제작 후원 명단(24.09.04) 24.09.04 85 0 -
공지 작품명 변경 공지(24.09.11) 24.09.02 80 0 -
공지 연재 주기 및 시간 공지(24.08.30) 24.08.26 690 0 -
» 재벌 3세의 망나니 재벌 연기 (2) NEW +4 9시간 전 211 12 10쪽
26 재벌 3세의 망나니 재벌 연기 (1) 24.09.18 381 16 13쪽
25 그 사람은 안 됩니다 (3) 24.09.17 461 24 11쪽
24 그 사람은 안 됩니다 (2) 24.09.16 503 28 11쪽
23 그 사람은 안 됩니다 (1) +1 24.09.15 636 30 12쪽
22 너 누구랑 사귈 거야 (2) +1 24.09.14 769 35 12쪽
21 너 누구랑 사귈 거야 (1) +1 24.09.13 873 32 13쪽
20 착각은 재벌 3세도 괴물 배우로 만든다 (3) 24.09.12 913 33 12쪽
19 착각은 재벌 3세도 괴물 배우로 만든다 (2) 24.09.11 917 32 13쪽
18 착각은 재벌 3세도 괴물 배우로 만든다 (1) +1 24.09.10 997 32 11쪽
17 싫은데요 (2) +1 24.09.09 1,027 36 11쪽
16 싫은데요 (1) 24.09.08 1,022 34 15쪽
15 고대하던 첫 방송 (2) 24.09.07 1,040 32 12쪽
14 고대하던 첫 방송 (1) +1 24.09.06 1,062 37 12쪽
13 한여름의 제작발표회 (2) 24.09.05 1,056 35 12쪽
12 한여름의 제작발표회 (1) 24.09.04 1,105 33 11쪽
11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4) +1 24.09.03 1,173 32 12쪽
10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3) 24.09.02 1,180 38 11쪽
9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2) 24.09.01 1,220 29 11쪽
8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1) +2 24.08.31 1,321 33 12쪽
7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3) 24.08.30 1,354 39 11쪽
6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2) +1 24.08.29 1,477 42 13쪽
5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1) 24.08.28 1,606 51 11쪽
4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3) 24.08.27 1,711 46 12쪽
3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2) +1 24.08.26 2,021 49 14쪽
2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1) +2 24.08.26 2,826 55 12쪽
1 이혼 후 전여친을 만났다 +2 24.08.26 3,250 63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