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안 하는 재벌가 배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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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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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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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안 됩니다 (2)

DUMMY


단호한 거절에 노양철 감독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안 된다니, 그게 무슨.”

“리스크가 있습니다. 꽤 큰.”


리스크.

그것도 인적 리스크.

영화판에서 그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단어던가.


상업영화 하나를 찍기 위해선 억 단위 돈이 가볍게 들어간다.

촬영 시작 전부터 편집이 끝나기 전까지, 그 모든 것들이 다 돈이다.

거대 자본이 들어가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시장.

그렇기에 제작사는 영화에 문제가 생길 만한 요소라면 기를 쓰고 피한다.

어떤 제작자는 물 떠 놓고 백일 밤낮으로 치성을 드린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도는 게 아니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 제작사에서는 그놈의 인적 리스크 관리에 최선을 다했다.

유별나게 신경 쓰는 건 대중들이 신경 쓰는 이름이다.

감독이나, 배우.


그렇기에 지금 노양철 감독 옆에 앉은 영화사 정원의 이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양철 감독이 물망에 올린 주연 배우를 쥐 잡듯이 조사한 게 그들이었으니까.


“리스크라뇨? 권태우 배우, 사생활 깨끗하고 눈여겨볼 만한 사항 딱히 없었습니다만. 혹시 서연주 씨가 권태우 배우를 꺼리시는 거라면, ······.”

“그런 건 아닙니다. 저희 연주 씨는 아무런 사감이 없습니다.”


백재열은 정원의 이사가 이상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전에 말을 막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품속에서 사진 여러 장을 꺼냈다.


“이건 저희도 최근에 입수한 정보입니다.”


순서가 있는 사진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웃는 권태우,

잠시 휘청거리는 권태우,

그를 뿌리치고 차에 올라타는 권태우,

운전을 시작해 자리를 뜨는 권태우.


“이게 무슨······?”

“사진을 건네준 기자에 따르면 음주 후였다고 하는군요.”


사진 위로 싸늘한 정적이 깔렸다.

멀리서 찍은 사진만으로는 실제로 권태우가 취했는지 아닌지 판별할 수 없다.

고작 사진 네 장만으로는 권태우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캐스팅하겠다고 마음먹은 감독의 고집을 꺾기 힘들 테다.


그러나 지금은 네 장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직 노양철 감독이 권태우와 상견례 자리를 가지지 않았으니까.

도장도 찍지 않았고, 제대로 진행된 건 하나도 없으니까.


백재열은 시선을 올려 맞은편에 앉은 둘의 표정을 살폈다.

고심하는 감독 옆에 인상을 한껏 찌푸린 이사가 보인다.

여기서는 이사가 중요하다.


“확실한 겁니까?”


던져진 소스를 확인해 보는 건 이사의 몫이다.


“그건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좋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는 어디까지나 ‘우리 서연주 배우’가 들어갈 영화가 무탈히 개봉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뿐이니까요.”

“그럼, 제가 이 사진을 좀······, 어제네요, 날짜가?”


노양철 감독이 서연주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는 걸 알자마자 백재열이 한 일은,

권태우에게 사람을 붙이는 거였다.


그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음주운전을 했다.

그날 담벼락을 들이박은 것도 영화가 성황리에 개봉한 게 기뻐 가진 술자리 탓이었다고 한다.


그래, 음주운전을 하는 놈들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운 좋게 넘어간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된다.

그러다 사고가 나고 사람이 죽는 것이다.


“저도 사진을 받은 게 오늘입니다.”

“하하······.”

“······이것참, 공교롭게 됐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사진만 보고서는 잘 모르겠네요. 휘청거리는 작태가 심상치 않기는 하지만, 걸려 넘어질 뻔한 걸 수도 있고. 그렇지 않나요?”


노양철의 말에 백재열이 순순히 끄덕였다.

약간의 저자세가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감독이 ‘난 이 조합이 마음에 든다’라고 했는데 ‘그건 안 됩니다’라고 뻗댄 것 아닌가.

대형 투자자도 숙이고 들어가는 상대다.

따뜻함이라고는 없는 저 냉정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 주는 게 좋았다.


“그래서 직접 확인해 보십사 이야기드린 겁니다. 제 정보가 잘못된 거라면, 따끔히 말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권태우 배우에겐 사감이 없습니다. 우리 소속사의 배우가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감독님께서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 무사히 흥행까지 이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권 배우가 물망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살펴보았다.”

“그렇습니다.”

“······우선은 감사합니다. 사진은 유 이사님께 맡길게요.”

“예, 예. 확인 끝나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노양철은 영 못마땅한 듯했으나 곧이어 수긍했다.

그로서도 괜한 문제가 있는 배우를 끌어안고 싶진 않았을 테다.

몇 년을 공들인 시나리오가 배우 하나 때문에 엎어지는 일은,

다 찍어 놓은 영화가 개봉도 못 해 보고 묻히는 일은,

그도 비일비재하게 보고 살았다.


“그나저나, 백 이사님께선 정보력이 좋으시네요.”


미팅 자리는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서연주의 캐스팅을 확답받고 슬슬 자리를 정리하려는데, 감독이 문득 입을 열었다.


“내가 권 배우를 생각해 놓은 건 며칠 안 된 일인데. 그새 그걸 알아서······.”

“운이 좋았습니다. 이 업계가 소문이 빠른 덕이기도 하고요.”


노양철은 권태우라는 톱스타에게 침을 발라 두고 싶었을 거다.

그래서 슬쩍 흘린 말이 좋은 핑계가 되어 주었다.


“운이라······.”

“아마 제가 회사와 배우들을 생각하는 만큼, 운이 따라 주는 거겠죠.”


백재열은 서연주에게 시선을 던졌다가, 뒤늦게 탁주형을 보았다.

탁주형을 안 보면 이상해질 것 같아서 본 건데 흠칫 놀랐다.

그가 적잖이 감동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거다.


“저희 이사님이, 정말 저희 회사를 많이 생각해 주시긴 합니다. 정말, 정말로요. ······정말요.”

“아아, 예······.”


노양철 감독은 떨떠름했다.

아니 뭐, 저렇게까지 반응을 하나.

그러나 생각해 보면 저런 반응은 처음이 아니었다.


우진환 PD도 저런 눈빛이었다.


‘백 배우? 그 배우를 만난 건 말이지, 내 일생일대의 행운입니다, 형님. 형님도 생각 있으시면 내가, 어? 아니라고? 백 배우가 아니야? 왜? 아~ 연주 씨~ 연주 씨도 끝내주지. 연주 씨도······ 좋은 사람이야. 하. 내가 언제 또 이런 배우들이랑 촬영을 해 보냐.’


그땐 단순히 그놈이 사람을 너무 믿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마냥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재벌 3세 낙하산이라는 오명을 벗고 감독과 소속사 대표, 그리고 SBC의 희망이 되었나······.

정말 권태우에게 유 실장도 찾아내지 못한 문제가 있는 거라면.


‘그러면 마법사라는 별명이라도 붙여 줘야겠군. 아니, 아니지. 마법사는 너무 재미가 없어. 뭐가 있을까······.’


노양철은 생각에 잠겨 몸을 일으켰다.

그러느라 백재열이 유 실장에게 명함 하나를 건네는 것도 몰랐다.


“이건 투자자로서 드리는 명함입니다. 확인부터 끝내시고 연락 주십시오.”

“헉, 네, 네!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뒷모습을 서연주만이 묘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


모든 일은 순리대로 흘러간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시청자들은 더 재미있는 드라마를 좋아하고 감독은 문제 있는 배우를 피한다.


KBC에서 야심 차게 준비했던 특별 기획 드라마는 1부 9%라는 준수한 시청률로 기세 좋게 시작했으나,

<너와 나의 파레트> 8부와 맞붙은 2부는 7%로 아름다운 우하향 곡선을 그렸다.


그날은 이가은이 박현섭에게마저 상처받은 날이었다.

서연주가 ‘괴로운 마음을 참지 못해 헐떡이며 우는 연기’를 끝내주게 해낸 날이기도 했다.


과 내에서 이가은과 도준우, 박현섭을 두고 도는 질 나쁜 소문이 돌았다.

이가은이 둘을 두고 저울질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 때문에 박현섭이 이가은을 위로하는 장면이었다.

그와 동시에 자꾸만 도준우에게 흔들리는 이가은이 야속해서, 말실수를 한 장면이었다.

이가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박현섭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지 배신감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 너,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해?

- 미안, 미안해 가은아. 내가 실수했어.

- 너, 너 그동안 다 봤잖아.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 봤잖아. ······그래도 이번은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데도 무서울 수 있잖아.

- ······.

- 상처받고도 희망이 생길 수도 있지만, 무서워지는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나한테 상처 줬던 사람들이 잘못했던 거라면서. 내 탓 아니라면서······.

- ······.

- 이 나쁜, 나쁜 놈아······.


서연주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자신을 이상한 기분으로 바라봤다.

현장에서 저 마음을 어떻게 표현했더라.

카메라 앞에서 느꼈던 백재열의 애틋함은 화면으로도 그대로 실려 왔다.

하지만 같은 카메라 앞에 섰기에 느낄 수 있는 박현섭의 감정이 있었다. 그걸 그대로 가져와 이가은의 설움에 더한 거였다.


‘그거, ······어떻게 한 거였을까.’


아마 그건 내가 해낸 게 아닐지도 모른다.

백재열이 그의 감정을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해 준 거다.

나는 그걸 받아먹기만 한 거고.


‘······그걸, 대체,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


얼핏 살핀 실시간 반응들은 대단했다.

자기까지 눈물이 난다며 텍스트로 오열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가은은커녕 박현섭도 밉지 않다고, 둘 다 이해가 간다고 하는 사람들도.


‘나 혼자서 만든 장면이 아니야.’


그렇기에 더욱 욕심이 났다.

그때의 그 감각,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그런 연기를 가능하게 한 사람이 되려면, 백재열 같은 연기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연주의 사고는 자연스럽게 최근의 백재열에게로 흘러갔다.


‘권태우 배우는 안 됩니다.’


배우이자 바다액터스의 소유주, 그리고 보이저필름의 투자자.

연결된 듯 판이한 모습을 세 개나 가지고 있는, 다정한······.


- 우우웅


길어질 뻔한 생각을 환기시켜 준 건 핸드폰의 진동이었다.


[권태우 안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번 화 너 진짜 최고다 괜히 노 감독님이 이거 보고 마음 굳혔다는 게 아니야 연주야 넌 진짜 최고의 배우다]


“알겠다니까요.”


연달아 오는 메시지는 전부 탁주형의 것이었다.

서연주는 피식 웃으며 액정을 두드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탁주형이 조금 더 빨랐다.


[슬슬 액션스쿨도 들어가자]

[제일 좋은데로 알아놨어]

[재열씨랑 같이 들어갈거니까 알아두고]

[차기작 진짜 잘해보자 연주야 넌 최고의 배우다!!!!!]


‘재열 씨랑 같이’.


서연주는 그 단어를 한참 들여다봤다.

두근거리는 건 기대일 테다.

자주 마주치면, 연기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 수 있을 테니까.


오로지 그것만을 향한 기대일 거야.

다른 건······ 아닐 거야.


[이번 작품 잘 마무리하고 다음 작품도 힘낼게요]


서연주는 다시 백재열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면 속의 백재열이 말했다.


- 좋아해.


작가의말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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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2) +1 24.08.26 1,965 49 14쪽
2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1) +2 24.08.26 2,755 5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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