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안 하는 재벌가 배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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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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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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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안 됩니다 (1)

DUMMY

고요한 트레이닝실.

머리칼이 사락사락 넘어가는 소리, 가까워진 서로를 의식해 두근거리는 맥박의 소리, 애써 죽인 숨소리마저도 들릴 것처럼 정적이 내려앉았던 그 순간.

서연주의 매니저가 보다 못해 무슨 말이라도 던지려던 순간, 백재열이 서연주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다 됐습니다.”

“가, 감사해요.”


엉킨 머리칼의 정리가 끝났다.

가까웠던 거리가 벌어지자 조마조마하게 눈동자를 굴리던 서연주가 남몰래 안도했다.

그건 그의 매니저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다른 의미의 안도였지만.

어쨌거나 아쉬운 건 백재열만의 일이었다.


서연주는 괜히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매니저를 찾았다.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어서.


“커피, 커피라도 드실래요? 저희 매니저가 금방······.”

“안 그래도 찾으실 것 같아서 가져다 놨습니다.”

“여깄습니다.”

“아.”


백재열은 서연주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아니, 속속들이 알지 못했더라도 몇 달만 같이 촬영하다 보면 금세 알게 될 거다.

서연주가 카페인 중독이라는 사실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곧 그의 삶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오래 공부한 바리스타가 내린 커피라더군요.”

“이, 이탈리아요?”

“바디감이 묵직해 풍미가 아주 훌륭하다고 합니다. 산미, 별로 없는 걸 좋아하시죠.”

“맞아요. 우와······.”


그건 평소 백재열이 촬영장에 가져가던 커피와는 조금 달랐다.

아무래도 대량으로 유통해야 하는 물건과 맞춤형 소량 생산은 다를 수밖에 없는 법.

서연주는 커피를 한 모금 넘기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맛있다.”

“다행이네요.”


어디서 구해 온 건지, 고작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도 재벌은 뭔가 다른 걸 마시는 건지.

커피를 홀짝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느라 백재열이 뿌듯해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별세계 사람.

이럴 때면 백재열은 자신과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았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백재열에게는 여느 이방인과는 달리 적응의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쪽 일을 오래 꿈꿨던 나도, 실제로 일을 해 보고 나서 적응 기간이 필요했는데.’


그는 꼭 연예계에, 쇼 비즈니스 업계에 오래 발을 담갔던 사람인 것만 같다.

그럴 리는 없으니 철저히 공부했다는 말이 맞겠지.


“재열 씨 덕에 이런 좋은 커피도 먹어 보고, 늦은 건 전데······ 다음에 보답할게요.”

“그만큼 선배님께 촬영장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도움은, 그것도 제가 재열 씨한테 더 많이 받았는걸요.”


백재열은 인물을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지, 장면과 장면의 사이를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어쩔 땐 깊이 고찰한 흔적이 보여 서연주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게 다 과거의 본인이 알려 준 건 줄도 모르고.)

그러니 도움을 받은 건 백재열이 아니라 서연주 자신이다.


“재열 씨 연기는, 보는 사람을 자극하는 데가 있어요.”


서연주는 어느덧 반이나 비운 커피를 내려 두고 대본의 첫 장을 넘겼다.

9부의 시작.


‘회화과 작업실. 과제 마감일이 코앞이다. 한쪽에 웅크려 잠을 청하는 학생, 캔버스 앞에 매달리듯 한 학생, 그 옆의 거의 완성된 작품이 차례로 보인다. 마지막은 이가은의 옆모습. 무언가를 결심한 채다.’


“윤성 선배님도 요즘 대단하시잖아요. 전에는 감독님이 무슨 말을 해도 힘 빠진 게 눈에 보였는데, 저번에 재열 씨 말 듣고 완전히 살아나셔서······.”

“그건······.”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저도 재열 씨 보면서 자극 많이 받았고요.”


서연주가 고개를 든다.


“나도 더 열심히 해서 드라마 전체를 볼 수 있는 배우가 되어야지, 하는 자극.”

“······.”


그렇게 말하는 서연주의 눈은 어느새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고마워요. 우리 드라마 잘되고 있는 거, 그거 다 재열 씨 덕분이에요.”


반달처럼 휘어지는 눈에 백재열의 마음이 허물어진다.

사실은 당신 덕이라고, 그 고찰은 모조리 당신에게서 배웠다고, 내가 연기를 할 생각을 한 것도,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고······.

진실이 맴돌다 마음에 켜켜이 쌓인다.


“······전 선배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저 선배님 팬이지 않습니까.”

“아 그거, ······그거 정말이에요?”

“정말입니다. 그래서 차기작도 응원드리고 있고요.”

“어? 그거 대표님이 비밀이랬는데.”

“이것도 대표님한테 비밀입니다.”


백재열은 말할 수 있는 한 가지 진실을 농담처럼 던졌다.

서연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곧 까르르 웃는다.


벌써부터 올해의 로코퀸으로 주목받는 젊은 스타 서연주.

혜성처럼 날아와 쿵! 천재지변을 일으킨 재벌 배우 백재열.


드라마를 즐기는 대중들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화제의 주연 둘.

지금도 바깥에서는 <너와 나의 파레트> 이야기가 한창이고, 기사량은 날이 갈수록 많아지는 데다, 홍보를 위해 했던 인터뷰는 온갖 형태로 조각나 인터넷에 널리널리 퍼졌는데.

그 둘은 세상과 유리되어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웃고만 있다.


“그······ 두 분이 많이 친하네요.”

“그렇습니다.”

“그······ 백 배우님은, 매니저는 따로 안 두세요?”

“곧 둘 예정입니다.”

“아 네······.”


지켜보는 매니저와 비서만이 어색한, 여름날의 아침이었다.


*


백재열이 서연주에게 고백한 하나의 진심.

‘차기작도 응원하고 있다.’

그건 순도 100%의 진심이었다.


“······오늘은 이사님이라고 불러 드릴까요?”

“······재열 씨라고 불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도······.”


탁주형 대표, 서연주 배우, 그리고 백재열 이사.

셋은 서연주 배우의 차기작을 위해 노양철 감독과의 미팅 자리로 향하는 참이었다.


‘지금 바다액터스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배우 아닙니까.’

‘그건 지금 이사님, 아니 백재열 배우님도 마찬가지신데요······?’

‘그래서 제 미팅 땐 제가 꼭 참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거야 백재열 배우님 미팅에 백재열 배우님이 없으시면 안 되니까요······?’

‘회사 리스크 관리 차원이라고 생각해 주시죠.’

‘······무슨 소스라도 있으신 겁니까?’

‘사실은······.’


단순히 ‘서연주의 차기작 미팅’이라서가 아니었다.

백재열은 과거에 노양철 감독의 작품이 어떻게 됐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개봉 전부터 세련된 감각의 포스터와 흥미로운 예고편, 스타성 가득한 배우들과 감독의 이름값까지.

온갖 관심을 다 몰고 다니던 그 영화는 시사회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작품성도 훌륭하고, 현란한 액션으로 대중의 눈을 즐겁게 하기에도 충분하다고.

과연 손익분기점을 얼마 만에 넘길 수 있을 건지, 몇백만을 찍을 수 있을지가 그 영화의 관심사였다.


[권태우 음주운전... ‘불가살이’ 개봉 첫날부터 날벼락]


그랬는데 주연 배우 놈이 음주운전을 해 남의 집 담벼락을 들이박은 거다.

그것도 개봉 첫날부터.


그 뒤의 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백재열도 영화에 투자를 했던 탓에 약간의 손실을 입었었다.

물론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서연주가 직접 들어갈 영화다. 열과 성을 다해 찍은 영화가 개봉과 동시에 침몰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속상해하겠지. 어쩌면 울지도 모른다. 마침내 털어 내기야 하겠지.

그러나 백재열은 서연주가 완전히 주저앉을까 걱정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서연주가 최대한 행복하길 바랐다.

언제나 행복한 날들만 있을 수는 없다지만 그래도.

서연주를 하루빨리 톱스타의 자리에 앉혀 주고 싶었다.

바다액터스 간판 배우로, 모든 제작자가 갈망하는 배우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서연주가 최대한 많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그것이 곧 백재열의 행복이었다.


그러니 그놈이 들어오는 꼴은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못 본다.


“감독님 도착하셨대. 바로 들어가면 되겠다.”

“후, 하, 후, 하······. ······괜찮겠죠?”

“긴장돼?”

“조금요.”

“어우, 나도 긴장된다.”


탁주형은 괜히 너스레를 떨었다. 이 자리에서 제일 중요한 건 누가 뭐래도 서연주다.

주인공이 굳어 있느라 해야 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나오면 안 되니까, 얼어붙은 걸 어떻게든 풀어 주려고 한 거다.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랬는데 백재열이 한마디 툭 던졌다.

탁주형이 백미러로 뒷좌석을 바라봤다. 진득한 시선이 서연주를 향하고 있었다.

팬이라더니, 아주 열성적이네······.

탁주형이 약간 불안한 기운을 느끼고 있을 때, 백재열은 서연주에게 집중했다.


‘손잡아 줘요.’

‘그럼 좀 괜찮아?’

‘응. 당신이 손잡아 주면 훨씬 나아.’


지금은 손을 잡을 수 없다. 백재열은 느리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감독님은 이미 선배님 연기에 반하셨을 겁니다. 그러니까 미팅 요청까지 들어온 거고요.”


그 말에 서연주가 옆을 돌아본다. 어둑한 차 안에서도 진중한 눈이 환했다.


“선배님 연기, 제가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봤습니다. 노양철 감독이 감히 거절할 수 없을 겁니다.”


그 눈빛과 음성이 정신없이 날뛰고 있던 서연주의 마음을 꾹 눌렀다.

그건 정말이지 마법 같은 일이었다.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안심이 될까.

서연주는 아까부터 계속 이어 하던 심호흡을 멈췄다.

그래도 맥박이 쿵쿵 뛰어오르지 않았다.


“······와, ······고마워요.”

“있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굳어 있던 어깨가 자연스럽게 늘어진다. 공들여 세팅한 머리를 만지지 않아도 손 둘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조수석에서 그 기색을 느낀 탁주형이 돌아봤다.


“좀 진정됐어?”

“네. 이제 가요.”


어느덧 떨림은 사라지고 자신감만이 남은 서연주가 차 문을 열었다.


“어, 어. 가자.”


얼떨떨한 탁주형이 둘을 번갈아 보다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식당 안.

백재열의 말대로 노양철 감독은 웃는 얼굴로 서연주를 맞이했다.


*


“나는 서연주 배우처럼 파급력이 있는 사람들을 좋아해요. <너와 나의 파레트>, 사람들은 다 남자 배우들 얘기에 정신이 없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알잖아. 그 장르의 드라마가 잘되려면 여배우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거. 아, 백재열 배우의 연기가 아쉬웠다거나, 뭐 그런 뜻은 아닙니다.”


노양철.

충무로의 거물 중 하나.

액션영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감독.


“아직 방영은 안 했지만, 8부에서의 연기 아주 잘 봤어요. 내가 우진환 감독이랑도 친분이 좀 있거든. 그래서 몰래 보고 왔어. 내면의 갈등을 보여 주는 연기가 정말 일품이더라고요. 이야······ 어떻게 상대 배역의 감정까지 자기 걸로 끌어와서 표현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게 정말이지······.”


사적인 자리에서 보면,

그냥 말 많고 영화 좋아하는 아저씨.


“기술적으로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이름에 걸맞은 차가운 심장을 가진 사람.

그가 여태껏 보고 눈물을 흘린 영화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예술은 고도의 계산하에 탄생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사람의 감정 또한 사회적으로 학습되어 나타나는 반응이라고 본다.

‘기술적으로 좋았다’거나 ‘기술적으로 대단하다’는 말은 그의 입장에서 칭찬이다.

아주 대단한 칭찬.


백재열은 꼭 자신이 칭찬을 들은 사람처럼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미팅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몰래 와서 보고 간 연기가 그렇게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 그날 서연주의 연기, 아주 죽여주긴 했지. 서연주의 연기는 언제나 빛이 나지만 그날은 꼭 태양 같았다.


“그래서 말인데······ 사실, 합을 맞출 배우로는 권태우 배우를 생각해 놨지요.”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는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 양철나무꾼이 결국 또 그 길을 가려고 하는구나.

이럴 줄 알았다.


“그러시군요.”

“훌륭한 합이 될 것 같지 않습니까?”

“하지만 감독님. 아시다시피 배우 캐스팅엔 합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노양철은 물끄러미 백재열을 바라봤다.


“하시려는 말씀이?”

“권태우 배우, 안 됩니다.”


작가의말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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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너 누구랑 사귈 거야 (1) +1 24.09.13 832 32 13쪽
20 착각은 재벌 3세도 괴물 배우로 만든다 (3) 24.09.12 871 32 12쪽
19 착각은 재벌 3세도 괴물 배우로 만든다 (2) 24.09.11 879 31 13쪽
18 착각은 재벌 3세도 괴물 배우로 만든다 (1) +1 24.09.10 957 3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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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싫은데요 (1) 24.09.08 990 33 15쪽
15 고대하던 첫 방송 (2) 24.09.07 1,010 31 12쪽
14 고대하던 첫 방송 (1) +1 24.09.06 1,029 36 12쪽
13 한여름의 제작발표회 (2) 24.09.05 1,026 34 12쪽
12 한여름의 제작발표회 (1) 24.09.04 1,071 32 11쪽
11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4) +1 24.09.03 1,135 31 12쪽
10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3) 24.09.02 1,146 37 11쪽
9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2) 24.09.01 1,186 28 11쪽
8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1) +2 24.08.31 1,286 32 12쪽
7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3) 24.08.30 1,315 38 11쪽
6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2) +1 24.08.29 1,442 42 13쪽
5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1) 24.08.28 1,566 51 11쪽
4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3) 24.08.27 1,668 46 12쪽
3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2) +1 24.08.26 1,966 49 14쪽
2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1) +2 24.08.26 2,756 55 12쪽
1 이혼 후 전여친을 만났다 +2 24.08.26 3,171 6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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