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급 필력을 부르는 편집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초모씨
작품등록일 :
2024.08.26 15:15
최근연재일 :
2024.08.27 16:03
연재수 :
2 회
조회수 :
24
추천수 :
0
글자수 :
9,925

작성
24.08.26 17:13
조회
14
추천
0
글자
11쪽

꿈에

DUMMY

#


나는 아무도 없는 프렌차이즈 카페에 앉아 있었다.


평소처럼 노트북을 카페 테이블에 올려놓고 종이 빨대의 불쾌한 질감을 입으로 느끼며 커피를 빨아대고 있었다.


며칠 전 생각난 소재는 정말 대박이었다.


10년 동안 웹소설을 쓰겠다며 개노잼 틀딱 똥꼬쇼로 대중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던 나에게 이런 소재가 들어오다니.


이건 미쳤다.


소재를 말하진 않겠다. 이걸 보는 당신들이 베낄 수도 있으니까(어림도 없지).


이건 진짜 쓰기만 하면 대박이다.


이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카페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카페의 유난히 큰 스피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가사 없는 트로트 메들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들으면 글 쓰는 데 집중을 할 수 없다. 가사 없는 트로트 메들리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도핑 음악이다.


흘러나오는 노래는 가사가 없지만 멜로디는 뇌를 거치지 않고 내 가슴에 닿는다. 요즘 핫한 합정역 5번 출구가 가사 없이 흘러나온다.


코리안 트레디숀 음악인 트로트에서 5년 전에 발매한 곡도 최신곡이라 할 수 있다.


음악도 좋고, 사람도 없는 카페에서 마침 떠오른 대박 소재라니.


이보다 맛있는 밥상이 어디에 있을까?


"하아. 들린다. 조강현 잔고에 돈 들어오는 소리가."


노트북에서 워드 프로그램을 켜고 미친 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키보드를 치는 내 손끝은 마치 일류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처럼 유연하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화면에 써 내려가지는 검은 글자는 광기에 휩싸인 병정들처럼 거침없이 흰 화면을 정복해 갔다.


글밥을 구걸하고 산지 언 10년. 그동안 많은 글을 쓰고, 제법 괜찮은 소재라고 생각했던 글들도 있었지만, 이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마치 손끝에 새로운 자아가 생긴 느낌이었다.


손끝에 위탁 맡긴 글은 어느새 한 편을 끝내고 있었다.


더 이상 쳐다보고 있을 이유조차 느끼지 못했다. 눈이 쫓아가기도 힘들었다.


나는 화면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아무도 없는 카페에 울려 퍼지는 나의 키보드 소리와 트로트 메들리의 환상적인 합주 사이로 누군가가 보였다.


가슴에 빨간 글씨로 "앙 기모띠"라고 적혀있는 티셔츠와 새파란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얼마 전 어떤 섬에서 멸종한 줄 알았던 새가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새를 발견했던 학자들과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와. 아직 저런 옷을 입는 사람이 멸종하지 않았구나.


이것은 취향과 차별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순수하게 저런 조합은 로또 번호 6개를 맞추는 것보다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충격적인 남자의 패션에 눈을 뺏긴 와중에도 내 손은 멈추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글 걱정은 접어두고 남자를 더 관찰했다.


"앙 기모띠"라고 쓰인 티셔츠는 묘하게 촌스러우면서 요즘 빈티지 디자인이라고 할 수도 있나? 라는 애매한 경계의 폰트였다.


그리고 그의 바지는 정말로 압권이었다.


그의 바지는 통상적인 분류로 "청바지"라 부를 뿐이지 정확히 무슨 색이라 말하기 어려울 푸른색이었다.


그리고 그 바지 위에는 금색 실로 새겨진 별이 사타구니를 타고 양쪽으로 퍼져 내려가고 있었다.


이 디자인은 분명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망신시키고 싶어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해야 나올 수 있는 악수 중의 악수로 보였다.


저걸 돈 받고 팔았다면 그건 얼마를 받았던 사기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진귀한 구경을 한다니.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인 듯했다.


한참 남자를 구경하다 보니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도 잊고 있었다.


하지만 글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내 손은 이미 한 편을 넘고 두 편을 넘어 5화를 쓰고 있었다.


이 속도라면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30화가 나올지도 몰랐다.


써져 가는 글을 보니 충격적인 남자로부터 빠져나왔다.


하아 이런 기분이었을까? 성공한 예술가들은 한 번씩 겪는다는 그들만의 에피소드.


누군가는 화장실에서 힘을 주다 갑자기 벼락에 맞은 듯 글을 싸버렸다고 했고,


누군가는 모든 걸 때려치우고 다리 위에 올랐다가 지나가는 운전자의 경멸 어린 시선에 모든 것을 깨우쳤다고 했다.


그런 에피소드를 들을 때면 나는 이왕이면 멋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트로트 메들리에 각성했다.


조금 구수할지 모르지만 나쁘지 않은 전개다.


나중에 내가 쓴 웹소설이 드라마화가 되고 유명해져서 우퀴즈 같은데 나가서 말하면 꽤 웃길 것 같다.


하아. 그때가 되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다 쓰러져 가는 집 위에 위태롭게 얹혀 있는 옥탑방에서 탈출했겠지?


오빠라면 뭘 해도 잘할 거라며 잘 안돼도 나를 먹여 살리겠다고 말하곤 다음 날 친구 놈이랑 바람난 전여친도 후회할 거야.


시X놈들.


이왕 바람 필 거면 모텔에 가는 성의라도 보여야지. 왜 우리 집에서 그 지랄하다가 걸리고 난리야?


진짜 이것만 성공하면 그동안 나 무시했던 놈들한테 뭐라도 보여준다.


과거의 찝찝한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워갈 때도 손끝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였다.


"옆에 앉아도 될까요?"


앙기모띠티의 남자가 갑자기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네?"

"옆자리가 비었다면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카페는 텅텅 비다 못해 누군가 보면 망한 가게라고 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그런 곳에서 갑자기 내 옆에 앉는다는 남자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


"···."

"아. 혹시 불편하실까요?"


남자는 정중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그가 입고 있는 옷과 너무 어울리지 않아 순간 뿜을 뻔했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했다.


그 와중에도 내 손은 글을 쓰고 있었다.


남자는 내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알아챘는지 묻기 위해 잠시 굽혔던 허리를 펴고 내 앞에 섰다.


"그저 앉을 자리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시X. 그게 제일 수상하잖아.


나는 다시 한번 남자를 천천히 쳐다보았다.


남자의 앙기모띠 티는 마치 10살은 어린 동생의 티셔츠를 훔쳐 입은 듯 꽉 끼어 보였다.


그럼에도 그 옷이 들어갈 만한 얄상한 몸이긴 했다.


유사시에 내가 제압하기엔 충분한 피지컬이었다.


또 그의 바지는 내가 앉아 있고 그가 가까이 서 있다 보니 사타구니 부분이 딱 내 눈앞에 놓여있었다.


그의 금색 자수의 별은 사타구니에서 마치 오줌을 지린 것처럼 양 갈래로 허벅지 부분을 타고 내려가는 모양이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그 자수는 정말 정교하고 아름다운 빛깔의 금색 실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더 변태 같고 이상해 보였다.


평소 같다면 나는 이런 제의를 거절할 만큼 팍팍한 사람이 아니었다(이런 복장이라면 평소에도 조금 고민했겠다).


하지만 오늘은 그분이 오신 날이고, 이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글이 써지는 신내림이 언제 끝날지도 몰랐기에 그 어떤 변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유일한 변수였던 남자가 갑자기 말을 걸어온 것이 불편했다.


하지만 남자는 생각보다 정중하고 점잖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위험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 그러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남자는 냉큼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의 맞은편 의자를 빼서 앉았다.


모니터 뒤로 남자의 머리가 어른거렸다.


나는 우선 글을 더 쓰기로 했다.


이 남자에 대해 조금의 호기심이 들었지만, 왠지 말을 걸면 X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트북 너머로 남자가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고 계속 써 내려가는 글을 보고 있었다.


글은 어느새 11화를 넘어가고 있었다.


다시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비록 지금 내 앞에 앙기모티의 황금 자수가 사타구니로 흐르는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있다고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오늘 이후로 내 인생이 바뀔 것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써 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글은 빠르게 써져 가고 있었다.


제발 아무도 지금의 나를 멈추지 말아줘. 글을 쓰기 시작한 10년 만에 찾아온 기적의 시간이라고!


"혹시 작가님이신가요?"


그 독백을 들은 사람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남자가 말을 걸었다.


순간 내 시선이 모니터 넘어 남자로 향했다.


"예?!"


나도 모르게 꽤 큰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물론 주위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에도 내 손은 역시 글을 계속 쓰고 있었다.


"네?! 뭐라고요?"


나는 왠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방해하려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글을 굉장히 열심히 쓰고 계시길래 궁금했습니다."


남자는 앙기모띠티와 어울리지 않은 젠틀한 표정과 부드러운 에티튜드로 대답했다.


순간 신경질적으로 대답한 내가 머쓱했다.


"아. 글을 쓸 때는 조금 예민해서.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너무도 멋있는 태도입니다."


남자는 손바닥을 보이면 손사래 쳤다.


그의 손바닥에는 주름이 하나도 없었다. 그건 신기하다 못해 기괴한 모습이었다.


"사실은 가끔 이 카페에서 글을 쓰시는 분들을 보곤 합니다. 그럴 때면 너무나 궁금해서 말을 안 걸 수가 없습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하신데요?"

"물론 무슨 글을 쓰는지입니다. 저는 글에는 완전 젬병이라서 아무리 써보려고 노력해도 쓸 수가 없거든요."


그와 대화하기 시작하니 문득 예전에 번역체로 읽었던 외국 소설 플롯이 떠올랐다.


"이 카페에는 자주 오셨었나요?"

"아뇨. 사실 자주는···."


잠깐.


근데 이 카페는 어디지?


나는 주위를 쳐다보았다.


카페는 200평은 되는 듯했다. 엄청나게 넓은 공간 한가운데는 음료를 만드는 주방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주방 위로 대형 콘서트홀에서 볼만한 공중에 매달린 스피커가 천장에서 내려와 있었다.


그 스피커에서는 아까부터 듣고 있던 트로트 메들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 넓은 카페에 테이블이라곤 내가 앉은 이곳 하나뿐이었다.


언제부터? 분명 아까는···.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내 눈은 바쁘게 카페를 이곳저곳 살펴보았다.


평범한 카페처럼 보이면서 어딘가 말도 안 되는 풍경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 손은 글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곳은 커피보다는 공간에 이끌려 오는 사람들이 많죠?"


남자는 내 눈동자를 읽었는지 어쨌는지 다음 말을 이었다.


커피? 공간? 맞아 난 분명히 커피를 마시고 있었어.


하지만 테이블 위에는 그 어디에도 커피는 없었다.


그 와중에도 글은 써지고 있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렇게 대화하고 화면을 보지 않아도 글을 쓰실 수 있는 겁니까? 대단합니다."

"네?"


그때 본 화면에 글은 99화를 넘어 100화를 쓰고 있었고,


100화도 5000자에 다와 가고 있었다.


멈추고 싶었다. 뭔가 지금 이상하다.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이게 뭐야?!


그 순간.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다 쓰러져 가는 건물 위에 놓인 옥탑방의 천장이었다.


작가의말

이 작가가 망한 이유를 댓글에 남겨보아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SSS급 필력을 부르는 편집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 어? 24.08.27 10 0 11쪽
» 꿈에 24.08.26 15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