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급 필력을 부르는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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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모씨
작품등록일 :
2024.08.26 15:15
최근연재일 :
2024.08.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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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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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DUMMY

"하아.."


뭔가 영혼이 빠져나간 느낌이다.


아침에 그 모든 일이 꿈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다시 눈을 감고 평생 뜨고 싶지 않았다.


그런 느낌을 살면서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손이 움직이는 대로 글이 써지고 글에서 주인공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건 소재가 재밌는 것을 떠나서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느낀 감각이었다.


마치 전기차를 운전하다가 처음 디젤 수동을 운전하는 것만큼.


혼자 해결하다가 처음으로 여자와 사랑을 나눠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일어나서 다시 그날 밤 꿈에서 봤던 이야기를 쓰려고 바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미친 듯이 내려가고 있던 검은 글자와 앙기모띠가 쓰인 티를 입은 황금 오줌 자수 청바지의 남자뿐이었다.


"시X. 그 새끼만 아니었으면..."


어차피 꿈이니까 상관없지만 그 남자만 아니었다면 그 기분을 더 느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시X? 너 뭐라고 했어?"

"예?"

"계산해달라니까! 시X?"

"아. 죄송합니다. 잠깐 딴 생각을 하다가.."

"재수가 없을라니까. 아침부터 편돌이한테 욕을 다 듣네! 에이 썅."


계산대에 서 있던 남자가 내가 건넨 담배를 거의 빼앗듯 가져갔다.


그리고 문에 달린 종이 떨어져라 문을 세게 열고 나갔다. 덕분에 종에서는 청아한 소리 대신 날카로운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편의점 알바에 온 지 5시간이 지나있었다.


지난밤의 꿈 때문에 일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루 종일 그 꿈에서 놓친 글이 떠올랐다.


사실 꿈에서 쓴 글은 내가 실제로 쓴 글도 아니고, 그 글로 얼마나 성공했는지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중간중간 읽었던 글은 심상치 않았다.


그동안 인풋을 한다고 누구보다 많은 웹소설을 읽었던 나다.


대충 훑어만 봐도 대작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남 작품 한정 스킬).


엄청난 속도로 써내려 갔던 글은 눈이 쫓아가기도 바빴지만 그럼에도 내용이 들어올 만큼 탄탄한 문장과 흥미로운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재밌게 읽었으면 소재라도 기억이 나야하는 게 정상인데,


"와, 어떻게 진짜 하나도 기억이 안나냐.."


다시 그 순간에 들어가서 그 글을 쓸 수 있다면 나의 중심추인 세 번째 다리를 희생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아악!! 진짜 괜히 이상한 꿈 때문에 더 글이 안 써지잖아!!"

"워매, 오늘도 지랄하고 있네?"


카운터에서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때 동네 친구인 도현수가 왔다.


이 동네에서 할 일이 없기로 나와 쌍두마차인 작곡 지망생 도현수.


"뭐야. 벌써 3시야?"

"몇 시인지도 모르고 일하냐? 편돌이 기본이 안 됐는데?"


이놈은 점심쯤 일어나 (자기 말로는) 음악 작업을 하고 꼭 3시쯤에 편의점 커피를 뽑아먹기 위해 여기로 찾아온다.


놈과 친해진 것도 매일 이 시간에 찾아오는 도현수가 내가 쓰고 있던 글에 관심을 가지면서였다.


그것이 벌써 5년 전 일이다.


"얼굴은 원래도 별로긴 했는데.. 오늘은 더 죽상이네? 뭔 일임?"

"꺼져."

"왜 말해봐. 저번에 1+1로 플러팅했다가 까인 여자라도 다시 봤어?"

"지랄마. 그건 네 얘기잖아."

"하아. 사랑했는데, 덕분에 노래 몇 곡 뽑았지."


이놈도 제정신은 아니다. 앙 기모띠 티를 입은 남자처럼.


"글은 잘 써지냐? 뭐야. 오늘은 글 안 쓰고 있네?"

"몰라. 오늘은 안 써."

"에헤이. 우리 같은 하꼬 예술가들은 성실함이 기본인 것을.. 에잉 ㅉㅉ."

"넌 뭐 하냐?!"

"나는 임마 방금까지도 작업하다가 왔지!"

"들려준 게 있어야 믿지. 맨날 말은."

"내가 진짜 깔쌈한 거 나오면 들려준다니까?"

"그게 내가 살아있을 때여야 할 텐데."


놈이랑 나는 이렇게 선을 넘을 듯 안넘을 듯하는 디스가 이 시간의 일과가 된 지 오래다.


"얼른 커피나 마시고 가라. 오늘은 기분이 별로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얼굴이 오늘은 더욱 보기 거북하네."


저 시X롬이?


도현수는 내가 어떻게 보고 있던 신경 쓰지 않고 커피 머신 앞으로 가서 능숙한 손놀림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뽑았다.


이 가게 커피머신은 거의 도현수 혼자 쓴다고 봐도 무방했다.


동네 자체가 외지고 높은 각도의 골목길을 올라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쳐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이런 동네에 편의점이 있는 것은 국가 차원의 복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손님이 없었다.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늘 같은 담배를 2일에 한 번씩 사가는 아까 그 남자와 도현수 정도가 꾸준했다.


그리고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이벤트인 이 동네 할머니들이 있다(이 경우 높은 확률로 온갖 참견과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도대체 이 가게 사장은 왜 이런 데에 편의점을 만들었을까.


알바를 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떡밥이다.


잠시 사색에 빠져있을 때, 도현수가 돌리는 커피머신이 요란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오늘은 커피머신도 상태가 이상하네. 알바가 저러니 너도 기분이 거북하구나?"

"에이 시팔. 진짜 적당히 해라."

"알았어ㅋㅋ 정색하지 마. 더 못생겨지니까."


저 새끼는 늘 얼굴 가지고 지랄이다.


"아 맞다. 나 아까 오다가 진짜 개웃긴 사람 봤음. 볼래? 사진도 찍었어."

"거울 셀카라도 찍었냐? 관심 없다."

"어머, 미친놈. 말을 아주 맛있게 하네?"

"다 뽑았으면 가라. 오늘은 진짜 기분 별로다."

"이거 보면 기분 좋아질 텐데. 안 보여줄래. 네가 기분 나쁜 게 좋으니까. 그럼 간다~"


도현수는 마치 발랄한 일본 여자 캐릭터처럼 턴을 하고 나갔다.


이번에는 문에 달린 종소리가 맑고 청아하게 울렸다.


더 약이 올랐다.


"아우. 진짜."


도현수가 사라지고 종소리가 잦아들자, 다시 지난밤 꿈 생각이 들었다.


도현수의 정신 사나운 말과 행동에 잠시 자리를 양보했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이건 그 꿈이 좋았거나 신기했기에 맴도는 기억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봤던 내 성공의 동아줄이 하룻밤의 꿈이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허탈함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주위에 많았던 인맥들은 하나둘 잘려 나갔다.


부모님이 자랑이었던 서울 소재의 명문대 학생이었던 나는 하루아침에 밖에 숨기기 바쁜 30살 백수 아들이 되었다.


작품에 집중이 안 된다는 이유로 집에서 나왔지만, 사실 걱정스러움과 한심함의 중간에 걸쳐있는 부모님의 눈빛을 참지 못하고 나와서 살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즐거웠던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한 글들은 층층 쌓여 축축하고 냄새나는 늪처럼 변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그 늪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나는 어젯밤 꿈에서 나를 끌어내 줄 동아줄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꿈에서 깨어나고 몇 시간도 지난 지금까지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이 허탈함은 뭐로 해결해야 할까.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런 찝찝한 기분이 들 때면 앙 기모띠 티를 입은 남자가 떠올랐다.


현실에 그런 옷을 입은 남자가 존재할까? 꿈이라도 도대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조합의 패션이 그려졌을까?


내가 그런 옷을 가지고 있지도, 본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게 내 잠재된 디자인 감각이라면, 난 디자이너는 절대 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 남자가 떠오를 때면 짜증이 나면서도 뭔가 절박해진다.


그 남자 때문에 꿈에서 깨어났지만, 그 남자 때문에 글을 그렇게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다 보니 별생각이 다 들고 있었다.


[까--똑!]


아무도 없이 조용했던 사색의 편의점에 자본주의 새가 날아 들어왔다.


"뭐야."


[ 도현수 : 에잉 안보여줄라 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네. ]

[ 도현수 : 사진을 보냈습니다. ]


사진?


...


[ 조강현 : 야! 이거 어디서 찍은거야?]

[ 도현수 : 응? 그건 알아서 뭐하게? 너 취향이야? ]

[ 조강현 : 빨리 말해! ]

[ 도현수 : 오늘 진짜 지랄맞네, 우리 동네에서 찍었지. 커피 마시러 가다가 지나가길래 찍었지 ]


나는 바로 거리로 튀어 나갔다.


"아아아! 진짜 도현수는 왜 이걸 이제 보내!"


어디야? 어디지? 여기가 어디 방향으로 가는 거지?


나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최대한 비슷한 골목을 찾았다.


이 주변의 골목은 다 비슷한 건물들이라 특징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온 동네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 골목이 저 골목 같고, 이 길이 아까 왔던 길 같은 복잡한 동네를 몇 번이고 돌았다.


하지만 사진 속에 남자를 찾을 수 없었다.


"하아.. 도저히 더 못 하겠다."


나는 동네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숨을 돌렸다.


어느새 시간은 지나 늦여름의 짧아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또 놓쳐버린 건가? 사람들은 인생에 같은 기회는 두 번은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 두 번의 기회를 모두 놓쳐버린 건가?


나는 이 깊은 늪에서 나오지도 완전히 몸을 맡기고 잠수하지도 못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


고도가 높은 동네라 그런지 해가 지는 시간이 되면 유난히 하늘이 붉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아래에 사는 사람은 그 하늘과 사뭇 달랐다.


괜스레 하늘을 보며 더 울적해졌다.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고 편의점으로 돌아갔다.


편의점을 오래 비웠지만 사장에게도 별다른 연락이 없었고, 다른 손님이 왔다 간 흔적도 없었다.


다만 내가 나갈 때 너무 문을 세게 열었는지 문에 달려 있던 종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문에 다시 종을 달아 놓으려고 했다.


종을 들었을 때 그 종 끝에 달린 새 모형을 보았다.


이 종에 새가 달려있다는 것은 5년 동안 일한 오늘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


"아니야. 아니지."


그 순간 꿈속에서 떠올렸던 멸종된 새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새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것은 50년 전이었다.


그 이후로 아무도 그 깊은 숲 어디에서도 그 새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그 새가 멸종했다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더 많은 종의 새들이 사라졌다.


모두가 더 이상 새가 살기 좋은 시대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때, 50년 전 멸종했다고 생각했던 새가 발견되었다.


마치 끝나는 것은 없다고 말하듯이 말이다.


"끝나는 건 없지. 적어도 꿈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야."


나는 도현수가 보낸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


그 사진에는 한 남자가 커피를 들고 있었다.


앙 기모띠의 티를 입고 황금 별 자수가 사타구니에서 흘러내리는 청바지를 입은 남자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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