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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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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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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7화 낯꽃

DUMMY

***


삼강그룹 회장실.




보고서를 검토하던 설대호 회장은 뭔가 맘에 들지 않는 듯 불편한 표정으로 두터운 안경을 벗었다.


“밤잠을 설쳐서 그런가 어째 일이 손에 통 안 잡히네···.”


잠시 고심하던 설 회장은 책상 옆에 놓인 목발을 짚고 일어났다. 때마침 들어온 위 비서가 황급히 다가왔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전화를 받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재빨리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설 회장은 평상시와 달리 앉기를 거부했다.


“다리 두 짝 없는 놈도 질질 끌면서 구걸도 하는데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목발만 있으면 아마 부산까지 수월히 걸어갈 게다.”


목발을 짚으며 창가로 다가간 설 회장은 말없이 창밖만 물끄러미 바라봤다.

머릿속에 꽉 찬 생각을 비우려 노력해봤지만, 강현의 존재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도 새까맣게 모르는 걸 그놈이 대체 어찌 알았을까?”


짧게 내던진 속내, 얼굴에 가득한 수심.

설 회장의 속내를 파악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위성일은 설 회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넌지시 물었다.


“성일이 넌 알고 있던 게냐?”

“도련님이 한남동 다녀간 건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내막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하긴 그리 밤 고양이처럼 조용히 움직이는데 알 리 만무하지. 그놈 성격상 너한테 미주알고주알 얘기했을 리도 없고.”


사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수년 치 원유를 넉넉히 비축해놓은 만큼 당분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덕분에 삼강정유 주가는 연일 상승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강현의 계획이었다는 점이었다. 설 회장은 이 부분이 몹시 찜찜했다.


첩 자식 팔자가 더럽고 사납다는 이유로 늘 멀리했지만, 요 근래 강현이 보여준 능력은 설 회장의 이목을 끌기에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이정순 여사의 비행기 사건, 시발자동차까지 전부 우연이라 치부하며 애써 무시할 수 있었지만, 이번 일은 무게 자체가 달랐다.


시류를 정확히 읽는 능력, 완벽한 해결방안 제시까지 흠잡을 것 없이 완벽했다.


이는 자식들에게 그토록 바라고 고대하던 경영자로서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덕분에 뜨거운 가슴은 두근거렸지만, 고지식한 머리는 여전히 강현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혼자서 아무리 고민해봤자 같은 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위 비서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넌지시 물었다.


“난 그저 운이 좋았다 라고 평하고 싶은데 네 의견은 어떤지 한번 들어보고 싶구나.”


위 비서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이나 망설이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제가 감히 도련님을 평가하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뭘 잘못 보고 있는 건지 도무지 판단이 안 서서 그러네.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얘기해보게. 자네 아니면 이 얘기를 어디 가서 하겠나?”


한참이나 고심하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도련님은 똑똑하다 혹은 영특하다는 표현 그 위에 마치 홀로 우뚝 서 있는 느낌입니다.”

“내 마누라는 그놈 이야기가 나올 때 항시 영험하며 신묘하다고 입이 닳도록 말했지. 혹시 너도 그런 말이 하고 싶은 게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느낌일 뿐입니다.”


설 회장은 또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그놈 객장에 갔을 때 성일이 네가 보호자로 같이 다녀왔지?”

“예. 그렇습니다.”

“뒤로 물러나라고 하며 뭘 샀는지 알리지 않았고.”

“나오면서 한 번 더 물어봤지만, 대답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뿌연 안개 속에서 무언가를 찾은듯한 설 회장이 말했다.


“만약 고놈이 판을 넓게 짰다면······. 분명 삼강정유를 사들였을 공산이 높아.”


위성일 비서는 강현이 삼강정유 주식을 매입했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는 척 대답했다.


“저도 회장님 고견과 동일하지만, 확인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 궁금하시면 제가 증권사에 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

“번거롭게 그리할 필요까지는 없네. 이번 투자시험 종료가 언제지?”

“이번 주 수요일입니다.”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달력을 확인한 설 회장이 말했다.


“애들한테 전부 전화 넣어. 전부 현금으로 바꿔서 주말에 한남동으로 들고 오라 해.”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한국대 발표일이 언젠가?”

“오늘 오후 2시에 발표됩니다. 강현 도련님 합격 여부가 궁금하시면 김 비서 보내서 명단 받아오겠습니다.”

“뭘 부산스레 일을 만드나?”


담배에 불을 붙인 설 회장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했다.


“그놈한테 누구 붙였다고 했지?”

“영업팀 서기범 대리입니다.”


아무리 관심을 끌고 있다 한들 설 회장에게 강현은 여전히 숨기고 싶은 존재였다.


“함부로 입 놀리지 않게 정확히 얘기했나?”

“네. 그렇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따 잠깐 얼굴이나 보지. 할 얘기도 있고 하니 식사도 갈이 할 겸.”

“알겠습니다.”





***


한국대학교.


한국대 합격자 발표일에 맞춰 강현은 좌혜주 여사와 함께 한국대에 도착했다.


자신감 넘치는 얼굴의 강현과 달리 좌혜주 여사는 얼마나 긴장했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다리에 힘까지 풀려 강현의 팔을 힘겹게 부여잡고 있었다.


“이모. 제가 그래서 혼자 온다고 했잖아요. 이렇게 긴장하시면 건강에 안 좋아요.”

“집에 가만히 못 있을 것 같아서 왔는데 어떡하니? 이모 너무 떨린다. 걷지도 못하겠어.”

“여기 잠깐 앉아 계실래요? 제가 합격자 명단 확인하고 내려올게요.”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같이 가야지.”

“심호흡하고 천천히 걸으세요. 이제 다 왔어요.”


21세기에는 집안에서 간단히 클릭 한두 번으로 합격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 당시는 대학 내 붙은 대자보를 통해 직접 체크해야했다.


지방 수험생들의 경우 서울에 살고 있는 친인척 혹은 친구들이 대신 확인해주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모. 저기 보여요? 대자보 지금 붙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아휴 제발 우리 강현이 이름이 저기 있어야 되는데······.”

“시험 잘 봤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건강상 이유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좌혜주 여사에게 강현은 가슴으로 낳은 아들과 다름없었다.


그간 얼마나 노력한 지 알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가슴은 여전히 두방망이질 쳤지만, 합격 여부는 확인해야 했다.


다리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었다.


“사다리 올라탄 양반이 기다란 종이 붙이고 있는 거 보니 맞네.”

“얼른 가서 같이 확인해요. 저 혼자서 이름 찾으면 종일 걸릴 거에요.”

“그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고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얼른 가자.”


대자보 앞에는 수많은 사람이 보여 있었다. 전부 고개를 치켜든 채 진중한 얼굴로 자신의 이름을 살펴봤다.


어떤 이들은 가족과 혹은 친구들과 함께 합격의 기쁨을 나눴다. 반면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고개를 떨구며 낙담했다.


좌 여사 눈에는 이들의 희비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혹여나 불합격했을 때 강현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지 염려됐다.


“저쪽은 아니고 경영학과가 어! 저쪽이네요!”

“어디? 어디에 있다는 거니?”

“저기 대자보 붙이는 아저씨 오른팔 따라서 조금 옆으로 가봐요. 보여요?”

“어! 그래그래. 경영학과 저기 있네.”

“저기서 제 이름 찾으면 돼요.”


강현의 이름을 찾기 위해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에 힘을 바싹 준 채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제발······. 제발 우리 강현이 합격하게 해주세요. 제발······.”


좌 여사는 고개를 위에서 밑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리며 분주히 찾아봤지만, 강현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야······. 이거 뭔가 잘못된 거야. 그치? 우리 강현이 이름이 없는 건 말이 안 되는데······.”


다시 한번 명단을 확인했지만, 강현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우려하던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좌 여사는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아이고···. 우리 강현이가 몸을 그렇게 상하면서까지 공부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모 괜찮아요. 일어나세요. 찬 바닥에 앉으시면 어떡해요?”


강현의 손을 잡고 일어난 좌 여사는 와락 껴안은 채 대성통곡했다.


“아이고 우리 강현이 어째······. 이모가 맛있는 걸 더 많이 해줬어야 했는데···. 내 돈이라도 써서 남들 다 가는 학원이라도 보내줬어야 했는데······.”


서럽게 울고 있는 좌 여사와 달리 강현은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모. 저 합격했어요.”


분명 강현의 이름이 명단에 없었다.

옷소매로 흐르는 눈물을 틀어막은 뒤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전히 강현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명단에 이름이 없는데 무슨 말이니?”

“다시 보세요. 있다니까요.”

“강현아 이러면 이모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응? 얼른 집으로 가서···.”

“자꾸 밑에만 보니까 제 이름이 없죠. 맨 위로 고개 쭉 올려보세요.”

“어디? 어디를 말하는 거니?”

“제 손가락 따라와 보세요. 자 쭉 위로 올려보세요. 어때요? 제 이름 보이죠?”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강현의 말대로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떡하니 붙어 있었다.


“설강현······. 맞아······. 합격이야······.”

“수석 합격은 약간 오른쪽에 따로 있네요. 저도 떨어진 줄 알고 잠깐 놀랐어요.”

“어머 세상에······.”


간신히 틀어막았던 좌 여사의 눈물샘은 이제 주체할 수 없었다. 강현을 다시 한번 와락 끌어안은 채 대성통곡했다.


“아이고 이모는 강현이 떨어진 줄 알고 심장이 털컥 내려앉는 줄 알았어.”

“이모 덕분에 합격한 거예요.”

“수고했어. 우리 강현이 정말 고생 많았어.”

“이모 이러다 울보 되겠어요. 그만 울고 저 앞에 있는 고깃집 가서 밥 먹어요. 할머니한테 전화도 드려야 되고요.”


강현은 차가워진 좌 여사의 손을 꼭 잡은 채 한국대 정문으로 내려갔다.


같은 시각 고급 세단 한 대가 한국대에 도착했다. 차량에서 하차한 설 회장이 휠체어에 앉는 순간 총장과 직원들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단 말이야. 내가 온줄 어찌 알고 나왔나?”


우여곡절 많은 삶을 살아온 설 회장은 가방끈이 길지 못했다. 충분한 자본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배우지 못한 한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설 회장은 그 한을 조금이라도 풀고자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꾸준히 장학금을 지원해주고 있었다.


그런 설 회장이 방문했으니 총장이 버선발로 달려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전화라도 한 통 주셨으면 제가 더 일찍 나와 있었을 텐데요.”

“괜히 부산떨지 말고 들어가서 일이나 보게.”

“혹시···. 다른 업무 때문에 오신 겁니까?”


설 회장은 가벼운 고갯짓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아! 합격자 발표 참관하시려고 오신 겁니까? 제가 저쪽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됐네! 이 사람아. 한가한 노인네 소일거리 하고자 온 거니 신경 쓸 필요 없어.”


위 비서가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총장에게 들어가라는 사인을 주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빈말이라도 고맙네. 추운데 얼른 들어가게.”

“예! 살펴 가십시오! 회장님.”


합격자 대자보로 향하는 길.

설 회장이 슬쩍 질문을 던졌다.


“성일이 네 예상은 어때?”

“저는 합격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는 생각도 않고 있다?”

“그렇습니다.”

“일단 확인부터 하지.”


대자보 앞에 도착한 설 회장은 고개를 들어 명단을 확인했다.


“그놈이 무슨 과라고 했지?”

“경영학과입니다.”


설 회장 역시 이런 합격자 발표에 익숙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강현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괜히 시간 낭비만 했구나. 날 추운데 어여 가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위 비서가 대자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회장님. 도련님 이름 찾았습니다.”

“아무리 봐도 없는데 어디 있다는 게냐?”

“지금 보시는 명단 그 위쪽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위 비서의 손가락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강현의 이름이 시야에 들어왔다.


입꼬리가 슬쩍 움직일 정도로 기분 좋았지만, 애써 대수롭지 않은 척했다.


“수석이라······. 그놈 제법이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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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82 메르시보꾸
    작성일
    24.09.18 13:36
    No. 1

    메모장을 툭… 표정까지 상상이 가네요. 이런건 짤로 만들면 레젼드 등극할텐데요.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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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화 파급 +6 24.09.15 3,824 70 13쪽
18 18화 무게 +2 24.09.14 3,908 78 13쪽
» 17화 낯꽃 +1 24.09.13 4,045 78 13쪽
16 16화 아연실색 +1 24.09.12 4,158 75 12쪽
15 15화 적중 +1 24.09.11 4,215 74 11쪽
14 14화 비책 +2 24.09.10 4,154 72 11쪽
13 13화 영험 +1 24.09.09 4,228 76 12쪽
12 12화 이목 +2 24.09.08 4,325 78 12쪽
11 11화 집중 +2 24.09.07 4,460 68 13쪽
10 10화 가중 +3 24.09.06 4,663 71 10쪽
9 9화 제안 +4 24.09.05 4,703 78 15쪽
8 8화 선물 +2 24.09.04 4,743 80 13쪽
7 7화 운수 +3 24.09.03 4,917 7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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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기적 +5 24.09.01 5,501 92 11쪽
4 4화 운명(2) +5 24.08.31 5,466 91 12쪽
3 3화 운명 +3 24.08.30 5,728 83 11쪽
2 2화 추락 +4 24.08.29 5,844 87 12쪽
1 1화 푸대접 +3 24.08.29 7,061 7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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