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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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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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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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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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마계 전선 이상 없음 [2]

DUMMY

눈을 뜬 내 시야에 보인 것은 익숙한 막사의 천 지붕이었다. 주위에서 코 고는 소리도 조금 들렸고 뒤척이는 소리도 들렸다.


밖에선 호탕하게 걷는 두 남자의 대화 소리도 들렸다.


“푸하하하! 그게 사실이냐?”

“그래! 맨날 자랑하던 마누라가 영주 아들이랑 바람이 났단다! 지금 사랑의 도피 중이라더군!”

“······.”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에피소드를 끝내야만 할 것이다.


“흐으···.”


나는 종아리의 컨디션을 확인해 보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는 이 세계를 만든 작가, 모든 설정집은 내 머릿속에 있다. 작가가 100% 이 세계를 공략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리라.


눈앞에 문구가 하나 번뜩였다.


[1에피소드의 제목을 정해 주세요]


그 문구를 본 나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이곳이 마계 전선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허공에 떠오른 팬을 잡고 글씨를 적어나갔다.


허공에 적은 구불구불한 글씨가 정갈한 글씨체로 바뀌어 번뜩였다.


[1.EP 마계 전선 이상 없음!을 시작합니다]


허공에 번뜩인 문구가 사라졌다. 문구가 사라지고 나서 시야에 보인 것은 부담스러운 수염 가득한 중년 남자의 얼굴이었다.


“으악!”


내가 놀라 몸을 뒤로 빼자. 중년 남자가 실실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애송이! 너에 대한 얘기를 다 들었다! 듣자 하니 전장에서 도망친 겁부라고 기지 내에서 소문이 자자하더군!”


그가 배꼽을 부여잡으며 웃는다.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누, 누구세요?”

“나는 4분대 대장인 그렉이다.”


부우우웅!!


망루 위에 있던 병사가 나팔을 분다. 출정을 알리는 나팔 소리였다.


“다시금 말하지. 조금이라도 망설임을 보인다면 네 목을 따버릴 거다. 죽고 죽이는 마계 전선 최전방에 온 것을 환영한다. 애송이.”



* * *



정오도 채 되지 않은 맑은 하늘, 적당히 서늘한 바람, 하늘에 뭉개 낀 안개 시리가 가리고 있는 태양 빛.


저벅 저벅 저벅

철컥, 철컥, 철컥


수많은 발소리와 무거운 갑옷끼리 서로 맞물리는 철음, 진창 된 발자국과 시체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는 메마른 바닥, 딱딱하게 굳어 있는 피.


그리고 피를 양분 삼아 피어난 꽃.


콰직!


꽃이 짓밟히며 모두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우오오오!”


쿵!

쿵!

쿵!

쿵!


메마른 땅이 준동하기 시작한다. 전투 나팔이 울리며 더욱 커지는 함성에 새들이 하늘로 비상했다.


푸드덕!


그리고 결국 양적인 두 거대한 질량이 서로 충돌한다.


콰앙!!

콰드득!


“죽어라!!”

“키에엑!”


수많은 병사들과 그와 대립되는 마계의 괴물들.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으윽! 막아라! 전열이 밀리는 순간 잡아먹힐 거다!”


흔들리는 전열.

들쑥날쑥해지는 전황 그래프.

하지만 점차 안정되기 시작하며 수평을 맞춰갔다.

그 내부를 들여다본다.


난전이 따로 없었다. 곳곳에서 귀를 찢는 듯한 함성과 굉음이 울려 퍼졌다.


누군가의 귀에서는 이명이 들려오고 피가 흐를 듯했지만, 귀를 막을 여유 따위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으아아아!”

“키엑!”


푸욱!

푹!


창병 고블린의 거센 찌르기 공격은 철판을 덧댄 장방패에 막힌다.


카앙!

쾅!


때때로 난전과 틈새 속에서 정확한 한 발로 존재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궁수.


어지간히 사격에 자신이 없으면 시도할 수 없는 근접 파이터 궁수였다.


좌아악!

피융!

팍!


“키엑!”


5인씩 한 분대로 수십 분대가 뒤섞이고 촘촘히 엮여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나도 있었고 그렉도 있었다.


“전진하라! 어이! 화초 너도 가라!”


나는 그의 말을 따랐다.


“으아아!!”


검을 휘둘렀다.


카앙!!


눈앞에 있는 고블린과 우연히 공격 타이밍이 겹쳐 검과 검이 서로 부딪히는 만화 같은 장면이 나타난다.


까각!


나는 여기서 검을 빼지 않고 힘으로 밀어붙였다.


물론, 나는 힘이 약했다. 고블린이 힘이 더 셌다. 하지만, 이 고블린에 대한 설정은 모두 내가 만들었다.


당연 약점도 습성도 모두 알고 있다. 나는 개연성에 미친 또라이 작가니까.


“으윽···!”


신체적인 체급에서 오는 격차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작달막한 고블린은 힘이 셌지만, 그 몸무게가 고작 40kg에 달하고 키도 120cm가 조금 안 된다.


더 나아가, 고블린은 늘 무게 중심을 앞으로 두는 습성이 있다. 설명하자면 길기에 간단하게 말하자면 힘쓰는 노가다를 너무 많이 해서다.


나는 순간적으로 검을 빼며 고블린의 몸이 앞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키엑!”


고블린이 본능적으로 무너진 몸을 바로 잡으려고 할 때 나는 긴 다리를 뻗어 고블린의 가슴팍을 발로 차 냈다.


퍼억!


“키엑!”


고블린이 바닥에 쓰러졌다.


성공했다!


“으아아!”


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가 고블린의 가슴팍에 검을 밀어 넣었다. 목을 노리고 싶었지만, 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지라 정확히 꽂을 자신이 없다.


서늘한 공기와 묘한 피비린내가 한차례 몸을 감돌고 나서야, 나는 가슴팍을 노리고 검을 꽂아 넣을 수 있었다.


푸욱!!


장기를 꿰뚫는 둔중한 감각이 검 끝을 타고 손바닥에 느껴졌다.

제기랄. 너무나도 역겹다.


“케게겍!”


고블린의 표정은 고장 난 기계처럼 뒤틀려 있다.


“우읍···!”


토가 치밀지만 나는 가까스로 목구멍을 좁혀서 막아냈다.


이후 체중을 실어 검을 밀어 넣는다.


검이 놈의 등가죽을 뚫고 교묘히 등뼈 사이를 뚫으며 땅에 닿은 듯했다.


고블린은 죽지 않았고 이리저리 발버둥 쳤다. 그럴수록 놈의 피부는 박혀 있는 검날에 갈려 나가기만 했다.


“으아아!”


나는 괴성을 내지르며 더욱 힘을 주었고 그러길 10초 정도 지났을까.


실이 끊어진 목각 인형처럼 고블린이 툭- 하고 힘을 잃었다.


죽은 것이다.


“허억···.”


나는 검을 뽑을 자신이 없어서 검을 놓은 채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걸어가 검을 힘껏 뽑아냈다.


쑤욱!


진득한 피가 늘어져 달라붙어 나온다. 음식물 쓰레기처럼 생긴 찌꺼기가 검에 묻어있다.


첫 살생은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우읍···! 웨에에엑!”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해두자.


한바탕 오바이트를 쏟아낸 나는 입에 묻은 토사물을 닦아내며 죽은 눈깔로 전방을 바라봤고 그때 언제 있었는지 모를 그렉이 내 등을 떠밀었다.


“가야 한다! 승리가 눈앞에 있다! 애송이! 지금 앞으로 달려 나가야만 한다!!”


나는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 나갔다. 승리가 눈앞에 있다는 말에 없던 힘이 생겨나는 기분이다.


“가자아아!!”


나는 그리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달려 나갔다.


쒜엑!!


화살이 내 귓불을 스치듯 지나갔다.


“···!”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지만, 뒤에서 자세를 낮춘 그렉이 날 밀고 나간다.


나는 달리는 선택지 말곤 없었다.


맞으면 운이 나쁜 거다.

맞으면 운이 나쁜 거다.

맞지 않을 거다.

맞으면 죽는 게 당연한 순리다.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고개를 낮춘 채 손으로 머리를 보호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머리 위로 바람을 꿰는 화살 소리가 들려온다. 두렵지만 이미 열의와 호승감이라는 분위기에 온몸이 지배된 상태.


멈추고 싶어도 다리가 멈추지 않는다.


결국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짐승처럼 소리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뿐이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다는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깨달은 나였다.


“키에엑!”


고블린들이 병사들의 기백에 쫄아 공포 어린 표정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내 수백 가까이 되는 고블린들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케엑!”


챙그랑!


고블린 한 놈이 무기를 버리고 먼저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자 도미노처럼 연쇄적인 작용이 일어났다. 다른 고블린들도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한 것.


“모두 섬멸하라!”

“죽여라!”

“도망치지 마라! 맞서 싸워라! 나약한 고블린 녀석들!”


그렉이 그리 소리쳤다. 지친 병사들이 되려 속도를 잃지 않고 더 빨리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검 끝을 높이 들어 창 던지듯 던졌다. 자신의 머리에 쓴 투구를 던지는 이도 있었다.


제 몸에 붙어 있는 온갖 것들을 던지는 병사들은 승리의 기쁨에 잔뜩 취해 소리질렀고 그렇게 내 첫 전투는 기분 좋은 승리로 막을 내렸다.



* * *



“크하하! 마셔라!”

“고블린 놈들 별거 없군!”


나는 멍한 얼굴로 아까의 전투를 상기하고 있었다. 전투가 끝나니 정신이 멍했다. 손가락 근육에 새겨진 둔중한 감각들이 아직까지도 내 손바닥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그렉이 술이 담긴 큰 오크통을 가져오며 내 등을 팍 쳤다.


“크하하하! 애송이! 제법이더군! 그런 쓰레기 같은 몸으로도 나름 잘 싸웠어! 네가 웬만한 병사들보다 나은 것 같다!”

“네?”


나는 그의 손에 담긴 술통을 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


어쩐지 주위가 소란스럽더라니 승리를 축하하는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너무 멍한 기분이라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식량 창고에 비축해 둔 고기와 지하 술 창고에 있던 술이 모조리 꺼내져 있고 사방에서는 불을 지펴 고기를 굽고 있더라.


한쪽에서는 고기가 타고 있고 한쪽에서는 술에 마셔 꽐라처럼 비틀거리며 익지 않은 고기를 뜯는다.


웃음소리와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지금 이곳은 승리의 축배를 드는 공간이었다.


“푸하하하! 고블린 놈들 꼴이 좋아!”

“내가 고블린을 어떻게 죽였는 줄 아나? 엉덩이를 그냥!”


나는 그렉이 건네는 술을 받으며 곧장 들이켰다. 취해버리면 깔끔하게 잊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꿀꺽!

꿀꺽!


물에 싸구려 포도주를 희석한 맛.


그렉이 피식 웃으며 내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애송이, 기억을 잃었다고 했나?”

“흐으··· 네···.”

“검을 다루는 솜씨가 꽤 나쁘지 않아. 조잡하고 신체를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지만, 기본은 이해하고 있지.”


내가 검을 잘 다뤘던가.

기억을 되짚어 보면 그냥, 휘둘렀던 것 같다.


아니지, 어쩌면 이 몸에 남아 있는 감각으로 싸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세계의 언어와 문자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릇 기억을 잃어도 젓가락질을 할 수 있는 법이니 그런 것일 테지.


“기억을 잃기 전 이 몸의 주인은 검술을 배웠나 봐요.”


그렉은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기억을 잃은 건 아쉽지만 넌 가문에서 버려진 아이니. 맘에 담아두지 않는 편이 나은 걸 수도 있다.”


그게 그렇게 되는 거구나.

나는 그의 깊은 뜻을 이해하곤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들이켰다.


“사정은 이해했다. 오래 살아남아라. 내일 이른 아침부터 시체를 치워야 할 거니,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고.”


그렉이 피식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장 다른 병사가 그렉의 옆에 달라붙었다.


“어이! 그렉! 네 마누라-”


퍼억!


그렉이 마누라 얘기를 듣자마자, 병사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마누라 얘기는 입에 담지 말라고 했다! 로덜트!”


주위 병사들이 환호한다.


“싸운다!”

“그렉이 이긴다에! 4실링!”

“어이! 로덜트! 그동안 갈고 닦아온 격투술을 보여줘라!”


로덜트라는 남자가 후끈한 볼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제길 그렉! 이 좋은 날에 꼭 주먹을 날려야겠나?”


나는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술을 들이켰다. 내 시야에는 이곳에 있는 모든 병사들이 죽은 이들로 보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미래기 때문이다.


정확한 날짜는 모른다. 곧 마계에서 대군을 이끌고 마계 전선 최전방을 쓸어버릴 것이다.


최전방 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 7천은 급습해 오는 마계 군에 전멸한다.


“제길! 그렇게 싸워놓곤 둘 다 힘이 남아도는구먼!”


이번 에피소드는 주인공이 마계 전선에서 넘어오는 군대를 피해서 도망치는 에피소드였다.


나는 다 마신 술통을 손가락에 걸고 흔들며, 웃고 떠드는 병사들을 바라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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