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보트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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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재
작품등록일 :
2024.09.0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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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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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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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살인자의 회고록

DUMMY

“사람은 누굴 죽였어요? 어쩌다가? 얘기 좀 더 해 줘요.” 민희가 말했다. 어쩐지 약간 흥분한 듯한 말투였다. 


“······”


재혁에게 그 일은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고통스러운 것이었기에, 말로 내뱉기 위해서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 재혁은 또 다시 한 숨 가다듬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혁은 보육원 출신이었다. 기억 속 첫 순간부터 그는 보육원에 있었다. 그의 부모는 만난 적도 없었는데, 듣기로는 출산 중에 어머니가 죽었고 홀로 남겨진 아버지는 재혁을 보육원에 맡겨 두고 그대로 사라졌다고 했다. 재혁은 아버지를 단 한가지 이유로 원망했는데, 다른 곳도 아닌 이 보육원에 자신을 위탁시켰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벨 보육원. 그곳은 아벨보다는 카인에 어울리는 곳이었다. 카인을 양성한다고나 할까, 어린 아이가 누군가를 돌로 쳐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물리적인 폭력이 동반되지는 않았다. 그저, 정서적인 폭력과 거세. 철저한 패배주의의 주입. 원장은 아이들을 아무 쓸모 없는 존재로, 사회에서 도태되었고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 철저한 물밑작업에는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았고, 아이들은 그렇게 패배자가 되어 보육원을 떠나 세상에 내던져졌다. 교육 없이, 노동하는 법과 순응하는 법만 배운 채로, 세상을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 채.


어린 재혁은 원장의 동기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한 번 왜 그랬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답은 재혁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고, 직후 원장은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의 진심을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희망없는 삶에서 희망을 가져봐야 불행할 뿐이라는 걸 아직도 모르겠느냐?”


원래부터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원래는 그저, 아직까지도 그런 짓을 아이들에게 하고 있으면 그만 좀 하라고 설득이나 시켜 볼 심산이었다. 자신과 그 이전까지의 아이들은 희망을 모르는 텅 빈 어른이 되었지만 이를 계속 계승해서는 안 될 일이니까.


하지만 원장은 당당했고, 오히려 그의 앞에서 궤변을 펼쳤다. 재혁은 지금 잘 살고 있지 않느냐고. 희망 없는 삶에 순응하여, 현실에 맞춰 낮은 곳에서 살아가니 정말 잘 된 일 아니냐고. 당시 스물다섯이던 재혁은 막노동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작은 단칸방에 세 들어 살아가던 중이었다. 확실히, 원장의 말대로 계속 그렇게 살았다면 자신의 목숨과 일상 정도는 영위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재혁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얼마 전 읽었던 책의 한 문장이 그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저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읽었던 책일 뿐이었다. 


"그래도 사람은 패배하기 위해 창조된 게 아니다."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괴될 순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그는 감옥에서 계속 후회를 했다. 왜 편의점 뒷교대 여자애가 그 책을 들고 다니는 걸 봐 버렸을까. 왜 아는 척 하며 작업이나 걸어 볼 심산으로 팔자에도 없는 책 같은 걸 사서 읽었을까. 왜 하필이면 그 책이 <노인과 바다>였을까. 어째서 그 노인이 그토록 아름다워 보였을까. 왜 굳이 그 보육원을 다시 찾아갔을까. 왜 원장을 설득시킬 생각을 다 했을까. 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했을까.


하나만 덜 했더라면, 한 번만 무심했더라면, 한 번만 참았더라면. 내 인생이 이렇게까지 비참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감옥에서의 삶은 지옥이었다. 끝없는 죄책감과 무력감 속에서 그는 삶의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자살 시도도 몇 번 했다. 하지만 감옥은 그에게 죽음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죽고자 하고 보니 깨달은 것이지만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나 죽고 싶은데, 이렇게나 무의미한데, 어째서인지 그는 살고 싶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강한 생존 본능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던 하루는 목사 한 명이 초빙되어 교도소에 왔다. 죄수들 앞에서 그는 설교를 했는데, 설교라기 보다는 강의에 가까웠다. 평소라면 관심도 없고 꾸벅꾸벅 졸기나 할 재혁이었지만 그 목사의 강의는 재미도 있고 나름 들을 만 했기에 재혁은 처음으로 누군가의 가르침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목사는 신이며 종교며 하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어떤 목적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고. 여러분은 죄를 지었기에 여기에 있고, 그중에는 반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성하지 않고 그대로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도 없고, 하는 심정으로 살아가는 이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지은 죄가 당신의 생명의 가치를 낮춥니까? 죄 때문에 당신은 무가치한 인간이 됩니까? 물론 현실적으로 사회에서는 그런 취급을 받을 수 있겠죠. 하지만 모든 죄는 기회입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 죄를 지었기에 인간은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고, 마음을 고쳐먹고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인간이, 여전히 무가치하고 쓸모 없는 생명입니까? 여러분께는 아직 기회가 있고 삶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부디 남은 인생, 의미를 찾고 생명 가득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의외로 죄수들은 이 설교에 큰 감동을 받았다. 재혁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었다. 그래서 재혁은 돌아가는 목사를 붙잡고 물었다.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자신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가. 어떤 걸 이루기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목사의 대답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누구나 해 줄 수 있을 법한 말이었다. 삶의 이유는 만들기 마련이고, 살다 보면 생겨나는 것이라고. 그것은 누가 대신 찾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살아 봐야 아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별 거 아닌 말이 재혁에게는 깨달음을 주었다. 이유를 모르겠다면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살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니, 계속 살아야 한다. 마치 고등학생들이 꿈은 없지만 미래에 어떤 꿈이 생길지 모르니까 공부를 하는 것처럼, 그 또한 어떤 이유가 생길지 모르니 계속 살아야 하는 것이다. 비록 맹목적일지라도, 결국 모든 생명은 살기 위해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이 대목에서 은정은 생각했다. 그럼 이 순간이 그 이유가 될 순간 아닌가? 저런 서사를 가지고 지금 딱 자진해서 희생하면 그만한 인생이 또 없을 텐데. 그걸 본인이 깨닫고 자진해서 희생해 준다면, 그보다 멋진 결말은 없을 텐데. 


동시에, 지후는 생각했다. 저 아저씨 대단하다. 이해는 다 안 되지만 멋있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재혁의 얘기는 물 흐르듯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감옥에서 열심히 자기 개발을 하고, 처음으로 공부도 해 보고, 매일 밤 후회로 전신을 씻어내고, 모범수로 복역을 마치고. 10년만에 밖으로 나온 재혁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감과 생명력만큼은 충만했다.


그렇게 5년. 그는 열심히 삶을 살아냈다. 비록 처음 감옥에서 나올 때의 마음은 빠르게 닳아 버렸지만 아직 미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그 흔적들이 그를 어떻게든 계속 살아가도록, 지상 위에 붙들어 놓았다. 어찌 보면 맹목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나쁠 건 없었다. 그 맹목성이 그를 죽지 않게 해 준 것이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살고 싶다는 마음은 당연한 거네. 세상에 죽고 싶어 하는 생물이 어디 있겠어, 인간 말고는 당치도 않은 일이지, 하고 민희는 생각했다. 그만큼 한 생명의 생존 본능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또 구태여 말로 표현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었다. 내가 살고 싶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해.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생존 본능만으로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었다.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값이 없는 것에 값어치를 매겨야 한다. 치졸하게 누가 더 살아야 하는지 무게를 재고 맞대 보아야 한다. 모두가 다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재혁의 긴 얘기가 끝났다. 그는 마지막으로 비수가 담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꼭 이 남자 세 명 중에 누군가가 희생해야 하는 건가요? 나머지 분들은 자연스럽게 명단에서 빠지고?”


순간, 민희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쩐지 바람의 방향도 바뀐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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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선의의 거짓말 24.09.05 10 0 10쪽
6 [6] 자기희생 24.09.04 10 0 10쪽
5 [5] 생존 본능 24.09.04 9 0 10쪽
4 [4] 궤변 그리고 분열 24.09.03 11 0 9쪽
» [3] 살인자의 회고록 24.09.03 9 0 9쪽
2 [2] 살아야 하는 이유 24.09.02 13 0 9쪽
1 [1] 침몰 24.09.02 2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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