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에서 생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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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튼애플.
작품등록일 :
2024.09.0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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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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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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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존의 시작!(3)

DUMMY

마력이 휘감긴 검을 단번에 휘두르는 발데스.

눈 골렘조차 단번에 갈라낸 강력한 참격이 날아들었으나 고작 얼음 따위로 버텨낸 늑대.

그렇다는 건 상대 역시 고밀도의 마력을 품은 얼음으로 대응했다는 것.

자연에 오염된 힘을 저렇게 응축시킬 수 있는 건 딱 하나밖에 없다.


"역시. '방랑 정령'이었나?"


혀를 차며 피해낸 발데스가 이를 악물었다.

단순히 정령에 깃들었거나 오염된 힘에서 태어난 변이체가 아니다.

자신이 계약한 존재처럼 본래 정령이었던 존재가 오염된 힘에 완전히 타락해버린 개체.

그러나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자아를 완전히 상실했네."


발데스의 말에 어느새 나타난 계약자가 슬픈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까지 오염되었다면 답이 없다.

완전히 타락하여 자아조차 상실한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안식'뿐이었으니까.

얼음 늑대만이 아니었다.

본능에 이끌려 몰려오는 다른 몬스터들 역시 전부 방랑 정령들이었다.

끝없이 방랑하다 결국 자아까지 상실한 불쌍한 존재들.

그런 그들에게 안식이라는 선물을 해주기 위해 마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후···."


숨을 내뱉으며 마력 컨트롤에 집중하는 순간 오염된 방랑 정령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의 공격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그의 신형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생동물처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얼음 늑대 위로 거대한 백색 곰 형태의 방랑 정령이 통째로 깔아뭉개기 위해 날아들었다.

서로 자신들이 먼저 발데스를 죽이겠다는 듯 달려드는 모습.

그런 그들의 사이를 재빠른 움직임으로 이리저리 피해내면서 검을 휘둘렀다.


카가각!


얼음을 베어냈음에도 불똥이 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발데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마력을 휘감은 검으로 뒤이어 오는 공격을 흘려내면서 거리를 벌렸다.


'단단하네.'


예리함을 부여한 마력을 둘렀음에도 쉬이 베어지지 않는 방랑 정령들의 외피에 미간을 찌푸렸다.

자아를 상실했기 때문일까?

본래라면 오염된 힘이라도 자유로이 움직여야 할 정령이 육체적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가진 힘 역시 오직 육체를 구성하는 데에만 집중되며 막대한 힘이 응집되어 있었다.

이 점 때문에 발데스조차 애를 먹을 정도의 강도를 가지게 된 것.

심지어 지금도 자연스레 주변의 오염된 힘을 흡수해 피해를 입은 곳을 수복하고 있었다.


"쯧!"


혀를 차는 발데스가 슬쩍 주변을 바라보았다.

전투로 인한 마력 파장에 이끌려 몬스터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 전투시간이 길어지면 더 많은 몬스터들이 몰려올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충분히 공략 가능한 수준의 몬스터들이지만 지금은 무리해서라도 단번에 정리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선 몬스터들을 한데 모을 필요가 있었다.


우웅! 우우웅!


일부러 마력 파장을 짙게 퍼뜨려 먹음직스럽게 만든 발데스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몬스터 몰이를 시작했다.

그에 본능에 따라 거점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이 발데스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이리저리 움직이던 발데스의 신형이 멈췄다.

동시에 그가 쥔 검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힘.

발데스조차 겨우 감만 잡은 그것이 마력에 부여되기 시작했다.


고위층은 물론이요, 가족과 같은 부하들조차 모르는 발데스의 힘이 마력을 타고 흘러나온다.

평민 출신인 그는 형편 좋은 귀족 출신들처럼 마력에 이것저것 시험해볼 시간도 힘도 없었다.

그렇기에 오직 단 한가지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


"후···."


모든 것이 끝났다는 발데스가 긴 숨을 토해내는 순간, 당장이라도 그의 몸을 후려칠 것 같았던 얼음 늑대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뒤를 노리던 곤충도, 공중에서 뛰어오르던 백색 곰도 그 뒤에서 빈틈을 노리던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내 모든 이들이 마력 핵이 있는 부분이 두 동강 나면서 그대로 갈라져 쓰러지는 기이한 현상이 펼쳐졌다.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쉰 발데스가 주변을 바라보았다.

무리하긴 했으나 단 한 번의 기술로 전부 처리했으니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그럼에도 발데스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기술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둘 다 아니었다.

바로 자신이 베어낸 방랑 정령들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것일까?

어느새 실체화하지 않은 상태로 발데스의 곁에 나타난 거대한 뱀.

그 역시 슬픈 표정으로 이미 죽은 방랑 정령들을 바라보았다.


정령왕에게 버림받은 [고유정령]들.

본래 정령계가 아니고선 살아가기 힘든 존재들이기에 고유정령들은 살아남고자 영역이란 걸 만든다.

그러나 그 영역조차 빼앗겨 같은 고유정령들에게조차 차별받는 존재.

생존을 위해 끝없이 떠도는 이들이 서서히 자아가 붕괴하여 끝내 완전히 오염되어 버린 것.

그들이 발데스가 방금 죽인 [오염된 방랑 정령]들이었다.


'부디 이들에게 안식이 허락되기를···.'


오염된 존재와 계약해서일까?

방랑 정령들에 대해 더 감정적이 된 발데스가 서서히 흩어져가는 방랑 정령들의 시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비틀거렸다.


"···괜찮아."


자신을 걱정하며 무리하게 실체화하려는 거대한 뱀을 막은 발데스.

바로 그때, 그를 보았는지 라흐티가 황급히 달려왔다.


"대장! 괜찮으십니까?"

"견딜 만해. 그보다 지하로 가는 통로는?"

"찾았습니다."


그 말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발데스.

그런 그를 부축하던 라흐티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조금 전 마지막 한 수. 혹시 제가 짐작하는 것이 맞습니까?"

"아직은 불완전해."


그 대답에 경악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라흐티.

불완전하다고 말하지만, 그 불완전한 경지조차 북부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존경심이 팍팍 느껴지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라흐티.


"대장님!!"

"지금은 이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야. 궁금한 건 요새 가서 물어봐."


부담스러운 라흐티의 눈빛을 외면하듯 고개를 돌리며 명령하는 발데스.

그에 아쉬운 표정으로 그를 부축하며 자신들이 찾은 비밀통로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부축을 받으며 도착한 곳은 거점의 중앙 건물이었다.

여기저기 무너진 건물 잔해더미 속에서 지하로 통하는 길을 찾아낸 이들.

딱 봐도 지쳐 보이는 발데스를 대신해 앞장선 분대장들의 뒤를 따라 한참을 내려간 끝에 마침내 지하시설에 도착했다.

철제로 된 문 앞에 도착한 발데스.

그런 그가 제발 마공학자가 살아있기를 바라며 단단히 봉해진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철판을 긁는 듯한 소음과 함께 열리는 철문.

그 안에는 의외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홀로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 안에는 다수의 병사가 서로 몸을 부둥켜안고 버티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발데스의 물음에 탈진한 얼굴로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벙커 안에서 푹 쉬면서 당장이라도 왜 이제 왔냐고 찡찡거릴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탈진한 것처럼 축 처져 있는 마공학자.

그런 그의 모습에 이상하다는 듯 주변을 바라보았다.

지하 벙커 안에 있던 비상식량조차 거의 바닥을 드러낸 듯한 모습.

거기에 벙커 전체에 최소한의 열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느라 무리했는지 마나석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들을 살리느라 지친 건가?'


본래라면 벙커의 일부분만 따뜻하게 만들어도 된다.

개인실에서 생활하며 나머지는 창고로 사용하면 그만이었으나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 억지로 개조해 벙커 전체를 따뜻하게 만들려 했던 것.

그렇기에 마나석이 금방 동나버린 것이다.

그나마 지금까지 버틴 것도 마공학자가 주기적으로 자신의 마나를 때려 박은 덕분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왔다는 건 구조대는 올 수 없다는 뜻이겠군."


마공학자로 보이는 남자의 말에 발데스가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이들 중엔 기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는 건···.


"책임자가 이곳을 버렸군요."


그 말에 쓴웃음을 짓는 마공학자.

압도적인 재앙 속에서 몸이 약한 마공학자를 데리고 후방으로 빠지긴 힘들었을 터.

그러니 정석대로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라고 지하벙커로 안내했을 것이다.

그럼 병사들은?

알아서 버티라고 내던져두고 자신들끼리 후방으로 빠져나가려 했을 것이다.

자신이 아는 이곳의 책임자라면 그러고도 남을 쓰레기였으니까.


"···거지같군."


마공학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혼자만 살아도 되었을 마공학자가 다수의 병사를 살리려 애썼다. 그러나 그 결과가 결국 죽음에 가깝다면 허망할 터.

그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본 것처럼 수색조 전원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마공학자를 바라보았다.


"왜. 내가 이들을 살린 게 의외였소?"

"솔직히 말하면."


마공학자의 물음에 솔직하게 답하는 발데스.

개차반 같은 성격을 가진 외골수가 바로 눈앞의 마공학자였다.

자신밖에 모르는 이가 남을 살린다?

솔직히 의외이지 않은가?


"글쎄···변덕일지도 모르겠소."


그렇게 말하며 허망한 표정을 짓는 마공학자.

그런 그에게 발데스가 나직이 말했다.


"병사들을 버리고 간 새끼들은 전부 죽었을 겁니다."


살아서 북부를 벗어나기 힘들었을 거라 말하는 발데스.

기사들이 누군가.

마법사가 되기엔 부족한 재능이라지만 그 능력을 신체 능력에 몰빵해 일반인을 아득히 초월한 육체 능력을 가진 이들.

그런 존재들이 제시간 안에 북부를 벗어나지 못했다?

쉬이 믿기 힘들었다.

그러나 마공학자는 발데스가 온 시점에서 그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혹시 재앙이 북부 전체를 뒤덮었소?"

"···아마도 그럴 거라 추정됩니다."

"당신이 그런 말을 했다면··· 내가 예상한 것도 맞다는 뜻이겠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발데스.

지금 마공학자가 하는 말은 마치 이럴 거라 예상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 발데스의 의문에 찬 표정을 본 마공학자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맞소. 이건 예상했던 재앙이오. 그리고 나 역시 수차례 보고까지 올렸지."


그럼에도 묵살 되었다는 것.

사실, 그럴 만도 하다.

북부에는 주기적으로 눈 폭풍이 몰려왔고, 상부 입장에선 이번에도 그 정도에 그칠 것으로 생각했을 터.

과하게 준비했다가 괜히 상부에 눈치만 보이느니 적정선에서 준비하라 했겠지.

마법사들 역시 귀찮다는 핑계로 마공학자의 보고서를 대충 보는 둥 마는 둥 했을 것이다.


'대충 북부의 몬스터들이 남부로 넘어오지 못하게끔만 막는 곳.'


중앙에서 보는 북부란 그런 곳이었다.

추위 역시 병사들이 버틸 최소한의 장치만 해결해주면 된다 생각할 뿐.


"후··· 내가 틀린 것이라 간절히 바랐건만. 다 끝났군."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절망하는 마공학자.


"살아남았잖습니까. 눈 폭풍이 사그라들 때까지만 버티면 희망이 있습니다."


발데스의 말에 마공학자가 어림도 없는 소리라는 듯 말했다.


"이 재앙이 그리 짧게 끝날 것 같소?"

"···."

"북부를 뒤덮은 눈을 보았다면 당신도 짐작할 텐데? 이 재앙은 우리가 다 죽고 난 뒤에도 한참이나 지속될 것이오!"


그렇게 말하며 다 끝났다는 듯 한숨을 쉬는 마공학자.


"고통 속에서 부질없는 희망에 기대 연명하느니···."


말끝을 흐렸으나 무엇을 말하지 못 알아들을 사람은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듯 말하는 마공학자의 말에 살아남은 병사들 역시 절망 어린 표정으로 품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고통 없이 가기 위해 군부에서 제공한 자살용 독약이었다.

이미 사전에 얘기라도 된 듯 모두가 그 독약을 쥐고 있는 것을 본 발데스가 갑자기 마공학자의 뺨을 후려쳤다.

그에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를 향해 발데스가 나직이 말했다.


"우린 살기 위해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죽으려거든 마력발전기를 고쳐놓고 죽으십시오."

"···의미 없는 발악이오. 이 재앙은 단시간 안에 끝나지 않을 것이오. 어쩌면 몇 년, 그 이상으로 지속될 수도 있단 말이오."

"그래서? 이렇게 삶을 포기하는 게 최선입니까?"

"···."


침묵하는 그에게 발데스는 조용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난 살아남기 위해 이런 짓도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에서 검보랏빛의 작은 바람을 만들어내는 발데스.

그걸 본 순간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마공학자답게 저 힘이 어떤 것인지 단번에 느낀 것.


"···어떻게 오염된 힘을."


놀라는 그에게 발데스가 말했다.


"난 이 힘을 어떻게든 키워서 마력발전기를 대신할 겁니다. 그러니 죽으려면 그때까지 마력발전기가 버티게끔 수리해주고 죽으세요."


그렇게 말하며 말을 듣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줘패서라도 끌고 가겠다는 듯 기세를 내뿜었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생기가 없던 마공학자의 눈에는 어느새 절망감이 사라진 상태였으니까.

대신 그 빈자리를 '광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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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3. 또 다른 생존자들.(4) +1 24.09.15 278 12 12쪽
13 3. 또 다른 생존자들.(4) 24.09.14 261 10 12쪽
12 3. 또 다른 생존자들.(3) +1 24.09.13 266 12 11쪽
11 3. 또 다른 생존자들.(2) +1 24.09.12 277 9 12쪽
10 3. 또 다른 생존자들.(1) +1 24.09.11 302 14 11쪽
9 2. 생존을 위한 발전!(4) +1 24.09.10 312 9 11쪽
8 2. 생존을 위한 발전!(3) +1 24.09.09 353 9 12쪽
7 2. 생존을 위한 발전!(2) +1 24.09.08 373 16 11쪽
6 2. 생존을 위한 발전!(1) +1 24.09.07 393 16 11쪽
5 1. 생존의 시작!(4) +1 24.09.06 407 13 12쪽
» 1. 생존의 시작!(3) +1 24.09.05 453 15 13쪽
3 1. 생존의 시작!(2) +1 24.09.04 587 17 12쪽
2 1. 생존의 시작!(1) +1 24.09.03 766 21 13쪽
1 프롤로그 +1 24.09.02 933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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