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치과의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i9
작품등록일 :
2024.09.03 16:36
최근연재일 :
2024.09.03 16:39
연재수 :
3 회
조회수 :
68
추천수 :
6
글자수 :
16,184

작성
24.09.03 16:37
조회
25
추천
2
글자
11쪽

전생 각성

DUMMY

1. 전생 각성



If you can dream it, you can do it.

꿈꿀 수 있다면, 그 꿈을 이룰 수도 있다.


-프타하.


나는 진로적성 검사 결과지 한 귀퉁이에 인쇄된 명언을 보며 볼펜을 굴렸다.


꿈이라.


피투성이의 고문 의자에서 사람의 생니를 뽑는 장면이 떠올랐다.

아주 익숙한 듯이 빠른 손놀림으로 치아에 구멍을 내고, 부쉈던 감각.

요즘 꾸는 정체불명의 꿈이었다.


뭐, 이런 걸 말하는 건 아닐 테지.


그렇다면 하루하루 반복되는 무가치한 삶을 벗어나는 것.

그리고 평화로운 일상을 만끽하는 것.


이 정도인가?


각자 자신의 검사 결과를 확인하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수염이 거뭇한 40대 담임이 한 차례 책상을 두드렸다.


“다들, 결과는 맘에 들게 나왔을진 모르겠다만. 이제 고3이 된 만큼 자신이 원하는 곳에 지망하려면 그만한 성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녀석들아! 대충 그냥 넘겨듣지 말고···”


길어지는 잔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시계를 봤다.

종례시간이였다.


여느 때처럼 영양가 없는 말들이 이어질 걸 예상하며,

시간을 때우기 위해 자연스레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를테면 창문 너머로 노을에 물들어가는 구름이라던가.


‘꼭 피에 절여진 솜 같네.’


구름이 불그스름해지는 광경은 꿈속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치아를 뽑은 빈공간에 메꿔 넣은 하얀 솜이 피로 붉게 물드는 모습 말이다.


다시금 꿈속의 풍경이 떠올랐다.

비린 피 냄새가 진하게 느껴지는 밀폐된 공간이었지만.

치아가 나뒹구는 광경이 혐오스럽거나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치아가 하나씩 똑똑 뽑혀 나올 때의 그 손맛.

손끝에 남아있는 그 희미한 감촉이 그 상황을 곱씹게했다.

나는 한참을 멍하니 턱을 괴고 창밖을 주시했다.


잠시후,


“···진성훈?”


문득, 교실이 조용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싸늘한 분위기를 보니 계속해서 내 이름이 불렸던 것 같다.


“네.”


뒤늦게 고개를 들며 대답하자 담임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담임의 시선은 내 책상 위에 낙서된 종이에 가 있었다.


“희망 적성에 의사 적은 거 보니 공부 열심히 해야겠던데.”


담임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동시에 커다란 손이 내 어깨를 우악스레 잡았다.


-새꺄. 오늘은 마치고 꼭 보자.


뒷자리에 앉은 김현석이었다.

어깨를 우그러트릴 것만 같은 강한 힘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곧 핏빛 낭자한 꿈속의 광경이 두렵지 않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현실이 더 악몽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



따악!


뒷통수가 쓰라리며 몸이 휘청거렸다.

신음을 삼키자 기다렸다는 듯이 경박한 웃음이 들렸다.


“야, 이 새끼. 어제도 남으라 했더니 그냥 갔더라?”


추운 날씨에 교문 앞에서 꽤 오래 기다린 모양인지 코를 훌쩍거리며 김현석과 그의 부하들이 다가왔다. 한 학년 아래 후배들도 있었다. 걔 중에 눈에 띄는 얼굴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자 바로 김현식의 손이 날라왔다.


‘윽.’


내 목을 움켜잡고 벽으로 밀어붙인 김현식이 씨익 웃었다. 평소처럼 몇 대 맞겠지 싶었는데 오늘은 파이팅이 남다르다. 켁켁 거리며 기침을 하자 겨우 풀려났다.


“시발, 추운 데서 기다리니까 이 시려 뒤질 거 같네. 어젠 어디갔었냐?”


180cm도 넘는 거구에 롱패딩을 걸친 김현식의 모습은 거대한 곰 같았다.

저 살로 뒤덮인 주먹이 날라오면 갈비뼈 몇 대는 가볍게 부러질 거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나 어제 시간 안된다고 말 했었는데.”

“뭐? 씨발 내가 만만하냐?”


녀석이 표정을 구기며 노려보자 옆에서 다른 놈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걍 오늘 여기서 죽여버릴까? 담가버려?”

“맞아. 이 새끼는 독해서 소리도 안내잖아.”


소리내면 죽여버린다고 할 때는 언제고.

한 대라도 덜 맞기 위해 이 악물고 참았을 뿐이다.


녀석들의 이죽거림을 들으며 잠자코 있던 그때.

후배 한 명이 비릿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들고 다가왔다.


“그러지 말고, 형님. 극한의 고통을 보여주시죠.”

“그게 뭐냐?”


화면에는 심상치 않은 동영상들이 여럿 보였다.

그 위에 표시된 검색어를 본 순간 경악했다.


‘고문’

‘최악의 고문’

‘죽음의 고통‘


진짜 미친놈들인가.

나도 모르게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오호?”


내 반응을 본 김현식이 흥미가 생긴 듯 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치아에 구멍을 여러 개 뚫어서 철사로 엮은 해골 사진이 걸려있었다.


<목숨 걸고 받았던 고대 이집트의 치과치료>


“이집트? 존나 무서운 동네구만.”

“이거 제대로네. 진성훈 아가리 딱 대”

“아니, 어떻게 하는 건지 봐야 알지.”

“그래, 일단 틀어봐.”


영상 시작되자 예의 그 해골 사진과 함께 단정한 흰 가운을 입은 치과의사가 등장했다. 마스크를 쓴 상태로 눈만 빼꼼히 보이는 여의사는 한 손으로 사진을 가리켰다.


[이집트 시대의 고대 유산]


-지금부터 고대 이집트의 구멍 뚫린 치아 사진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는 혹여나 모를 사태를 위해 강하게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참고로 비전문의가 마취 없이 시술했을 경우 환자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치료입니다. 아무리 튼튼한 치아라도 생니를 뚫어버리면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치료가 아닌 최악의 고문이 될 수도 있으니 정신이 나간 게 아닌 이상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단호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김현식 무리가 환호했다.

그 정신나간 미친놈들 여기 있습니다.


‘저 정도면 상아질 아래 신경까지 건드리겠는데?’


진짜 쇼크사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없는 녀석들의 모습에 다시금 기가 찼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다같이 손잡고 소년원이라도 갈 생각이냐.


‘근데 상아질이 뭐지? 치아 신경?’


혀를 차던 중 문득 든 의문에 고개를 갸웃였다.

내가 저런 단어를 알고 있었던가?


‘혹시 데자뷰?’


꿈 외에는 치과 관련해서 딱히 떠오르게 없는데.

일단 해골 사진을 다시 찬찬히 살펴봤다.


묘하게 친숙하고 낯익었다.

보면 볼수록 더 그랬다.


- 그럼 마취도 없는 시대에 어떻게 치아에 구멍을 냈을까요?


갑작스런 질문에도 답이 척척 떠올랐다.


‘사진 속의 하악(下顎)을 보면 잇몸뼈가 상당히 소실된 상태다. 이 정도면 염증이 꽤 오래 진행되면서 뼈를 녹이고 있었을 텐데······. 구멍 뚫린 치아는 건드리기만 해도 빠질 듯 흔들렸을 테니 발치 후에 구멍을 내었을 가능성이 크겠어.’


내가 말하고도 꽤 그럴듯해 보여서 얼떨떨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은 따로 있었다.


- 이 유골은 잇몸뼈가 녹아있는 걸 보니 치아를 발치 후에 구멍을 낸 것 같네요.


‘어어?’


영상 속의 의견도 내 생각과 같았던 것이다.

아니, 이거 오히려 내가 더 구체적으로 진단했는데?


“뭐야, 이빨을 먼저 뽑아야 돼?”

“이 새끼 표정보니까 곧 지리겠네.”


진짜 오지고 지렸다

이걸 맞춘다고?


- 그렇다면 왜 빠진 치아에 구멍을 내서 이렇게 금사로 동여매 놓았냐? 그것도 음식을 씹을 때 필요한 어금니도 아닌 앞니를 굳이 이렇게 해놓은 이유는 뭘까요?


놀랄 새도 없이 의사가 다음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답을 할 수 있었다.


‘심미(審美). 외적 아름다움.’


한번 물꼬가 트이자 뇌 속 지식이 봇물 터지듯이 범람했다.

나일강의 깊고 아득한 물결처럼 정보가 밀려들어왔다.


‘고대 이집트 시대((B.C.3000 ~ 300)라면 지금의 인류보다 턱뼈가 조금 더 크고 두꺼웠지. 골격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선이 가늘고 뼈 자체가 작다. 여자일 가능성이 커. 말할 때 바람 새는 소리가 나거나 웃을 때 앞니가 없었으면 콤플렉스가 심했을 거야.’


영상 속의 의사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 이때 당시 이집트는 미추(美醜)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던 만큼 심미적인 이유로 앞니를 다시 심었을 확률이 큽니다. 앞니가 생각보다 외모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거든요. 골격으로 봤을 때 여자분인 것 같네요. 그렇다면 더욱 신경쓰였겠죠.


역시나 이번에도 맞았다.

온몸에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한 말이 계속해서 들어맞고 있었다.

갑자기 든 느낌인데 이 사진 속 해골······.


- 이때만 해도 치과 시설이 상당히 열악했는데 이렇게 치료를 잘 받은 걸 보니 이 뼈의 주인은 상당히 고위층의 계급인 것을 짐작해볼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내가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저 말이 틀렸다는 걸 바로 알아챘으니까.


‘저건 하층민의 악골(顎骨)이다.’


머릿속에 무언가 기어다니 듯한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며 고대의 이집트 사회 분위기와 유행하던 건축물 양식, 사람들의 옷차림 등 세세한 것들이 뇌리를 스쳤다. 그때의 배경과 사진 속 해골의 상태와 대조해서 짐작컨대.


‘잇몸뼈가 소실되었다는 건 치주염(잇몸 염증)이 오랜 기간 방치되었다는 증거다. 치아의 수가 적은 걸로 봐서는 풍치도 상당히 심한 상태였어. 저 해골은 치료를 받을 금전적인,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이다.’


분명히 가정형편이 어려운 자였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순간 갑작스레 영상이 멈췄다.


“아니, 잠만. 나 잠오는데?”


목소리의 주인은 김현식이었다.

생각과 다른 내용에 실망한 모양이디.


”주절주절. 존나 설명충이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는 건데?”

“걍 강냉이 하나씩 박살내면 되는 거 아닐까요?”


김현식이 옆의 후배에게 폰을 넘겨주며 턱짓했다.


“찾아. 이빨 뽑는 법.”


평소라면 가만히 있었을 텐데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이상한 현상의 원인을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다급하게 둘 사이를 가로막으며 팔을 내뻗었다.


“멈춰!”

“웜매?”


김현식이 멱살을 잡아챘지만 바로 뿌리쳤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그 기회를 놓칠 것 같았다.

묘한 기시감에 휩싸여 핸드폰을 잡아들었다.


“그거 줘봐.”


다시 튼 영상은 어느새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 사진으로만 봐도 치아가 브릿지(bridge)식으로 잘 연결되어있죠? 일종의 이집트식 치간고정술(치아 탈구의 경우 치아를 고정하여 치유하는 술식)입니다. 수천 년 전의 이런 치료는 혁명이나 다름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술식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왜 소실되었을까요?


그리고 믿을 수 없지만.

나는 저 의문에 대한 답조차 이미 알고 있었다.

숨을 들이키자 저릿한 소름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이건 내가 한 치료다.’


꿈속 장면이 사진 위로 겹쳐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최초의 치과의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 세로파절선 24.09.03 23 2 12쪽
2 새로운 능력 24.09.03 20 2 13쪽
» 전생 각성 24.09.03 26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