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형사는 범인을 찢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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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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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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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범

DUMMY

주륵.


코에서 끈적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새빨간 코피. 조금 당황스러웠다.


‘살면서 코피는 처음인데.’


강현철은 근처에 있던 휴지로 대충 코를 틀어막으며 노머에게 물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봐.’


-김명호가 ‘내가 죽였다!’라고 말했을 때, 그의 목소리 톤이 평균보다 4데시벨 높아졌으며 순간적인 눈깜빡임 빈도가 3배 증가했습니다.


-또한 좌측 입꼬리가 20마이크로미터 단위로 떨렸으며, 오종대 형사의 눈을 35% 더 오래 응시했습니다.


-이는 심리적 긴장과 거짓 진술 시 나타나는 전형적인 징후입니다.


강현철은 다시 한번 노머의 능력에 감탄했다.


‘노머니까 알아챈 거야. 나였으면 눈치채지 못했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방금의 대화가 연기라는 의심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놈의 연기는 뛰어났다.


노머가 아니었다면 이대로 놈을 검찰에 송치했을 것이다.


‘김명호는 왜 거짓말을 하는 걸까?’


-추측해 보자면, 그는 모종의 대가를 받고 진범 또는 공범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려는 게 아닐까요.


강현철도 노머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니면 무언가 약점을 잡혀 협박당했을 수도 있고.’


뭐가 되었든 재수사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동료들이 강현철의 말을 믿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자백도 했고 증거도 명백한 상황에서 의심스럽다는 것 하나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해.’


노머의 존재를 밝힌다면 모를까. 합류한 지 고작 하루인 형사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특히 팀원들의 신뢰를 사지 못한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그러므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혼자 몰래 재수사할 수밖에.’


자리에서 일어선 강현철은 코피를 핑계로 관찰실을 나와 곧장 팀장님에게로 향했다.


.

.

.


“···김명호에게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고? 근거는?”


아까 노머의 복잡한 설명을 떠올려 보던 강현철이 자신감 있게 말했다.


“감입니다.”

“······.”


당당한 강현철의 태도에 곽대호는 할 말을 잃었다.


“안 되겠습니까?”


당연히 안 된다. 미꾸라지를 잡기 위해 고생한 것이 자그마치 두 달. 증거도 확실했다.


이제 검찰 송치만 하면 다 끝나는 상황에 사건을 다시 파헤치겠다니. 그것도 합류한 지 고작 하루 만에 말이다.


‘애들한테 미운털 박힐 텐데.’


그렇지 않아도 송학이랑 종대가 현철이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분위기였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재수사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 맞았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현철이는 동물적인 직감을 가졌다고 허성일 팀장이 그랬었지.’


이전 근무지에서도 감 하나로 많은 실적을 세운 게 강현철이었다.


‘유독 감이 뛰어난 형사들이 있지. 만약 강현철이 그런 형사 중 하나라면?’


현철의 말대로 정말 진범이 있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지도 모른다.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할 확률이 있다면,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게 맞았다.


‘무엇보다 저 눈. 확신에 차 있잖아.’


강현철은 직감이라고만 둘러댔지만, 말하기 곤란한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곽대호 팀장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검찰 송치까지 남은 시간은 48시간이다. 그 안에 뭐라도 좋으니, 진범이 있다는 증거를 가져와. 할 수 있겠어?”


이틀.

길다면 길고 짧다면 한 없이 짧은 시간이다. 강현철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겠습니다.”

“좋아. 하윤이에게 말해둘 테니 수사 관련 자료 받아보도록 해. 송학이랑 종대가 오해할 수 있으니 될 수 있으면 들키지 말고.”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괜히 들켰다간 골치 아파질 테니 말이다.


“받아.”


곽대호 팀장님이 내민 것은 다름아닌 자동차 키였다.


“차 없지? 일단 내차 써라.”

“하지만······.”

“됐어. 몰래 수사하는 거라 형사차도 못 쓸 텐데. 기스만 내지 마.”


강현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래. 어서 가봐.”


자리로 돌아온 강현철은 잠시 후, 팀장님의 지시를 받은 신하윤이 들고 온 두꺼운 보고서를 넘겨받았다.


쿠웅.


“김명호의 주변 지인과 가족, 그리고 당시에 탐문했던 내용입니다.”


세상에.

강현철은 책상을 가득 채운 보고서에 기겁했다.


‘이걸 언제 다 읽어?’


글자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데다, 시간도 이틀밖에 없는 상황에 종일 보고서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노머. 혹시 빠르게 요약해 줄 수 있을까?’


혹시나 하고 물었는데, 긍정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가능합니다. 페이지를 넘겨주시면 스캔하여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강현철은 서랍에서 단백질 바를 꺼내먹으며 보고서를 빠르게 넘기기 시작했다.


-스캔이 완료되었습니다.


눈앞에 간결하게 정리된 요약본이 떠올랐다.


‘가족은 아들인 김영식 씨 한 명이고,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은 양정수 씨······.’


그는 김명호의 오랜 친구이며 아진시 외곽에 위치한 시멘트 공장의 사장이었다.


‘반년 전부터 자주 싸웠다는 이웃의 증언이 있었으며, 그즈음부터 김명호 씨가 양정수 씨에게 매달 200만 원씩 송금한 이력이 있었다고?’


보고서에 따르면 양정수 씨는 오래전에 빌려준 빚을 받은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차용증도 있었다고 하니까 거짓말은 아니겠지.’


다만, 양정수가 막대한 빚을 빌미로 김명호를 협박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냄새가 난단 말이지······.’


보고서의 다른 인물도 살펴보았으나 양정수 씨가 가장 의심스러웠다. 강현철은 그와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보고서에 적힌 양정수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이 시간에 핸드폰이 꺼져있다고?’


고개를 갸웃한 강현철은 혹시 모르니 양정수 씨의 시멘트 공장에 연락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시 번호를 누르려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 하세요?”


왜인지 다시 돌아온 신하윤이었다.


“미꾸라지 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을 보고 싶어 한다고 해서 자료를 가져다드린 건데, 전화까지 할 정도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아, 그게 말이지······.”


곤란해하는 강현철을 보며 신하윤은 눈썹을 찡그렸다.


“우리가 고생해서 겨우 잡은 범인입니다. 수사 과정에 트집거리라도 찾으시려는 것 같은데 어림도 없다고요.”

“그게 아니라······.”

“어디 마음대로 해보세··· 음? 그거 양정수 씨 보고서잖아요? 뭐야? 그 사람한테 전화한 거예요? 왜요?”


강현철은 변명거리를 생각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당당히 입을 열었다.


“의심스러운 점이 있어서. 도송학 경위님과 오종대 경사님 몰래 수사 중이야. 두 사람이 알면 괜히 일만 복잡해질 수 있거든.”


역시 정면 돌파가 최고였다. 머리 굴려서 상황을 모면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았다.


‘···뭐가 이렇게 당당해?’


강현철의 뻔뻔함에 신하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만약 형님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간 난리가 나긴 할 텐데.’


드디어 미꾸라지를 잡아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괜히 이런 걸로 들쑤셨다간 사무실 분위기가 말이 아니게 될 것이다.


“할 거면 조용히 조사하세요. 어차피 아무것도 안 나오겠지만. 그래서 양정수 씨랑은 얘기 잘하셨나요?”

“아니, 양정수 씨 핸드폰이 꺼져있어서 연락도 못했어.”

“······핸드폰이 꺼져있었다고요?”


신하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양정수 씨는 사업가라 항상 핸드폰을 켜둔다고 했었는데······. 오죽하면 항상 보조배터리를 들고 다닐 정도라고요.”

“그걸 어떻게 알아?”

“예전 탐문 조사 때 알게 되었어요.”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제가 양정수 씨 시멘트 공장에 연락해 보죠.”


전화기를 넘겨받은 신하윤이 보고서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잠시 후, 전화를 마친 신하윤의 표정이 이상했다.


“왜 그래?”

“······양정수 씨가 실종되었답니다.”

“실종이라니? 자세히 얘기해 봐.”

“양정수 씨가 일주일이나 출근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긴 직원이 이틀 전에 신고했답니다.”

“마지막으로 발견된 곳은?”

“양정수 씨가 운영하는 시멘트 공장이요.”


설마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도주한 건 아닐까?


물론,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일주일 전이면 아직 김명호가 잡히지 않은 시점이었으므로 굳이 양정호가 도망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밍이 절묘해.’


이건 마치 김명호가 잡힐 걸 예측하고 도망간 것 같은 모양새이지 않은가.


-정말로 실종된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노머의 말대로 그저 우연이 겹친 일일 수도 있다. 뭐가 되었든 강현철이 할 일은 하나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부탁 하나만 하자.”

“무슨 부탁이요?”

“양정수 씨의 행동반경을 기준으로 주변 CCTV를 좀 살펴봐 줘.”


CCTV 분석은 꽤나 고된 작업이다. 하물며 확실한 증거도 없이 그저 의심만으로 다 끝나가던 사건을 다시 조사하는 일이라면, 짜증이 안 나려야 안 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하윤 또한 무언가 찝찝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해는 하지 마세요. 제가 돕는 건 양정수 씨가 실종된 것 때문이지, 미꾸라지 사건이 의심스러워서가 아닙니다.”

“그래, 알았다.”


사실 CCTV 분석이야 노머에게 맡긴다면 순식간일 것이다. 하지만 몸에 무리가 갈 게 뻔하기에 신하윤의 합류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럼 나는 양정수 씨의 공장으로 가볼게.”


강현철은 카고바지 주머니에 단백질 바를 잔뜩 챙겨 시멘트 공장으로 향했다.


***


강현철이 움직이기 시작한 그 시각.


“하아하아······.”


한 남자가 침대에 웅크린 채, 몸을 떨고 있었다.


“언제까지······하악··· 이렇게······.”


침대맡에 널브러져 있던 먹다 남은 술병을 집어 든 남자가 창가로 향했다.


파앗.


커튼을 걷자 쏟아지는 햇볕. 오랜만에 밝은 빛을 봤기 때문일까. 시야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후, 차츰 돌아오는 시야로 보이는 바깥 풍경에 남자는 입을 반쯤 벌렸다.


‘······사람이다.’


창문 아래로 보이는 거리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남자는 그중에서도 치마가 짧은 여성을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언제까지··· 대체 언제까지······ 참아야 하지?’


더는 참기 힘들었다.


피와 비명.


남자는 사방이 붉은색으로 점철된 공간에서 삶에 대한 갈망을 날 것 그대로 느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


살려달라고 울며 빌며 외치던 여자들이 짓고 있던 표정은 그 어떤 포르노보다 야했었다.


“으으으으······.”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손이 점점 더 떨려왔다.


입술이 새파래진 남자는 서둘러 침대로 돌아와 머리맡에 있던 인형과 커터칼을 집어 들었다.


‘그때 어떻게 했더라?’


아, 맞아.

먼저 다리의 힘줄을 끊었지. 도망가면 곤란하니까.


부욱-!


그다음은 목이었어. 비명을 지르면 시끄러우니까. 성대와 기도가 손상되지 않도록 찌르는 게 무척 힘들었지.


푸욱.


그다음은 팔.

허벅지.

어깨.

무릎.

등.

마지막으로······ 배.


부우욱-!


뱃가죽을 난도질당한 인형이 속에 감춰두었던 솜뭉치를 토해내었다. 그런 인형의 모습에 두 달 전 모녀의 마지막이 오버랩 되었다.


“하아··· 하아······.”


황홀했다. 인형만으로도 이렇게나 흥분되는데.


정말로 더는 참기 힘들었다.


“···안 되겠어.”


남자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치켜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울에 비친 남자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오늘 밤······ 할 거야.”


남자는 숨을 거칠게 쉬며 바닥에 바짝 엎드려 귀를 가져다 대었다. 지하실이 있는 곳이었다.


-살려 주···세···요······.


누군가의 가냘픈 신음이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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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쪽이 아닙니다 24.09.06 477 13 18쪽
1 과잉 진압 전문 형사 강현철 +1 24.09.06 521 1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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