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형사는 범인을 찢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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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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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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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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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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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그쪽이 아닙니다

DUMMY

예전에 누나가 물었었다.


“넌 왜 맨날 쌈박질만 하고 다니냐?”

“그야 걔들이 먼저 잘못했으니까.”


친구들에게 돈 뺐고 괴롭히는 놈들한테 가볍게 꿀밤 때려준 것뿐이다.


“방법이 잘 못 되었잖아! 방법이!”


누나는 말했었다. 정 혼내주고 싶으면 선생님을 불러 해결하던가, 증거를 모으라고.


‘···별론데.’


그딴 것은 전혀 속 시원하지 않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게 훨씬 더 통쾌하고 시원했다.


“그냥 못 본 척 살 수는 없냐?”

“어떻게 그래. 나쁜 놈들만 보면 피부가 가려워 참을 수가 없는데.”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누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안 되겠다. 넌 나중에 경찰이 되어라.”

“경찰?”

“그래. 나쁜 놈들 합법적으로 팰 수 있잖아. 네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내 방식으로···?”


씨익.


그렇게 난 경찰이 되었다.


***


“으음······.”


창문에 비치는 햇살이 눈 부셨다. 강현철은 얼굴을 찌푸리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여긴···?”


치우지 않은 컵라면 용기와 쌓여있는 설거지. 별다른 것 없는 평소의 집안 풍경이었다.


“아 맞다! 트럭!”


그제야 지난 밤일이 떠오른 강현철이 몸을 더듬거리며 살폈다.


‘멀쩡···해? 왜?’


분명 팔다리가 모두 꺾인 데다 출혈도 엄청났었다. 애초에 깨어난 곳이 병원이 아니라 집이라는 것도 이상했다.


‘설마 꿈이었나?’


그렇다기엔 옷이 완전히 넝마가 되어있었다.


강현철은 팔을 붕붕 휘둘러도 보고, 가볍게 스쿼트와 푸쉬업도 해보았으나 아픈 곳이 전혀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누나!”


자리에서 일어나 누나를 찾아보았으나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한가지. 식탁 위에 놓여있던 자그마한 금고와 누나가 남긴 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선물이야. 마음대로 써도 된다. 대신 잃어버리면 죽어.]

[그리고 당분간 나 찾지 마. 어차피 연락도 안 되겠지만.]


자기 할 말만 하는 게 딱 누나의 말투였다.


‘···아니, 뭔지는 몰라도 비밀번호는 알려주고 가야지.’


금고는 8자리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방식이었다. 강현철은 당장 생각나는 몇몇 번호를 입력해 보았으나, 열리지 않았다.


‘···억지로 열어봐?’


힘으로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았으나 그랬다간 안에 든 물건이 상할 가능성이 있기에 그만두었다.


‘됐어. 나중에 누나가 열어주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꺼져있었다. 누나도 없고 기억도 잘 나질 않으니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사고 현장에나 가보자.’


강현철은 금고를 대충 아무 데나 던져두고 일단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


몸은 멀쩡해도 피부에 덕지덕지 묻은 흙먼지와 굳은 핏자국이 찝찝하기도 했고, 이런 몰골로 밖에 나다녔다간 신고당하기 딱 좋았으니 말이다.


빠르게 샤워를 마친 강현철은 어젯밤 사고가 난 곳으로 향해 사진과 CCTV 영상을 모조리 긁어모아 사무실로 향했다.


하지만.


“···뭐야 이거?”


새벽 시간 전체를 다 뒤져보아도 그 뺑소니 트럭이 찍힌 영상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꼭 찾고 만다.’


오기가 생긴 강현철은 그날부터 뺑소니 트럭을 찾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


한 달 뒤.

아진시에서의 첫 출근날이 밝았다.


‘출발해 볼까.’


새로 이사 온 집 현관을 나선 그는 가볍게 준비운동을 한 뒤,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아진시 중부 경찰서까지는 정류장 3개 정도 거리였기에 웬만하면 아침 운동 겸 달려서 출근할 생각이었다.


“후욱··· 후욱···.”


아진시의 아침은 짙은 회색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얼굴은 어딘가 피곤해 보였고, 눈동자엔 불안이 깃들어 있었다.


학생들은 지각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뛰었지만, 그들의 발걸음엔 이상한 긴장감이 묻어났다.


마치 뭔가를 피해 달아나는 듯한, 그러나 그 목적지를 모르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도시 전체에 낯선 긴장감이 감돌았다. 새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는 하늘을 가렸고, 그 아래 달동네는 낮에도 어두웠다.


몇몇 집 창문 너머로 보이는 주민들의 창백한 얼굴은 마치 빛을 잃은 듯했다. 길거리를 지나는 이들 역시 햇빛을 피하듯,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기분 탓이겠지.’


그래. 전입해 오기 전에 동료들이 해준 이야기들 때문에 선입견이 생긴 탓일 것이다.


아무리 아진시의 치안이 안 좋다지만, 아침부터 사람들이 저렇게 경계할 정도라는 건 말도 안 되었다.


‘그 정도로 불안한 도시면 당장 다른 도시로 이사 갔겠지.’


강현철은 괜한 선입견을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다시 달리기에 집중했다.


잠시 후 건널목 두 개를 지나 기다란 탄천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였다.


부릉-


옆으로 지나가는 작은 트럭에 강현철은 그날 밤의 일을 떠올렸다.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어.’


지난 한 달 동안 누나를 치려 했던 뺑소니 트럭을 조사했지만,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일대 CCTV는 물론이고 현장에 남아있어야 할 스키드 마크도 사라졌다.’


화학 약품이나 고압 세척기를 사용한다면 어느 정도 스키드 마크를 없애는 것은 가능하지만,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그런데 현장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스키드 마크 흔적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뿐이랴. 하다못해 깨진 유리 파편이라도 발견되어야 했지만, 그 어떤 조각도 발견할 수 없었다.


‘덕분에 정식으로 사건을 접수할 수 없었지.’


피해자도, 의심될 만한 정황도, 증거도 없었으니 아무도 강현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강현철이 아니었다. 그는 혼자서라도 이 사건을 파헤치려 했다.


‘지난주에 누나가 엽서를 보내지 않았다면 말이지.’


강현철은 누나의 엽서 내용을 떠올려 보았다.


[야, 단무지! 내가 연락하기 전까지 신경 꺼!]


단무지는 단순 무식한 그에게 강현정이 부르던 옛날 별명이었다. 필적감정 조회 결과 누나가 쓴 엽서가 맞았다.


‘일단 누나가 무사한 것 같아서 넘어가지만 그래도 계속 단서를 찾아봐야겠지.’


단서도 흔적도 없는 상황이라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그때 누나가 놓아준 주사의 정체가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대체 뭐길래 최소 중상인 상처를 흔적도 없게 만드냐고.’


그러고 보니 누나가 10년 전에 어떤 연구소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혹시 그것과 관련된 건 아닐까?


‘······그 연구소 이름이 뭐더라.’


오래된 기억이라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연구소 이름을 떠올리려고 애쓰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경찰서 입구였다.


‘여기가 앞으로 내가 일할 곳···.’


말로만 듣던 아진시, 그것도 가장 사건 사고가 많이 터진다는 중부 경찰서의 풍경은 생각보다 멀끔했다.


‘겉으로만 봐선 조용한데······ 여기가 그렇게 때려잡을 놈들이 많다는 거지?’


나쁜 놈들 잡아 처넣을 생각에 강현철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모조리 갱생시켜 주마.’


그러다 문득, 한 가지가 걱정되었다.


‘···이런 곳에서도 과잉진압을 신경 써서 제압해야 하나?’


강현철에게 경찰은 천직이었지만, 범인의 인권을 지켜줘야 한다는 점이 늘 불만이었다.


특히 과잉진압을 신경 쓰다 보면 저도 모르게 주먹에서 힘이 풀려 범죄자 놈들을 시원하게 팰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아진시는 좀 다를까?’


겪어보지 않고선 모를 것이다.

그렇게 강현철은 새로운 근무지에 첫발을 내디뎠다.


‘신고는 어제 했으니까 따로 서장님을 만나러 갈 필요는 없겠지.’


어제 서장님의 스케줄 문제로 신고를 하루 일찍 할 수 있겠냐는 전화를 받았었고, 그렇게 만난 서장님은 서글서글한 얼굴로 그를 반겨주었었다.


-강현철 경장 이야기는 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어요.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줄 테니까.


이전 근무지의 서장님은 사고만 치는 강현철을 무척 싫어했었는데, 이곳 서장님은 왜인지 그를 마음에 들어 했다.


‘강력2팀이라고 했었지?’


서장님은 현재 인원이 부족한 곳이기도 하고, 최근에 골치 아픈 사건을 맡은 강력2팀으로 그를 배정했다.


끼이익.


강력2팀 사무실 문을 열자, 무언가의 글씨가 빼곡히 적힌 화이트보드와 먹다 만 컵라면 등으로 어질러진 책상. 그리고 신문지로 얼굴을 덮은 채 잠이 든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형사들 사는 건 어디든 똑같구만.’


골치 아픈 사건을 맡았다더니 딱 봐도 집에 못 들어간 지 한 달은 되어 보였다.


‘그나저나 어쩐다. 깨워야 하나?’


졸고 있는 두 사람 외에 다른 팀원은 보이지 않았다. 고민하던 강현철은 두 사람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끼기기기긱.


강현철이 적당히 빈자리를 찾아 앉았을 때였다. 낡은 의자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어어?’


뚝.


쿠당탕탕!


육중한 몸을 버티지 못한 의자가 부러지며 강현철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 뭐야?!”

“아오, 시끄러! 응? 당신은 누구?”


야단법석에 깨어난 두 사람. 강현철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일어났다.


“강력2팀으로 발령받은 강현철 경사··· 아니, 경장입니다.”

“아, 일산 서부서에서 온다고 했던 그···?”

“네, 맞습니다.”

“······.”


첫날부터 의자를 부쉈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강현철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듯 보였다.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여기 사고 쳐서 왔다며?”


둘 중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기가 찬다는 듯 다가왔다.


“듣자 하니, 팀원들의 만류에도 기어이 사람을 패서 이빨을 부러뜨렸다고?”

“···사람이 아니라 범인이었습니다.”

“그래, 당신이 과잉 진압한 범인. 덕분에 팀원들이 개고생했다고 하던데.”

“······.”


할 말이 없었다.

범인에게 가차 없는 강현철의 행동 때문에 이전 동료들이 곤란 당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왜? 변명이라도 해보지 그래? 미리 말해두는데 난 너같이 단독행동으로 팀워크 흐리는 놈들을 제일······.”

“잠깐.”


잠자코 듣기만 하던 강현철이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단독행동? 팀워크를 흐리다니요?”

“시치미 떼시려고? 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발령 난 김에 새 출발이라도 하려고 했어?”

“그게 무슨···?”


이상했다. 눈앞의 남자의 두 눈에는 참을 수 없는 혐오가 가득했으니까.


범인에겐 가차 없이 행동하는 것 때문에 팀원들이 곤란을 당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이런 시선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대체 무슨 오해를······.”


강현철이 입을 열었던 그때, 앳된 인상의 남자가 벌컥 문을 열며 다급히 외쳤다.


“미꾸라지 위치 떴답니다!”

“뭐?! 이 개자식! 드디어 나타났구나!”

“어서 출동 준비해! 하윤이 너는 팀장님께 연락드리고!”


세 사람이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미꾸라지?’


설마 이 시간에 추어탕이나 먹으러 가자는 말은 아닐 테고. 아마 강력2팀이 맡았다던 골치 아픈 사건과 관련 있는 것이리라.


‘어쩐다?’


방금까지 서로 얼굴 붉혔던 사람들과 같이 출동하는 건 껄끄러웠지만, 그렇다고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은 더 싫었다.


‘나쁜 놈이 나타났으면 당연히 혼내주러 가야지.’


결론을 내린 그가 달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시스템······ 스탠바이······.


갑자기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강현철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뭐, 뭐야?!”


하지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주위는 고요했다.


‘···잘 못 들었나?’


이상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지만, 강현철은 고개를 저으며 세 사람의 뒤를 서둘러 쫓았다.


.

.

.


세 사람과 형사차에 올라탄 지 15분째. 차량 내 분위기는 무척이나 무거웠다.


앞 좌석에 앉은 두 사람은 강현철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옆자리에 앉은 신하윤 경장 또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답답하네.’


명백한 투명 인간 취급에 강현철은 팔짱을 끼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과잉 진압 때문에 좌천된 건 맞습니다. 하지만 경찰 생활하면서 부끄러운 짓 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바로바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쓸데없이 대가리 굴리는 짓은 성미에 안 맞았다.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할 말을 마친 강현철은 속이 후련했다. 그때, 운전대를 잡고 있던 도송학 경위가 짧게 말했다.


“신하윤, 설명해 줘.”

“예?”

“저 녀석도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냐.”


눈치를 살피던 신하윤이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미꾸라지. 본명은 김명호로 스턴트맨 출신에 액션 장비 만드는 걸로 유명하죠. 현재는 철물점 운영 중이고요.”


스턴트맨이라.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자였다.


“무슨 죄를 지었죠?”

“직접 만든 장치로 여행 온 두 모녀를 잔인하게 살해했죠. 마치 영화 쏘우의 한 장면처럼.”


상상만 해도 끔찍한 사건이었다.


신하윤은 이어서 놈이 도망의 귀재이며 이전에도 이상한 장치들을 사용하여 거의 잡을 뻔했던 것을 아깝게 놓쳤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는 청화동으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거기 있는 모텔에 미꾸라지가 묵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거든요.”


약 10분 후, 모텔에 도착한 그들이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601호라고 했지? 나랑 송학 형님이 진입할 테니까, 막내 너는 입구를 지키고 있어. 그리고······.”


강현철을 힐끔 본 오종대 경위가 마뜩잖은 말투로 말했다.


“그쪽은 알아서 하시고.”

“······.”


할 말은 많았지만, 지금은 범인을 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때, 신하윤이 조심히 물었다.


“저, 종대 형님. 그래도 지원을 요청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러다 저번처럼 또 놓치면······.”

“후우··· 그렇지 않아도 근처 지구대에 지원 요청했는데, 그쪽도 근처에 사건 터져서 빼줄 인원이 없다는 모양이다. 다행히 여긴 입구만 지키고 있으면 빠져나갈 곳이 없으니, 우리만으로도 충분할 거야.”

“···예.”


강현철의 생각도 같았다. 도망의 귀재라고 해도 입구가 하나뿐인 모텔을 빠져나갈 방법은 어디 있겠는가.


“그럼, 시작하자.”


두 사람이 먼저 모텔로 향했고, 뒤이어 신하윤이 이동하려던 순간이었다.


“잠깐만.”

“왜요?”

“전화번호 좀 알려줘요. 혹시 내가 도움 될지도 모르니.”

“······.”


신하윤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601호라고 했지?’


강현철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장 모텔의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만약을 대비해야지.’


그렇게 건물 뒤편에서 대기한 지 5분쯤 지났을까.


쨍그랑!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창문이 터져나가며 한 남성이 뛰쳐나왔다.


‘역시.’


드물지만 저런 놈 중엔 미리 완강기를 준비 해두는 경우가 있었다. 예상이 적중한 강현철은 어서 놈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미친?!”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듯, 미꾸라지는 빠르게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6층에서 옥상까진 거리가 꽤 있었으므로, 당연히 밑으로 뛰어내릴 줄 알았던 강현철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저건?’


자세히 보니 미꾸라지는 미리 설치해 둔 가느다란 와이어를 스턴트 액션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장갑으로 붙잡아 다람쥐처럼 빠르게 벽을 오르고 있었다.


강현철은 미꾸라지를 쫓아 이제 막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오종대에게 외쳤다.


“옥상! 빨리!”


상황을 파악한 오종대가 다급히 옥상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강현철은 건물 옥상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달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빨리 옥상으로 향해야 할 텐데.’


이곳 건물은 비교적 낮게 지어져 있어, 충분히 뛰어넘어 도망갈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검거가 늦어진다면, 골치 아파질 것이다.


‘제발 늦지 않길.’


하지만 상황은 강현철의 바람과 다르게 흘러갔다.


“이 새끼야! 거기 서!”


옥상에서 들려오는 오종대의 욕지거리와 함께 미꾸라지가 다른 건물로 점프했다.


“빌어먹을!”


뒤를 쫓던 두 사람도 미꾸라지를 따라 뛰려 했지만, 반대쪽 옥상에 도착한 놈이 또 미리 준비해 둔 것으로 보이는 철조망을 쳐버리고 말았다.


“하윤아! 쫓아!”


도송학에게 지시받은 송하윤이 미꾸라지를 쫓기 시작했고, 강현철 또한 달리기 시작했다.


‘뭐가 저리 빨라!’


잠시라도 눈을 뗐다간 놈의 모습을 놓쳐버릴 것만 같았다.


‘놓치지만 않으면 돼.’


아무리 건물 사이가 넓지 않다지만, 곧 뛰어넘을 수 없는 구간이 나오게 될 것이고. 결국 건물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을 터.


‘그때 놈을 잡으면 돼.’


그렇게 한참을 뛰다 보니 어느새 신하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뒤쳐진 모양.


‘이제 슬슬 저놈이 내려올··· 어? 이런 제기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갑자기 옥상에서 뛰어내린 미꾸라지가 건물의 벽과 벽을 지그재그로 밟으며 순식간에 내려와 버렸으니 말이다.


‘건물 간격이 좁은 곳이었다지만 이게 말이 돼?!’


아무래도 파쿠르라도 연마한 모양이었다.


‘잠깐, 저긴···?’


갈림길이 많은 골목이었다. 잘못했다간 놈을 놓칠지도 모르는 상황.


서둘러 놈이 뛰어내린 곳에 도착했으나, 이미 놈의 모습은 사라진 뒤였다.


‘어디로 갔지?’


눈앞에는 세 갈래 길이 있었다.


‘···반드시 잡는다.’


강현철은 아까 받은 신하윤의 번호로 상황을 간략하게 전달한 뒤, 곧장 왼쪽 길로 향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쪽이 아닙니다.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오며 주변 CCTV가 눈앞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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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쪽이 아닙니다 24.09.06 475 13 18쪽
1 과잉 진압 전문 형사 강현철 +1 24.09.06 518 1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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