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게 성자라고 부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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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삼
작품등록일 :
2024.09.05 04:47
최근연재일 :
2024.09.09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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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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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바벨탑 13층과 서초구 참사(1)

DUMMY

바벨탑 영역 밖.


현장에 남겨진 사람들은 저마다 떠들어댔다. 간간이 플래시도 터졌다. 초유의 탑 공략 스틸 사건이 떴는데 그대로 넘길 기자는 없었다.


그러던 와중. 상황을 관망하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돌았네.”


간결한 평가였다.


남자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고는 길드 리더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공략 기회가 밀렸으니 이후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아 저기 있네, 남자가 걸음을 옮겼다.


“리더. 관전하러 가실 건가요.”

“시체 구경은 취미가 아니라서.”


안대로 두 눈을 가린 이는 남자를 지나쳐 떠났다. 역시 관전은 안 하시는군, 남자는 그리 생각하며 팀원들을 이끌고 리더를 뒤따랐다.


‘일정이 당겨진 덕에 내일은 쉬겠네.’


남자는 괜스레 뒤돌아서는 바벨탑을 눈에 담았다. 이왕이면 살아서 나와라, 나지막한 말이 발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길드 하나가 떠나고도 현장은 소란스러웠다.


“대장! 우리는 관전하면 안 돼? 궁금한데!”

“······그. 그래. 가자. 어깨는··· 그만 흔들어줘.”

“보스. 저희는 어떻게 하죠?”

“볼 사람만 봐요. 안 볼 사람은 퇴근하고요.”


관전하기를 선택한 플레이어들은 다 같이 바벨탑에 입장했다. 그 사이 기자들 사이에서는 기다릴지, 먼저 돌아갈지, 의견이 나뉘었다.


그러던 순간.

신입 기자 김 아무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너도 가게?”


선배 기자가 한숨을 푹, 내쉬며 물으니 김 아무개가 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사실을 고백했다. 실은 자기가 각성자라고.


선배 기자는 깜짝 놀라 후배를 쳐다봤다.


‘녀석. 네가 동아줄이구나!’


선배가 어서 가라며 등을 두드려 주자, 김 아무개는 좋아라 웃으며 노트북과 마이크를 챙겨 들었다. 특종 건져 올게요, 호언장담도 잊지 않았다.


‘이번에 잘해서 칭찬받아야지.’


바벨탑 영역으로 들어서며 김 아무개가 킥킥댔다. 그러다 손끝이 저릿해지는 감각에 순간 숨을 들이켰다. 마나 농도가 급격히 늘어나 생기는 현상이었다.


이곳은 언제 와도 기분이 이상하다고 김 아무개는 투덜거렸다. 이내 걸음을 재촉해 바벨탑으로 입장했다. 목적지를 알리고 눈을 감았다 뜨자, 모니터링을 위해 마련된 층이었다.


처음 와보는 내부에 김 아무개가 감탄했다.


그러기를 얼마간. 정신을 차린 김 아무개는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노트북을 무릎 위에 두고 펼쳐 빠르게 준비를 끝마쳤다.


그리고 때마침 스크린에 사람이 비쳤다.


“쟤가 걔지. 이름이 뭘까.”

“어차피 공략 끝나면 뜰 텐데, 뭐.”

“제발 시체로 나오지만 마라.”


장내에 소곤거리는 소리가 하나둘 겹쳐 갔다.


대부분은 못마땅, 걱정, 한탄이었다. 의아하기로는 김 아무개도 마찬가지였다. 중도에 난입한 플레이어는 아무런 무기도 없이 13층을 돌아다녔다.


그때였다.


“허. 쟤 지금 뭐 하냐.”


짤막한 실소에 모두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대한 스크린 안.


폐놀이공원을 모티브로 삼은 13층 내부를 탐색하듯 돌아다니던 난입 플레이어가 공포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손에는 기념품점에서 파는 커다란 인형을 들고서.


***


13층에 숨겨진 루트 공략은 생각보다 쉬웠다.

치유 능력자인 나로서는 더더욱.


“빨리 끝내자.”


공포의 집.


입구 복도를 지나 소품이 어지러이 쌓인 방에 발을 들였다. 벽지가 뜯긴 사면에는 물때 자국이 싯누렇게 끼었고, 바닥은 곳곳에 돋아난 따개비에 더해 천장에서 떨어진 핏물로 지저분했다.


이곳이 삼은 모티브는 인어 동화였다.


인형을 안고서 방 안쪽에 자물쇠가 뜯어진 문으로 다가갔다. 손잡이를 돌리자 끼익, 끼익, 소름 끼치는 소리가 귀에 박혀왔다.


문 건너편은 오래된 수술실이었다.


삐―― 삐―― 삐――


수술대 옆에 놓인 장치가 울려댔다.


여기도 오랜만이군.


안쪽으로 걸어가니 비린내가 조금씩 짙어져 갔다. 뭍에서 느릿하게 메말라가는 생선 냄새가 났다. 달칵, 장치 앞에 다다라 전원을 껐다.


장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시선을 돌리니 천으로 덮인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물기가 어린 머리카락. 곳곳에 딱딱한 비늘이 돋아난 살갗. 익숙한 순서로 천을 걷었다.


그러자 골반 아래가 뜯어진 인어가 드러났다.


13층에 숨겨진 루트 공략 조건은 단 하나였다. 성인 남성만 한 인형 다리를 잘라서 인어에게 붙여주는 것. 담력만 있다면 과정은 간단했다.


곧바로 인형을 수술대 위에 놓고 재료를 찾았다.


의료용 실, 바늘, 붕대.


다리를 꿰매는데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은 접합부인 골반 아래 근육 조직이었다. 모양새 탓인지 여기서 더 못하겠다고 나오는 사람이 많았다.


피가 줄줄 흐르니 보통은 그럴 수밖에.


난 상관없지만.


준비를 끝마치고서 인어 골반에 손을 올렸다. 짙은 금색 빛무리가 피어오르며 서늘한 감각이 손끝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갔다.


힘이 막히지 않고 전달되는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그동안은 마나 불감증 때문에 능력이 불안정했으니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충분한 시간이 흐르고서 눈을 떴다.


절단면 피부가 깨끗하게 재생되어 있었다. 만족하며 인어 골반 아래에 인형 다리를 뜯어 꿰매기 시작했다. 살갗에서 피가 흐르면 치유를 반복해서 썼다.


작업은 한참 만에야 끝이 났다.


걸음을 뒤로 물리니, 정신을 차린 인어가 어그러져 발음이 새는 하관으로 ‘이제 공주를 만날 수 있어’라고 중얼거렸다.


아름다운 결말이기를 바라며 박수를 보냈다.

미소로 화답한 인어는 수술대에서 내려와 문밖으로 철퍽, 철퍽, 걸어 나갔다.


“너도 고생했다.”


대신 다리를 내어준 곰 인형을 챙겨 들었다.

그러던 참에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네트워크 알림〉

13층 숨겨진 루트가 해금되었습니다.

최초 시도입니다.

공략 기여도: 1위 선우현(S)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아몬이 남긴 신물



툭, 허공에서 작은 보석이 떨어졌다.


습도를 머금어 말갛게 반짝이는 여름날 오팔이었다. 인어 이야기와 어울리네.

보석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산했다.


파삭!


망설임 없이 오팔을 부쉈다.



〈신물 사용〉

등급을 올릴 수 있습니다.

성장시킬 능력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치유(S > S+)」

「통각 제어(A > A+)」



스파크가 튀는 등 이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벨탑 안이어서일까.


선선히 치유 능력을 선택했다.



능력 치유 등급이 상승하였습니다.

변동: S > S+

[기존 효과]

접촉 시 모든 신체 훼손을 치료

타인의 불안을 안정

[추가 효과]

비접촉 광범위 치료 전개/최대 중상

접촉 시 마수 정화

타인의 불안을 완전 해소



추가된 효과를 읽고는 놀랐다.


마수 정화?


이전 상승 때에는 생긴 적 없던 효과였다. 거기에 더해 비접촉 광범위 치료 전개 범위도 크게 달라졌다. 경상에서 중상으로.


병 유무 때문이겠군.


마수 정화는 근접 전투 쪽인가. 잘하면 내일 발생할 게이트 폭발 이상 현상에 사용할 수 있을 듯했다. 보상 지급 절차는 금방 끝이 났다.


이어서 네트워크 알림이 다시금 떠올랐다.



최단 시간 공략에 성공하였습니다.

숨겨진 루트는 순위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정식 루트 공략을 진행하겠습니까?

「수락/거절」



별달리 고민할 것은 없었다.

거절을 클릭했다.



〈중도 하차 선언〉

13층을 숨겨진 루트로 공략하였습니다.

중도 하차가 인정됩니다.

바벨탑 로비로 자동 이동합니다.



가벼운 부유감이 몸을 감쌌다.


눈을 슬며시 감았다 떴다. 그리고 앞에 들이밀어진 마이크를 보고 멈칫했다. 시선을 들어 올리자, 덩치가 큰 남자가 보였다.


“선우현 님!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기자 뒤로 눈길을 돌리니 플레이어 여럿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관전. 이해는 뒤늦게 찾아들었다. 신물에 정신이 팔려 그만 잊고 말았다.


다 봤겠군.


예상이 틀리지 않은 듯 곧바로 이야기가 쏟아졌다.


“S급이어서 중도 난입했냐. 패기 미쳤네.”

“와. 야. 숨겨진 루트는 어떻게 알았는데?”

“백 씨 어떡해. 못 봐서.”

“그 인간 나중에 배 아파할 듯.”


소란을 훑어보다가 낯익은 면면에 머리를 굴렸다. 차라리 잘 됐다. 혼자 재난을 막으란 법은 없지 않나. 머릿속으로 계획을 수정하고는 말했다.


“13층 숨겨진 루트 어떻게 알았는지 들으실 분?”


·

·

·


인근 고깃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 대장이 사는 거야! 많이 먹어!”

“···그래. 내가 사는 거구나.”

“대장! 우리 살치살도 시키자!”


원래는 모니터링 층에서 얘기를 끝낼 생각이었는데. 배아람. 말투에서부터 활기가 넘치는 녀석에게 붙잡혀 여기 끌려왔다.


고깃집에는 플레이어 나를 빼고 네 명이 참석했다. 배아람이 속한 미리내 길드에서 세 명. 그리고 혼자서 따라온 흑룡 길드 사장.


나머지는 일찍이 돌아갔다.

뻔하지.

뒤에서 내 정보를 캐라고 보냈을 터였다.


“채끝도 시킬까? 응? 채끝 좋아해?”


배아람은 집게로 고기를 뒤집으며 말을 걸었다.

고개를 끄덕이니 질문이 이어졌다.


“너는 이름이 선 우현이야? 선우 현이야?”

“선우 현입니다.”

“외자네. 야. 백 씨랑 똑같다.”


익숙한 폭소가 들려왔다.


공통점은 외자밖에 없는 이름 두 개로 어허허, 잘도 웃어댔다. 자기도 외자면서. 처음 만난 때도 이랬는데, 어째 똑같았다.


녀석은 웃음을 털어내듯 머리를 젓더니 말했다.


“내 이름은 한영이다. 그보다 몇 살이냐?”

“열일곱입니다.”

“와! 열일곱! 아기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나는 배아람이야! 스물셋! 한영이랑은 동갑!”

“형님이라고 불러라.”

“그리고 이쪽은 우리 미리내 길드 우두머리! 대장! 아하하! 자기소개 타임! 재치 있고 재미있게 해주겠죠! 미리내 간판인데!”

“······안녕하세요. 그. 윤재한입니다.”


뻗어오는 손을 맞잡았다.


윤재한은 이때도 배아람한테 시달린 모양이었다.

견뎌라. 너네 어차피 결혼할 거잖아.


“이제 한 사람 남았네! 여기 두루마기 굳이 굳이 안 입고 어깨에 두른 사람은 팀원들 다~ 돌아갔는데 눈치 없이 혼자 따라온 흑룡 길드 아저씨야!”


틀린 말은 없는데 박하군.


“하하. 류현성이에요. 잘 부탁해요.”


류현성은 인색한 설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건넸다.


흑색 바탕에 금박이 새겨진 모양새.


기억과는 디자인이 조금 달랐다. 그러고 보니 지금 흑룡 길드는 개편 전이었나. 아무래도 그때 디자인도 같이 바꿨던 듯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13층에 관해서 듣고 싶은데.”


왜 안 물어보나 했다.


고기를 집어 먹으며 준비한 답을 전했다. 앞서 말을 맞춰두지 못하는 것이 걸리지만, 그 사람만 한 기인도 없으니 괜찮겠지.


“마녀에게 들었습니다.”


장내에 침묵이 가라앉았다.


마녀(魔女).


그렇게 불리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특이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특히나 유별난 사람. 어떤 정보든 알고 있는 인간. 자기 자신을 마녀라 불러달라고 말하는 괴짜.


성별과 이명 말고는 무엇도 알려지지 않은 이.


“마녀를 만났다고요?”

“네.”


류현성은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쉽게 믿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렇겠지.


마녀는 바벨탑이나 게이트 관련한 일들에 간섭하지 않아 왔으니까. 무엇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이고. 부러 말을 아꼈다.

그러니 류현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재밌네요. 마녀가 방관자를 그만두다니.”

“사람은 살다 보면 변하니까요.”


마녀는 십 년 뒤에도 충실한 방관자였지만.


덕분에 이름은 팔아먹기 편했다. 세간으로부터 어떤 질책을 받아도 별달리 해명하지 않던 이니까. 이번에도 조용하겠지.


언제나 그랬듯이.


“마녀가 다른 말은 안 하던가요?”


류현성은 정보를 캐내려는 듯이 물어왔다.

기다려 마지않던 주제였다.


“마녀가 게이트 폭발을 예견했습니다.”


곧바로 말을 이었다.


“일시는 2018년 3월 2일. 장소는 알 수 없습니다. 오후 2시 30분 게이트 폭발 뒤 서초구 일대가 이상 현상에 휩쓸릴 거랍니다.”


한영이 소리 내어 실소를 터트렸다.


섣불리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불판에서 나는 소음만이 정적을 메웠다. 가만 기다리니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제를 꺼낸 이는 류현성이었다.


“의외네요.”

“어. 뭐가 의왼데요?”

“하하.”


한영이 되묻자, 류현성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어째서 마녀는 선우현 씨에게만 알렸을까요?”


짙푸른 홍채와 눈이 마주쳤다.

류현성은 나긋나긋한 어투로 말했다.


“내용을 들어보니 널리 알리는 편이 나을 텐데요. 이상 현상이 일어난 이유가 게이트 폭발이라면 크나큰 재난으로 번질 것 같은데.”


타당한 지적이었다.


보통은 언론 등을 통해 시끄럽게 알리겠지. 하지만 마녀는 아니었다.

알아도 간섭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알고 있었단다.


수많은 이들이 죽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자. 이해할 수 없는 존재.


그래. 마녀는 그런 이였다.


참사 때도. 그 후로도.


“버릇 못 버렸나 봅니다. 모릅니까, 마녀 성격.”

“아. 하하. 그렇네요. 그런 사람이죠.”


류현성은 더는 말꼬리를 잡지 않았다.


수긍했는지 넘어가 줬는지는 잘 모르겠다. 류현성은 턱을 괸 채로 슬그머니 웃었다. 속내를 알 수 없으니 나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그리고 그 순간. 류현성이 입을 열었다.


“선우현 씨.”

“네.”

“당신 능력이 궁금한데 말해줄 수 있어요?”


내뺄 질문은 아니라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공유할 생각이었으니까.


“치유입니다. 등급은 S+이고요.”


말을 끝마치자, 배아람이 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한국에 성자가 나오다니.”


제기랄.

그놈의 성자 호칭 나올 줄 알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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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게 성자라고 부르지 마라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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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1-3회 수정 건 24.09.09 14 0 -
3 003. 바벨탑 13층과 서초구 참사(2) 24.09.09 10 0 12쪽
» 002. 바벨탑 13층과 서초구 참사(1) 24.09.09 12 0 14쪽
1 001. 눈 떠보니 10년 전 24.09.09 1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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