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덕분에 힘법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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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온숙성
작품등록일 :
2024.09.07 23:58
최근연재일 :
2024.09.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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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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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대비하기

DUMMY

009 사춘기 대비하기


집결지인 고창 선운산까지는 차로 2시간 거리다.


평일 오전이라 가는 길이 아주 쾌적하다. 머릿속도 쾌적하게 만들기 딱 좋을 때다.


신비한 현상을 어떻게 해서 겪게 됐는지를 파악해 보는 건 보류. 의문 범벅이긴 하다만, 신비한 현상은 득이 되니 일단 좋은 일이다.


남들은 돌도끼 들고 싸우는데, 나 혼자만 총을 갈기며 싸우는 기분이랄까? 스킬의 위력이 그걸 가능케 한다.


두 번째 스킬도 그럴 것이란 기대감과 스킬을 통해 강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샘솟는다. 몬스터들이 지랄발광을 해도 내 하나뿐인 혈육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자신감을 지속하기 위해선 어찌 해야 하는가?


스킬을 얻는 것에 집중하자.


안 그래도 출동이 잦아져 찝찝하고 불길한 기분은 강해지는 것으로 해소하자.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꾸준하게.


쾌적한 도로를 달리며 결론을 내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결지에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보는 이가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며 인사를 건넨다.


복장을 보아하니 선운산 경비대는 아니고······. 누구세요?


“15타격팀 수습대원으로 합류한 이규철이라고 합니다.”


“수습대원이요? 아, 네. 반갑습니다. 강태석입니다.”


“선배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수습대원이라면 인턴인 것이다. 내년에 팀장이 정년퇴직으로 빠질 것에 대비하는 것인가.


그 답은 먼저 와 있던 팀장이 내놨다.


“나도 갑자기 연락 받긴 했는데······. 인원 미리 채워줄 테니까 열심히 굴리면서 키우라는군. 맨날 사람 없다고 그러더니, 이런 일도 다 있네. 허허. 아무튼 다들 인사들 나누라고.”


진짜 인턴 합류에 팀원들이 반색했다.


“팀장님! 저 그럼 전투요원으로 올라가는 겁니까?”


막내에서 벗어난 권종협은 입이 귀에 걸렸고.


“형님, 아니 팀장님! 그럼 나나 도원이나 둘 중 하나가 팀장으로 승진하는 겁니까?”


“인마. 실력으로 보나, 짬밥으로 보나 내가 승진하는 거지.”


“이놈이 아직 잠이 덜 깼나. 팀장은 나이로 가는 거 몰라? 육법전서에 그리 나와 있다고.”


“아이고. 한 달이나 먼저 태어난 형님을 몰라 뵀네.”


48살 동갑내기인 8급 형님들, 서주석과 박도원은 팀장으로 승진하는 부푼 꿈을 꾼다.


“시끄럽고. 팀장이라고 20만원 더 주고 몇 곱절로 부려먹는데 그게 뭐 좋다고······. 쓸데없는 소리할 시간에 얼른 일이나 시작하자고.”


어수선하고 들뜬 분위기는 팀장의 제압으로 바로 수습됐다.


나 역시 팀장의 마음과 같다. 새 대원이 들어오고, 누가 팀장이 되는가는 관심 밖이다. 내 관심사는 딱 하나.


“팀장님! 오늘은 던전 안 들어갑니까?”


던전에 들어가냐 안 들어가냐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우리는 마석 캐는 광부가 아니라니까. 던전 빠져나온 것들이나 잘 잡자고.”


아쉽다.


던전에 들어가야 스킬 획득 포인트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조급해하지 말자고 되뇌길 잘했다. 역시 기대를 내려놔야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래서 총 몇 마리입니까?”


“어디 보자. 경비대가 확인한 건 4마리이니까······. 뭐, 4마리가 맞겠지.”


다음번 출동 땐 던전에 들어갈 수 있겠지. 두 번째 스킬인 ‘개구쟁이 꼬마버스의 깜짝방귀’를 얻기 위해서 잡아야할 놈들은 128마리. 언젠간 잡겠지, 뭐.


그건 그거고. 약속 하나만 받자.


“팀장님.”


“왜 또?”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던전에 들어가게 되면 몬스터놈들 제가 다 잡아도 되겠습니까?”


“뭐? 네가 다 잡겠다고? 왜?”


왜긴. 티클 모아 태산을 만들어야 하니까. 가족 같은 팀장이기에 퇴직하기 전에 무리한 부탁 좀 하자.


전혀 공무원답지 않은 요청에 공무원의 표본이자 공무원 그 자체인 팀장이 화들짝 놀란다.


“너 어디 아프냐? 왜 안 하던 짓을 하려고 그래?”


“열심히 해보려고요. 진급할 때도 됐는데 연습도 할 겸.”


“허허허. 이놈 자식 어디 아픈 모양인데? 아니, 언제는 열심히 안 했어? 그리고 열심히 해서 뭐하려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돈 더 주는 것이 아니니 가늘고 길게 살라는 팀장의 충고가 느껴진다. 지금까지는 그 충고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강태석이가 진급을 운운한다라······. 너 지금 7급이지?”


“네.”


“5급부터 월급 확 올라가니까 욕심낼 만하지. 근데······. 잘 생각해라. 우리 같이 몸 쓰는 놈들은 몸이 재산이야. 돈 욕심 부리다 몸땡이 다치면 버느니만 못하는 거야.”


“돈이야 지금 월급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럼 열심히 할 이유가 없잖아? 공무원답지 않게 왜 그래? 뭐, 해외진출이라도 하려고?”


그건 생각 안 해 봤는데, 좀 혹하네.


우리나라 말고도 뉴질랜드와 북유럽 국가들에서도 몬스터 사태가 발발했었다.


국운을 걸어야 했던 우리나라와는 달리, 숫자가 많지도 않고 몬스터들이 굉장히 얌전하다. 그리고 쾌적한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나라답게 인명피해도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마석의 가치가 알려지면서 덩달아 헌터의 가치도 올라갔고, 몇몇 헌터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해외로 진출하겠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부질없다.


“해외여행도 제대로 못 가는데 무슨 해외진출입니까.”


“그래서 이해가 안 된다는 거야. 안 그러던 놈이 열심히 하겠다는 소리를 할 이유가 없잖아?”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사는 팀장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다.


이럴 땐 한별이를 팔면 된다.


“한별이한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고요.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갑자기?”


“어디서 봤는데, 그게 사춘기를 수월하게 넘기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허허. 사춘기 그거 무섭지. 특히 딸이면 더 그렇지. 근데······.”


“네.”


“한별이 이제 3학년 아니냐? 너무 이른 것 같은데?”


“일찍 일찍 준비해야죠.”


“한별이를 위해서 열심히 살겠다는 건 좋지. 근데, 그런다고 몬스터 혼자 잡겠다고 폼 잡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아, 몰라. 알아서 해. 사고만 치지 말고.”


팀장의 허락이 떨어졌다.


“팀장님! 출발 안 합니까? 둘이서 뭐 그리 심각하게 그러고 있는 겁니까?”


별 것 아닌 긴 대화에 탱커 서주석이 끼어들었다.


“아니, 태석이 이놈이 갑자기 열심히 살겠다잖아.”


팀장으로부터 대화의 전말을 전해들은 서주석도 흥분했다. 흥분의 방향은 내가 아니라 팀장이었다.


“아니, 팀장님! 격려를 해줘도 모자랄 판에 그러지 말라고 훈계를 합니까? 태석이 이놈이 우리 편히 쉬게 해주겠다는데, 왜 그걸 말리냐고요.”


서브딜러 박도원도 팀장 타박에 힘을 보탰다.


“팀장님! 태석이가 우리 버스 태워준다고 하면 고맙다고 큰절 올리면서 힘내라고 격려를 해줘야지요. 태석아, 그렇지?”


던전에서는 내가 몬스터를 독식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스킬 얻는 게 이리 힘든 일이다.


“자, 일하러 가자고. 방한장구 잘 챙기고! 방심했다가 동상이라도 입으면 평생 고생한다. 그리고 신참!”


“네.”


“우리 팀에서는 여기 태석이가 제일 센 놈이니까 잘 따라다녀. 그리고 종협이한테 마석 캐는 거 잘 배우고.”


“네!”


팀장의 신참 챙기기에 신참 이규철이 내 옆에 바짝 붙었다.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너무 바짝 붙은 거 같은데.


“이번에 선발되셨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9급?”


“네. 그것도 겨우 통과했습니다. 선배님만 믿겠습니다.”


“선운산이야 딱히 위험할 건 없으니까 방심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근데-”


“자, 출발하시죠!”


말이 길어진다 싶을 땐 끊어야 한다. 카페에 노가리 까러 온 것도 아니고······. 전우애는 산속 헤집고, 몬스터들 잡다보면 알아서 생긴다.


선운산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몬스터들 처리하러 가자.


오늘 잡을 몬스터는 ‘냉기파충괴수’라 이름 붙은 도마뱀이다. 어떤 놈이 이딴 이름을 지었는지 꼭 확인하고 싶다. 공무원이 되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작명센스가 생기는 것이 분명하다.


어쨌건, 공룡이라기엔 아주 작고, 코도모왕도마뱀보단 살짝 작은 녀석을 잡으면 된다.


희한한 게 던전이 산에서만 발견됐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몬스터들도 산을 벗어나지 않는다. 더 희한한 건 몬스터 강함의 정도가 산의 높이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낮은 산엔 허접한 놈들이, 높은 산엔 빡센 놈들이.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갈수록 줄어드는 건, 거기에 한라산이 있기 때문이다. 한라산 던전에 잠들어 있는 그놈이 깨어나 던전을 빠져나오기라도 한다면 제주도, 아니 한반도 자체가 무인도가 될지도 모른다.


고로 해발 336m의 선운산에 사는 도마뱀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딱 좋은 샌드백 수준이다. 간혹 필살기로 아가리에서 냉기를 뿜는 것만 조심하면 된다.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선운산을 헤집기 시작했다. 그리고 등산 1시간 만에 첫 번째 희생양을 발견했다.


“자, 1호 도마뱀 출현! 전투 대형으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게 몽둥이찜질하기 딱 좋게 생겼다. 누가 봐도 도마뱀인데 냉기파충괴수라는 이름을 붙인 이름 모를 공무원에게 비웃음을 날리고는 달려들었다.


도마뱀을 잡는 방법은 단순하다.


야구 선출인 서브딜러 박도원이 이것저것 잡히는 대로 던지며 도마뱀을 잔뜩 약 올린다.


매우 공격적 성향인 도마뱀이 흥분해 달려드는 사이에 탱커 서주석이 버티기에 들어가면, 내가 도마뱀 대가리를 힘껏 내리친다.


대가리가 돌처럼 딱딱한 도마뱀이 충격에 멈칫하면, 박도원과 팀장이 칼을 꺼내 네 다리와 꼬리를 잘라낸다.


그 다음엔 신나는 다구리.


매뉴얼은 그렇지만, 한 방에 잡는다는 마음으로-


빡!


“어우야. 태석아! 살살해라. 너 그러다 손목 나간다.”


도마뱀에게 미안하게도 한 방에 못 잡았다. 그럼 안 미안하게 만들면 될 일이다.


빡!


빠악!


다른 팀원들이 도마뱀에게 칼질하겠다고 달려오는 사이에 냅다 망치를 휘둘렀다. 한 방에 안 죽으면 힘을 더 줘서 두 방, 세 방 먹이면 된다.


“태석아. 도마뱀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돌덩이 같은 대가리가 미숫가루가 된 듯하다.


이렇게 가볍게 한 마리 처치.


내 시야 일부를 잠식했던 알림은 보이지 않는다. 시야가 너무 쾌적하다.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선운산의 울창한 숲과 무성한 수풀만 보일 뿐이다.


변산 던전에 들어갔을 때 알림이 떴었고, 던전에서 나왔을 때 알림이 사라졌었다. 그리고 던전 내에서도 알림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했었다.


아마 던전에 진입했다는 신호이면서, 일정범위 안에 몬스터가 있다는 경고가 아닐까 싶은데······. 역시나 그런 듯하다.


스킬 사용도 안 되는 것일까?


이건 확인 못하겠다. 신참까지 왔는데, 노래를 부르는 건······.


조용히 도마뱀이나 잡자.


빡!


“아이고야. 도마뱀 새끼 불쌍해서 어쩌냐.”


“어휴. 저놈 자식, 힘만 무식하게 세 가지고······.”


이번엔 한 방에 대가리를 박살냈다.


쾌조의 스타트에 팀장의 강력한 설레발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도마뱀 새끼들이 이렇게만 나오면 오늘 일 금방 끝나겠는데? 고창까지 오느라 고생했는데, 일 빨리 끝내고 저녁에 장어나 먹으러 가자고. 고창 왔으면 장어를 먹어주는 게 예의지. 허허.”


고창의 명물 풍천장어 생각에 입에 침이 한 가득 고였다.


퇴근 선언이 나오기 무섭게 집으로 복귀했었지만, 오늘은 질척거리고 싶다. 저녁도 먹어야 하고, 퇴근시간 걸리면 차도 막히니까······. 풍천장어의 위력이 그 정도이다.


나머지 2마리 도마뱀도 빨리 처리하고는 만찬을 즐기자는 생각에 안 그래도 넘쳐나는 체력이 마구 끓어오른다.


다들 침을 흘리며 던전을 탈출한 도마뱀 찾기에 혈안이 된 상태다.


예상 위치에 도마뱀이 얌전히 기다려주면 좋겠지만, 늘 그렇듯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어? 팀장님!”


수색 역할을 맡은 종협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에 담긴 기운이 썩 긍정적이지 않게 느껴진다.


“도마뱀 새끼야?”


“아니, 저것 좀 보세요.”


종협이가 가리킨 곳으로 다들 몰려갔다.


커다란 기암괴석 밑으로 비를 피할 만한 작은 동굴이 보인다. 인적이 머물렀던 흔적이 보이는 게 무당들의 기도 장소로 쓰였던 곳 같다.


그래서 뭔가 스산한 기운을 느낀 것일까?


“저 안에 좀 보세요. 숨 쉬는 것처럼 땅이 움찔거립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팀장의 대꾸가 곧 내 심정이다.


땅이 움찔거린다니······. 산이 숨이라도 쉰단 말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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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덕분에 힘법사 됐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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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춘기 대비하기 NEW 12시간 전 24 4 13쪽
8 강해져야 하는 이유 24.09.15 45 4 13쪽
7 번개맨을 찾아라 24.09.14 51 5 14쪽
6 연극이 끝나고 난 뒤 24.09.13 60 5 13쪽
5 친구들과 즐겁게 놀아요 24.09.12 66 5 13쪽
4 뚝배기 100그릇 24.09.11 69 6 13쪽
3 노는 게 제일 좋아 24.09.10 73 6 12쪽
2 광부인가 헌터인가 24.09.09 77 6 15쪽
1 감동의 생일선물 24.09.08 85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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